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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범 오비맥주 부사장 

맥주 회사는 어떻게 ESG를 선도하나 

장진원 기자
‘맥주 만들어 파는 회사가 웬 ESG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발상을 전환하면 주류기업이야말로 사회에 기여해야 할 책무가 더 큰 곳일 수도 있겠다. 구자범 오비맥주 부사장이 그리는 ESG도 그렇다.

요즘 한 맥주 회사의 TV 광고가 화제다. ‘한맥은 회식을 반대합니다’라는 문구가 대형 빌딩 옥외광고판을 가득 채운다. 오비맥주의 맥주 브랜드 ‘한맥’ CF다. 맥주회사가 회식을 반대한다는 도발적 슬로건은 ‘강압적인 회식 반대’와 ‘우리의 저녁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부드러운 시간이어야 하니까’라는 내레이션으로 끝맺는다.

‘부어라 마셔라’ 해야 매출이 오르기 마련인 주류기업이 펼친 뜻밖의 캠페인은 이 회사가 오래전부터 펼쳐온 건전음주(오비맥주는 이를 Smart Drinking이라 부른다) 캠페인을 들여다보면 이해하기 쉽다. 소비자에게 좋은 맥주 제품을 제공하는 것만큼이나 건전한 음주문화를 전파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어젠다이다. 실제로 오비맥주와 모기업인 AB인베브(이하 ABI)는 연간 마케팅 비용의 3%를 건전음주 마케팅에 사용한다는 내부 규정을 두고 있다. 오비맥주는 카스 제로, 버드와이저 제로, 호가든 제로 같은 비알코올 음료를 5종이나 내고 있고, 앞으로도 저알코올·비알코올 음료 라인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오비맥주는 이 밖에도 2040년까지 탄소 중립 선언, 친환경 제조설비 도입, 원료 업사이클링 등 친환경 경영에 국내 어떤 기업보다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건전음주 캠페인을 비롯해 중소기업·스타트업과의 상생, 워터캔 보급, 지역아동센터를 개선하는 ‘해피 라이브러리’ 같은 사회공헌 활동에도 열심이다. 오비맥주의 이러한 선도적 활동에는 구자범 부사장의 역할이 컸다는 게 회사 안팎의 평가다.

지난 2007년 오비맥주 법무담당 이사로 합류한 구 부사장은 법무부문 상무, 전무, 부사장을 역임하는 동안 법무와 준법감시를 비롯해 M&A, IT, 전략, 최근에는 ESG와 홍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 영역을 이끌어왔다. 2014년부터는 오비맥주 등기 이사도 맡고 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구 부사장은 시러큐스대학(Syracuse University) 로스쿨을 나와 1996년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이민 1.5세대다. 오비맥주 합류 전까진 미국 현지 로펌과 법무법인 광장, 삼성탈레스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미국으로는 언제 이민을 떠났나.

1981년, 11살 때 식구들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당시만 해도 아메리칸드림이 컸을 때다. 미국에 가면 모두 부자가 되는 줄 알았지만, 기대와 달리 고생도 많았다. 일단 언어가 통하지 않아 힘들었는데, 어려서였는지 1년 정도 지나고 나니 어느새 영어로 말하고 있더라. 미국에선 1999년까지 18년 정도 살았다.

로스쿨에 진학했다. 법조인을 꿈꿨나.

초등학교 때부터 이상하게 주위에서 꿈을 물으면 ‘변호사’라고 답하곤 했다. 왜 그랬는지는 기억이 없지만, 자라면서도 꿈이 바뀌진 않았다. 미국엔 법대가 없기 때문에 학부에선 정치학을 전공하는 경우가 많다. 로스쿨에선 다른 분야보다 계약법(Law of Contract)에 흥미를 느꼈다. 기업 일이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때부터 이해당사자 간의 조율, 상대와 나의 입장 개진과 협상, 윈윈할 수 있는 관계 조정 등에 관심이 많았다.

국내외 로펌을 거친 후 사내 변호사로 자리를 잡았다.

로펌 시절은 무척이나 하드했다. 더욱이 주니어 시절이라 모든 업무를 지시받고 확인받아야 했다. 금요일 5시에 일을 던져주고 “내일 봅시다”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때는 토요일 근무가 당연했고 새벽 2~3시 퇴근도 비일비재했다. 한국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에 돌아왔다. 기업 간 M&A가 폭증했는데, 변호사는 부족하고 일은 정말 많았다. 기업 실사를 하느라 온종일 서류 더미에 묻혀 지내야 했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더라.

기업의 사내 변호사로 옮긴 이유가 됐겠다.

대기업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업에 끌렸다. 일할 수 있는 영역이 로펌보다 훨씬 넓고 업무 결정권도 있다고 하더라. 물론 페이는 로펌보다 적었다. 삼성탈레스에 입사했는데, 사내 변호사가 나뿐이었다. 덕분에 법무뿐 아니라 영업, 마케팅, 제조현장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삼성전자만 해도 수백 명의 변호사가 일한다.

오비맥주에선 본업인 법무·준법감시뿐 아니라 M&A, IT, 전략, 홍보, 사회공헌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했다.

오비에 들어온 건 36살 때다. 삼성탈레스에서 5년간 일했는데, “법무만 하겠소, 아니면 경영도 배우겠소?”라는 이호림 당시 오비맥주 대표의 말씀에 자석처럼 끌렸다. 기업의 일은 법무, 인사, 재무, 영업, 마케팅, 홍보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연결 되지 않은 게 없다. 어떤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하든 결국 하나의 서클에서 다시 만나게 마련이다. 오비맥주는 특히 모든 부서의 의견을 경청해 의사결정을 하는 시스템을 오래전부터 가꿔왔다. 실력과 성과를 인정받으면 승진도 빠르다. “여기서 잘해? 그럼 이것도 한번 해봐” 하는 문화가 강하다. 개인적으론 마이크로매니지먼트를 엄청 싫어한다. 일일이 간섭하지 않되, 열어준 만큼 직원들 스스로 채우면 된다.

최근에는 홍보와 ESG, 사회공헌(CSR)에 힘쓴다고 들었다. 주류 회사와 ESG가 언뜻 매치되진 않는다.

사실 ESG라는 개념이 등장한 지는 100년도 더 됐다. ABI는 세계에서 가장 큰 주류 회사다. 모든 산업군에 리더가 있는데, 주류 산업을 선도하는 입장에서 우리부터 지속가능한 회사를 만들어보자고 천명했다. 2017년부터였는데 그게 곧 ESG더라. ABI 자체가 위스키 같은 고도주는 생산하지 않는다. 들이붓고 취하는 것보다는 가볍게 이야기 나누고 캐주얼한 분위기를 추구하는 음주문화를 이끌고 있다. 맥주 생산 기업이지만 기업문화 자체가 좋은 회사,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다.

구체적인 ESG 활동이 궁금하다.

오비맥주와 ABI는 ‘소비자와 미래 100년 이상 동행’이라는 기업 비전 아래 맥주 생산부터 구매, 포장, 물류, 영업 등 모든 단계에서 환경경영과 사회적책임, 준법경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2017년 지속가능경영 정책을 수립해 ESG 실행을 위한 과제를 꾸준히 밟아왔다. 크게 기후변화 대응, 재활용포장재, 스마트농업, 수자원관리 등 4개 과제를 설정했고, 2025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5% 감축하는 게 목표다. 최근 ABI는 오는 2040년까지 탄소중립(Net Zero) 달성을 선언하기도 했다. 지난해 G7 정상회의에서 탄소중립에 도달하기로 합의한 2050년보다 10년 앞선 계획이다.

ABI와 오비맥주가 탄소중립에 힘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비즈니스가 자연환경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농작물과 물은 우리의 핵심 원료다. 또 포장을 위한 재료가 필요하며 맥주 양조, 제품 운송 및 냉장 보관을 위해선 에너지와 연료가 필수다. 장기적인 기후위기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이행해나가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를 통해 ESG 중심의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든다는 비전이다.

광주공장 태양광 자가발전이 시작이었나.

앞으로 어떻게 100년 동행을 만들까 고민하다 나온 결정이 에너지다. ABI는 일찍부터 RE100 도입을 서둘렀다. 전 세계에서 많은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이다. 우리부터 탄소 배출량을 줄이자고 판단했다. RE100 실현을 위해 2021년 8월 광주공장에 태양광발전 설비를 들인 것을 시작으로 이천과 청주공장에도 순차적으로 구축할 계획이다. 태양광이 만든 맥주가 탄소배출 감소에 기여하는 셈이다. 자체 생산한 에너지를 생산에 사용하는 건 국내 주류업계에서 처음이다. 2025년부터는 페트(PET)병도 쓰지 않을 계획이다. 병과 캔만 사용한다. 더불어 올 상반기에는 물류 트럭 차량을 100% 전기차로 교체했다. 물류 운송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줄이고 작업자의 업무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전기지게차 덕분에 연간 약 1176톤의 탄소 감축 효과가 기대된다.

태양광으로 만드는 맥주


원료 재활용, 이른바 업사이클링에도 적극적이다.

지난 6월 5일은 세계환경의날이었다. 이날 ‘업사이클링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맥주 제조 과정 중 발생하는 부산물을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킨 ‘업사이클링’을 체험하는 행사다. 버리는 데만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맥주박, 폐기 처리될 페트병 뚜껑 등을 업사이클링해 탄소 배출량을 줄여보고자 기획했다. 오비맥주는 업사이클링 기업인 리하베스트, 라피끄 등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해 맥주박을 이용한 에너지바, 맥주 원재료 화장품 등 협업 제품을 만들었다.

재사용·재활용 포장재 사용을 위해 카스 500㎖ 병맥주 포장상자를 100% 재생용지로 교체하기도 했다. 카스 캔맥주를 포장하는 플라스틱 필름 두께도 대폭 줄여 연간 플라스틱 사용량을 96톤이나 줄였다. 여의도 63빌딩을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빌딩 전체를 56번 포장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2025년까지는 100% 회수 가능하거나 50% 이상 재활용된 원료로 만든 포장재만 사용하는 게 목표다.

한맥 광고가 화제였다. 맥주 회사는 술을 많이 팔아야 이익 아닌가.

글로벌 음주 트렌드가 저도주 위주의 다양한 믹스 제품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도 예전처럼 부어라 마셔라 하는 경우가 많이 줄지 않았나. 오비맥주와 ABI는 스마트 드링킹 문화를 전파하는 게 중요한 미션이다. 오히려 폭음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커진다면, 장기적으로는 우리에게도 손해다. 알코올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확산되기 때문이다. 사실 맥주처럼 완전한 자연식도 없다. 원료는 보리와 몰트, 홉, 물이 전부다. 적당한 양이면 몸에 해롭지 않다. 이런 캠페인은 ESG 중 소셜(S)에 해당하는 활동이라 볼 수 있는데,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대표적인 활동이 음주운전방지장치 보급이다.

어떻게 작동하며 실제 효과가 있나.

자동차에 설치한 음주측정기로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알코올이 감지되면 아예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음주운전 시도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어 미국, 스웨덴 등 해외에선 상습 음주운전자 차량에 설치를 의무화했다. 올해 6월 말부터 경찰청, 도로교통공단과 함께 음주운전방지장치 시범사업을 운영했다. 최근에는 본사 임직원 20명의 차량에 두 달간 설치했다. 음주운전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다.

또 이천공장에서 전국으로 맥주를 배송하는 화물차 20대, 임직원 차량 20대 등 총 40대에 기기를 설치해 11월까지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시범사업을 마치면 관련 데이터와 설문조사 결과를 정부 기관에 제공해 실효성 있는 정책 수립을 도울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 자료에 따르면 적게는 64%, 많게는 95%까지 재범률을 낮췄다고 한다.

맥주 회사의 특징을 잘 살린 CSR이다.

우리만의 장점을 살린 활동은 또 있다. 바로 ‘워터캔’ 프로젝트다. 오비맥주는 물을 핵심 원료로 사용하는 회사다. 당연히 첨단 정수시설을 보유하고 있고, 물 제품 생산 역량도 갖추었다. 각종 재난이나 가뭄 상황에서 물이 필요한 이재민들에게 빠르게 물을 생산해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이다. 올해부터 우리는 재해 발생 시 맥주 생산라인을 멈추고 캔에 물을 담아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돕는 워터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올해 생산량은 30만 캔(355ml)으로, 10월 초부터 생산을 시작했다. ABI는 이미 1988년부터 재난·재해 상황에 맥주 생산을 중단하고 캔에 물을 담아 이재민에 기부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서 기업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 같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CSR 활동 중 ‘해피 라이브러리(Happy Library)’가 가장 인상 깊다. 지역사회 나눔 활동의 일환으로 2016년부터 어린이 방과 후 돌봄시설인 지역아동센터를 개선해 해피 라이브러리를 열고 있다. 지난 4월 경북 울진에 지역 10호점을 열었다. 지역아동센터는 주로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저소득가정 등 따뜻한 관심과 돌봄이 필요한 아동에게 꼭 필요한 복지시설이다. 우리 임직원들도 해피 라이브러리 완공 전에 센터를 방문해 벽화 그리기, 가구 꾸미기, 청소, 이삿짐 나르기, 도서 정리 같은 봉사활동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아이들의 달라진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장 보람 있는 활동이다.

올해도 막바지에 들었다. 오비맥주의 내년 ESG 계획이 궁금하다.

올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여러 활동 자체가 어려워 무척 아쉬웠다. 다행히 하반기 들어 사회적 거리두기 등 제한이 풀리며 속도를 낼 수 있었다. 해피 라이브러리도 두 곳이나 문을 열었고 태양광 설비도 열심히 갖췄다. 내년에는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을 기대한다. 개인적으로는 PR과 ESG를 맡은 지 올해 2년째다. 여러 사업 중 제일 신경 쓰고 힘을 쏟는 분야이기도 하다. 요즘 사회공헌팀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특히 팬데믹으로 피해를 크게 입은 소상공인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실제 현장에 가보면 문을 닫은 호프집이 많아 안타깝다. 누가 시켜서 하는 건 의미가 없다. 사회공헌팀원들에게도 “제발 형식적인 일은 하지 말자”며 진정성을 강조한다. 팀원들이 무척 피곤할 거다.(웃음)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지미연 객원기자

202211호 (202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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