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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주 모빌린트 대표 

에지 AI 실현하는 원천 하드웨어 

장진원 기자
딥러닝과 머신러닝 기반의 AI가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적절한 균형을 이뤄야 한다. 하드웨어의 원천은 AI 반도체다. 폭증하는 에지 AI 칩 시장을 제대로 노리는 팹리스가 한국에도 나왔다.

해마다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는 글로벌 전자·ICT 산업의 생생한 현장을 직관할 수 있는 무대다. 올 초 열린 CES도 그랬다. 특히 올해는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AI가 몰고 올 4차 산업혁명이 챗GPT 등의 등장으로 현실화되는 가운데, 이를 가능하게 할 산업의 쌀인 반도체, 즉 AI 칩이 없어서는 안 될 차세대 핵심 하드웨어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국은 압도적인 반도체산업 강자다. 명실상부한 글로벌 싱글톱을 차지하는 메모리 반도체 덕분이다. 하지만 현재 글로벌 반도체산업의 패권은 파운드리, 즉 주문형 시스템 반도체로 옮겨가고 있다. 대만 TSMC가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50% 이상을 장악한 만큼,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셈이다. 이런 가운데 반도체산업이 또 한 번 AI 칩이라는 새로운 변곡점에 들어섰음을 올해 CES가 확인해주었다.

스타트업 업계에선 흔히 ‘로켓에 올라타느냐, 마느냐’가 해당 기업의 기세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추진력과 자신감, 탄탄한 실력이 성공의 첫 번째 열쇠라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AI 반도체 팹리스 ‘모빌린트’는 2023 CES에서 스타트업이 보여줄 수 있는 기세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삼성전자 14나노 파운드리에서 시제품을 받은 게 2022년 12월인데, 바로 다음 달 CES에 참가해 라이브 데모스트레이션에 나섰기 때문이다. 예년에 비해 AI 칩 팹리스 업체 참여 수가 크게 늘어났다지만 고성능 알고리즘을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라이브로 실현해낸 팹리스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모빌린트가 처음 선보인 NPU(Neural Processing Unit) 칩인 ‘에리스(Aries)’가 그 주인공이다.

모빌린트는 이제 설립 만 4년을 맞은 스타트업이다. 팹리스는 반도체 생산이 아닌 설계만 맡는 회사를 말한다. 창업자인 신동주 대표는 1990년생으로 올해 30대 중반의 젊은 기업가이지만, NPU 설계만큼은 10년 넘게 한 우물을 파온 전문가이자 베테랑이다. 신 대표는 “AI 칩이라는 영역 자체가 학문적으로든 산업적으로든 이제 막 발걸음을 뗀 태동기”라고 설명했다.

10년 넘게 AI 칩 설계해온 ‘젊은’ 베테랑


“카이스트 08학번입니다. 학부에서 전기및전자공학을 전공했어요. 2013년 대학원 진학 후 유회준 교수님이 주도하신 반도체시스템연구실에서 공부했죠. 컴퓨터 비전 관련 AI 반도체 솔루션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원 과정을 마친 2019년 4월 바로 창업에 나섰습니다.”

‘겁 없는 청년창업가’의 질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신 대표가 AI 반도체를 접하고 연구하기 시작한 2013년만 해도 NPU는 구글이나 테슬라 정도가 자체 칩을 개발해 시험 적용해본 수준이었다. AI 칩이라는 존재 자체가 대중에겐 널리 알려지기 전이었고, 카이스트는 세계적으로도 관련 연구를 초기에 시작한 대학 중 하나였다. 30대 중반 CEO의 이력이 업계에서 결코 녹록지 않은 베테랑 수준임이 그제야 이해된다.

“2013년부터 연구개발(R&D)을 시작했으니, 카이스트나 저나 세계적으로 봐도 빨리 시작한 편이에요. 석박사 과정 동안 딥러닝 가속기(액셀러레이터), AI 반도체, NPU 같은 개념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졌죠. R&D가 심화되면서 학계와 산업계 모두에서 세계적인 리더들을 많이 만나 최신 기술을 공유했습니다. 졸업을 1년 앞둔 시점에는, 연구용이지만 AI 반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개발해 응용로봇이나 구글글라스 등에 테스트도 해봤죠. 글로벌 ICT 기업에 취업해 엔지니어로 일할 수도 있었지만, 더 큰 틀에서 산업을 리드하고 싶었습니다.”

거침없이 창업 동기를 이야기하는 신 대표에게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한국의 반도체 생태계가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톱티어라는 것도 국내 창업의 계기가 됐다.

신생 스타트업이 대개 그렇듯, 신 대표 역시 좁고 깊은 길을 택했다. 바로 에지(Edge) AI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NPU 반도체다. 모빌린트라는 사명도 모바일(Mobile)과 지능(Intelligence)에서 따왔다. 우리 주변에서 움직이는 모든 단말, 즉 에지에서 제대로 된 AI가 구현될 수 있는 칩을 선보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신 대표가 에지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의 니즈를 충족할 만한 제대로 된 플레이어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처음 개발에 나설 때부터 에지야말로 인공지능 칩이 꼭 필요한 분야라 생각했어요. 에지 AI 칩의 관건은 갈수록 작아지는 폼팩터에 맞는 소형화, 높은 전력효율, 저렴한 가격입니다. 하지만 정확도와 성능도 무시할 수 없죠. 스마트팩토리의 검사장비를 보세요. 불량 검출률이 99.999%여야 합니다. 배터리로 기동하는 드론에는 전력효율이 뛰어난 칩이 필요하죠. 자율주행차는 빠른 속도 못지않게 정확도가 필수입니다. 수많은 단말에 적용해야 하니 가격경쟁력도 갖춰야 합니다. 우리가 하이퍼포먼스 에지 AI 칩에 주목한 이유죠.”

신 대표는 “갈수록 에지 AI 칩에 대한 니즈가 폭증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에지 컴퓨팅이 기존의 대용량 클라우드 컴퓨팅을 대체·보완하면서, 이를 완벽히 구현할 칩 역시 필수라는 판단이다. 가령 자율주행차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대형 클라우드 기반의 AI 처리는 아무리 통신기술이 발전한다 해도 기본적인 레이턴시(지연시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수천 분의 1초가 생명과 직결되는 구조에서 자칫 통신에 문제가 생기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데이터 보안도 점점 중요해지는 추세다. 에지 디바이스가 생활 곳곳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날수록 보안이라는 반대급부가 부상하게 마련이다. 모든 정보를 하나의 서버에 올리기보다 자체 AI 칩으로 해결하는 에지 AI가 떠오르는 이유다. 인공지능 서비스가 늘어날수록 폭증하는 트래픽 문제도 에지 AI로 풀어낼 수 있다. 에지 AI라는 완전히 새로운 산업의 영역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에지 AI를 구동하게 만드는 전용 칩이다.

“엔비디아 시총이 인텔을 넘어선 게 2020년인데, 불과 3년 만에 그 차이를 5배로 벌리며 ‘넘사벽’이 됐습니다. GPU를 독점하다시피한 경쟁력이 원천이지만, 최근 본격화된 AI 반도체 시장에 대한 기대가 담겼다고 봐요. 과거 CPU를 GPU가 장악해 들어갔듯이, NPU가 GPU의 자리를 서서히 잠식해갈 거라 봅니다.”

AI 칩은 한국이 퍼스트무버 될 수 있다

수년 전과 비교해 몰라보게 달라진 시장의 반응은 모빌린트 같은 AI 반도체 팹리스에는 또 다른 기회다. 국내외 많은 고객사와 투자사, 정부, 심지어 대중까지 NPU, 즉 AI 반도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스마트팩토리, 스마트시티, 로봇, 자율주행, 시큐리티 같은 산업 분야에서 ‘AI 칩을 쓰면 좋다더라’라는 데까지는 인식의 전환이 이뤄졌다는 판단이다. 막상 문제는 인식의 전환과 개념의 대중화만큼이나 쓸 만한 NPU를 아직 현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데 있다.

“에지 AI 칩이 특히 그래요. 우리가 자체 개발한 에리스는 현실에서 가장 크게 부딪치는 문제인 발열 정도를 획기적으로 낮췄고, 폼팩터 크기도 4분의 1로 줄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고객에게 동일 성능 칩 대비 2~4배의 가격경쟁력도 주려 합니다. 다만 고객사 입장에서도 당장 아무 NPU나 도입할 수는 없어요. 최신 알고리즘이 적용되지 않거나, 막상 써보니 기존 GPU보다 성능이 획기적으로 나아지지 않는 경우도 있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객사가 직접 NPU 시스템을 도입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SDK(Software Development Kit)를 함께 제공하는 게 우리의 전략입니다.”

시제품 생산에 성공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풀린 건 아니다. 양산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양산은 시장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신 대표는 “시제품은 양산 단가보다 10배 이상 비용이 들더라도 성공이 목표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말했다. 반면 양산, 즉 본격적으로 시장에 공급하려면 가격이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져야만 한다는 설명이다.

“가령 로봇 제품에 지금도 엔비디아의 GPU가 많이 쓰입니다. 양산에선 가격과 안정화가 필수기 때문이죠. 이 부분을 어느 정도 대체할 NPU가 양산되면 고객사 입장에선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로봇청소기만 해도 지금보다 성능이 2배 개선된 제품이 가격은 반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해보세요. 에지 NPU가 갖는 폭발력을 쉽게 상상할 수 있죠.”

신 대표는 모빌린트를 비롯해 국내외 AI 칩 팹리스 중 양산 단계에 돌입한 곳은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뛰어난 성능의 시제품은 에리스 외에도 여러 팹리스가 생산에 성공했지만, 시장에서 자웅을 겨룰 승부는 이제 막 개전을 앞두고 있다는 뜻이다. 다행히도 고객사의 인식이 달라진 덕에 PoC(Proof of Concept: 기술검증)를 요청하는 기업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애플에 조립라인 검사장비를 납품하는 하이비전시스템, 산업자동화 전문기업 오토닉스 등과의 협업 등 공개된 MOU 외에도 국내외 대기업, 중견기업, ICT 기업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PoC를 진행 중이다.

“현재 구글, 아마존 등 자체 칩을 생산해 쓰는 공룡들을 제외하곤, 팹리스 영역에서 제대로 성공한 NPU 회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텔마저 NPU 스타트업을 인수해 B2B 비즈니스에 나선 수준이죠. 아직까지 시장에선 GPU가 대세입니다. 이를 유의미한 수준으로 대체한 NPU 양산 사례가 없다는 뜻이죠. 2024년이면 재미있는 시장이 펼쳐질 거라 기대됩니다.”

신 대표가 1년 후인 2024년을 주목한 데는 이유가 있다. 내년 상반기 중 에리스 칩 양산을 목표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첫 목표로 고성능 칩인 에리스 양산을, 2025년에는 좀 더 콤팩트한 솔루션에 적용할 수 있는 미드퍼포먼스 타깃 칩을 양산한다는 시간표다.

“국내외 NPU 팹리스 스타트업들이 서로 경쟁하는 상황은 아니에요. 기업별로 시장의 니즈를 충족하는 제품을 내놓으면서 함께 파이를 키워가야 하는 게 맞죠. AI 칩 팹리스가 수십, 수백 개 있다고 해도, 지금은 공급 자체가 부족한 블루오션입니다. 반면 특정 고객의 수준을 충족하는 칩을 내놓는 데 실패한다면 엔비디아의 독주가 이어지겠죠. 창업 후 지난 3년이 R&D에 집중한 시기였다면, 향후 3년은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시기입니다. 앞으로 3년이 모빌린트를 비롯한 AI 반도체 팹리스들에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거라 봅니다.”

인터뷰 막바지, 양산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드러내는 대목에서 신 대표는 “우리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가 아니라 퍼스트무버(First Mover)”라고 힘주어 말했다. 창업 4주년을 맞은 스타트업임에도 글로벌에서 가장 먼저 R&D를 시작한 팀이라는 자신감이 배경이다. “에지 AI라는 특정 분야에서 글로벌 톱을 찍겠다”던 신 대표는 “결혼도 안 하고 회사에만 집중하고 있다”며 멋쩍게 웃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사진 최기웅 기자

202305호 (2023.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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