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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찬이 만난 부울경 혁신 리더(11) 이수창 현대알비 회장 

글로벌 산업용 강관의 최강자 

장진원 기자
한국은 글로벌 산업용 파이프 시장의 강자 중 하나다. 석유화학, 가스 등 에너지산업에서 일반 산업에 이르기까지 파이프 없는 공장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수창 현대알비 회장은 1999년 창업 이래 한국의 강관산업 경쟁력과 생산 혁신을 다져온 기업가다.

공장 앞 너른 부지를 가득 메운 대형 파이프들이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작아야 수십 센티미터, 크게는 성인 한 명이 들어가도 거뜬한 대형 강관들이다. 철물점에서나 보던 가정용 파이프에 익숙한 외부인에게,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대구경 산업용 파이프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부산시 기장군 명례산단로에 자리한 현대알비 공장 전경이다.

지난 1999년 이수창 회장이 창업한 현대알비는 국내는 물론 글로벌 대구경 강관 제조업체 중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명품 기업이다. 두꺼운 후판을 원료로 대구경 SAW(Submerged Arc Welding) 파이프를 생산하는 현대알비는 전체 생산량의 약 80%를 해외에 수출한다. 연간 18만 톤에 이르는 생산량을 바탕으로 전 세계 다양한 고객사의 주문과 요청에 맞는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를 갖춘 것도 현대알비의 강점이다. 2005년 500만불 수출탑 수상을 시작으로 2012년에는 수출 7000만 달러, 올해는 1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한국산 대구경 파이프를 대표하는 기업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창업 이래 25년간 현장을 이끌어온 이수창 회장을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대표가 직접 만나 물었다. 팔순을 넘긴 노(老)기업가의 시선은 여전히 현장과 미래를 향해 있었다.

젊은 시절 국세청에서 일하다 사업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처음 강관 사업에 뛰어든 계기가 궁금하다.

돌아보면 세상사가 우연에서 시작돼 필연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사실 1985년 무렵만 하더라도 세무사 개업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다 가까운 지인의 보증을 선 게 문제가 됐고, 그 과정에서 피보증인이 운영하던 현대강관을 인수하게 됐다. 파이프 유통 대리점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대리점을 정리하는 가운데 3억원 넘는 부도를 맞았다. 내 생애 처음으로 마이너스 인생을 살게 된 거다. 자식에게 빚을 물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때부터 하루 3시간도 안 자며 빚을 갚는 데 전력했다. 밀양에서 밤 11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일을 봤다. 잠은 열차에서 해결했다. 그렇게 죽기 아니면 살기로 일해 2년 반 만에 빚을 갚았다. 주변의 도움도 컸다. 그때 사업은 장사가 아니라 신용이라는 걸 깨달았다. 당시 3억5000만원은 감당하기 힘든 돈이었다. 그걸 해결했으니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100년 기업의 꿈을 꾸게 된 시작이다. 예상치 못한 사업이었지만, 지금의 강관 사업을 시작한 계기도 됐다. 대형 강관 사업은 1999년 들어 시작했다. 그야말로 전화위복이었다.

현대알비의 주력 사업에 대한 설명 부탁드린다.

대구경 후육 강관이다. 후육은 지름 60㎝ 이상의 두꺼운 철판을 말한다. 1만 톤이 넘는 프레스로 찍어내는 산업용 파이프다. 400㎜가 최소 직경이고, 가장 큰 파이프는 지름만 7600㎜에 이른다. 원자력발전소의 치배수관으로 쓰이는 파이프다. 바닷물을 들여와 원전을 식히는데 쓰는 파이프다. 현재 그 제품이 울진원자력발전소에 납품돼 있다. 신고리발전소에는 지름 4m 파이프가 들어가 있다. 우리가 만든 파이프는 모두 고온·고압에 견디는 산업용이다. 석유화학 공단의 송유관이나 해양구조물의 가스관 등이다. 중동, 미주, 아프리카, 유럽, 러시아, 남미 등 석유가 나는 모든 지역에 우리 파이프가 들어가 있다. 대형 시설에서 파이프에 이상이 생기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품질관리에 더욱 엄격한 이유다.

처음 시작은 말씀하신 것처럼 강관 유통이었다.


사업 초기 유통에서 벗어나 12m 롤밴딩 강관부터 자체 제조에 나섰다. 시작은 위탁생산(OEM)이었는데, 곧 한계에 부딪쳤다. 제품 대부분을 수출했는데, 해외 거래를 맡긴 협력사들이 모두 서울에 있었다. 이들이 환율로 이득을 챙기려고 대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는 일이 잦았다. 자체 해외영업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결국 대기업 해외영업 파트에서 일하던 아들을 불러들였다. 당장의 영업이 급했지만, 6개월 넘게 직원들과 부대끼며 공장밥을 먹도록 했다. 현장과 제품을 알아야 영업도 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때부터 영업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오너 경영인이 현장에서 직접 제품을 설명하고 가격을 흥정하니 해외 수주도 크게 늘기 시작했다. 2012년 7000만불 수출탑을 받은 것도 아들(이상철 사장)의 공이 컸다.

사업 초기부터 독자 브랜드로 글로벌 시장을 조준했다. 현대알비의 글로벌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나.

글로벌 강관 전문기업 중 특정 품목의 대량생산뿐 아니라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한 곳은 현대알비만 한 곳이 드물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건 우리만의 독창적인 생산설비 덕분이다. 현대알비는 파이프뿐만 아니라, 이를 제조하는 기계설비도 직접 제조하는 거의 유일한 기업이다. 국내 동종 업계만 해도 국산과 독일제 설비 등을 혼용한다. 자체 생산설비 제조는 정부에서 신기술로 인정받아 은탄산업훈장도 수상했다.

자제 제작한 생산설비를 갖췄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현재 명례 공장이 현대알비의 4세대 공장이다. 네 차례 공장을 이전하고 새로 지으면서 생산설비를 자체 개발했다. 명례 공장도 설계에만 4년이 걸렸다.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맞춤형 최신 설비라 자부한다. 이전에도 생산설비 내재화에 공을 들여왔다. 그 결과 과거 쓰던 설비를 인도에 수출했고, 독일 파이프 회사에 판매하기도 했다. 명례 공장 바로 전의 울산 공장은 국내 대형 철강사에 턴키로 매각했다. 현대알비의 생산 시스템과 노하우가 하나의 토털 솔루션인 셈이다. 파이프를 만드는 사람들이 직접 뛰어들어 만든 전용 설비다. 다른 기업들은 아직도 20~30년 전에 디자인한 모델을 그대로 쓰고 있다. 직원들이 직접 나서 생산설비의 설계도면을 바꿀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불편하지 스스로도 잘 모른다. 현재 현대알비의 생산설비에는 19개 특허가 집약돼 있다. 글로벌로 범위를 넓혀도 생산과 설비를 동시에 하는 유일한 기업이다.

생산 토털 솔루션이라는 말씀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생산설비와 노하우에 대한 해외 합작과 진출을 검토 중이다. 파트너사를 우리 공장에 데려와 “똑같이 만들어주겠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만의 솔루션이니, 해외 공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실시간으로 확인해 해결할 수도 있다. 우리도 예전에 독일 설비를 쓸 때 부품에 문제가 생기면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이젠 공장과 생산설비, 생산 노하우와 유지·관리까지 패키지로 묶어 판매하는 게 가능하다. 원유가 나는 중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을 타깃으로 준비 중이다. 향후 100년 기업의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2020년 준공한 명례 공장은 업계에서 보기 드문 스마트팩토리다.

처음 공장을 세울 때부터 생산기술 표준화와 기계설비 자동화에 초점을 맞췄다. 2030년이면 완전한 수준의 스마트공장 가동이 가능하다. 중량물이 많다 보니 아무래도 사람이 적게 관여하도록 설계했다. 제조 로봇, 자동 치수 측정, 자동 마킹 등 스마트화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사실 지금도 웬만한 자동화 설비는 다 갖춘 상태라 결원이 생기는 분야는 언제든 자동화가 가능하다. 올해 안에 프레스까지는 전자동화가 이뤄질 예정이다. 요즘도 직원들이 점심을 먹는 사이에 몇몇 설비는 자동으로 돌리고 있다.

앞서 독일과 일본이 경쟁자라 했는데,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어느 수준인가.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SAW 강관은 한국이 단연 메인스트림이다. 유럽과 일본에도 몇몇 경쟁사가 있지만, 다품종 소량생산 부문에선 현대알비가 단연 톱이다.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메이저 철강사들로부터 안정적으로 원료를 공급받는 것도 한국이 가진 큰 메리트다. 이들 세 나라 외에 중국과 인도, 튀르키예 등이 있는데 품질이 조악한 편이다. 메이저 오일·가스기업들은 대부분 이들 나라의 제품을 제외한다. 전 세계 유전과 가스전 개발에 우리 제품이 다 들어간 이유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예상치 못한 기회가 됐다. 러시아산 가스의 유럽행이 막히자 대안으로 카타르가 떠올랐다. 카타르는 전 세계 가스매장량 3위 나라다. 현대알비도 현재 카타르 가스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현대알비는 특히 석유화학 산업용 강관의 강자다. 최근의 탈석탄·신재생에너지 트렌드에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


단시일 안에 급격한 변화로 인한 위기가 찾아올 거라 염려하진 않는다. 다만 새로운 에너지 트렌드가 현재의 사업 모델에 리스크 요인인 건 사실이다. 우리도 수소 강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미래 에너지는 수소가 될 거라 본다. 식수관도 준비 중이다. 특히 통일시대를 맞으면 북한에서 관련 수요가 폭증할 걸로 예상한다. 원산 지역을 눈여겨보고 있다. 한반도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에 이르는 가스관이 연결될 수 있다고 본다. 해상풍력도 차세대 먹거리다. 프로펠러 밑 바닷속 기둥이 모두 파이프다. 인류가 기원전 320년에 처음으로 토관을 동그랗게 만든 게 파이프의 원형이다. 앞으로도 파이프의 모양은 바뀌지 않을 거고, 용도만 바뀔 뿐 수요도 영원할 것이다. 100년이 지나도 유용한 생산설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바로 지금의 명례 공장이다.

미래 에너지산업과 통일까지 내다보는 혜안이 정말 대단하다.

통일이 되면 인프라 건설이 필수다. 어디든 파이프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파이프는 물론 제작 설비와 기계를 만드는 능력을 보유한 국내 유일 기업이다. 모든 관련 도면을 보유하고 있으니 언제든 바로 투입할 수 있다. 통일이 되면 우리가 제일 먼저 공장을 지을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또 다른 의미 있는 사업을 시작하셨다. 2020년 11월 개장한 밀양 아리나호텔이다.

밀양이 고향이다. 크게 돈 되는 일은 아니지만 고향을 돕고 싶었다. 밀양시장에게 고향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물으니 “밀양이 오래 머무는 곳이 되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밀양은 예부터 부산·경남 사람들이 여행지로 찾는 휴양도시였다. 그런데 모텔만 많지 제대로 된 숙박시설이 없었다. 타지에서 밀양으로 출장 오면 여직원들은 김해나 창원으로 가서 잠을 청하고, 남자 직원들만 모텔로 간다고 하더라.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하지 않은 호텔이 밀양의 숙원사업이었다. 관광 등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그렇게 고향에 이름을 남기는 것도 괜찮지 않겠나.

‘가뭄에 논 사지 마라’, ‘빚내서 벌리지 마라’는 회사 내 문구도 인상적이다. 회장님의 경영 철학과 원칙이 배어 있는 말씀이라 짐작된다.

경주 최 부자가 “흉년에 농사짓지 말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빌려온 말이다. 남의 눈에서 눈물 뽑으며 약점 잡지 말라고 항상 이야기한다. 그게 빚내지 말라는 소리다. 아들인 이상철 사장에게도 스텝 바이 스텝으로 차분하게 가라고 조언한다. 너무 떠벌리고 다니면 신용도 잃기 쉽다. 기업가가 신용을 잃으면 다 잃은 거다. 자전거는 가만있으면 넘어진다. 페달을 밟아야 오르막도 내리막도 다 달릴 수 있다. 계속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너무 빨리 가도 넘어지기 쉽다. 하루 이틀 하고 말 사업이 아니잖나.

후배 기업가들에게 큰 교훈을 주는 말씀이다.

오너 경영자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정년퇴직 없는 월급쟁이 아닌가. 평소 경영진뿐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너무 큰돈 바라지 말라고 이르곤 한다. 뭐든지 내실과 투명함이 우선이다. 우리는 월례회의 때 근로자 대표가 함께 들어와 모든 경영 상태를 공유한다. CEO가 탈세하고 횡령해봐라. 직원들이 존경하기는커녕 금방 투서 맞고 끝나기 십상이다. 그러니 CEO의 철학이 기업 경영에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2013년에는 칠순을 맞아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아너소사이어티에도 가입했다. 평생 돈을 벌다가 칠순이 되니 비로소 누군가의 아픔이 보이더라. 내가 1억원을 벌면 어느 누군가는 1억원을 손해 보는 거다. 그 사람이 재벌이면 모를까 없는 사람이면 어쩌겠나. 나누며 살려고 한다. 장학재단을 세운 후 적자든 흑자든 매년 약속한 돈을 보내는 것도 다 그런 연유다.

※ 최영찬 대표는… 선박과 플랜트 분야 제조업을 영위하는 선보공업의 차세대 경영인이다. 제조업체들이 스타트업 및 투자 생태계와 어떻게 공존하고 미래 사업을 만들지 고민하면서 선보엔젤파트너스와 기업 연합형 CVC인 라이트하우스를 창업했다. 200여 개 스타트업에 투자했으며, 컴퍼니빌딩 프로젝트와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을 공동경영 형태로 성장시키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창업한 2개 법인과 별도로 3개 프로젝트의 공동대표로도 활동하면서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 정리=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최재승 객원기자

202303호 (202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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