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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주 소장의 메타버스 로드맵 짚어보기 

2023년 이후, 메타버스가 나아갈 방향 

초현실 가상 세계, 메타버스가 점점 현실 세계로 다가오고 있다. 메타버스의 기반 기술인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혼합현실(XR)의 최전선에서 그 효과를 연구하고 있는 안선주 조지아대 게임 및 가상환경연구소 소장이 메타버스로 가는 길, 즉 로드맵에 대해 이달부터 연재한다. [편집자주]

▎1968년 컴퓨터 과학자 이반 서덜랜드는 최초의 AR 시스템을 만들었다. 당시 컴퓨터의 제한된 처리 능력으로 인해 간단한 와이어프레임 도면만 표시할 수 있었다. / 사진:위키피디아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최근 몇 년간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고는 대화가 어려울 만큼 메타버스라는 개념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2006년부터 몰입형 가상현실 등 메타버스 관련 연구를 해온 나는 근래에 들어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다. 일단,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 학회의 구석진 곳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대중화되면서 드디어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가족과 친인척, 지인들이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어린아이들의 입에서도, 동네 어르신들의 대화 속에서도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20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풍경이라 나는 아직도 이 가늠할 수조차 없는 빠른 변화에 가끔 혀를 내두를 때가 있는데, 일각에서는 벌써 ‘메타버스는 죽었다’라고 말한다. 살아본 적도, 시작된 적도 없는 것이 죽을 수 있나 싶지만, 고리타분한 듯한 과학 분야에도 분명 패션처럼 유행이 있기 마련이고, 메타버스가 유행의 선두에 섰던 세월이 벌써 그 끝을 예견해야 할 만큼 흘렀나 보다.

많은 사람에게 메타버스는 여전히 반짝거리는 ‘신상’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메타버스’라는 용어는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이라는 공상과학소설 작가가 1990년대 초반에 발표한 『스노 크래시( Snow Crash)』라는 소설에서 나온 가상의 현실이다. 21세기에 세계경제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더는 현실세계에서 정상적으로 살 수 없게 되고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세계로 도피한다. 그런데 사실 메타버스라는 이름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진짜 같은’ 가상의 세상, 그리고 그 가상과 현실을 잇는 매개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있어왔다. 1960년대부터 여러 사이클에 걸쳐 ‘진짜 같은’ 가상의 세상에 대한 담론과 기술 발전이 이루어져왔고, 그때마다 ‘가상현실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은 학자, 작가, 사업가들이 있었는데, 2023년이 시작된 지금도 메타버스는 여전히 ‘커밍순’ 상태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신기루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메타버스라는 비전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왜 매번 실패하느냐보다 왜 매번 부활하느냐일 수 있다. 왜 사람들은 계속 실패하면서도 결국 다시 한번 ‘진짜 같은’ 가상의 세상을 꿈꾸고 있을까? 그 이유는 메타버스라는 개념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니즈(needs)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를 거쳐 새롭게 부활할 때마다 메타버스의 개념은 진화해왔고 이 진화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사람들이 왜 이렇게 간절하게 ‘진짜 같은’ 가상의 세상을 갈망하고 그곳에서 얻고자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지 모른다. 가상 환경과 메타버스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The old is new’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기존의 연구와 개발 성과를 파악하지 못한 채 새로운 것이라고 발표하는 걸 보면 결국 기존에 있던 개념과 상품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溫故知新(온고지신)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메타버스의 진화 과정은 어땠을까?

이상한 가상 나라의 앨리스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는 유저 수만 명이 온라인 세상에서 제2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가상 환경으로, 오늘날 메타버스 개념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다. / 사진:Linden Lab
1960년대에 처음 소개된 몰입형 가상 환경은 짧고 굵은 선들로 복잡하게 엉켜 있는 거대한 헤드셋의 모습이었다. 유타주립대학 컴퓨터공학과 교수였던 이반 서덜랜드(Ivan Sutherland)는 ‘Sword of Damocles(다모클레스의 검)’라는 꽤 웅장한 이름의 괴기한 기기를 사용하여 유저가 3차원 공간에 진입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사진). 그렇다면 이렇게 육중한 헬멧을 뒤집어쓴 유저가 그 3차원 공간에서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서덜랜드 교수는 미래의 가상현실을 상상하며 너무 사실적이어서 총알에 맞으면 유저가 죽을 수도 있고, 의자가 보이면 정말 앉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헤드셋은 우리에게 앨리스가 방문했던 이상한 나라와 같은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such a display could literally be the Wonderland into which Alice walked, Sutherland, 1965).” 이처럼 초창기 가상현실은 신기하고 초현실적인 경험들을 제공하여 사람의 모험과 정복에 대한 욕구를 충족해주는데 주목했다.

1980년대가 되어서야 재런 러니어(Jaron Lanier)가 VPL Research라는 회사를 설립해 우리가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이라는 개념을 확립했다. 그는 회사에서 개발한 VR 관련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언어를 선보이면서 VR 기술을 학교와 특수 연구실에서 벗어나 대중에게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고가의 비용과 제한적인 기능 때문에 널리 퍼지지 못한 채 VPL Research는 1990년에 파산 신청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 개발된 기술과 개념의 발전에 힘입어 1990년대에는 캐롤라이나 크루즈-네이라(Carolina Cruz-Neira) 일리노이공대 교수가 이끄는 팀이 헤드셋을 사용하지 않고 6개 프로젝션 스크린으로 유저를 둘러싼 상태에서 3차원 공간을 시뮬레이션하는 가상 환경CAVE(Cave Automatic Virtual Environment)를 개발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메타버스 하면 헤드셋부터 떠올리지만 사실 PC, 태블릿, 스마트폰, 프로젝션이나 LCD 패널 등 가상 환경으로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헤드셋만 고집하는 대신, 다양한 미디어 기기를 백분 활용해야 많은 유저가 일상 속에서 메타버스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과 공존하는 메타버스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혼자 경험하는 가상 환경의 한계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멋진 경험이라도 누군가와 나눌 수 없다면 쉽게 질리기 때문이다. 필립 로즈데일(Philip Rosedale)이 이끄는 Linden Lab에서 개발한 세컨 드라이프(Second Life)는 유저 수만 명이 온라인 세상에서 제2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가상 환경으로, 오늘날 메타버스 개념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다. 세컨드라이프 유저들은 ‘주민’이 되어 아바타를 이용해 다른 주민들과 친구가 되고, 연애와 결혼도 하며, 학교나 직장에 다닐 수도 있다. 또 린든 달러(Linden Dollar)를 이용한 가상화폐경제가 생성되어 가상 자산을 사고팔 수 있고, 2000년대 중반에는 GDP 6400만 달러를 자랑하기도 했다. 2013년 즈음에는 세컨드라이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유저가 100만 명을 넘어섰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줄어들어 2021년에는 평균 20만 명 정도가 세컨드라이프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공존하며 서로 관계를 형성하고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가상 세계에 대한 당시의 반응은 아주 뜨거웠다. 다만,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들어낸 세컨드라이프 안에서의 삶은 유저들의 현실 생활에 전혀 반영되지 않아 하나의 인생을 살기에도 바쁜 상황 속에서 유저 베이스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메타버스의 메타 부활

이런 진화 과정을 종합해보면 조금은 모호했던 메타버스의 개념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 방향성이 보인다. 실제와 다름없는 현존감을 선사하는 3차원 공간에서 유저들은 각기 가지고 있는 디바이스를 통해 아바타의 모습으로 교류하며 경험들을 공유해야 한다. 무엇보다 가상 세계에서 일어난 일들이 현실 세계에 실시간으로 반영되어 변화를 일으키고, 마찬가지로 현실 세계의 변화들도 바로 가상 세계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 세계의 모습을 그대로 복제한 세컨드라이프와 달리 가상 세계에서만 할 수 있는 모험이나 가상 세계에 특화된 업무나 일들 위주로 메타버스 활용을 확장해나가야 유저들이 효용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세컨드라이프는 유저들이 현실 세계에서 퍼스트라이프를 마친 후 남는 시간에 활동하는 시스템이었다면, 미래의 메타버스는 유저의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형태여야 큰 부담 없이 지속적으로 방문하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런 변화들이 이루어진다면 메타버스의 메타 부활이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멀리, 더 많은 유저에게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어본다.

※ 안선주 소장은… 조지아대 게임 및 가상환경연구소(Games and Virtual Environment Lab) 소장이며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뉴미디어와 이용자 행동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의료, 소비자심리학, 교육과 연계한 가상현실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 대화형 디지털 미디어에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2022년 초 TED talks에서 ‘일상생활에 가상현실 통합’이란 주제로 발표한 바 있다.

202301호 (20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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