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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빈 서울로보틱스 대표 

자율주행의 새로운 미래 

장진원 기자
서울로보틱스는 전 세계 자율주행 관련 소프트웨어 기업 중 유일하게 상용화에 성공한 스타트업이다. 인프라 기반 자율주행에서 최고 경쟁력을 확보한 이한빈 대표는 시장 규모만 수십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자동차 물류 비즈니스를 정조준하고 있다.

2019년 11월 핀란드 헬싱키. 초겨울에 접어든 북유럽 공기가 특유의 스산함을 더했지만, 슬러시(SLUSH) 행사장 안의 열기를 당해내지는 못했다. 슬러시는 해마다 핀란드에서 열리는 글로벌 스타트업 축제다.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기술 기반 스타트업 1만 곳 이상이 모이는 초대형 이벤트다. 벤처캐피털, 대기업, 연구기관, 각국 정부 관계자 등 혁신에 목마른 수많은 이가 매년 이곳을 찾는다.

이한빈 서울로보틱스 대표도 그랬다. 행사장 안에 작은 부스를 차린 그의 맘은 자율주행 시대를 앞당길 주인공이 되겠다는 야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인공지능(AI) 기반 지율주행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우리 실력이 최고’라는 자부심도 컸다. 진심과 자신감이 통했던 걸까. 창업 2년 차에 불과한 스타트업을 먼저 찾아온 건 뜻밖에도 세계적인 완성차 기업인 독일 BMW였다.

“‘너희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잘한다며? 미팅 좀 해볼까?’ 세상에 BMW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BMW의 제안은 비교적 명료했다. “공장 안이나 야외 야적장(주차장) 등 한정된 공간에서 완벽한 자율주행이 가능한 시스템을 개발해달라. 단, 눈비 같은 악천후에서도 자율주행이 완벽히 이뤄져야 한다.” 이 대표의 대답은 물론 ‘예스(yes)’였다. 라이다(LiDAR) 등 센서기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서울로보틱스를 찾아오기 전 BMW는 자국의 글로벌 테크 기업에 똑같은 제안을 건넸고, “2025년이나 돼야 가능하다”는 답을 들어야 했다. 성에 차지 않은 결과에 실망하던 차, “다음 주까지 해보겠다”는 이 대표의 거침없는 답변은 BMW가 서울로보틱스와 손잡은 결정적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인프라 기반 자율주행으로 전환하다

“BMW의 제안이야 당연히 반갑고 고마웠죠. 그런데 사실 우리 예상을 벗어난 주문이어서 당황스럽기도 했어요. 창업 이래 매진해온 사업 방향과 결이 달랐기 때문이었죠. 당시 우린 자율주행을 위한 차량용 소프트웨어에 집중했어요. 웨이모나 테슬라처럼요. 하지만 BMW의 제안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어요. ‘인프라’ 기반 자율주행이었죠. ‘사이드 프로젝트가 될지도 모르니 일단 해보자’며 시작했는데, 웬걸 지금은 서울로보틱스의 메인 비즈니스가 됐어요.”

자율주행 시장은 글로벌 테크 기업과 완성차 업체들이 너나없이 뛰어드는 전쟁터다. 운전자가 전혀 필요 없는 꿈의 ‘레벨 5’를 실현하기 위해 구글 같은 ICT 공룡들과 전 세계 완성차 업체들이 때로는 혈투를 벌이고 때로는 힘을 합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의 포커싱은 자율주행 차량에 맞춰져 있다. 차량 한 대 한 대가 자율주행을 구현할 개별 플랫폼인 셈이다. 이 말은 곧 수없이 많은 차량과 사람, 온갖 장애물이 난무하는 공도(公道)에서 자동차가 스스로 인지와 판단, 제어를 통해 움직인다는 뜻이다. 이런 방식은 모든 자율주행 차량마다 라이다 같은 센서와 운용 소프트웨어를 장착해야만 한다.

서울로보틱스도 2017년 창업 이후 차량 기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해왔다. ‘머지않아 레벨 5 시대가 열린다’는 기대와 희망이 이들을 이끌었다. 자율주행 시대의 도래가 비단 이 대표만의 꿈은 아니었다. 고속도로에서 스티어링휠을 놓은 채 볼일을 보는 운전자, 기사 없이 도로를 달리는 자율주행 택시를 보며 모두가 환호했다. 하지만 꿈이 현실이 되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뎠다. 이 대표도 “점점 넘어설 수 없는 벽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자율주행 기술에서 가장 앞섰다는 테슬라의 ‘오토파일럿’도 사실 레벨 2 수준에 불과해요. 일부에서 레벨 3을 구현했다는 뉴스도 나왔지만 대부분 ‘시험용’에 그친 수준이죠. 완벽한 자율주행인 레벨 5까지는 갈 길이 너무나 멀다는 걸 사업을 할수록 깨닫게 됐어요.”

올해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 택시 운행을 허가한 미국 샌프란시스코시의 실험은 레벨 5를 구현하는 길이 여전히 험난하다는 사실을 생생히 보여줬다. 구글 웨이모와 GM 크루즈가 함께 선보인 무인 자율주행 택시 사례다. 기술 혁신의 상징으로 주목받던 이 택시는 불과 출시 몇 주 만에 시와 당국의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길 한가운데 멈춰서 차량 통행을 틀어막는가 하면 출동하던 소방차와 부딪치는 사고까지 냈다. “500만㎞를 주행했지만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는 GM 관계자의 설명이 무색하게, 샌프란시스코시 교통국장은 “자율주행 택시들이 미친 짓을 하는 바람에 911 신고가 세 배나 늘었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 대표 역시 샌프란시스코의 자율주행 택시처럼 장밋빛 미래를 누구 못지않게 확신한 엔지니어였다.

“기술이 곧 완벽한 자율주행을 가능케 할 거라 믿었어요. 하지만 시장이 열리는 속도가 너무 느렸어요. ‘이걸로 돈 벌려면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만 더해갔죠. 고민이 깊어지던 차에 BMW의 제안을 받은 거예요. 2021년 들어선 그간 집중했던 차량 기반 자율주행을 완전히 놓았어요. 아예 인프라 기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로 피버팅한 거죠. 자연스럽게 비즈니스 타깃도 달라졌어요.”

인프라 기반 자율주행이란 말 그대로 특정 공간의 인프라를 활용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라이다나 카메라 같은 센서를 기존처럼 차량이 아닌 기둥, 가로등, 천장 등에 설치한다. 주차장이나 야적장 등 한정된 공간에 있는 차량을 인프라에 설치한 센서가 인지한 후, 중앙 소프트웨어가 개별 차량에 정보를 보내 자율주행을 실현하는 방식이다. 때마침 전기차 시대의 본격적인 개화는 인프라 기반 자율주행 기술을 더욱 앞당긴 촉매가 됐다.

“전기차는 액셀을 밟으면 곧장 컴퓨터로 제어돼요. 스로틀밸브를 열고 닫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죠. 인프라 기반 자율주행에선 차량 하나하나가 곧 중앙의 명령을 받는 드론과 같은 개념으로 움직여요. 인프라에 설치된 센서의 차량 인지, 주행을 결정하는 판단, 여러 변수에 대한 제어를 서울로보틱스의 AI 기반 소프트웨어로 한꺼번에 관제하는 거죠.”


BMW가 인정한 글로벌 유일 경쟁력

자율주행 관련 기업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인프라 기반 자율주행, 더욱이 이를 운용하는 소프트웨어 기업은 글로벌 무대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특히 좁은 실내를 벗어나 규모가 큰 야외에서 인프라 자율주행 운용 기술을 갖춘 곳은 세계적으로도 서울로보틱스가 유일하다. 더욱이 이 기술로 수익을 내고 상용화한 사례도 서울로보틱스를 제외하곤 없다.

“공도 자율주행은 깨끗하게 접었어요. 풀어야 할 변수가 무한대라는 걸 알았거든요. 하다못해 호주에선 캥거루를, 야구장 근처에선 날아오는 공에 대응해야 해요. 반면 자동차 공장이나 주차장에선 자동차 밑으로 세 살짜리 아이가 기어 들어갈 걱정 같은 건 안 해도 되죠. 공도 자율주행은 요원하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인프라를 이용하는 자율주행은 지금 기술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했어요.”

이 대표는 “운명처럼 찾아온 BMW의 역제안이 없었다면 지금도 공도 주행의 꿈을 좇고 있었을 것”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다만 ‘운도 실력이다’라는 말처럼, 위기와 낙담을 기회로 바꾼 건 서울로보틱스만의 기술 경쟁력을 인정받은 결과였다.

서울로보틱스가 2017년 창업 후 선보인 3D 인지 플랫폼 ‘SENSR’는 그전에는 없던 3D 기반 컴퓨터 비전을 실현했다. 라이다 같은 센서에서 얻은 3D 정보를 AI 딥러닝을 이용해 분석하는 방법으로, 수백수천 대 차량이 움직이는 주차장에서도 4cm 범위 내의 움직이는 물체를 한 번에 추적해 감지하고 식별할 수 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날씨 필터링 AI를 탑재해, 폭설·폭우 같은 혹독한 기상 조건에서도 타깃의 움직임만 인지해내는 정확도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인지하고 판단하고 제어한다. 이 세 가지가 모든 자율주행 기술의 펀더멘털이에요. 그중 가장 중요한 게 인지죠. 사물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정확히 판독해야 하는데, 소프트웨어상에선 폭설이 인지를 방해하는 노이즈로 작용해요. 낮밤을 가리지 않고 악천후 속에서도 유일하게 작동하는 시스템이 서울로보틱스의 기술이에요. 이걸 공장이나 주차장 단위로 돌릴 수 있다는 확장성을 BMW에서 입증한 거죠.”

BMW i7 및 7 시리즈를 생산하는 독일 뮌헨의 딩골핑(Dingolfing) 공장에는 현재 서울로보틱스가 개발한 ATI(Autonomy Through Infrastructure) 솔루션 ‘레벨 5 컨트롤타워(LV5 CTRL TWR)’가 설치돼 있다. 자동차 공장 안에 설치된 세계 최초의 자율주행 시스템이다. 공장 안에 설치된 센서 200여 개가 복잡한 공장 내 차량 움직임을 한꺼번에 파악하고, AI 소프트웨어가 중앙에서 관제한다. 개별 차량에 센서를 달 필요는 물론 없다. 인프라 기반 소프트웨어가 비자율주행차를 자율주행차로 바꿔주는 셈이다.

“1㎢ 정도 면적이 라이다 200개로 충분해요. 1년에 생산하는 차량 30만 대의 자율주행이 공장 안에서 완벽히 이뤄지고 있어요. 한 번엔 움직이는 차량이 대개 1000~2000대 수준인데, 공장에서 나와 야적장에서, 다시 기차에 환적하기 직전까지 우리 시스템으로 자율주행이 이뤄지죠. 4㎝ 수준의 인지가 가능해서 주차도 사람이 하는 것보다 정확해요.”

이 대표의 설명 속엔 BMW가 한국의 자율주행 스타트업과 먼저 손잡으려 한 이유가 숨어 있다. 바로 비용절감이다. 공장에서 생산한 차량을 야적장으로 옮기고, 이를 다시 배나 기차에 환적하기까지 모든 주행을 담당해온 건 당연하게도 사람이었다. 연산 30만 대 규모 공장에서 1년에 들어가는 기사 인건비만 대략 200억원에 달한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사고도 나게 마련이다.

“공장 안 인프라를 아낌없이 내어줄 테니 여기서 기술검증(PoC)을 충분히 해라. 홍보도 너희 맘대로 하고, 기술 IP도 너희가 다 가져라. 대신 공장 내 자율주행만 완성해달라. BMW의 제안이었어요. 사실 시스템을 완성한 후 큰돈을 받은 건 아니에요.(웃음) 다만 세계 최대 인프라 기반 자율주행 시스템을 완성했다는, 그것도 BMW에 적용했다는 실적 자체가 우리에게 엄청난 레퍼런스가 됐죠.”


▎독일 뮌헨의 BMW 공장에서 생산된 차량이 서울로보틱스의 자율주행 기술로 무인 운행하는 모습.
자동차 물류·트럭 물류 시장 정조준

서울로보틱스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프라 기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상용화에 성공한 기업이다. 2017년, 이 대표 등 공동창업자 네 명이 의기투합한 것도 자율주행 코딩 경진대회에 함께하면서였다. 군 전역 직후인 2016년, 이 대표가 페이스북에 개설한 AI 스터디그룹이 그 시작이었다.

“어릴 때부터 로봇을 만드는 게 꿈이었어요. 초등학교 졸업 후 혼자 미국 유학을 떠났고,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어요. 그런데 막상 보니 로봇을 움직이는 데 더 중요한 게 소프트웨어더군요. 해외 로보틱스 기업들도 대부분 소프트웨어 회사죠. ‘컴퓨터 공학과에 갔어야 했다’며 졸업할 때가 다 돼서야 괴로워하다가, 군대 가서야 AI 소프트웨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이 대표는 “수방사 근무가 소프트웨어로 피벗한 결정적 기회가 됐다”며 웃었다. ‘싸지방(사이버지식방)’이라 부르던 부대 내 PC방에서 AI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온라인 강의를 섭렵한 덕분이다. 졸업 후에는 페이스북에 AI 딥러닝과 자율주행을 공부하는 스터디그룹을 꾸렸고, 여기서 만난 이들이 지금까지 서울로보틱스에서 함께하고 있다.

“2017년 실리콘밸리에서 ‘Self-Driving Car Challenge’가 열렸어요. 자율주행 인지에 초점을 둔 큰 대회였죠. 라이다, 카메라, 레이더 등 세 가지 센서를 나눠줬는데, 우리는 라이다만 사용했고, 2000개 팀 중 10위에 올랐어요. ‘이 분야는 우리가 잘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고, 대회 참가 멤버 4명이 의기투합해 창업에 나선 거예요. 라이다만 가지고 10등 했는데, 소프트웨어로 넓히면 1등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거 하나 믿고 여기까지 왔어요.”

이 대표의 예상은 적중했다. 딥러닝 AI를 사용한 3D 자율주행 모델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정확도를 자랑했다. 전기차 시대가 활짝 열리고, ICT 기업과 완성차 업체들이 너나없이 뛰어드니 시장도 곧 크게 열릴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예상은 예상일 뿐이었다.

“창업했으니 돈을 벌어야죠. 언제까지 투자만으로 버틸 수는 없으니까요. BMW와의 만남을 계기로 인프라 기반 자율주행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고, 결과적으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생산 공장에서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 자동차 한 대가 거치는 주차장은 평균 5곳 정도다. 수출이 아닌 내수 판매에만 국한해도 3~4곳에 이른다. 이 과정 모두에 서울로보틱스의 자율주행 시스템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비즈니스 타깃을 완전히 바꾼 전략이 효과를 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염없이 차량 기반 자율주행 시장이 열리기만 기다라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다.

“2019년 이후 지금까지 3년간은 BMW와만 함께했어요. 지금도 독일 공장에서 하루 수백 대가 자율주행으로 움직이는데, 그동안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죠. 최근에는 한국과 일본의 완성차 대기업과 협의를 완료한 단계예요. 유럽(BMW)에서 인정받고 나니 아시아 시장이 빠르게 열리고 있어요.”

이 대표는 “전 세계 자율주행 차량을 조준했던 초기사업 목표에 비해 비즈니스 영역은 축소된 게 사실”이라면서도 정해진 공간 안에서, 24시간 내내, 수백수천 대 차량을 사람의 손이 닿지 않도록 자율주행하는 미션에 성공한 곳은 현재까지는 서울로보틱스가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인프라 기반 자율주행 시장의 성장 가능성도 엄청난 기회가 될 거란 예상이다. 서울로보틱스의 추산에 따르면 글로벌 자동차 물류 시장의 규모만 해도 20조원 수준이다. 게다가 아마존, 쿠팡 같은 트럭 물류시장 규모는 약 90조원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이들 모두가 서울로보틱스가 정조준한 타깃이다.

“전 세계 자동차 OEM 물류 시장 거점이 5000곳쯤 되고 미국 트럭 물류 허브만 40만 곳에 달하죠. 유럽과 아시아까지 더하면 엄청난 시장이 열리는 셈이에요. 실내 주차장에서도 자율주행 발렛파킹이 가능합니다. 전기차 충전구역 안에서도 자율주행이 이뤄질 거에요. 자동차 공장 한 곳의 시스템만 해도 보통 1000억원 단위죠. 현재 확보한 파이프라인만 잘 가동해도 연간 수천억원대 매출이 가능하리라 기대해요.”


▎서울로보틱스가 미국 테네시주 채터누가시 교차로 가로등에 설치한 3D 라이다 센서. 이를 인지해 3D로 변환한 관제 화면.
스마트시티 앞당길 자율주행 기술

서울로보틱스의 공동창업자 넷 중 한 명은 외국인이다. 온라인(페이스북) 공간에서 처음 만난 이후, 창업자 넷이 실제 얼굴을 맞댄 것도 2017년 실리콘밸리 대회에 참가하면서였다. 이 대표 역시 중학교 이후 입대 직전까지 모든 생활 기반이 미국에 있었다. 엔지니어(개발자)가 대부분인 직원들도 40% 이상 외국인이다 보니, 사내 공식 언어와 문서가 모두 영어로 통한다. 그런데 왜 하필 창업도 사명도 ‘서울’이었을까.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이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실 글로벌 시장에서 영어, 즉 커뮤니케이션만 완벽하면 굳이 나라가 중요한 건 아니에요. 한국을 먹여 살리는 기업을 보세요. 다 기술 기반이에요. 삼성, 현대, SK가 다 그렇잖아요. 그런데 한국 스타트업은 유니콘이라 해도 로컬 기반이 대부분이에요. 우리는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레퍼런스를 쌓았고, 그걸 바탕으로 국내 시장에 접근했어요. 50~60년 전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보냈다면, 지금 우리가 소프트웨어를 보내는 거죠.”

독일에서 증명한 인프라 자율주행 시스템은 올 들어 한국과 일본으로 확장됐다. 이 대표는 최종적으로 미국과 중국을 겨냥한다고 말했다. 두 나라는 글로벌 최대 자동차 시장이다. 특히 중국은 전기차 시대를 맞으면서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국으로 발돋움했다.

BMW를 기점으로 유럽 시장 공략도 가속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스위스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인수를 논의 중이다. 자율주행 제어 기술에 강점을 지닌 기업이다. 창업 후 첫 인수합병(M&A)으로 유럽 기업을 택한 의도도 뚜렷하다. 유럽 문화와 시장, 비즈니스 환경에 익숙한 기업을 발판으로 향후 유럽 시장 영업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자동차 시장의 경우, 한국과 일본이 압도적인 사이즈다. 이 대표는 “아시아 전역과 유럽을 공략한 후 미국과 중국에서 정면 대결을 펼치겠다”는 청사진을 드러냈다.


▎서울로보틱스는 국내 스타트업으로는 드물게, 외국인 임직원이 전체 인력의 40%를 가량을 차지한다. 성공적인 글로벌 시장 공략의 배경이기도 하다.
사업 확장을 위한 자금 조달도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다. 이 대표가 밝힌 서울로보틱스의 누적 투자 유치액은 창업 이후 400억원 수준. 이 중 약 300억원이 투자 혹한기라는 지난해 집중적으로 모였다. 오는 2025년 IPO(상장)를 계획 중인 서울로보틱스는 내년 중 프리(pre)-IPO에서 600억~800억원 규모 자금을 추가로 끌어모으려 한다.

“처음엔 나스닥 상장이 목표였는데, 지금은 코스닥을 바라보고 있어요. 한국의 자율주행 기업 중 소프트웨어기반 스타트업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한국 시장 상장 자체에 의의를 둘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현재 한국시장만큼 로보틱스 관련 기업에 친화적인 곳도 드물다는 현실적 배경도 고려했죠. 프리-IPO와 상장으로 유치한 자금은 미국과 중국 시장 진출에 활용할 방침이에요. 중국의 인건비가 크게 상승 중인데, 인도나 베트남의 인력시장에 크게 밀리기 시작하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빨리 열릴 거라 봐요.”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갖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수장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이 대표는 “공도를 누비는 자율주행 차량에 대한 꿈을 여전히 꾸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기술의 진보는 지금과 같은 인프라 기반 소프트웨어로 이룰 계획이다. 실제로 최근 일본의 한 완성 차 기업은 도시 단위의 관제 시스템 개발 협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인프라 기반 공도 자율주행 시스템의 예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미국 테네시주 채터누가(Chattanooga)시에는 서울로보틱스 기술이 적용된 스마트 교차로가 100곳 이상 조성될 예정이다. 보행자 안전을 위해 도입할 이 교차로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스마트 교차로 네트워크다. 역주행 운전자에 대한 경고, 즉각적인 감지 및 대응, 이를 통해 보행자 인명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최초의 스마트 교차로다.

“제한된 공간에서 완벽한 자율주행을 구현한 소프트웨어 시스템은 세계에서 서울로보틱스가 유일해요. 경쟁사들이 등장하겠지만, 시장 선점과 기술 고도화로 독보적인 1등을 유지할 거예요. 윈도(Window)가 컴퓨터 운영체제(OS) 시장의 최강자인 것처럼, 한국산 소프트웨어가 글로벌 자율주행 시장을 장악할 날이 멀지 않았어요.”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312호 (20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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