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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파워 셀러브리티 40 | 가수 이승윤 

위로와 희망의 노래 

신윤애 기자
하나의 용어로 규정하기 힘든 경계인. 그래서 ‘장르가 30호’라고 불리는 이승윤(33)은 주류와 비주류, 타협과 비타협, 현실과 이상을 넘나든다. 낯선 문법으로 엮어 만든 그의 노래는 상처받은 현대인을 대변하고 위로한다.

난 여기 서 있어 신호등을 기다리며. 초록불이 켜지면 난 걸어갈 거야 -이승윤의 곡 ‘웃어주었어’ 중에서

무명 시절이 꽤 길었다. [싱어게인]이 마지막 기회였다. 그만큼 절실했고, 최선을 다했다. ‘신선하다’, ‘파괴적이다’라는 선물 같은 칭찬 꾸러미가 쏟아졌다. 그제서야 이승윤은 세상에 나왔다. 그가 쓴 ‘웃어주었어’의 노랫말처럼 마침내 초록불이 켜졌고, 이승윤은 방구석 밖으로 걸어 나왔다.

“비로소 초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최근 전국 투어를 마쳤는데 사실 되게 하고 싶었던 일이거든요. 전국의 공연장을 내 음악으로 가득 채우는 것. 10대부터 가졌던 꿈인데 오랫동안 둘러왔어요.”

지난해에 이어 2023년 포브스코리아 파워셀러브리티 40 명단에 오른 가수 이승윤을 만났다. 2021년 [싱어게인] 우승 이후 그는 쉼 없이 달려왔다. 2021년 11월 정규 1집 앨범 ‘폐허가 된다 해도’, 올 1월 정규 2집 앨범 ‘꿈의 거처’를 발매했고 그사이 싱글도 두 곡이나 발표했다. 무명의 ‘30호’ 가수는 그렇게 유명인 ‘이승윤’이 되어갔다. 낯설게만 여겨졌던 그의 음악은 신선한 울림으로 대중의 환호를 받아냈다. ‘꿈의 거처’, ‘비싼 숙취’ 등이 수록된 이번 2집 앨범은 초동 판매량만 8만 장을 기록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사실 너무 재밌다”며 싱글벙글했다.

올해 파워 셀러브리티에 선정됐다. 축하한다. 어떤 파워를 가진 셀럽이 되고 싶은가. 또 이승윤의 파워는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나.

어떤 종류의 소소한 힘이 되면 좋을 것 같다. 누군가의 인생에 드라마틱하고 극적인 도움을 주는 파워라기보다 어쩌다 한 번씩 소소하게 즐거움을 드릴 수 있기를 원한다. 개인적으로 ‘이승윤의 파워’라는 게 있다면 ‘함께함’에서 비롯되지 않나 생각한다. 많은 분의 이름에 빚을 지고 있다.

전국 투어를 마쳤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모든 순간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냥 내 욕심으로 공연을 하고 있을 뿐인데 이 공연을 위한 누군가의 수고가 느껴질 때, 또 객석에서 무척 즐거워해주실 때, 음악 안에서 도킹하고 있다는 것이 명확해질 때 감동을 받았다. 각 지역 공연에서 공명하는 지점이 미묘하게 다른 것도 참 소중한 경험이었다. 노래 부르길 잘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할 수 있었다.

곧 대만에서 공연한다고 들었다. 이제 글로벌로 나가는 건가.

감사한 기회가 생겨서 공연을 하러 간다. 본격적인 해외 진출이나 해외 투어까지 계획하고 있지는 않다.

[싱어게인] 우승 후 3년이 지났다.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막연하게 생각만 해왔던 것, 해보고 싶었던 것, 내가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까지 수많은 경험을 했다. 또 많은 부분에서 ‘범위’가 달라졌다. 고려해야 할 고민의 범위와 책임을 다해야 하는 사람들의 범위 같은 것들 말이다. 마지막으로는 ‘사람들’이 달라졌다. 나와 무언가를 만들고 일하는 사람들이 달라졌고, 지속적으로 함께해온 사람들과는 더 끈끈해졌다.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팬)이 생겼다는 것이다.

‘삐뚜루’라는 팬덤이 형성됐고 대중의 환호를 받는 사람이 됐다. 환호가 기쁘고 즐거운 일이긴 하지만 늘 기대치를 충족해주어야 한다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지금의 환호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고 무조건 기쁜 일이다. 다만 환호의 모양이 내가 걸어갈 길과 약간은 부딪힐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있었다. 어찌 보면 일부러, 의도적으로 환호가 원하는 모양대로 살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고집쟁이로 보일 테고 어떤 팬들은 떠나기도 하겠지만 앞으로 계속될 단계들을 잘 지키기 위해선 그 환호를 한 번씩은 배타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환호해주는 팬들에게 무한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대중성이란 부분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는가.

대중성. 당연히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기본적으로 내가 듣고 자란 음악은 어느 한 시대를 풍미한 대중음악이다. ‘톱 100’ 같은 가요차트에 오른 음악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 창작물이란 내가 어느 시절엔가 좋아했던 것과 지금 영향받는 것들이 뭉뚱그려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대중성을 벗어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대중성을 노린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저 한 명의 대중으로 존재하며 내가 좋아하는 걸 잘 만들고 이것이 더 잘 들릴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목표로 작업한다.

기업인들은 성공을 이뤄내면 그다음 성공에 대한 압박감을 느낀다. 이승윤씨 또한 인지도가 높아지고 좋은 평가를 받으면 성취감, 행복감도 들지만 한편으론 압박감, 부담감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안정적인 지향성을 지녀야 하는 기업과 달리 나는 그저 일개 창작인일 뿐이라서 고정된 자아가 있지는 않다고 되뇌인다. 유동적으로 삶을 따라 흘러가다 보면 알게 모르게 고정되어버린 기대라는 걸 언젠가 실망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연적인 실망을 미리 인정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걸어가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요즘을 살고 있다.

스스로를 무명이 아니라 ‘유명세가 없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이젠 정말 유명해졌다. 초심을 유지하면서 변화된 환경을 잘 꾸려가는 일이 어렵고도 중요할 텐데.

초심은 불변한 형태로 고정돼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초심이 어떻게 달라질지 또 이를 실생활에 잘 녹여내고 살아갈 방법이 무엇인지 늘 고민한다. 변화라는 건 변질일 수도 있고 성숙일 수도 있다. 또 고여서 썩을 수도 있고 그저 앤티크하게 남을 수도 있다. 나는 ‘성숙한 앤틱’이 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과 달리 현실 스타의 모습과 삶, 고뇌가 있으리라 짐작된다. 더구나 냉혹한 상업성이 지배하는 거대한 구조 안에 들어왔다.

누구나, 어떤 인생이나 그렇듯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이 있고 명과 암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툴툴거릴 문제는 아니다. 시의적절한 때 시의적절한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할 것 같다.

우주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다. 콘서트 이름을 ‘도킹(인공위성·우주선 등이 우주 공간에서 서로 결합하는 일)’으로 짓고 무대는 출발을 앞둔 우주선 모습으로 꾸몄다. 또 ‘우주 Like 섬띵 투드링크(Drink up to universe)’라는 곡도 썼다. 우주는 미지의 세계이자 손에 딱 잡히지 않는 허무함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이승윤에게 우주는 어떤 의미인가.


우주에서 얻은 모티브는 ‘고립’이다. 정서적으로 이입할 때도 있고, 반대로 나와는 동떨어진 찬란한 무언가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우주는 외로움과 찬란함을 동시에 품고 있어서 좋은 비유의 수단이 돼준다. 그래서 우주를 많이 차용한다.

가사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모든 메시지가 담긴 한 편의 글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승윤은 음악하는 사람이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글쓰기 방식이 궁금하다.

가만히 있다가 자연스럽게 글이 써지는 타입은 아니다. 단어나 문장이 떠오르면 곧장 그 순간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메모해둔다. 말도 안 되는 단어나 문장이어도 일단 적어둔다. 그러고는 곧바로 들춰보지 않고 꽤 오래 묵힌다. 시간이 흐르면 그 단어를 다시 꺼내 기록했던 순간을 떠올려본다. 문장들을 배제하고 단어만 남긴 다음 그 단어에 대한 단상 같은 것들을 떠오르는 대로 적어본다. 그 후로 계속 축소하고 다듬길 반복하며 완성해간다.

가사를 쓰는 순서가 있나.

보통은 도입부부터 시작한다. 결론을 짓고 시작해버리면 가사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 같더라. 서두부터 시작해 생각의 흐름대로, 옆으로 새면 새는 대로 써 내려간다. 물론 다 쓰고 서두를 수정하는 경우는 있다.

어릴 적 꿈이 작가나 시인이었을 것 같다.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책을 많이 읽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단편소설 습작도 했다. 언젠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난 안 되겠더라.(웃음)

김창완씨가 한 방송에서 ‘달이 참 예쁘다고’라는 곡을 소개하며 “이승윤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그런 평가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다.

우리말을 가장 아름답게 사용하는 분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신 거 아닌가. 견해는 무슨, 그저 영광스럽다.

우리말 고유의 감각과 질감을 잘 살린다는 김창완씨의 평에 동의한다. 의도하는 건가.

웬만하면 그러려고 한다. 다만 단어를 너무 학습적으로 습득하고 연습하면 결국엔 학습적으로 사용하게 되더라. 일생생활에서, 예를 들어 잡지에서 마음에 드는 단어를 마주쳤다면 메모 창고에 기록해뒀다가 나중에 꺼내어 습득하고 사용한다. 메모 창고에서 단어를 꺼내 쓸 땐 유사한 뜻을 가진 다른 단어들을 많이 찾아본다.

‘구겨진 하루’, ‘꿈의 거처’, ‘선반과 외로움’, ‘말로 장생’ 등 은유를 품은 가사들이 인상적이다. 보통 비유나 은유가 과하면 받아들이기 힘든데 이승윤의 곡은 은유 덕분에 더 생생하고 단단해진다.

직언보다는 돌려서 말할 때 오히려 메시지가 와닿는 경우가 있다. 별을 올려다볼 때도 직접 별을 쳐다보기보다는 살짝 사선으로 주변을 봐야 반짝임이 더 잘 보인다고 하더라. 시선을 약간 돌리면 더 적합한 표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영웅 수집가’, ‘누구누구누구’, ‘비싼 숙취’ 등에서는 사회질서에 대한 항의와 비판정신을 느꼈다.

시대와 흐름,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일들을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뒤집자는 것도 아니고. ‘무작정 우리가 고개를 끄덕여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이 있는 거다. 타협과 비타협이 있다고 한다면 사회생활에서는 당연히 타협이 있어야 한다. 타협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고. 무조건 타협하지 않겠다는 주장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문제를 이야기하고 토로할 때 ‘나는 비판하는 게 아니라 빈정거리는 것’이라고 표현하더라.

비판은 솔루션이 있어야 되는데 난 솔루션이 없어서 그렇다.(웃음) 사람은 언젠가 자기가 비판했던 그 언어로 정확하게 비판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내가 쓴 가사로 비판당할 거다. 누군가를 비판할 때 칼자루가 아니라 칼날을 잡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내 전문 분야는 아직 젊음이야’, ‘칼럼이 된 도시, 탄두가 된 토씨, 포로가 된 서시’ 등 유사어, 반복, 대비를 즐겨 사용하는 것 같다.


내 곡만 쓸 때는 반복의 묘미를 잘 몰랐다. 그래서 전작들에는 반복되는 가사가 많이 없다. 타인의 노래를 부르고 리메이크하면서 그 효과를 알게 됐다. 다른 문장을 사용해야만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동일한 문장을 반복하면서도 다르게 부르고, 다른 감정선을 전달해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또 무언가의 단면이 아닌 여러 방면을 입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을 때 대비를 즐겨 사용한다. 최근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보통 ‘셀카’라고 하면 얼굴을 찍은 사진이 떠오르지 않나. 왜 손발 사진은 셀카라고 부르지 않는 걸까. 이상하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셀카’를 묘사할 재미있는 대비적 표현들이 나온다.

퇴고를 하고 음원을 내면 아쉬움이 남지는 않나.

너무 마음에 들어서 끝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제부터는 사적인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 때 퇴고하는 편이다.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많은데 가사는 아쉬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가사엔 그 당시의 이승윤이 박제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아쉬움이 들면 그 순간을 후회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본인의 곡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가사는 뭔가.

현재로서는 ‘관광지 사람들’에 쓴 ‘여긴 그저 관광지’라는 가사가 좋다. 어떤 상황, 어떤 분야, 어떤 세대, 어떤 장소에서건 영원히 주인공이 회귀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현실. 그 옛날 옛적 주인공에게 계속 박수치는 역할만 해야 하는 현실. 그런 관광지 같은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하면 각자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썼던 가사다.

요즘엔 어떤 테마에 관심이 있나.

허수의 세계에 관해 쓰고 싶다. 가끔은 모든 게 다 허수처럼 느껴진다. 나도 마찬가지고. 허수가 우리의 명함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반대로 지금 이 순간 누리는 충만함도 소재로 쓰고 싶다.

대형 기획사가 아니라 1인 소속사 마름모를 선택한 것도 화제였다.

‘나는 무엇일까’ 고민했다. 명확한 답을 내리기 전에 이승윤의 ‘쓰임새’를 논하는 미팅을 많이 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나를 어떻게 쓰려고 하는지 알게 됐다. 한편으론 쓰임새대로 살면 본말이 전도될 것만 같았다. 일단 내 (음악적) 세계를 단단히 구축한 다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들었다. 그 후에도 쓸모가 있다면 즐겁게 그 쓰임새대로 살아볼 수 있겠다 싶었다. 이 과정을 함께해주겠다고 하신 분이 마름모 대표님이다.

요즘 이승윤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 혹은 가장 침체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요즘 가장 행복한 것은 다음의 창작을 하고 싶다는 에너지가 마음속 어딘가에서 계속 꿈틀꿈틀하고 있다는 점이다. 침체까지는 아니고 그 ‘꿈틀꿈틀’을 긴 호흡으로 다져나갈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이를 먹고 두둑한 경험치가 쌓인 훗날의 이승윤은 어떤 가사를 쓰고 어떤 노래를 할지 기대된다. 언젠가 ‘현실적 이상주의자가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이승윤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

현실만 얘기하는 사람도 이상만 얘기하는 사람도 내 취향이 아니다. 함부로 감명을 주고 함부로 그 삶에 뛰어들게 한 다음에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한 이상주의자는 되고 싶지 않다. ‘이상이 있지만 현실도 분명히 있단다’라는 걸 항상 이야기하는 사람. 이상과 현실을 경계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사진 박종근 기자 스타일링 김발코 헤어 김수철 메이크업 김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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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호 (2023.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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