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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리더 32인의 신년 에세이] 약속(3) 

 

장진원 기자
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여 둠. 또는 그렇게 정한 내용.’ 약속(約束)의 사전적 의미다. 누군가는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이라며 농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약속은 사람과 사람, 개인과 사회, 나아가 국가에 이르기까지 구성원의 행복을 담보하는 사회적 정의와 신뢰의 보루다. 포브스코리아가 2023년 새해를 맞아 약속의 의미를 물었다. 기업 리더 32인이 저마다의 약속을 풀어냈다. 기업가로서,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또 자아를 찾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약속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이가 새해 희망에 앞서 우려와 긴장을 먼저 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침체는 물론이고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高’, 얼어붙은 투자 환경,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덮친 높은 파고가 매섭기만 하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결국은 희망이다. 어려움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다. 희망과 의지는 그렇게 새로운 약속으로 이어졌다. 기업을 이루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행복한 한 해를 만들자는 꿋꿋한 약속들이다. 계묘년 새해, 지혜로움으로 가득한 약속에 귀 기울여본다.
류승훈 KCLD 대표 - 이제 좋아질 시간만 남아 있다


2023년은 문화·공연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KCLD(Korea Culture Life Data)를 설립한 지 2년 차다.

공연 플랫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꽤 오랜 시간 해왔다. 팬데믹이라는 힘든 터널이 지난 수년간 이어졌지만 매 순간 그 터널의 끝자락에 서 있다고 위로하며 버텼다. KCLD를 설립하고 문화·공연 플랫폼 ‘매표소’ 앱을 출시하기까지 단 두 달이 걸렸다.

회사를 설립하기 전부터 대부분 산업 분야에서 디지털전환이 이뤄지고 있었는데, 영화와 달리 공연 분야는 여전히 티켓을 현장에서 구매해야 하고 기념품을 사기 위해 굿즈 판매 매장에서 줄을 서야 했다. 또 공연을 만드는 기획 제작사는 자사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의 성별·나이·지역이나 공연 후 재관람률 등 관련 데이터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15년간 영화·테마파크 업계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나에겐 데이터를 결합한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매표소 앱 론칭 후 회원의 예매 데이터를 조기에 수집하고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존 예매 플랫폼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을 세웠다. 공연을 예매하고 굿즈만 판매하는 단순한 플랫폼이 아니라 문화를 좋아하는 팬덤이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고객들이 고도화된 플랫폼에서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받고, 공연 제작사는 분석된 관객의 세부 데이터로 마케팅과 투자 전략을 쉽게 수립할 수 있도록 콘텐트 다양화도 모색했다.

목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것은 나 혼자만의 약속이 아니라 회사 조직원 전체와의 약속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다.

두렵고 힘들지 않냐는 주변의 물음에 “이제 좋아질 시간만 남아 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한다. 2023년에는 우리의 공연 플랫폼 서비스가 더 사랑받기를 기대하고 있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약속은 나 자신뿐 아니라 회사 발전의 동력이 되어왔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원장 - 소중한 약속 MOU


10여 년 전, 주 벨기에 대사관에서 일하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스텔라 맥주의 산지로 유명한 루뱅(Leuven)에 있는 아이멕(IMEC) 연구소는 반도체 분야 글로벌 오픈 이노베이션의 성지와 같았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초일류 기업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연구소들이 IMEC과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국내 제일이라고 자부하는 한 연구소가 IMEC에 “협력을 위해 먼저 MOU를 체결하자”고 제안했다. 놀랍게도, “공동 R&D를 하고 싶으나 MOU는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MOU를 협력의 출발점으로 이해하는 우리와 달리, 협상 성과물로 받아들이는 유럽과의 문화적 차이가 낳은 결과였다.

비즈니스에서 우리는 관계를 강조한다. 신뢰를 돈독히 하고, 호혜적 관계를 발전시켜나가자는 약속은 하되, 법적 강제력에 얽매이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다. 서구에서 발달했지만, 문서로서 협력 의사를 선언하는 효과가 있는 MOU가 우리와 궁합이 잘 맞는 이유다. 이런 연고로 수많은 기업이 MOU 대상을 찾는다. 아니 일단 체결하고 보자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약속도 지나치면 이행하지 못하게 되고 신뢰를 잃게 된다. 적정선을 넘지 않은 절제의 미덕이 있어야 한다.

지난 3년간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이 체결한 MOU는 30여 건에 달한다. 거의 매월 체결했는데, 얼마나 의미가 있고 잘 지켜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다른 기관과 약속해 협업을 도모하고 기능을 확장하여 사회적 성과를 도출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단지 행사 홍보나 기관 선전용으로 MOU가 동원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2023년에도 수많은 MOU를 체결하게 될 것이다. 한 단어, 한 문장마다 의의를 새겨보며 단계별로 차질 없이 실행될 수 있는 MOU가 되어야 한다. 그럴 수 있도록 MOU를 잘 구성해야 한다. 오픈 이노베이션을 위해서는 새로운 파트너 발굴이 절실했지만, MOU 체결에는 신중했던 IMEC처럼.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 - 타협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약속


창업의 길을 잘게 나누다 보면, 그 인수분해의 끝에 크고 작은 약속들이 있다. 팀원들 간의 약속, 투자사와의 약속, 고객과의 약속. 약속의 매 순간에 신중하되, 약속한 것들에 대해서는 뒤돌아보지 않고 가열차게 달리며, 그럼에도 끝내 지킬 수 없었던 약속들을 성찰하고 반성하면서 다시 일어나 달리는 것이 창업의 길 아닐까.

인공지능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도 수많은 약속의 무게를 견디며 2023년을 맞았다. 전 세계적인 불황과 격변하는 반도체 업계의 지각변동 속에서도 생존과 성장을 위한 고민으로 새해를 준비하고 있다. 앞선 약속들을 어떻게 지킬 것이며, 2023년에는 어떤 새로운 약속들로 채워갈지에 대한 고민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줄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새해를 맞으면서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수많은 약속 중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하나의 약속을 떠올려보면 좋겠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과감하게 나아가기를 바란다.

2023년 리벨리온이 타협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약속은 스타트업 유망주에서 대한민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약속이 리벨리온 구성원 모두의 가슴속에 살아 숨 쉬는 비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예견된 불황이 닥칠 2023년. 모두에게 건투를 빈다!

장광효 카루소 대표·패션 디자이너 - 계묘년, 나 자신과의 약속


“10대에 시인이 아니고 20대에 혁명가가 아닌 삶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라는 말이 있다. 젊은 시절 많은 사람이 가졌던 시인과 혁명가의 꿈이 만약 지금도 남아 있다면, 그래서 삶의 밑그림이 되어주고 있다면 이 말은 언제나 유효할 것이다.

나는 직업상 여행을 자주 한다. 그래서 여행은 혼자서 하는 고해성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 없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고해성사. 또 여행을 하다 보면 초라해진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혹은 낯선 타국 땅 가로등 밑에서 내가 왜 싸우고 살았는지 돌아보며 후회하게 된다. 길 위에 선다는 것은 그런 힘을 배우는 일이다. 그래서 자주 여행을 떠나게 되는지도 모른다.

밤비 때문에 어느 폭군은 화를 삭였고 어느 호걸은 냉정을 찾았으며 달리던 말은 쉴 수 있었고 빼어 들었던 칼은 다시 칼집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고 누군가 얘기했다.

한국인은 고독할 겨를이 없을 것 같지만 사실은 고독을 경험해볼 기회가 거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남들에게 인정받아야만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 자신보다 남을 더 의식하고 사는 한국인은 역설 같지만 고독할 수밖에 없다. 사실 고독은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고독을 견디면서 자기 내면을 응시하는 습관은 개인이 성숙하는 데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준다.

스스로 일어선 사람만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고 타인의 삶을 인정할 수 있다. 인생은 될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 대로 되는 것이다. 긍정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202301호 (20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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