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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우가 만난 예술계 파워리더(8) | 황규진 타데우스 로팍 서울 총괄 디렉터 

메가 갤러리 이끈 신뢰의 힘 

정소나 기자
최근 몇 년 동안 세계 유수의 갤러리와 아트페어가 속속 한국에 상륙하면서 아시아 미술시장의 새로운 거점으로 한국과 서울이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인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 역시 지난해 한국 시장의 잠재력을 눈여겨보고 아시아의 거점으로 서울을 선택했다. 작가에 대한 철저한 존경과 신뢰를 원동력 삼아 글로벌 메가 갤러리로 성장한 타데우스 로팍의 서울 갤러리를 총괄하며 아시아 지역을 책임지고 있는 황규진 디렉터를 만났다.

미술시장이 뜨거워지고, 아트 마켓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갤러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작가를 지원하고 양질의 전시를 기획해 판매를 도모하는 갤러리가 많아질수록 반짝 인기가 아닌, 오래도록 사랑받는 건강한 미술시장의 토대가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타데우스 로팍은 창립자 타데우스 로팍이 1983년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갤러리를 설립하고, 요제프 보이스, 장 미셸 바스키아, 앤디 워홀 등 작가들과 첫 전시를 개최하며 시작된 유럽 기반의 갤러리다. 잘츠부르크, 파리, 런던에 이어 서울까지 네 도시에 각기 다른 역사적 배경이 담긴 갤러리 공간 6개를 운영하고 있으며, 안토니 곰리, 알렉스 카츠, 안젤름 키퍼, 게오르크 바젤리츠 등 세계적인 작가 70명이 소속된 글로벌 메가 갤러리다. 갤러리 설립 이후 40년 동안 ‘들어온 작가는 있어도 나간 작가는 없다’는 말처럼 작가에 대한 신뢰를 철칙으로 삼는 것으로 유명하다.

“갤러리에 남는 건 결국 작가밖에 없어요. 작가가 좋으면 컬렉터는 따라오기 마련이에요. 소속 작가에게 관심이 쏠린다고 해도 작품을 빠른 시간 안에 시장이 원하는 대로 공급하는 것보다, 작가의 미래까지 생각해 작가가 ‘소모’되지 않도록 책임감을 가지고 보호하는 일이 중요해요. 장기적으로 보면 해당 작가의 작품을 소장한 컬렉터를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황규진 디렉터는 어떤 상황에서도 소속 작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타데우스 로팍의 철학에 공감하며 서울 갤러리를 총괄하고, 아시아 디렉터로도 활동 중이다. 지난 10월 7일 유중아트센터에서 정승우 이사장이 황 디렉터를 만나 갤리리와 미술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타데우스 로팍에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런던에서 대학원을 졸업한 후 한 상업 갤러리의 인턴을 거쳐 블레인서던 갤러리에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헤드헌터로부터 ‘타데우스 로팍에서 아시아 팀을 만들고 있는데 관심이 있냐’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가 2017년, 타데우스 로팍이 런던에 갤러리를 오픈하고 본격적으로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팀을 꾸리고 있을 때였다. 원래 타데우스 로팍이라는 갤러리를 너무 좋아했다. 소속 작가 리스트도 휼륭하지만, 작가들의 갤러리에 대한 신뢰가 무척 두터웠다. 갤러리 역시 작가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절대적인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 모습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그곳에서 제안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세 차례 면접 끝에 아시아 디렉터로 합류하게 되었고, 아트페어부터 기관 전시, 작가 관리, 고객관리 등 아시아에서 개최되는 모든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2021년 서울에 새로운 지점을 준비하며 런던에서 서울로 거점을 옮겼고, 유럽팀과 긴밀하게 협업하며 서울 갤러리를 이끌어가고 있다. 런던팀에 근무하며 습득한 갤러리 고유의 유러피언 아이덴티티와 한국적 정서를 잘 매개함으로써 갤러리가 서울에 조화롭게 안착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한국에 진출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지난 2021년 10월, 서울 한남동 포트힐 건물 2층에 개관한 타데우스 로팍 서울 갤러리의 외관. / 사진:타데우스 로팍 서울
서울 갤러리 오픈 이전에도 로팍 갤러리와 한국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 인연은 2007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소속 작가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개인전으로 시작됐다. 같은 해, 한국 현대미술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해온 작가 이불을 유럽 시장에 소개하기 위해 전속 작가로 영입하기도 했다.

2017년 아시아 팀이 런던 갤러리 소속으로 꾸려지고 아시아 지점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홍콩, 상하이, 베이징, 서울 등 아시아 현대미술의 주요 거점 도시들을 리서치하며 로팍갤러리의 첫 아시아 지점을 어디에 오픈할지 고민했다. 그런데 시장조사를 하던 중 한국에 대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작가와 미술관, 아카데미와 미술시장이 오랜 시간 동안 공존해왔으며, 현대미술 안에서 그 기반이 굉장히 튼튼하다는 것이었다. 한순간 빠르게 미술시장과 신이 ‘만들어진’것 이 아니라 천천히 오랫동안 기반을 쌓아왔기에 언젠가는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한국은 시장과 작가, 기관이라는 삼박자가 균형 있게 잘 갖추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가 깊은 국공립미술관, 유수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사립 및 기업미술관 등을 기반으로 학계에서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어왔다. 그런 탄탄한 바탕이 있기에 한국 작가들이 경제위기나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국내외를 무대로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미술시장의 규모가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 작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서울에 입성했다.

2017년, 영국에 브렉시트가 시작되자마자 런던에 진출했고, 코로나로 세계 미술계가 꽁꽁 묶인 상황에 첫 아시아 지점을 서울에 오픈했다. 갖가지 이유와 상황들 속에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로 인해 더욱 탄탄해지고 성장할 수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은 모두가 예상치 못한 전례 없는 일이었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갤러리와 작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코로나로 갑자기 모든 전시와 페어들이 취소되었을 때, 파리의 북쪽 지역 팡탱(Pantin)에 있는 주철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5000㎡에 달하는 대규모 갤러리를 파리에서 활동하는 지역 작가라면 누구에게나 무료로 빌려줘 전시를 할 수 있게 도왔다. 작품이 판매되면 100% 작가에게 판매 수익을 안겨주는 자선 전시였다. 또 작업실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젊은 작가들에게 렌트비를 지원해주거나 런던의 갤러리 한 층을 사용하게 해 전시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 밖에 온라인 플랫폼에서 꾸준히 전시를 개최하는 등 작가와 상생을 도모하며 함께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갈 수 있었다.

아트부산과 프리즈 서울에서 연달아 큰 성과를 거뒀다. 비결이 뭔가.

한국에서 개최되는 아트페어이지만 프리즈 서울과 아트부산은 국제아트페어이기 때문에 글로벌 고객의 안목을 고려해 작품 리스트를 꾸렸다. 먼저 2020년과 2021년 아트부산에 연달아 참가하며 국내 관객들이 우리 갤러리의 어떤 작가, 어떤 작품에 관심이 있는지 고려했고, 아시아에서 처음 개최된 프리즈 서울에는 그동안 갤러리가 런던· 뉴욕· LA 프리즈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부스를 꾸리는 데 주력했다. 이번 첫 프리즈 서울은 갤러리의 서울팀뿐 아니라 유럽팀과 전속 작가들에게도 굉장히 흥분되는 페어였다. 작가들의 적극적인 출품과 갤러리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함께 페어를 꾸려나갔기에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한국에 먼저 진출한 다른 외국 갤러리들과의 차별점이 있다면.

타데우스 로팍의 구성원으로서 늘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 40년간 이어온 갤러리 역사상 함께 협업한 작가 70여 명 중 단 한 명도 우리 갤러리를 떠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오랜 시간 서로 신뢰와 존경으로 관계를 맺고 일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미술계에서 이런 꾸준함과 한결같음이 우리 갤러리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해외 갤러리가 한국에 진출함으로써 한국 미술계에 더욱 풍성한 담론과 다양한 신을 형성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해외 갤러리들이 작품 구입 시 주로 요구하는 ‘일정 기간 동안 리세일 금지 특약’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많은 갤러리가 작가를 보호하기 위해 3년에서 5년 동안 리세일 금지 특약을 걸고 작품을 판매한다. 갤러리나 아트페어 같은 1차 시장에서 구입한 작가들의 작품을 곧바로 경매 등 리세일 마켓에서 값을 더 붙여 파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리세일 금지는 작품을 거래한 갤러리와 컬렉터 간의 신뢰이기도 하지만, 그 작품의 창작자와 그 작품을 소장하고자 하는 컬렉터 간의 신뢰와 서포팅 관계에 대한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컬렉터들이 해외 갤러리와 거래하는 것은 아직까지 다소 부담스러운 일이다.


▎최근까지 열렸던 안젤름 키퍼의 개인전 ‘지금 집이 없는 사람’ 전시 전경. / 사진:타데우스 로팍 서울
한국에 갤러리를 열기 전, 외화 송금의 번거로움, 비싼 해외 운송비, 통관 등 여러 어려움을 겪는 컬렉터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경험했다. 다행히 한국 지점이 생기면서 이러한 문제점들이 상당 부분 해결됐지만, 해외 작가의 작품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해외에서 전시 또는 보관 중인 작품을 구매하려는 수요도 여전하다. 로팍 작품의 경우 해외 송금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소개하고, 운송 견적을 내주고 가장 경제적인 방법을 추천하는 등 최선을 다해 작품 구매를 돕고 있다. 요즘은 서류만 준비되어 있다면 해외 송금이 자유로운 편이고, 전문적인 해외 운송업체가 많기 때문에 견적과 서비스를 비교해 나에게 맞는 업체를 선정하면 운송과 통관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최근 눈여겨보는 한국 갤러리나 한국 작가가 있나.

갤러리스트로서, 타데우스 로팍 서울 갤러리 디렉터로서 언제나 새로운 작가들과의 협업을 염두에 두고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작가를 만나고 소통하고자 노력한다. 갤러리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한국 시장에 로팍의 작가를 소개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한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유럽에 소개하는 것도 큰 임무이기에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내년 1월, 한국의 젊은 작가 3~4명을 선정해 그룹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보는 것은 작가들이 가진 현재의 재능보다는,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과 도전 정신이다. 약 1년 정도 작가들을 리서치하고, 작업실을 직접 방문해 친분도 쌓으며 좋은 작가들을 물색 중이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꾸준히 발굴하고 성장을 돕는 원앤제이 갤러리, 휘슬 갤러리 등 한국 로컬 갤러리의 조언도 많이 받고,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를 보며 아이디어도 얻고 있다. 앞으로 서울 갤러리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새로운 한국 작가 전시를 개최하며 협업할 계획이다.

프리즈의 한국 상륙 이후 한국 미술시장을 전망한다면.

올해 처음으로 개최된 프리즈 서울은 예상보다 반응이 훨씬 뜨거웠다. 국내 미술 애호가뿐만 아니라 아시아, 유럽, 미국의 컬렉터들까지 서울로 모여 한국의 컨템퍼러리 아트신과 성장한 마켓, 유수 국공립·사립 미술관 전시를 통해 오랜만에 아시아에서 열린 대규모 미술 축제를 즐긴 듯하다. 이미 뜨거워진 한국 미술시장의 활기를 더욱 북돋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아울러 프리즈 서울로 한국을 찾은 갤러리와 미술관 관계자들이 한국 작가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해 작업실을 방문하고 그들과 소통을 시도했다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국 미술기관과의 교류가 늘어 앞으로 세계시장에서 한국 작가들과의 협업 기회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 컬렉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국 컬렉터들은 높은 식견과 뛰어난 안목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예술과 예술가들을 진정으로 존중한다는 것을 몸소 느껴왔다. 한국 미술시장이 활기를 띠며 성장해나가고 또 그와 더불어 작품과 작가들에게 뜨거운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 한국 컬렉터분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작가들과의 협력적 관계이고 늘 그들을 우선순위에 둔다. 소속 작가들을 대신해서 그들의 작품과 그들이 남긴 문화적 유산을 신중하게 선보이는 것이 우리 갤러리가 지금까지 해온, 그리고 앞으로도 가장 주의 깊게 심혈을 기울일 주요 업무이다. 안젤름 키퍼, 게오르그 바젤리츠, 로버트 라우센버그, 도널드 저드 등 현대미술의 근간이 되는 저명한 현대미술가들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알바로 배링턴, 올리버 비어, 레이첼 존스, 맨디 엘-사예, 한 빙 등과 같은 젊은 작가들을 영입함과 동시에 한국을 시작으로 아시아 작가들과 협업을 계획 중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하고자 노력하고, 더욱 풍성한 예술 담론이 형성되도록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작가들과 함께 성장해나가는 타테우스 로팍의 모습을 기대해달라.

※ 정승우는…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리=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사진 임익순 객원기자

202211호 (202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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