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기업 리더 32인의 신년 에세이] 약속(2) 

 

장진원 기자
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여 둠. 또는 그렇게 정한 내용.’ 약속(約束)의 사전적 의미다. 누군가는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이라며 농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약속은 사람과 사람, 개인과 사회, 나아가 국가에 이르기까지 구성원의 행복을 담보하는 사회적 정의와 신뢰의 보루다. 포브스코리아가 2023년 새해를 맞아 약속의 의미를 물었다. 기업 리더 32인이 저마다의 약속을 풀어냈다. 기업가로서,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또 자아를 찾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약속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이가 새해 희망에 앞서 우려와 긴장을 먼저 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침체는 물론이고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高’, 얼어붙은 투자 환경,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덮친 높은 파고가 매섭기만 하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결국은 희망이다. 어려움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다. 희망과 의지는 그렇게 새로운 약속으로 이어졌다. 기업을 이루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행복한 한 해를 만들자는 꿋꿋한 약속들이다. 계묘년 새해, 지혜로움으로 가득한 약속에 귀 기울여본다.
라민상 프랙시스캐피탈파트너스 공동대표 - 다시 한 걸음


2023년은 프랙시스캐피탈파트너스를 설립한 지 만 10년이 되는 해이다. 프랙시스(Praxis)는 그리스어로 가치를 창출하는 행위 또는 과정을 뜻한다. 차별화된 가치를 만들어내는 투자회사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지은 이름이다. 차별화된 가치는 첫째, 프랙시스 펀드에 출자하는 연기금, 공제회, 금융회사 등 우리 고객에게 안정적이면서도 업계 최고 수준의 수익률을 제공하는 것이다. 둘째, 이러한 초과 투자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우리 회사 고유의 방법과 노력으로 피투자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우리는 설립 당시 다짐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난 10년간 많은 노력을 해왔다. 우리만의 투자 철학과 전략을 세우고, 투자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이를 실행하는 조직과 인력을 만들고 교육했다. 또 위험체계구축을 통해 좀 더 단단한 회사가 되고자 했다. 빠르게 성장하고 싶었지만, 착실하게 기본기를 다져가는 것을 더 중요시했다. 크고 작은 실수에서 다시 배우고, 극복하여 고객과의 신뢰를 더 두텁게 하고자 했다. 그 결과, 현재까지 25건 넘는 기업투자를 집행했고, 그렇게 투자한 포트폴리오 회사는 또 다른 30개 회사를 인수합병하면서 고속 성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투자회사 CEO로서 하루에도 몇 번씩 해야 하는 크고 작은 의사결정은 여전히 어렵다. 불확실성 속에서 내려야 하는 판단은 매번 큰 스트레스인 것이 사실이다. 이제 세계경제 환경은 지난 30년간 전 세계가 평화롭게 협업하던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국면에 들어섰고, 금리상승, 양적축소, 경기침체 등에 대한 우려로 기업들의 주가(valuation)는 매우 큰 조정을 받았다. 매번 오류를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인간이 모든 것을 알고 통제할 수 없기에 문제는 결국 발생하고 만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문제에 대처하는 자세가 아닌가 싶다. 실수는 빨리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은 것, 오류의 가능성을 고려한 위험 시나리오 준비 등. 나는 고객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당장은 답이 없는 문제라도 결국 해결해내고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절실함, 즉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이 이 어려움을 풀어나가는 해법이라 믿는다.

누군가 일하면서 가장 기쁘고 흥분되는 순간이 언제인지 묻는다면, 하나의 투자 건이 최종 결실을 맺는 회수(exit)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회수 순간의 기쁨 이상으로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좋은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해결한 도전적인 과제, 사건, 사고들, 결국 고생에 대한 추억들이다. 이런 난제를 해결한 경험이 우리 회사 구성원들의 역량을 높인다고 믿기에 뿌듯하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 업의 근간인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Fiduciary Duty)를 배우게 된다.

2023년은 10년 전 창업했던 마음을 되돌아보며,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하고 시작하는 해가 될 것이다. 우리 회사의 구성원들이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동기부여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는 ‘Sound mind in sound body’를 되새기며 더 좋은 의사결정을 하겠다는 약속을 해본다.

김선희 에이치이브이 대표 - 약속은 신뢰의 척도


약속이라는 주제의 에세이를 청탁받고 고민하고 있을 즈음, 친구가 오랜만에 ‘약속’이라는 가슴 뭉클한 글을 보내줬다.

친구의 글을 보며 새삼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과연 이런 약속을 지켜줄 친구가 몇 명이나 될까? 아니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행복할 거라는 생각과 함께 글을 공유하며 적어본다.

어느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의 한구석에 머리가 희끗한 노신사가 서 있었다. 그 노신사는 어릴 적 친구와 나이 육십이 되면 이 운동장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어서 친구를 만나러 나온 것이다. 그때 한 청년이 운동장으로 달려와 그 노신사에게 다가와 물었다.

“혹시 어르신께서 어릴 적 친구를 만나러 오셨나요? 아버님이 2년 전에 지병으로 돌아가셨는데, 어릴 적 부모 없이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친구와 약속을 했다고 하시면서 만날 날짜와 시간을 가르쳐 주시고는 꼭 나가서 만나달라고 아들인 저에게 부탁하셨습니다.”

노신사는 친구의 죽음을 매우 슬퍼했다. 하지만 약속을 지켜준 친구의 마음이 너무도 고마웠다. 노신사는 동대문시장에서 의류 제조 판매업 등으로 수천억을 모은 사업가였고 슬하에 자녀가 없어서 자신의 사업 후계자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작은 약속이지만 잊지 않고 그 약속을 대신 지켜준 아들에게 기업을 안심하고 맡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의 아들에게 기업을 맡겼다고 한다.

익히 아는 내용이지만 오늘은 왠지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약속이란 이처럼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약속을 하고 또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개인 간의 약속이든 조직의 약속이든 약속을 지키는 과정에서 믿음과 신뢰가 형성된다.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은 우리가 흔히 하는 가장 쉬운 약속이다. 이렇게 일상에서 쉽게 하는 약속도 상대에 따라 지키지 못한 말뿐인 약속이라면 그 사람을 불신할 수가 있어 다른 약속도 꺼리게 될 것이다. 작은 약속이라도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할 의무가 따른다. 약속은 서로 간의 품격이고 배려이며 공감 능력이기 때문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상대를 대하는 기본 예의다. 약속은 나와 다른 사람을 연결하는 중요한 신뢰의 척도다.” 이 말을 다시 한번 명심하면서 2023년에는 또 다른 나로 창조적으로 살아보자고 약속한다.

배양자 정성담F&B 대표 - 고집스러운 약속


㈜정성담F&B는 올해로 21년 차에 접어들었다. 지난 20주년을 마무리하며 새로운 1년 차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2023년을 맞이하고 있다. 20년 전, 탕 전문점으로 시작해 연 매출 100억원을 기록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리라고는 당시에는 상상하지 못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살아남기 어렵다는 F&B 시장에서 20년을 꾸준히 성장해온 모습에 주변에서는 늘 그 노하우에 대해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CEO다운 그럴듯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지만, 사실 별다른 게 없다. 다만 지난 20년을 곱씹어본다. 나의 무엇이 남들에게 롤 모델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나와의 약속, 고객과의 약속이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한식을 시작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위험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었고, 딱 한 가지를 스스로와 약속했다. 절대 식재료와 타협하지 않을 것. 그중에서도 김치는 나의 자존심이었다. 대부분 한식당에서는 밑반찬 중 하나로 취급되는 김치에 큰 투자를 하지 않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국물과 밥을 먹는 데 가장 중요한 건 김치의 맛이라는 내 고집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1%의 변화도 없다. 20년 동안 한 해도 빼놓지 않고 모든 김치는 직접 담갔다. 겉절이는 매일매일 담근다. 김치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직접 공수해 온다. 이 약속은 나와의 약속이면서 우리 김치 맛을 칭찬해주는 고객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배춧값이 금값일 때도, 코로나19로 인해 경기가 바닥을 칠 때도 식재료는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단 1초도 고민하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겠다. 주변에서는 이런 나의 고집스러운 약속을 말리기도 했지만, 지금 내가 가장 자신 있게 나의 성공 비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고집스러운 약속을 담아 지난해에는『혼김치』라는 김치 레시피북을 출간했고, 각종 김치 강연과 프로젝트에 참여해 한국의 김치를 알리는 일도 함께 진행하며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새해를 맞아 여러 매체와 단체들로부터 사업 성공에 대한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특히 21년 차를 맞이하는 ㈜정성담F&B는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대부분 새해에 남다른 계획을 기대하고 하는 질문들이다. 하지만 21년 차를 맞이하는 올해도 새로운 1년 차의 마음으로 고집스러운 나의 약속을 묵묵히 지켜나갈 것이다. 보이지 않은 수많은 유혹과 현실에서도 고집스럽게 지켜온 나와의 약속, 고객과의 약속. 이 변함없음으로 ㈜정성담F&B의 새로운 전성기를 준비해본다.

조창현 세아메카닉스 회장 - ‘적소성대’한 나만의 길


세상을 먼저 산 사람들은 색깔의 이름이나 의미를 정할 때 자연과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여러 가지 사물에 착안하여 지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코발트색과 에메랄드빛은 광물의 색, 오렌지색은 과일, 네이비색은 해군, 사프란색은 꽃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리고 초록색은 풀(Glass, Grow)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오늘날 색깔 이름은 체계적으로 표준화되었지만, 예전에는 각 나라 문화에 따라 같은 색채를 다른 이름과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문화권에서는 노란색을 낮에 비추는 햇살의 색이라고 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의 색이라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색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대다수 문화권에서 하늘의 색을 뜻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 이유는 광물, 과일, 풀의 유무와 상관없이 하늘은 ‘세상 어디에서든 누구나’ 볼 수 있는 당연한 자연이기 때문이었다.

‘맑은 하늘 빛깔과 같은 연한 파랑을 하늘색’이라 부르듯이 어떤 것을 행하거나 생각할 때 미리 정해진 것처럼 당연하게 인식하는 것을 ‘하나의 약속과도 같다’고 말한다.

즉, 약속은 당연하게 지켜져야 하는 것들이며, 우리가 살아갈 때 무의식 속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졸리면 잠을 자고, 이동할 땐 두 발로 걷고, 배고프면 적당히 먹듯이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들도 존재하지만, 인터넷·TV·핸드폰을 보고, 자동차·기차·비행기로 이동하고, 시간과 장소에 영향을 받지 않고 다양한 음식으로 배고픔을 해결하는 등 현대인의 삶에 맞춰 새롭게 생겨난 약속도 많다.

하지만 모든 것이 연결되고 스마트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당연히 지켜야 할 약속들은 중심이 흔들리고, 새롭게 생겨난 약속들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예를 들어, 졸리는데도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무언가를 하고, 이동 시 두 발로 걷는 대신 자동차, 기차로 바쁘게 어디론가 향하고,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보다는 여러 가지 이유로 무리한 다이어트, 폭식, 폭음 등과 같은 생활 패턴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처럼 빠른 변화와 정보를 요구하는 초연결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당연히 지켜야 할 것들은 점점 희미해지고, 다른 것에만 몰두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새겨보면서 새해에는 ‘꿀잠 자고, 건강하게 먹고, 많이 걷는’ 것을 시작으로 삶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꼭 필요한 것이지만, 우리가 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작은 것들을 모아서 큰 뜻을 이루는 ‘적소성대(積小成大)’한 나만의 길을 창조하는 한 해가 되도록 노력할 작정이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202301호 (2022.12.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