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기업 리더 32인의 신년 에세이] 약속(5) 

 

장진원 기자
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여 둠. 또는 그렇게 정한 내용.’ 약속(約束)의 사전적 의미다. 누군가는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이라며 농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약속은 사람과 사람, 개인과 사회, 나아가 국가에 이르기까지 구성원의 행복을 담보하는 사회적 정의와 신뢰의 보루다. 포브스코리아가 2023년 새해를 맞아 약속의 의미를 물었다. 기업 리더 32인이 저마다의 약속을 풀어냈다. 기업가로서,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또 자아를 찾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약속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이가 새해 희망에 앞서 우려와 긴장을 먼저 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침체는 물론이고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高’, 얼어붙은 투자 환경,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덮친 높은 파고가 매섭기만 하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결국은 희망이다. 어려움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다. 희망과 의지는 그렇게 새로운 약속으로 이어졌다. 기업을 이루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행복한 한 해를 만들자는 꿋꿋한 약속들이다. 계묘년 새해, 지혜로움으로 가득한 약속에 귀 기울여본다.
손세희 사단법인 대한한돈협회 회장·한돈자조금관리위원장 - 한돈이 ‘약속’하는 2023년


새로운 해가 밝았다는 설렘과 희망보다 국내외 경제위기가 더욱 격화될 것이란 어두운 전망 아래 저마다 몸을 움츠리기 바쁜 요즘, 2023년을 대표하는 트렌드 중 ‘평균실종’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띈다. 평균실종이란 평균으로 표현될 수 있는 무난한 상품, 평범한 삶, 보통의 의견, 정상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기존의 대중 시장이 흔들리며, 대체 불가능한 탁월함·차별화·다양성이 필요한 시장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불황으로 침체된 시장에서 토끼처럼 뛰어오르기 위해선 평균을 뛰어넘는 남다른 치열함이 필요한 만큼, 우리의 핵심 역량과 가치를 기반으로 새로운 한돈산업으로 도약할 것을 약속드린다.

우선 ‘소비자’와의 약속이다. 요즘처럼 경기가 위축되면 소비자는 쓸데없는 지출을 줄이고 자원을 선택·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만, 가치 있고 특별한 경험을 얻는 것에 지갑을 여는 만큼, 한돈의 고급화와 소비 다각화 등 질적 성장에 더욱 주력할 방침이다. 오랜 세월 국민 곁에서 함께해온 서민 음식이라는 친근함도 좋지만 육질 개량 등 품질 향상을 통해 프리미엄 한돈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수입 돼지고기와 차별화할 것이다.

두 번째는 ‘환경’과의 약속이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전례 없는 기후변화 위기를 실감하는 요즘, 우리 역시 탄소중립 대응을 위한 책임과 역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20년 기준 온실가스 전체 배출량에서 축산업의 비중은 약 1.4%에 불과하지만, 저탄소 축산물 인증, 한돈 농장 환경개선 사업, 친환경 포장재 사용 등 생산·유통·소비 모든 과정에서 친환경 경영을 강화해 대체할 수 없는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 제공과 지속가능한 한돈산업을 실현하겠다.

마지막으로 ‘한돈 농가’와의 약속이다.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기후 위기,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인한 생산비 급등, 수입육 범람 등 지난해 한돈 농가는 녹록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 생산액 1위 품목, 육류 소비량 1위라는 자부심을 갖고 한돈산업에 닥쳐온 온갖 도전과 시련을 함께 이겨낸 만큼, 올해도 한돈인들이 더 큰 의지로 연대, 협력한다면 극복 불가능한 어려움은 없다는 생각이다. 앞으로도 한돈인들의 권익 향상, 우호적인 정책 제안 및 제도 개선 등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 ‘돼지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다.

특히, 올해는 대한한돈협회 태동 50주년,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 설립 2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지나온 발자취를 거울 삼아 대한민국 식량안보를 책임지는 대표 단백질 한돈, 국민에게 사랑받는 한돈산업으로 장밋빛 미래를 그려나갈 우리의 ‘약속’을 지켜봐주시길 바란다.

조운호 하이트진로음료 대표 - 약속(約束)이 소명(召命) 되어


말로써 남에게 진 빚이라는 ‘말빚’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가벼운 약속이라도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나도 공사를 막론하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약속이나 허언으로 곤경에 처한 일이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하는 약속은 가장 깨지기 쉬운 까닭에 지키기도 어렵다. 하지만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한 번 했으면 천금처럼 생각하고 지켜야 한다는 일낙천금(一諾千金)의 가르침을 새해를 맞아 다시 새겨본다.

사사롭게는 신년에 금연이나 체중감량을 하겠다는 약속부터, 각자가 활동하는 영역에서 나름의 소명감으로 인생을 거는 담대한 포부의 약속도 있다.

내가 28년 전 서른세 살 나이에 음료사업을 처음 시작하면서 한 다짐과 약속이 있다. 우리 원료로 우리 브랜드 음료를 만들어 세계 유명 브랜드와 한판 겨루어보겠다는 것이었다. 1995년 당시 2조5000억원이나 되는 국내 음료 시장에서 유통되는 제품 대부분은 외국 기업에 판매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었다. 특히 오렌지 음료나 콜라, 커피 등 유통되는 거의 모든 제품이 이 땅에서 한 톨도 나지 않는 원료로 만든 서양 음료 일색이었던 것이다. 해방 이후 비료공장 하나 없던 나라에 서구 기술과 문물이 들어온 탓도 있겠지만, 50여 년이 지날 때까지 우리 음료라는 개념조차 없다는 사실이 젊은 청년의 가슴을 때렸다.

콜라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제품은 맞지만 명품은 아니라고 주장하며, 콜라를 뛰어넘는 우리 음료를 만들겠다는 각오가 그 시작이었다. 음료 사업을 시작하면서 당시 주요 일간지에 컬러판으로 전면광고를 집행했다. ‘이 땅의 자존심으로 태어났다’라는 헤드카피를 담은 광고는 경쟁사에는 선전포고이자 대국민 약속 선언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했던 이 약속을 회사 임직원은 물론, 협력사 관계자나 소비자에게까지 기회 되는 대로 말과 글로 공언했다.

그동안 우리 음료 개발을 소명으로 하는 사회운동가를 자처해온 것도 30년 전 약속에서 출발했다. 그 청년 조운호의 약속이 헛되지 않도록 현재의 나도 ‘우리 음료 세계화’에 더 매진할 것을 다시 한번 이 지면을 빌려 약속해본다.

이용균 알스퀘어 대표 - 성장 비결은 고객과의 약속


상업용 부동산 데이터 전문 회사인 알스퀘어는 임대차, 매입·매각 자문, 자산관리(PM), 인테리어 리모델링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장의 정보 불균형과 고객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알스퀘어는 데이터의 가치에 집중했고, 이를 수집하기 위해 ‘전수조사’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불가능에 가깝고, 된다고 하더라도 비용 투입대비 효율이 떨어져 지속할 수 없을 거라는 주변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고객이 만족한다면 중장기적으로 회사가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은 건 고객과의 약속이었다. 다른 회사가 외면하더라도 우리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를 믿고 찾아온 고객을 존중했다. 대부분의 부동산 회사는 면적이나 거래 규모가 작으면 돈이 안 된다고 여기지만, 알스퀘어는 당장 큰 수익이 발생하지 않아도 고객사가 성장하면 우리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공간을 찾는 고객사의 모든 여정에 알스퀘어가 함께하고, 이 경험이 좋았다면 고객이 우리를 다시 찾을 것으로 봤다.

품질 좋은 서비스를 균등하게 제공하기 위해 구성원 교육에 투자했고, 고객관리 시스템도 정비했다. 서비스 제공 후에도 주기적으로 고객사와 연락하고, 불만 사항을 점검해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사무실 면적이 132㎡(40평)일 때부터 알스퀘어와 연을 맺은 한 회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성장했다. 불과 6~7년 전 테헤란로 이면도로에서 조그만 사무실을 쓰던 스타트업은 기업가치 수조원대의 ‘유니콘’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지금도 공간 이전과 구성이 필요할 때마다 알스퀘어를 찾는다.

약속의 밑바탕에는 존중과 신뢰가 있다. 나와 상대방이 서로 합의한 사안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의미가 있고, 그것이 이어지면 신뢰가 쌓인다. 알스퀘어가 지난 10여 년간 가파르게 성장한 이유 중 하나도 고객사를 존중하면 새로운 기회가 생길 것이란 믿음을 지켜왔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대표 - 산업과 투자를 ‘연결’하겠다는 약속


지난 2016년 2월, 나는 스타트업 투자회사인 선보엔젤파트너스를 설립했다. 1년 뒤 2017년 3월에는 벤처캐피털인 라이트하우스 컴바인인베스트를 창업했다. 당시는 모회사이자 부친이 설립한 선보공업 사업기획팀에서 일하면서 전방산업인 조선과 해양플랜트 산업이 위기의 파고를 맞는 것을 지켜보았을 때다. 한때 대한민국 수출액 1위였던 조선업뿐만 아니라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등 지역 중심산업이자 대한민국의 기간산업이 급격한 변화의 시기를 겪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전통산업의 급격한 몰락과 산업의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가운데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했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이제껏 기존 산업과 접점이 크지 않았던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첨단을 달리는 스타트업·벤처와 ‘연결점’을 찾으며 대응해나가는 방법밖에 생존의 길이 없다고 판단했다. 또 기술과 미래의 변화에 따라 이를 실현하기 위한 협업과 적응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가운데 라이트하우스는 2017년 7월 19일 대한민국 최초로 산업은행과 함께 약 500억원 규모의 중견기업 연합 벤처펀드를 결성했다. 부산의 오토닉스·조광페인트·세운철강·명진TSR·유니테크노·대양전기공업·기성전선·모든·삼신교통을 비롯해 울산과 경남에 본사를 둔 현대공업 등 15개 중견기업이 함께했다. 오픈이노베이션 펀드라고도 불리는 시도를 통해 기술 간 융합을 급속히 진전시키려 했다. 특히 기존 전통산업에 최근 급격히 커진 벤처투자 생태계까지 ‘연결’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오픈이노베이션은 혁신의 약속이다. 신뢰가 성과로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은 일회성 벤처투자가 아니라,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투자 덕분이다. 또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과 기존 기업이 스스로 만든 버블 속에서 일하는 대신,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실현 가능한 미래를 위해 최상의 결과물을 만든다는 약속을 할 수 있어서다. 지식과 기술은 독점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며, 다른 기업과 사람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아가 내 아이디어를 다른 기업에 건네는 것 역시 혁신의 약속이다.

다행히도 2017년 조성한 500억원 규모의 펀드는 투자수익을 올려 현재 2000억원으로 크게 불어났다. 33개 스타트업에 투자했고, 그 외에 5개 컴퍼니 빌딩, 12개 조인트벤처, 20개 공동투자라는 결과도 만들어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발명한 전화가 사용자 5000만 명에게 도달하는 데는 70년이 걸렸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같은 수의 사용자들에게 도달하는 데 불과 3년이면 족했다. 단일 기업의 기술과 능력으로는 산업 환경의 빠른 변화를 따라잡기가 역부족이다. 혁신의 약속을 통해 2023년 새해에 산업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202301호 (2022.12.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