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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정희경의 시계 이야기(1) WATCH CHOPARD 

THE GREAT HEIR  

정소나 기자
시계, 와인, 빈티지 자동차. 이 모든 것을 좋아하는 애호가이자 수집가 수준을 넘어 가업을 이어 무브먼트까지 직접 제작하는 시계회사 쇼파드와 페르디낭 베르투의 대표이다. 또 프랑스에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직접 와인을 생산, 판매하고 있으며, 드라이버로서 빈티지 자동차를 운전하며 유서 깊은 자동차 경주에 출전하기도 한다. 선대를 잇는 위대한 계승자인 카를 프리드리히 슈펠레가 창조한 L.U.C의 역사를 살펴본다.

▎카를 프리드리히 슈펠레 현 쇼파드 대표 / 사진 : 쇼파드
가업을 잇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증조할아버지인 카를 슈펠레 1세는 독일 포츠하임에서 주얼리와 시계를 제조, 판매하는 에스제하(Eszeha)라는 회사를 창립했고 뒤를 이은 아버지 카를 슈펠레 2세도 일찌감치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줄 참이었다. 카를 슈펠레 3세는 자사 무브먼트를 제조해야 한다는 생각에 수소문 끝에 1963년 스위스 시계 제조사 쇼파드를 인수했다. 현재 쇼파드를 이끌고 있는 카를 프리드리히 슈펠레는 이 가문의 4세대로서 가업을 잇고 있다.

카를 프리드리히 슈펠레는 1980년대 초 20대 젊은 나이에 회사 경영에 참여했다. 당시 그는 기계식과 쿼츠 무브먼트가 공존하는 가운데 인기 있었던 스포츠 시계 제작에 동참했고, 그렇게 탄생시킨 시계가 현재 알파인 이글 시계의 모태가 된 생모리츠였다. 1988년에 주얼리 부문을 맡았던 동생과 함께 공동 대표가 된 후에는 전설적인 빈티지 자동차 경주, 밀레 밀리아와 협업하는 등 쇼파드를 알리는 대외 활동에 힘썼다. 와인을 좋아하는 그는 프랑스 남부에 있는 와이너리를 인수해 휴일에는 포도 농장을 가꾸며 덕업일치의 면모를 보여줬다. 그러나 그가 행한 가장 뛰어난 선견지명을 꼽는다면 일찌감치 자사 무브먼트를 제작한 것이었다. 창립자 루이 율리스 쇼파드라는 이름에서 따온 L.U.C 무브먼트는 독창적인 기술과 예술적인 마감으로 시계업계 발전에 기여하며 2022년 현재 26년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다.

1996~2005년


▎시계업계 최초로 4개 배럴을 탑재한 칼리버 L.U.C 1.98. 현재는 L.U.C 98 시리즈로 소개된다. / 사진 : 쇼파드
최초의 칼리버 1.96을 출시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자사 무브먼트를 생산하던 시기다. 보통 기본 무브먼트는 이후 기능을 더 한 다른 무브먼트의 모태가 되기 때문에 단순하게 제작된다. 그러나 1.96은 태생부터 뛰어난 성능을 보여줬다. 1개 배럴, 40시간 전후의 파워리저브가 일반적이었던 시대에 시계업계 최초로 2개 배럴에 65시간 동력 축적이 가능했고, 밸런스 휠도 시간당 2만1600번이 아닌 2만8800번 진동으로 정확도를 높였다. 양방향으로 움직이는 마이크로 로터를 채택해 두께 3.3㎜로 만든 얇고 아름다운 기계식 자동 무브먼트는 바로 고가 시계 시장에서 주목을 받았다.

2000년에는 업계 최초로 4개 배럴 탑재, 9일간 파워리저브가 가능하며 제네바 인증과 COSC 인증을 동시에 획득한 L.U.C 콰트로를 소개했고, 2003년에는 4㎐로 진동하면서 8일간 파워리저브되는 투르비용 칼리버와 이를 탑재한 L.U.C 투르비용 시계를 선보이면서 착실하게 기능을 더해나갔다.

2006~2010년


▎쇼파드 박물관, L.U.CEUM. / 사진 : 쇼파드
해피 다이아몬드 출시 30주년을 맞이한 2006년에는 매뉴팩처 건립 10주년을 기념해 쇼파드 시계박물관 L.U.CEUM도 개관했다. 방대한 아카이브를 보유한 소수의 제작사만 가질 수 있었던 사설 박물관을 쇼파드가 열 수 있었던 것은 오랜 기간 선대부터 현재까지 시계를 꾸준하게 수집해온 덕분이다. 2008년에는 자성에 강하고 윤활유를 줄일 수 있는 실리콘 소재로 제작한 이스케이프 휠과 레버를 장착한 L.U.C 테크 트위스트를 소개했다. 이를 통해 2009년에는 시간당 7만2000번의 고진동으로 움직이는 L.U.C 하이 비트 10㎐ 시계를 개발할 수 있었다. 2010년에는 쇼파드 설립 150주년을 기념해 4개의 새로운 칼리버와 이를 탑재한 4개 신제품, LUC 1937, LUC 엔진 원 투르비용, LUC 트리뷰트 투 루이-율리스 쇼파드, LUC 올인원을 소개했다.

2016~2022년


▎2022년 공에 이어 케이스까지 사파이어 크리스털로 만든 미닛 리피터 시계, L.U.C 풀 스트라이크 사파이어. / 사진 : 쇼파드
기술적·예술적으로 뛰어난 품질을 향한 노력이 빛을 발한 시기였다. 쇼파드 L.U.C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이끈 노하우를 바탕으로 2015년 설립한 또 다른 시계 회사인 페르디낭 베르투에서 출시한 첫 모델 크로노메트리 FB 1,1은 2016년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에서 최고상인 ‘애귀으 도르(Aiguille d’Or)’를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이듬해에는 쇼파드의 타종시계 L.U.C 풀 스트라이크를 출품했는데, L.U.C 풀 스트라이크는 시계업계 최초로 금속이 아닌 크리스털로 공을 제작해 특유의 맑은 소리로 또 한 번 최고상을 받았다. 그 결과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에서 2개 브랜드로 2년 연속 최고상을 받은 유일한 수상자라는 기록을 세웠다.

2019년에는 아들 카를-프리츠 슈펠레가 개발한 알파인 이글 시계를 소개하면서 카를이란 이름을 잇고 있는 3세대가 함께 가업을 기념했고 그해 슈펠레 대표는 그간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시계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가이아상(Prix Gaïa)도 받았다. 2021년 L.U.C 탄생 25주년 기념 에디션에 이어 2022년에도 3개 타종시계를 내놓으며 이를 축하했다.

2011~2015년


▎1. 8㎐로 진동하는 L.U.C 8HF. 2. 제네바 인증, COSC 인증, 퀄리티 플러리에 인증까지 모두 받은 L.U.C 트리플 서티피케이션 투르비용 시계./ 사진 : 쇼파드
제네바 인증은 1886년부터 내려온 까다로운 수공 마감 기법을 수행해야 하고 반드시 제네바에서 작업을 완성해야 받을 수 있다. COSC는 롤렉스부터 오메가, 브라이틀링 등 -4에서 +6초의 오차범위를 보이는 정밀 무브먼트에 주어지는 인증이다. 퀄리티 플러리에 인증은 플러리에 지역에서 이뤄지는 엄정한 품질 인증으로, 파르미지아니, 보베 등 극소수 브랜드만 받고 있다. 2011년 쇼파드는 이 3개 인증을 모두 획득한 L.U.C 트리플 서티피케이션 투르비용 시계를 소개했다. 2012년에는 8㎐의 고진동이면서 COSC 인증을 받은 최초의 시계, L.U.C 8HF를 발표하면서 품질을 인증받았다.

2014년에는 출처가 불분명한 소재가 아닌 채굴지의 환경, 작업자의 복지까지 고려하는 공정무역을 통한 소재를 사용하기로 천명했다. 2014년부터 시계 소재에 페어 마인드 골드를 처음으로 도입하기 시작했고, 2018년부터는 금으로 만드는 시계와 주얼리에 100% 에티컬 골드를 사용하기로 선언했다. 최근 2~3년 전부터 시계업계에 친환경, 지속가능성이란 문제가 대두하기 시작한 것을 보면 쇼파드의 행보는 매우 선구적이었다.

- 글 정희경(시계 칼럼니스트)·정리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202207호 (20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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