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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우가 만난 예술계 파워리더(10) 손시율 공그라피 대표 

미디어아트로 꿈꾸는 미래 

정소나 기자
최근 몇 년간 미디어아트 시장이 급성장했다. 물감 대신 디지털 코드가, 캔버스 대신 벽이나 바닥 등 다양한 공간을 도화지로 사용하는 미디어아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중요한 행사나 축제에는 미디어파사드가 등장해 시선을 끌고, 미디어아트 전시장은 연일 관람객으로 북적인다. 정승우 이사장이 메타버스와 NFT의 기술적 성장과 더불어 계속해서 주목받고 있는 미디어아트 분야에서 활약 중인 손시율 공그라피 대표를 새해 첫 인터뷰이로 맞이했다.

한 자동차의 론칭쇼에서 베일에 가려져 있던 매끈한 스포츠카가 모습을 드러내자 스포츠카를 스크린으로 활용한 미디어파사드가 시선을 압도했다.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한 우주비행선 형태의 대형 건축물 외벽에 현란한 그래픽 패턴이 쏟아지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봤다. 고풍스런 문화재를 도화지 삼아 화려하고 입체적이며 스토리가 담긴 한 편의 미디어 공연이 펼쳐지자 쇼를 감상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손시율 공그라피 대표는 지금처럼 미디어아트 열풍이 불기 훨씬 전부터 프로젝션 매핑, AR(증강현실)·VR(가상현실), 인터랙티브아트 등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해 우리나라 미디어아트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미디어아트와 그래픽디자인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다.

2011년 호텔 엘루이에서 열린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론칭쇼’, 2017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개최된 ‘DDP UIA 2017’에서 예술성과 신기술의 완벽한 조화로 관람객들의 몰입도를 높이고 시선을 사로잡은 미디어파사드가 손 대표의 작품이다. 이뿐만 아니라 덕수궁 석조전, 경복궁 홍례문, 진주성 촉석루 등 세계적인 문화유산과 첨단 기술을 융합한 미디어아트 제작에도 참여해 문화재를 새롭게 바라보는 디지털 경험을 제공했다.

장르 간 융합 및 매체의 확장으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예술로 일컬어지는 미디어아트. 정승우 이사장이 한국 미디어아트의 숨은 고수로 불리며 묵묵히 미디어아트 제작과 전파에 집중하고 있는 손시율 대표를 만나 미디어아트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시각디자인학과에 진학하면서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 당시에 제작 난도가 높고 접근성은 낮아 특수한 분야로 여겨지던 모션그래픽 분야에 도전하려고 독학을 시작했다. 그러다 미디어아트를 접하게 되면서 미디어아트 전공 석사과정에 진학해 영상 안에 새로운 공간 구축을 형성하는 방식을 연구했다. 대학원 재학 중 대규모 행사의 미디어아트 제작에 투입되는 좋은 기회를 얻어 머릿속에만 있던 미디어아트의 제작 방향을 실제로 구현해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미디어파사드가 구현되기 시작할 무렵에 처음 제작에 참여했고 이후 공연 현장에 접목되는 미디어아트 콘텐트, 미디어 월 구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디어아트 제작에 참여했다. 수많은 제작 경험은 미디어아트에 대한 나만의 생각과 제작 기준을 세우는 데 기초 뼈대가 되었다.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진보된 시각적 종합예술로서의 미디어아트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원동력을 토대로 현재는 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영상을 제작하는 영상 디자인 회사를 운영 중이다.

비영리와 상업을 넘나드는 영상 활동이 눈에 띈다.


▎정승우 이사장과 손시율 공그라피 대표가 미디어아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디어 아티스트마다 추구하는 마인드가 굉장히 다양하다. 예를 들면, 순수예술로서의 강력한 메시지 전달을 추구하는 아티스트, 심미적 만족감을 주기 위해 대중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추구하는 아티스트 등 다양한 성향이 존재한다. 나는 처음부터 대중에게 심미적 만족감을 주는 미디어아트를 제작하는 것이 확고한 목표였다. 지금도 미디어아트를 제작할 때는 모든 사람에게 영상의 매력도가 높은 결과물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 첫 미디어아트 제작은 비영리 행사에서 출발했지만 사실상 시각적인 측면의 기준은 상업 영상의 마인드로 접근했었던 것 같다. 미디어아트는 하나의 예술품이지만 대중의 이목을 끌 만한 심미적 차원의 영상미가 없다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목표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상업적으로 사용되는 영상 연출 방식의 트렌드와 영상 기술들을 구사해야 했고, 자연스럽게 상업 영역의 영상도 맡아서 제작하게 되었다.

작가이신 어머니께 예술적 조예를 물려받은 건가.

젊은 시절부터 서예를 해오신 어머니는 현재 문인화 작가이자 한국미술협회 문인화 분과 부이사장으로 활동 중인 연제 손외자 작가이시다. 또 아버지는 예술 분야와 관련 없는 일을 하시지만 나보다도 그림을 잘 그리셔서 내가 두 분의 예술적 기질을 물려받은 것 같다. 어린 시절 방학 때 가끔 서예와 문인화를 배웠던 기억이 있다. 미디어아트 작품을 처음 제작할 때 어머니 작품을 이용해 시도하기도 했다. 문인화가 그려지는 모든 장면을 촬영해서 영상 안에서 깊은 공간감을 형성하도록 연출한 작품이었다. 촬영된 원본을 이용해서 영상 콘텐트로 스토리텔링을 구축하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시각화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영상 콘텐트 내부에서 벌어지는 무한대의 공간감을 표현하는 나만의 방식을 이때 다 터득했다고 생각될 정도로 개인적으로 가치가 큰 경험이었다. 이후에도 어머니와 협업하여 4차례에 걸쳐서 미디어아트 작품을 제작했다.

국내 미디어아트 제작의 최고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최고 전문가라기보다는 내게 차별화된 능력이 있다고 여겨진다. 나는 영상을 제작할 때 최대의 효율을 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기획 단계에서 상상하던 장면들을 빠르게 시각화해 장면 연출을 하는 것이 최대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우선순위를 두는데, 머릿속에서 떠오른 특정 장면이 있으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내 눈앞에서 그 장면이 구현될 때까지 붙들고 있으려는 성향이 강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만 했다.

각 제작 소프트웨어가 구동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고민하던 중, 적당한 수준의 제작 기술들을 서로 응용하고 융합해서 빠른 시간에 결과물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깨닫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정해진 공식보다는 손이 많이 가더라도 다양한 시도를 통해 나만의 방식을 찾아 작업하는 스타일을 추구하게 됐다. 그 결과 현재는 어려움 없이 상상 속 장면을 시각화할 수 있게 됐다. 또 담당 기획자의 의도를 빠르게 캐치해서 시각화한 장면 연출을 제안하며 조금 더 효율적인 제작 과정을 구축한 것이 남들과 차별화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주로 야외에 있는 건물 외벽을 스크린 삼아 제작하는 미디어파사드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안개가 심하거나 비가 오면 영상이 아예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한번은 행사의 오프닝 이벤트로 화려한 영상이 건물 외벽 전체를 수놓아야 했는데, 안개가 잔뜩 낀 탓에 아무리 센 장비를 동원해도 외벽에 영상이 전혀 비치지 않아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또 갑작스러운 컴퓨터 오류로 한 달 동안 공들여 작업한 데이터가 순식간에 사라진 경우도 있었다. 아무리 수소문해봐도 데이터 복구는 불가능했고, 마감까지는 단 이틀만 남은 상황이었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겨우 행사를 치러냈는데,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억이다.

공공예술로서 미디어파사드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서 필요한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람보르기니의 아벤타도르 모델 국내 첫 공개 행사에서 차량 외부에 실시된 미디어파사드 쇼의 모습.
미디어파사드 자체가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기 때문에 수많은 필수 운영 요소가 있지만 콘텐트 제작 차원에서 얘기해보겠다. 수년간 다수의 미디어파사드 제작에 참여하면서 장면 연출 변화 추세를 지켜볼 수가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건물 외벽에서 연출되는 착시효과에 모든 초점을 맞춰 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미디어파사드 자체의 노출 빈도가 적었던 시기여서 시각적 자극을 강조해야 했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 대중이 콘텐트를 보는 기준이 높아지면서 견고한 스토리텔링이 담긴 영상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미디어파사드 영상의 러닝타임은 7~15분 정도로 상당히 긴 편에 속한다. 이 긴 시간을 허술한 스토리로 엮게 되면 대중은 끝까지 감상하기 힘들어진다. 게다가 영상 제작 기술이 발전해 제작의 상향 평준화가 이뤄짐으로써 높은 품질의 영상은 기본 사양이 되어버렸다. 실제로 아무리 높은 품질의 영상을 투사해도 많은 사람이 잠깐 보다가 발걸음을 돌리는 모습을 상당히 많이 목격했다. 개인 디지털 장비의 수준이 높아져 과거와 같이 신기한 기술임을 과시하며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이 탄탄한 잘 기획된 콘텐트의 경우에는 관객이 끝까지 몰입하여 감상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며 콘텐트 기획의 중요성을 느끼곤 한다.

미디어아트는 그림 실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분들이 대안으로 시작하는 분야라는 부정적인 편견도 있다.

인간의 예리한 손 감각을 필요로 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아트 영역이기에 생긴 편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껏 봐온 미디어아트 영역에서 활동 중인 아티스트들은 저마다 그림 실력과는 다른 차원의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미디어아트는 굉장히 광범위한 아트 영역이며 필요로 하는 능력 역시 상당히 많다. 공학적인 감각, 공간성에 대한 감각, 소프트웨어 능력 등 타고난 감각들을 활용하기 위해 미디어아트 영역으로 뛰어드는 작가들을 많이 봐왔고 각기 다른 성향의 작품을 성공적으로 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미디어아트는 비싼 제작비와 유지보수비 등 아직 대중화하기에는 제약사항이 있다고 느껴지는데.

미디어아트 하면 떠올리던 대형 미디어파사드나 초대형 LED 패널 혹은 전자 센서가 복잡하게 연결된 인터렉티브 설치예술 등 전통적 개념의 설치 전시품들은 유지보수에 대한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최근의 미디어아트 개념은 일반적인 매체에 사용되는 영상물부터 다양하게 구현되는 모션그래픽 영상까지 범위가 확장됐다. 대체적으로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반드시 거대한 규모와 높은 금액을 필요로 하는 영역은 아니다. 생각보다 미디어아트 운영이 많은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박물관이나 전시관에는 몇 년 전부터 영상 프로젝션 매핑과 인터렉티브 영상이 설치돼 있다. 그 외에도 단순한 광고판 역할을 해오던 미디어 월에도 미디어아트적인 요소를 담은 영상 제작 의뢰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NFT에 대한 대표님의 의견은.

NFT는 어떤 특정한 것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인정받고 복제되지 않는 기술을 통해 보호받고자 하는 열망을 안고 탄생된, 이슈의 지속 강도가 다소 약할 수도 있는 개념인 것 같다. 하지만 시장경제는 항상 그래왔듯이 어떻게든 NFT가 새로운 가치를 지니도록 만들 것이다. 꼭 손에 잡히는 개체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과 같은 무형 콘텐트에 대한 소유권을 정식으로 가지면서도 그 가치가 계속 올라가는 시장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미래의 자산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AI가 미디어아트 영역도 넘볼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 이슈에 대해서는 영상 제작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내 경우에는 AI가 넘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미디어아트는 기술적 측면이 아닌 감성적 측면이 본질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영상 제작 AI에 수많은 변수 데이터가 적용된다고는 하지만 개인적 의견으로는 아주 세분화된 프리셋 개념의 이미지·텍스트의 자동 대체 시스템이라고 여겨진다. 만약 시스템의 자체 감정까지 대입하여 미디어아트를 제작할 수 있는 AI 시스템이 개발된다면 그때는 이미 미디어아트가 지극히 일상화된 초고도화 사회가 되어 있지 않을까.

앞으로의 미디어파사드를 전망한다면.

현재 규모가 있는 지자체 단위 행사에서 볼 수 있는 미디어파사드는 대부분 프로젝터 투사로 이루어지는 프로젝션 매핑의 형태를 띠며, 상업적 목적의 미디어파사드는 외부 대형 LED 패널이나 건물 외벽 전면에 부착된 LED를 이용하여 연출되는 경향이 있다. LED 연출을 활용하는 경우는 현재와 같은 형태로 발전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프로젝터 투사 방식의 미디어파사드는 도심의 일반적인 형태의 건물보다는 점차 특수성을 가진 구조의 건축물을 선택해 구현될 것이라 생각한다. 영상 자체의 스토리를 넘어서서 건축물의 특수한 구조 혹은 역사성과의 결합이 중요해질 것이다.

향후 행보가 궁금하다.

사회적 가치나 자산적 가치 개념이 급변하는 시대이다. 이에 따라 디지털 영상 매체도 급격히 변화할 것이고, 그동안 십수 년간 유지되어온 영상 연출 운영의 사회적 트렌드도 자연스럽게 달라질 것이다. 시대 흐름에 발맞춰 현재는 영상 콘텐트에 접목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반응형 콘텐트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미디어아트 콘텐트의 탄생을 기대해달라.

※ 정승우는…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리=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사진 최영재 기자

202301호 (20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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