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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우 송지오인터내셔널 대표 

젊은 디자이너가 스케치하는 패션 명가(名家) 

정소나 기자
팬데믹의 타격과 해외 브랜드의 약진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로컬 남성복 시장에서 매 시즌 성장을 거듭하는 회사가 있다. 1세대 남성복 디자이너인 아버지 송지오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아들 송재우 대표가 이끄는 송지오인터내셔널이다. 날선 테일러링과 특유의 아방가르드한 무드가 어우러진 동시대적인 옷을 선보이며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전히 대한민국 남성복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젊은 감성과 현실 감각을 더해 패션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는 송재우 대표를 만났다.

대한민국의 패션 역사를 얘기할 때 송지오라는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송지오는 1993년 패션 무대에 데뷔한 이후 당시 남성복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화려하면서도 독특한 디자인에 예술적인 상상력과 정교한 테크닉을 곁들여 매력적인 도시 남성의 스타일로 이름을 알린 국내 남성복 1세대 디자이너 브랜드다.

1990년대 후반에는 클래식하면서도 몸에 착 감기는 시크한 핏의 슈트를 앞세워 모델들에게는 ‘쇼에 서고 싶은 브랜드’, 남자들에게는 ‘입고 싶은 브랜드’, 여자들에게는 ‘남자들에게 사주고 싶은 브랜드’로 널리 알려졌다. 덕분에 중요한 일을 앞두고 송지오 옴므의 슈트를 맞추려는 사람이 많아지며 ‘성공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송지오는 옷 좀 입는다는 남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다. 지난 2018년부터 아들인 송재우 대표가 경영을 전담하며 브랜드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송 대표는 회사 창립자인 아버지 송지오 회장이 오랜 시간 켜켜이 쌓아온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경험과 노하우, 창의성이 깃든 패션 철학을 이어받아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브랜드의 외연 확장에 공을 들였다.

송 대표가 이끄는 송지오인터내셔널은 디자이너 컬렉션 브랜드 ‘송지오’에 이어 하이엔드 컨템퍼러리 남성복 ‘송지오 옴므’, 영 컨템퍼러리 유니섹스 브랜드 ‘지제로’ 등 신규 브랜드를 론칭하고, 리뉴얼을 통해 디자이너 브랜드로 재탄생한 ‘지오송지오’ 등 4개 브랜드를 갖추며 회사를 한 단계 더 성장시켰다. 전국 64개 매장을 운영하며 대중적으로도 인지도를 높였다. 지난해에는 2006년부터 참가해온 파리패션위크에 5년 만에 복귀하며 파리에 지사를 설립하고, 파리 패션의 중심인 마레 지구에 단독 쇼룸을 오픈해 해외시장 개척의 초석을 다지며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패션 하우스를 향한 힘찬 시동을 걸었다.

지난 1월 11일, 서울숲과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성수동 본사 사무실에서 송재우 대표를 만났다. 파리패션위크를 며칠 앞두고 있어서인지 파리에서 선보일 컬렉션 피스들이 복도에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벽부터 가구까지 온통 브랜드를 대표하는 블랙 컬러로 단장한 사무실에서 올 블랙 룩으로 차려입은 송 대표가 기자를 맞았다.

송 대표 취임 이후 송지오의 매출액은 매년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아방가르드한 느낌과 트렌드의 경계를 절묘하게 엮어낸 디자인으로 2019년 695억원, 2020년 810억원, 2021년 860억원에 이어 지난해에는 900억원 매출을 기록하며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화려한 마케팅이나 물량 공세 없이도 짧은 시간 안에 매출 성장을 이뤄내며 송지오의 리즈 시절을 재현 중인 젊고 열정 가득한 송 대표에게 브랜드의 성장 비결과 미래 비전을 물어봤다.


▎파리패션위크에서 ‘일식과 월식(Eclipse)’이라는 타이틀로 다양한 룩을 선보인 2023 SS 컬렉션.
올해로 취임 6년 차다. 기존의 송지오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대표이사로 취임한 지는 6년 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지는 1년 정도 됐다. 물론 브랜드를 맡게 된 초창기에는 매출 목표를 높이고, 브랜드를 다각화하는 등 비즈니스 볼륨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외형적으로는 회사가 성장하며 함께 일하는 직원도 많아지고 매장도 늘어났다. 하지만 초창기부터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이나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전혀 변한 게 없기에 본질적인 면에서는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어제도 컬렉션을 준비하며 밤늦도록 옷에 직접 그림을 그리고 컬러를 입히는 작업을 했다. 아트 패션을 추구하는 만큼 브랜드가 시작된 3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그리고 어제도 디자이너로서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 (송지오) 선생님처럼 나 역시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가치로 브랜드를 이끌고 있지 않을까.

패션을 전공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프랑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학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공부한 후 수년간 글로벌 금융회사에서 근무했다.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매출 목표를 잡는 것부터 회계와 자금관리, 통관과 환율 관리까지 많은 부분에서 경제관념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지난 6년간도 그래왔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중이다. 우리가 어떻게 자금을 준비해 차근차근 성장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측면에서도 경제를 공부하고 전공을 살려 일했던 경험이 패션 비즈니스에도 큰 도움이 된다.

어린 시절부터 워낙 오랫동안 아버지의 디자인실에서 옷을 스케치하고 만드는 일을 놀이처럼 배워왔고, 지금도 일을 하며 매일 패션 공부를 하고 있다. 오히려 경제학을 공부한 시간보다 패션을 접해온 시간이 훨씬 길어서인지 패션을 전공하지 않은 아쉬움은 없다.

4가지 브랜드를 전개 중이다. 각 브랜드의 마케팅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아방가르드하면서도 예술적인 디테일이 녹아 있는 패션을 추구하는 송지오 컬렉션 라인은 특별한 마케팅을 하지 않는다. 딱 ‘우리다운 것’, ‘우리에게 어울리는 것’만 하자는 생각으로 컬렉션을 통해 옷의 본질을 보여주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송지오 옴므는 매체나 셀럽들을 통해 부담 없이 고객들의 일상 속에 스며들 수 있는 대중적인 마케팅을 추구한다. 지제로는 우리 브랜드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마케팅을 하는 편이다. 인플루언서나 젊은 층을 타깃으로 셀럽 홍보도 좀 더 많이 하고, 유니섹스 브랜드인 만큼 남녀 모델을 함께 기용해 마케팅 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다양한 컬래버레이션과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는 등 젊은 브랜드에 걸맞게 MZ세대들이 좋아하는 마케팅을 최대한 지제로에 접목하고 있다. 슈트를 선호하는 고객이 많은 지오송지오는 테일러링이나 수선 등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느낌을 찾아주고 패션 욕구를 충족해주는 고객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터뷰를 할 때마다 공격적인 마케팅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마케팅을 통해 확보한 고객들이 오래도록 만족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며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 패션 커머스 플랫폼 파페치에서 국내 브랜드로는 이례적인 1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달성했다. 해외시장 공략을 위한 마케팅 노하우가 따로 있나.

트렌드에 민감하고 유행을 쉽게 받아들이는 한국과 달리 해외 고객들은 본인만의 개성이나 취향이 굉장히 뚜렷한 편이다. 스트리트 무드가 대세라지만 여전히 아방가르드하면서도 어두운 무드를 고수하는 고객들이 송지오의 옷을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당분간은 아방가르드한 무드를 고수하며 해외시장을 공략할 생각이다.

토이스토리, 스누피 등 디즈니 캐릭터와 협업한 아이템이 연이어 완판 행진 중이다.

중국에서 열린 외교 행사에서 우연히 디즈니 아시아 대표를 만나 디즈니 캐릭터를 활용한 컬래버레이션을 해보면 좋겠다고 가볍게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그에게 연락이 와서 순식간에 컬래버레이션이 성사됐다. 우리의 장점인 아트워크를 무겁지 않으면서도 퀄리티 있게 접목할 수 있는 방법을 늘 고민해왔는데, 디즈니 캐릭터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었다.

팬데믹 초반, 굉장히 어려웠던 때가 있었는데 컬래버레이션 제품들이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게 해주어 무척 고마운 아이템이기도 하다.


▎파리 컬렉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팅을 맡은 송재우 대표.
특히 올해는 디즈니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여서 디자인 안에 모든 캐릭터를 총출동시키는 등 방대한 기획을 준비 중이다. 앞으로도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재미있는 기획을 계속해서 선보일 예정이다.

2006년 파리패션위크에 진출한 이후 지난해 5년 만에 2023 SS 쇼로 복귀했다. 해외 무대를 준비하며 특별히 신경 쓴 점이 있다면.

최근 몇 년 사이 케이팝, 드라마 등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한국 가수와 배우들의 패션도 주목받고 있다. 한국의 패션 브랜드들도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처음 파리에 진출했을 때와 달리 엄청나게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실감 중이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중 하나로 우리만의 메이킹 노하우와 진정성이 담긴 디자인 유산에 젊고 컨템 퍼러리한 무드를 접목해 미래적인 방향으로 전개하는 방식에 대해 매 시즌 고민하고 있다.

올해 매출 목표와 향후 계획을 밝혀달라.

올해 연 매출 목표는 1100억원이다. 송지오, 송지오 옴므, 지제로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송지오인터내셔널의 매장을 5개 정도 늘리고, 작년 하반기에 재론칭한 지오송지오 매장은 최소 10개 정도 확장할 계획이다. 작년부터 영업팀에서 분리해 독립적으로 운영 중인 온라인팀을 활성화해 온라인 매출을 확대하고, 무엇보다 해외 매출을 키우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2024년 론칭을 목표로 여성복 사업을 준비 중인데, 2024년과 2025년은 여성복 비즈니스를 최대한 키우는 게 주요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유니섹스 라인인 지제로가 점점 인지도를 높이고 있으며, 매출 규모도 커졌다. 지금 편집 매장 형식으로 한 매장에서 판매되는 지제로를 별도의 매장과 유통망으로 진행하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송지오는 30년 넘도록 사랑받는 브랜드다. 비결이 뭘까.

오랫동안 사랑받는 브랜드로 남을 수 있었던 건 온전히 지금까지 한 번도 초심을 잃지 않고 달려온 송지오 선생님 덕분이다. 오랜 시간 유명 브랜드의 수장으로 일하며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고, 쉽게 (옷을) 팔 수 있고, 좀 더 놀 수도 있고, 좀 더 즐길 수 있는 달콤한 유혹도 많았다. 하지만 제일 가까운 곳에서 오랜 시간 지켜본 선생님은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다음 시즌을 생각하며 고민해왔다. 혹여 이번 시즌의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책하며 개발에 개발을 거듭하는 등 한결같이 패션을 향한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회사가 작을 때나 지금처럼 회사가 커졌을 때도 변함없이 그 일관성과 진정성이 자연스럽게 전달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엄청난 마케팅 비용과 요란한 홍보 없이도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남성복 브랜드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앞으로의 목표는.

남성복을 발판 삼아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패션 하우스로 성장하고 싶다. 내년에 계획대로 여성복을 론칭하고, 향후에는 스포츠웨어, 토털 웨어에 이어 패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잡화까지 카테고리를 확장해 오래도록 이어갈 수 있는 세계적인 패션하우스를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사진 최영재 기자

202302호 (2023.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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