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철학과 예술에서의 결정론과 자유의지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자각은 자괴감을 주고, 자유롭다는 자각은 긍정적인 감정으로 느껴진다. 자유는 우리가 추구해야 마땅하다. 음악은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것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정말 그럴까.

▎[오이디푸스 왕](Oedipus Rex)을 작곡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에게 음악은 정해진 절차를 따르는 일이다. 이렇게 하면 음악에서의 우연성, 임의성, 작곡가가 자유롭게 처신할 여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스타일의 작곡가에게 감정의 격발, 분위기의 자유로운 변화 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냉정하며 현실적으로 처신했던 스트라빈스키는 작품에서도 감정 표현을 거의 하지 않았다. [오이디푸스 왕]은 반낭만주의적 미학의 실현이고, 청자의 감정이입과 몰입이 아닌, 거리 두기를 의도적으로 요구한다. 비극적 이야기를 담은 가사가 라틴어로 된 이유다. 라틴어로 노래하는 이야기를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 사진 : 위키피디아
모든 걸 아는 현인 아리스토텔레스도 자유(freedom)라는 명시적 단어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자기통제와 스스로에 의한 결정이라는 개념을 제안했을 뿐이다(T. Pink, Free Will, 2004, Oxford University Press, p.3). 자유는 서구에서 기독교와 함께 제안된다. 2세기에 활동했던 시리아의 기독교 사상가 타시아노(Tatian the Assyrian, ?~185)는 죄를 지은 나쁜 사람을 어떻게 정당하게 처벌할지를 고민했다. 사람들은 묘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전지전능하고 선한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서, 왜 나쁜 사람이 있지? 신이 창조한 인간이 죄를 지으면 죄지은 인간이 문제인가 아니면 그를 창조한 신이 문제인가? 타시아노는 단순한 하나의 논리를 제안함으로써 이 질문들에 답변했다. “인간은 자유의지(free will)를 가지고 있다!” 신이 창조했다지만, 피조물인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어서, 스스로 선택하여 악할 수도 있고 선할 수도 있다. 도덕적 책임이 있는 쪽은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악행을 저지른 나쁜 사람이며, 그를 창조한 신이 아니다(M. Frede, A Free Will, 2011,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p.11). 당시의 많은 신학자는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주장을 감히 부정하지 못했다. 신이 창조한 인간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신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타시아노는 상황을 잘 정리한 현자였다. 오늘날 개인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는 모든 이론의 기저에는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라는 가정이 있다. 고귀한 인간,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는 자유로운 인간론은 사회적·도덕적 삶의 전제이자 결론이다. 자기 인과론(self-causation)과 자기 결정이론(self-determination)에 기초한 철학적 자유의지론(libertarianism)은 현대 미국 사법 체계의 기초가 되었다.

자유의지론에 대조되고 반대되는 것이 결정론(determinism)이다. 현대적 결정론은 인과론이다. 앞선 어떤 원인(들)이 뒤따르는 어떤 결과 혹은 결과들을 낳고, 이 결과들이 다시 원인이 되어 후속하는 결과들을 낳는다. 어떤 원인은 선행하는 어떤 다른 원인의 결과였다. 결정론의 인과연쇄는 숙명론과 맞닿아 있다. 실제로, 고대 문화에서 결정론은 운명(fate) 개념과 함께 제시되었다. 고대 그리스 작가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생각해보자.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으로 태어났다는 오이디푸스 왕자를 그의 부왕은 죽이려고 했지만, 오이디푸스는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는다. 먼 곳에서 양육된 오이디푸스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와 그 운명대로 살게 되었고, 자신이 운명을 따라왔음을 안 후 자결한다. 결정론은 고대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업보(karma)’ 개념으로 제시되었고, 이 문화에서 운명에 충실한 것은 자신의 참된 자아인 ‘아트만(Atman)’을 존중하는 것이다. 힌두교의 보수적 교리에 불편했던 부처는 제자들에게 운명을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인도 불교에서 온전히 떨쳐버릴 수 없었던 숙명론은 중국 불교에서는 더욱 약해졌다. 근대에 와서 숙명론은 예술적 소재가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토머스 하디의 『테스』,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 일본 소설가 이누이 구루미의 대중소설 『리피트』 등 문학작품과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이 그 사례들이다. 운명에 맞서 싸워 이기고 자유를 쟁취한다는 관념 역시 예술적 소재로 인기가 있었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에서 격렬한 1악장은 “저항하기 어려운 운명의 두드림과 그에 맞선 투쟁”으로 상징된다. 투쟁 끝에 얻은 승리는 우렁찬 팡파르가 인상적인 4악장이다. ‘운명, 투쟁, 승리, 자유’의 근대적 관념은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에서도 표현되며, 그를 추앙했던 브람스, 브루크너, 말러 등의 교향곡에서 더 장대한 이야기가 되었다. 브람스의 [1번 교향곡]은 [운명 교향곡]의 격렬한 1악장, 승리하는 4악장의 구도를 그대로 따랐다. 두 교향곡 모두 1악장에서는 어두운 다단조의 세계를 보여주고, 4악장에서는 강력한 승리를 다장조의 세계로 표현했다.

재즈, 자유의 목소리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모로의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1864). 오이디푸스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도시 테바이(테베)의 왕이다. 소포클레스는 이 신화에 기초해 비극 『오이디푸스』를 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작품을 비극의 모범으로 평가했다. 오이디푸스는 고향인 테베로 돌아가다 산중에서 많은 사람을 괴롭히던 괴물 스핑크스를 만났다. 스핑크스가 낸 문제를 못 맞힌 이들은 모두 불귀의 객이 되었으나, 오이디푸스는 맞혀서 스핑크스를 죽게 한다.
자유의지와 결정론은 예술의 소재를 넘어서 예술가의 세계관으로도 작동한다. 어떤 예술가들은 예술을 자유로운 것으로, 온갖 속박과 제약을 넘어서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런 생각에 기초해 작품을 쓰는 것 같다. 미국의 재즈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브루벡은 이렇게 말했다. “재즈는 자유를 뜻합니다. 재즈는 자유의 목소리가 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나가서 즉흥연주를 해보고, 위험을 감수해보고, 완벽주의자가 되려 하지 마세요. 그런 건 클래식 음악가들에게 맡겨두세요.” 이처럼 재즈 작곡가에게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공격을 받은 고전음악가들도 자유를 추구했다.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는 “나는 내가 들을 수 있는 것만 쓰려고 한다. 나에게는 어떤 이론도 없다. 당신은 그저 듣기만 하면 된다. 기쁨이 곧 예술상의 법칙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정말로 이렇게 말했다면, 그는 의식적인 예술적 자유의지론자였다.

하지만 모든 음악가가 다 이렇지는 않았다. 오이디푸스의 불가피한 운명 이야기를 [오이디푸스 왕]이라는 오라토리오로 작곡했던 스트라빈스키는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 러시아 출신 유대인은 영감(inspiration)을 기다리지 않았으며, 영감, 감정, 표현, 예술, 예술가 등의 용어를 싫어했다. 그는 자신을 음악의 발명자, 수공업자라고 불렀고,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의 인간)라는 개념을 좋아했다. 수공업자는 주문을 받아 정해진 작곡 절차에 따라 생산한다. 스트라빈스키가 생각하기에, 음악은 시간 속에 나타나는 질서다. 음악적 질서를 만드는 일은 객관적 작업이며, 스스로 만든 규칙을 철저히 따르는 것이다. 스스로 만든 규칙이라는 개념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세기 현대음악의 열쇠다. 많은 고전음악가가 이미 만들어진 규칙이나 제약을 존중하고, 그에 기초해 작품을 썼다. 반면, 지적인 현대 작곡가들은 작품을 쓰기 전에 작품을 낳는 자기만의 규칙 혹은 체계적 절차를 만드느라 고민이 많았다. 그들은 각자의 미학에 따라 작곡을 위한 절차를 만든다. 미리 만들어진 절차는 거의 자동으로, 즉 논리적으로 음들을 산출(generate)해낸다. 또 다른 유대인으로서 20세기 현대음악가였던 쇤베르크가 12음 기법을 통해 보여준 세상이 이런 모습이었다. 쇤베르크를 따르던 이들은 쇤베르크의 결정론적 세계관을 더욱 강하게 발전시켰다. 1950년대의 이야기다. 쇤베르크 악파의 비판적 계승자를 자처하는 1970년대 프랑스 스펙트럼 음악가들도 기본적으로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공유한다.


▎미국 재즈 색소폰 연주자 파로아 샌더스(Pharoah Sanders). 샌더스는 비관습적인 연주 기법이나 특별한 기술을 통해 특이한 재즈 음향을 선보였다. 그에게 재즈는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것이다. 자유 재즈(free Jazz)는 자유로움과 임의성, 즉흥성 등을 추구한다. 많은 사람이 재즈를 자유로운 음악으로 받아들인다. / 사진 : 위키피디아
정치인이나 평범한 사람들도 자유의지론과 결정론 중에서 하나를 택하는 것 같다. 계몽주의 시대 및 프랑스대혁명 시기의 진보적 사상가들은 인간의 자유를 추구해야 할 가치로 여겼다. 1789년 8월, 그들이 “인간은 권리에 있어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 생존한다”(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제1조)라고 주장할 때, 그들 반대편에 있던 보수주의자들은 “그래 봐야 너희가 추구하는 것은 사회와 경제, 역사가 정해놓은 어떤 틀, 바꿀 수 없는 어떤 법칙에 거역하지 못하는 한갓 이상에 불과하다”라고 재를 뿌렸다. 프랑스의 보수적 사상가 르봉(Le Bo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랑스혁명은 새로운 이상에 흠뻑 고취된 이론가들과 인간을 지배하는 경제적·사회적·정치적 법칙들 사이에 벌어진 투쟁이었다. 혁명 이론가들은 이 법칙들을 이해하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했고, 그 실패에 분노를 느끼다가 결국 온갖 폭력을 자행했다.”(귀스타브 르 봉, 『프랑스 혁명과 혁명의 심리학』, 부글, 2018, 152쪽). 프랑스혁명기를 전후로, 진보 혹은 좌파는 자유의지론자였고, 보수는 결정론자였던 것 같았다. 이 상황이 바뀌었다. 오늘날 미국에서 보수주의자는 자유의지론에, 진보는 결정론에 더 매혹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샘 해리스에 따르면, 진보주의자는 (개인의 성공이나 실패와 관련해) 사람들이 운이 좋거나 나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경향이 있고, 보수주의자는 개인주의를 마치 신앙처럼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유의지는 없다』, 시공사, 2013, 77쪽). 오늘날의 자유주의자는 성공이든 실패든 개인의 책임을 강조한다. ‘노오력’을 강조하여 성공한 개인을 본보기로 삼고, 실패한 이들을 비난하는 경향을 보인다. 성공할 수밖에 없는, 혹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관심을 덜 보이는 경향을 보인다. 결정론자는 성공한 개인이 처해 있던 상황에 주목하자고 제안한다. 좀 더 극단적인 결정론자는 성공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높은 지능, 노력하는 성향 등도 개인의 산물이 아니라 부모나 사회로부터 물려받은 자질임을 강조한다. 여러분은 자유주의자인가, 결정론자인가?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207호 (20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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