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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생각 여행(44) 게임의 룰을 바꿔라! 

 

프랑스를 찾아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에서 김위찬 석좌교수를 만났다. 게임의 룰을 바꾸는 블루오션 전략은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이 밟아나가야 할 생존 조건이다.

▎유럽 알프스 최고봉인 몽블랑이 멀리 보이고, 그 아래 만년 빙하 위를 멋들어진 행글라이더가 날고 있다.
무더운 여름이다! 더위를 피하기 위한 여름휴가를 어디로 갈까? 아름다운 산과 바다가 있는 국내 휴양지나 해외여행 사이트를 자주 검색해보는 계절이다. 여행에는 여러 형태가 있는 것 같다. 먼저 여행사가 마련한 프로그램을 따라서 이곳저곳을 많이 찾고 기념 촬영을 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는 여행이 있다. 또 여행지를 돌며 쇼핑을 많이 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출장 가서 일만 하다 오는 여행도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는 한두 곳 정도 장소를 정해 편안하게 독서와 휴식을 즐기며 생각을 정리하고, 그 고장 고유의 환경을 즐기며 작은 행복에 흠뻑 취하기도 한다. 이번에는 번거롭게 여러 곳을 여행하지 말고, 덴마크나 노르웨이 사람들의 편안함, 따뜻함, 아늑함, 안락함을 뜻하는 ‘휘게(hygge)’ 개념으로 여행하면 어떨까? 가족, 친구와 함께 또는 혼자서 보내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이나 편안한 환경에서 오는 행복을 찾는 휴가다.

휘게라는 단어에 담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삶의 여유를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을 여름휴가 기간에 실행해보자. 요즈음 신조어인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이야기하는 소확행(小確幸)을 추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휘게나 소확행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장소로는 프랑스 사람들이 은퇴 후 가장 살고 싶어 한다는 도시인 안시(Annecy)가 제격이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샤모니(Chamonix)를 찾아 거대한 알프스산맥의 여름 풍광도 만나보자. 이번 여행은 파리에서 리옹까지 테제베(TGV)로 두 시간 이동해 업무를 보고, 다시 버스를 타고 1시간 40분 걸려서 안시에 도착하는 여정이었다. 안시 시내에 들어서니 아름답고 거대한 호수에서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고, 호숫가 풀밭에는 여기저기 한가로이 누워 일광욕에 몸을 맡긴 이가 많았다. 호수를 따라 설치된 자전거도로 위에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라이딩을 즐기는 모습이 평온한 풍경을 선물한다.

안시는 프랑스 남동부에 있는 도시다. 거대한 호수와 산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움으로 ‘프랑스 알프스의 진주’라고 불린다. 안시에서 북쪽으로 35㎞ 올라가면 스위스 제네바가 있고, 동쪽으로 1시간 30분 정도 달리면 프랑스의 알프스 마을 샤모니가 있다.

유럽에서 가장 깨끗한 안시 호수


▎아름다운 안시(Annecy) 호수에서 바라 본 안시 성(城).
안시 호수를 길 하나 사이에 둔 리바지호텔(Rivage Hôtel & Spa Annecy)에 여장을 풀고 아름다운 호숫가를 산책했다. 해가 긴 여름철인 덕에 신선한 저녁 공기를 마시며 여유롭게 산책을 즐겼다. 안시 호수는 유럽에서 가장 깨끗한 호수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저녁 시간까지도 수영을 즐기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리바지호텔은 자그마한 규모지만 위치나 편안함이 참 좋았다. 식사는 실내뿐만 아니라 야외에서도 할 수 있어서 더 색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안시는 중세부터 역사가 깊은 곳이라 구시가지를 돌아보기에도 무척이나 즐겁고 유익한 곳이다. 조그만 운하를 따라 돌아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대성당을 비롯한 역사적 건축들과 더불어서 아름다운 레스토랑과 바도 많아서 저녁 시간엔 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작고 귀여운 상점도 많은데 햇살이 강하고 날씨가 더워서 차양이 넓은 모자를 하나 사서 쓰고 다녔다. 꽤 높은 언덕 위에 있는 안시성은 12~16세기 사이에 지어졌고 현재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역사 기념물이다. 성 내부에선 현대미술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면 안시의 구도심과 호수가 바라보이는 멋진 공간이 있어서 사진 촬영을 하는 포토존 같은 느낌이었다.

안시 여행에서는 두 가지 경험이 기억에 남는다. 먼저 안시 호수 크루즈다. 유람선을 타고 거대한 호수를 달리다 보면 호수 위로 윈드서핑을 즐기는 사람들과 요트들이 여기저기 지나간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특이한 형상의 산들이 안시를 둘러싸고 있어 병풍 역할을 하는 듯 보였다. 또 한 곳은 안시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다. 꼬불꼬불 산길을 마주 오는 차를 아슬아슬하게 피해가며 올라야 한다. 아주 높은 지점에 있는 전망대에 다다르니 거대하고 아름다운 안시 호수가 눈 밑에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바로 위쪽으로는 가파른 산 위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이 형형색색 날개를 펼친 채, 하늘 높이는 구름에서부터 아래로는 호수 위를 마치 새가 된 듯 날아다니고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바에 앉아 맥주 한 모금으로 목을 적시고, 아름답고 황홀한 분위기에 푹 젖어본다. 안시 주변은 산과 호수가 어우러져 여름에는 해양스포츠와 트레킹, 자전거 타기,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이 많고, 겨울에는 스키 휴양지로 유명하다. 참고로 안시는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도전했지만 한국의 평창에 패했다.

안시에 온 김에 가까이 있는 샤모니도 찾았다. 유럽 최고봉인 몽블랑을 보러 출발했다. 버스로 1시간 반을 이동해 샤모니 마을에 도착했다. 샤모니는 몽블랑 산기슭에 자리한 인구 약 1만 명의 작고 예쁜 도시다. 프랑스의 겨울스포츠 리조트, 특히 스키장이 유명하다. 1924년 동계 올림픽과 1960년 동계 유니버시아드가 이곳에서 열렸다. 2010년 겨울에 샤모니에서 스키를 즐긴 기억이 있어 익숙한 마을이지만, 여름 샤모니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샤모니에서 제일 높은 전망대(3842m)인 에귀디미디(Aiguille du Midi)에 오르기 위해 케이블카 정류장에 도착했다. 여름 성수기에는 케이블카를 타려고 몰려든 관광객들로 붐비기 때문에 예약 시간에 꼭 맞추어서 승차해야 한다. 정류장 전면에 있는 ‘AIGUILLE DU MIDI 3842m’라는 크고 붉은 사인이 눈에 띈다. 승객이 꽉꽉 들어찬 만원 케이블카에 올라타 발아래 펼쳐진 짙푸른 숲 위로 이동했다.

한국 펌프 시장을 바꿔놓았던 부스터펌프


▎샤모니 마을 중심가에서 바라본 만년 빙하.
케이블카의 첫 정류장인 플랑드레귀(Plan de l’Aiguille, 2317m)에 하차했다. 원래 계획은 고도에 적응하기 위해 이곳에서 1시간 정도 머물며 아름다운 산상 호수 주변을 트레킹한 후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으로 가는 여정이었다. 그런데 전날 내린 눈이 여기저기 많이 쌓여 트레킹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정상으로 가는 케이블카를 타고 3842m 높이의 에귀디미디로 올랐다. 이제 발아래 숲은 보이지 않고 바위와 만년설만 눈 안에 들어온다. 도착 직전에는 케이블카가 거의 직상승을 하는 바람에 조금은 긴장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몇 갈래의 조그만 터널로 연결된 통로를 따라가니, 각기 다른 방향에서 알프스 풍광을 볼 수 있었다. 고도가 높아 약간 어찔한 느낌도 있었지만 철계단을 올라가서 넓은 공간에 자리한 전망대에 도착하니 파노라믹하게 펼쳐진 웅장한 알프스의 만년설 풍광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슴이 탁 트였다! 마음속 깊이 거대한 알프스를 품어보았다. 정말 운 좋게도 이날 알프스산맥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화창한 하늘 덕분에 더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바로 지척에는 알프스산맥 최고봉인 몽블랑(MontBlanc)이 흰 눈에 덮인 채 파란 하늘과 멋진 조화를 이루며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프랑스어로 몽(Mont)은 산(山), 블랑(Blanc)은 흰 백(白)의 의미로, 백산(白山, White Mountain)이라는 뜻이다. 높이 4807.81m로, 알프스산맥 최고봉이며 서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산 이름처럼 몽블랑 정상은 하얀 만년설로 덮여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렇게 맑은 날에 몽블랑 정상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지금 산을 찾은 모든 이의 미래에 아주 좋은 대운(大運)이 들 징조라고 생각했다. “야호!!!”

산업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산업 자체가 경쟁력을 잃어가거나, 제품이 막 출시됐을 때나 성장기 때의 경쟁력을 잃게 되면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는 레드오션(Red Ocean)에 빠져든다. 이럴 때 경영자들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마련이다. 이번 프랑스 여행에선 매우 의미 있는 시간도 가졌다. 『블루오션 전략(Blue Ocean Strategy)』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경영 그루인 김위찬 교수와의 만남이었다. 세계적 명성의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에서 블루오션센터를 대표하는 김위찬 석좌교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블루오션 전략은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 경쟁이 없는 독창적인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경영 전략이다. 많은 경쟁자가 비슷한 전략과 상품으로 경쟁하는 시장을 레드오션으로 규정하고, 경쟁자가 없는 새로운 시장인 블루오션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 이 전략의 요지다.

블루오션센터에서 김위찬 교수로부터 여섯 가지 미래 전략에 관해 통찰력 있는 강의를 들으며 큰 감동을 받았다. 치열한 제품·기업·산업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블루오션 전략처럼 획기적으로 게임의 룰을 바꾸어야 한다.


▎3842m 높이의 전망대 에귀디미디(Aiguille du Midi)로 오르는 케이블카와 알프스의 만년 빙하.
경험을 들어 이야기해보자면, 약 3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30층 넘는 고층 빌딩이 많지 않았다.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15층 내외 아파트나 상용 건물에는 옥상 위에 물탱크를 설치해서 물을 공급했다. 이론적으로 얘기하면 건물에서 물을 조금만 사용해도 큰 펌프가 지하 기계실에서 가동되어 옥상 물탱크까지 물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가 낭비되는 시스템이었다. 당시 나는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절약할 수 있고, 건물 옥상 물탱크도 불필요한 부스터펌프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도입하려던 참이었다. 한국을 선도하는 대형 건설업체들을 방문해 신제품을 소개했더니 기존에 설치된 현장 실적을 가져오라고 했다. 신제품이라서 우리나라에 설치된 곳이 없는데 실적을 가져오라니 난감할 따름이었다.

한편 부스터펌프 시스템은 이미 유럽에서 10~20년 이상 사용되고 있는 검증된 제품과 시스템이었다. 우리나라 시장에 처음 신제품을 소개하여 게임의 룰을 바꾸는 과정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웠다. 그러나 몇 년 동안의 우여곡절을 거쳐 비로소 한국 최초로 부스터펌프 시스템을 출시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으로 치면 경쟁자가 없는 블루오션을 창출한 셈이다. 이후에는 매년 급속도로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 후 20년 정도 시간이 지나자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초고층 빌딩이 건설됐다. 지금은 부스터펌프를 쓰지 않는 건물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부스터펌프 덕에 도시 미관을 해치던 옥상 물탱크가 사라졌다. 도시 스카이라인이 아름다워지고, 무거운 물탱크를 건물 옥상에 설치하지 않아도 되니 건설 비용도 크게 줄었다. 대형 펌프 대신 소형 펌프 여러 대가 번갈아서 물을 공급하기 때문에 에너지도 획기적으로 절약했다. 이처럼 신제품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블루오션을 개척한 덕분에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었다. 즉, 게임의 룰을 바꿈으로써 큰 결실을 얻은 것이다.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나서 부스터펌프 시스템 자체도 거의 모든 건설 현장에서 사용하는 표준 제품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이제는 레드오션에 가깝게 경쟁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게임의 룰을 바꾸어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할 단계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가 지난 70년 동안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오는 과정에서 많은 기업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경쟁의 룰을 바꾸어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국내 건설 시장에서 불모의 사막인 중동으로 시장 자체를 바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기적적인 성과를 올린 건설회사들, 기술력이 턱없이 부족한데도 무에서 유를 이루어낸 중화학공업, 철강업, 조선업, 자동차산업, 나아가 전자·반도체 산업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경쟁의 벽을 넘어서기 위해 게임의 룰을 바꾸어서 이룬 쾌거다. 그러나 산업이나 제품 또한 흥망성쇠 사이클에 의해 또다시 레드오션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한 ‘게임의 룰을 바꾸어내는’ 전략을 꾸준히 세워야만 한다. 자전거 페달을 계속 밟아야 넘어지지 않고 전진하듯이 지속적으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해내야 한다. 게임의 룰을 바꾸는 블루오션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다.

※ 이강호 -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덴마크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 펌프제조기업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CEO 등 37년간 글로벌기업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308호 (20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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