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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헌 에이슬립(Asleep) 대표 

현대인의 잠 못 드는 밤 

노유선 기자
메타가 주목하고 아마존이 협업을 제안한 스타트업이 있다. 슬립테크 기업 ‘에이슬립(Asleep)’이 그 주인공이다. 잠 못 드는 밤으로 고통받는 현대인이 늘어나면서 첨단기술로 수면장애를 개선하는 슬립테크가 향후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을 이끌 전망이다. 에이슬립은 웨어러블(착용형) 기기가 대다수인 슬립테크 시장에 기기 접촉 없이 정밀한 수면 분석이 가능한 인공지능(AI) 솔루션을 선보였다. 설립 3년 차에 불과한 신생기업의 도전장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창업 2년 만에 포브스 ‘30 under 30’에 이름을 올린 이동헌 에이슬립 대표.
미국 포브스는 매년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대상으로 ‘30세 미만 리더 30명(30 under 30 Asia list)’을 선정해 발표한다. 이들은 모두 금융·유통·기술 등 10개 분야에서 뛰어난 리더십과 잠재력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인물들이다. 올해 한국인으로는 이동헌 ‘에이슬립(Asleep)’ 대표(28)가 ‘헬스케어&과학’ 분야에 이름을 올렸다. 에이슬립은 2020년 6월에 설립된 슬립테크(sleeptech·수면기술) 스타트업. 창업 2년 만에 포브스 ‘30 under 30’ 명단에 오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 대표는 이미 아태 지역을 넘어 전 세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청년 창업가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4월 에이슬립은 메타(구페이스북) 본사가 주최하는 인공지능(AI) 기술 대회에서 한국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헬스케어 부문 우수 AI 기업으로 선정됐다. 올해 1월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박람회 ‘CES 2022’에서 약 132㎡(40평) 규모의 부스를 운영하며 글로벌 스타트업의 저력을 과시했다.

슬립테크란 첨단기술을 활용해 수면의 질을 진단, 분석하고 숙면을 돕는 기술을 말한다. 에이슬립 역시 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수면 문제를 진단하고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신체에 장비를 부착하지 않고도 수면 상태를 정밀하게 측정해내는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다. 지난 8월 11일 서울 강남에 있는 에이슬립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표는 “에이슬립의 독자적인 AI 수면 분석 솔루션은 전 세계에서 ‘수면의 디지털화’를 선도할 것”이라며 “본격적인 글로벌시장 진출에 발맞춰 포브스 ‘30 under 30’에 선정돼 외국기업의 협업 문의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현재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을 비롯해 LG전자, 카카오, 삼성생명 등이 에이슬립에 러브콜을 보낸 상황이다.

수면의 디지털화


지난해 필립스(Philips)가 전 세계 13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수면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무려 70%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수면 문제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5년 약 45만 명에서 2020년 약 67만 명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불면증, 수면무호흡증을 비롯한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현대인이 늘어나면서 글로벌 슬립테크 시장 규모는 급증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츠(Global Market Insights)는 글로벌 슬립테크 시장이 2021년 150억 달러(약 20조원)에서 2030년 670억 달러(약 93조원)로 4배 넘게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 에이슬립이 있다. 에이슬립은 이 대표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석사 시절 동료 6명과 함께 설립한 슬립테크 업체다. 설립 2년 만에 호흡 소리와 신체 움직임을 정밀하고 끊김없이 측정하는 ‘Wi-Fi 수면 센싱 기술’과 AI를 활용한 ‘수면 분석·진단 기술’을 개발해냈다. 기술개발에 걸린 기간은 단 1년. 음성 데이터 확보가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창업 첫해를 온전히 데이터를 모으는 데 쏟았다. 이후 기술 고도화 과정을 거쳐 타 제품과의 결합 솔루션을 완성했고, 최근에는 자체 수면 진단 애플리케이션(앱) ‘슬리’를 출시했다.

왜 슬립테크를 사업 아이템으로 골랐나.

먼저 헬스케어 시장에 주목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될수록 헬스케어 관련 수요는 늘어난다. 이를 뒷받침할 여러 첨단기술이 개발되면서 디지털헬스케어가 초개인화되기 시작했다. 누구나 가정에서 자신의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불면증과 수면무호흡증 등 수면 관련 질환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표가 악화하는 상황이다. 미국에서는 성인의 약 75%가 수면장애를 겪는다는 분석이 있다. 2020년 사업 아이디어를 얻고자 CES를 찾았을 때도 슬립테크 부스가 방문객으로 붐비는 것을 목격했다. 기술은 사람과 분리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신기하고 재미있는 기술보다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기술을 중요하게 여긴다. 현대인이 원하는 기술이라는 확신하에 슬립테크를 사업 아이템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슬립테크 업체는 이미 국내외에 많다.

불면증 지표가 계속 나빠지는 현상이 바로 그들이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대부분의 슬립테크 업체는 잠을 잘 재우겠다고만 말한다. 개개인의 수면 상태에 따라 다른 처방을 내려주지 않는다. 이런 방식은 진정한 헬스케어라고 볼 수 없다. 좋은 매트리스의 정의도 사람마다 다르지 않나. 누구에게나 편안한, 절대적으로 좋은 매트리스는 없다. 수면 질환을 개선하려면 사용자에게 어떤 수면 문제가 있는지 알려주고 이에 맞는 가이드를 제공해주는 ‘개인 맞춤형 슬립테크’가 필요한데, 기존 업체 중 이러한 솔루션을 가진 곳은 거의 없었다. 에이슬립은 개개인의 생활 패턴과 생체리듬에 맞춰 수면 습관을 관리해주는 솔루션 개발에 초점을 맞췄다.

수면 상태 측정에는 뇌파, 심박수, 호흡 등이 활용된다. 그중 호흡을 택한 이유는.

우선 편의성에 주목했다. 사람은 매일 장시간 잠을 잔다. 그런데 신체에 측정장비를 부착한 채로 잠을 자면 매우 불편하다. 장비를 착용하지 않고 편의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호흡 소리를 택했다. 문제는 정확도였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비접촉식 솔루션은 웨어러블(착용형) 기기와 비교해 수면 단계를 정밀하게 판독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AI 기술을 도입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고 주저 없이 호흡 소리를 고집했다.

에이슬립의 사운드 AI는 주변 소음이 있어도 사용자의 호흡 소리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호흡 패턴을 분석해 수면 단계를 판독해낸다. 자체 분석 결과 에이슬립 솔루션은 기존 비접촉식 솔루션과 비교해 최대 52%가량 높은 정확도를 보였다. 또 병원의 수면다원검사 결과와 비교해도 일치도가 상당히 높았다. 이 연구 결과는 논문으로 작성돼 지난 8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앤 사이언스 오브 슬립(Nature and Science of Sleep)’에 실렸다. 수면 상태는 기상, 얕은 잠, 깊은 잠, 렘(REM) 수면 등 4단계로 나뉘는데, 에이슬립 솔루션은 기상 77%, 얕은 잠 73%, 깊은 잠 46%, 렘 수면 66%의 일치도를 나타냈다.

메타와 아마존 등 글로벌기업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확장성 면에서 독보적이다. 에이슬립은 스마트폰의 마이크로 호흡 소리를 측정한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수면 측정·진단을 위해 별도로 기기를 사지 않아도 된다. 반면 핏빗(Fitbit)이나 애플워치의 경우 자체 기기를 구입해야 하고 구글 네스트(Google Nest)는 자율주행에 쓰이는 레이더가 있어야 신체 측정이 가능하다. 또 다른 측면에서도 에이슬립 솔루션은 확장성이 높다. 어떠한 기기든 마이크만 있다면 에이슬립 솔루션을 탑재할 수 있다. 아마존의 스마트홈 스피커 ‘알렉사’가 대표적 사례다. 아마존과는 내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협업에 들어갈 전망이다. 현재는 알렉사와 에이슬립 솔루션의 결합에 필요한 법리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 업체와는 어떤 방식으로 협업을 진행 중인가.

국내에서 대기업으로 손꼽히는 가전업체들이 에이슬립 솔루션을 활용하려고 한다. 그들이 에이슬립과 제휴하려는 목적은 침실에 진출하기 위해서다. 이미 거실은 장악했다는 뜻이다. 에이슬립 솔루션을 API(응용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 형태로 침실의 홈 IoT 기기와 연동하면 각종 기기가 사용자의 수면을 관리하고 숙면을 도울 수 있다. 이른바 ‘침실의 디지털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다.

한 업체는 자사 디스플레이를 이용해 자기 전 수면에 도움이 되는 복식호흡, 명상, 스트레칭 등을 안내하겠다고 한다. 수면 중에는 디스플레이에 탑재된 마이크로 수면 상태를 측정하고 기상 후에는 수면 측정 결과를 화면에 보여주겠다는 계획이다. 놀랍게도 화장품·건강기능식품 업체도 에이슬립에 공동 마케팅·캠페인을 제안했다. 잠들기 전 스킨케어 습관과 건강기능식품 섭취가 숙면에 도움이 되는지 에이슬립 솔루션으로 검증해 마케팅에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사용자의 음성 데이터는 몇 년까지 보관하는지.

에이슬립은 개인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음성 녹음 데이터를 보관하지 않는다. 다만 음성을 수면 상태 분석을 위한 형태로 변환했을 경우 이를 언제까지 보관할지는 고민 중이다. 변환을 거친 데이터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알 수 없는 기계음과 비슷하다. 개인정보가 날아가버린 상태라고 보면 된다.

5년 뒤 목표는 나스닥 상장

이 대표는 카이스트 AI 분야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미국 실리콘밸리 ‘드레이퍼대학(Draper university)’에 진학하는 등 창업 기반을 차근차근 다져왔다. 특히 미국 벤처투자가 팀 드레이퍼가 세운 드레이퍼대학은 수많은 스타트업을 배출해 이른바 ‘창업사관학교’로 불린다. 학업뿐 아니라 현장 경험도 에이슬립이 성공하는 데 발판이 됐다. 앞서 겪은 두 번의 창업 실패가 남긴 교훈은 사람의 중요성이었다. 이 대표는 “눈앞의 이익보다 구성원들의 행복을 우선시한 덕분에 에이슬립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며 “바쁜 와중에도 에이슬립의 모든 구성원과 2주에 한 번씩 15분 동안 개별 면담을 가진다”고 말했다.

구성원 간의 관계 악화가 창업 실패로 이어진 건가.

그렇다. 첫 번째 창업이 동료들과의 다툼 때문에 실패했다. 법률자문 서비스 플랫폼이었는데 변호사가 저렴한 비용에 원격자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일부 변호사들의 반발이 거셌는데 이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회사가 문을 닫았다. 스타트업은 구성원들이 단합하지 못하면 외부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당시 구성원들은 어려움이 닥치자 뿔뿔히 흩어졌다. 서로의 행복에는 무관심한 채 단지 돈에만 목숨을 걸다 보니 강박이 심해져 관계가 어긋나는 경우가 많았다. 단순히 돈을 벌고자 창업하면 쉽게 무너진다는 교훈을 몸소 깨달았다. 세 번째 창업인 에이슬립에서는 구성원의 행복을 직접 챙기려 노력하고 있다.

기업의 이윤 추구와 구성원의 행복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하다.

스타트업에서 가장 중요한 4가지는 통찰력, 결단력, 행동력, 지속성이라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에서는 문제를 발견해 해결 방안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이 반복된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제에 봉착한다. 그럴 때마다 성장 의지가 있는 사람은 ‘통찰-결단-행동 매커니즘’을 지속하면서 도약을 거듭해나간다. 성장 의지는 행복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개인적인 철학이다. 기업에는 구성원도 고객이다. 내부 고객이 행복하면 ‘통찰-결단-행동 매커니즘’이 지속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외부 고객이 문제를 제기할 때 이를 단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기업이 구성원의 행복에 아낌없이 투자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대표 한 사람이 구성원 전부의 행복을 책임질 수 있을까.

구성원의 행복을 위한 기업의 역할은 그들의 불만을 최소화하는 데 달려 있다. 불만은 규칙을 강요할 때 생겨난다. 새로운 규칙으로 누군가는 이득을 얻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손해를 보게 되기 마련이다.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규칙을 만들면 구성원들의 반발심만 불러올 뿐이다. 불만을 적극적으로 경청하는 자세가 선행돼야 한다. 에이슬립에서는 대표가 구성원과 개별 면담을 실시해 불만을 직접 듣고 피플앤컬처팀이 작은 불만들을 바로바로 해결하면서 구성원들의 행복을 최대한 지켜내기 위해 노력한다.

에이슬립이 구성원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궁극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에이슬립 유니버스(Asleep Universe)’라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내부의 행복이 외부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구상이다. 에이슬립이 외부 고객의 문제해결에 꾸준히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다면 협업·제휴를 원하는 기업이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대표는 “아마존이 스피커에, LG전자가 가전제품에, 뷰티업체가 화장품에 에이슬립 솔루션을 결합할 수 있듯이 에이슬립 유니버스를 형성할 수 있는 제품군은 매우 다양하다”며 “향후 나스닥 상장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에이슬립은 지난 3월 인터베스트, 카카오벤처스, 삼성벤처투자, 하나은행 등으로부터 160억원 규모 시리즈 B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서 설립 1년 9개월 만에 기업가치를 900억원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조 단위를 바라보는 이 대표에게는 여전히 부족한 수치다. 그는 5년 안에 기업가치 수십조원을 달성한 뒤 나스닥 상장에 도전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

“에이슬립은 수면시간을 넘어 수면 전후 일상생활 전반에 개입하는 서비스로 기업가치 수십조 달성에 성공할 겁니다.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잠들기 직전과 아침 기상 직후는 물론 낮과 저녁 시간도 중요합니다. 인간의 더 나은 삶을 만드는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에이슬립의 비전입니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2210호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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