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50) 

표현 | 나의 마음을 나타내는 방법 

마음속에 있는 무언가를 어떤 형태를 갖추어 바깥으로 드러내는 행위를 ‘표현’이라 부른다. 예술 활동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위인 표현 활동 중 하나다. 작품을 감상하며 작가만의 생각과 표현 방식을 음미해보자.

▎잭슨 폴록 [서부로 가는 길] 1935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참 쉬워 보인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라고 해도 이내 부담을 느끼면서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특히 자신은 ‘표현’이라는 것을 거의 해본 적이 없어서 나를 이야기하는 과정이 익숙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다. 표현은 우리 삶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지속되어온 자연스러운 행위인데, 단지 갑자기 표현을 특별한 것이라 생각하니 어색하게 느껴질 뿐이다.

표현을 의미하는 영단어는 express이며, 짜내는 것, 혹은 압력을 가해서 원재료가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과를 착즙기에 넣으면 사과즙이 되어 나오듯 원재료가 언어나 그림, 음악, 움직임 등을 통해 다른 형태가 되어 밖으로 나오는 것이 표현이다. 즉, 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무언가가 표현 매체를 통해 어떤 형태를 갖추어 바깥으로 나오는 것이다.

미국 인류학자 엘렌 디사냐야케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자신의 목소리를 채워 넣어 대화를 만드는 것, 머릿속에서 맴도는 노래의 음정을 흥얼거리는 것, 식재료에 불과하던 채소와 고기를 하나의 요리로 만드는 것, 불안해하는 일이 잘 풀리기를 기도하는 것, 이 모든 것은 표현이자 삶을 정교하게 만드는 예술의 영역이라 설명한다.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들을 자신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로 정교하게 바꿔 태어나도록 하는 모든 행위가 예술적 행위라면 모든 사람은 늘 창조적 작업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표현이 두려운 사람들


▎잭슨 폴록 [No. 5] 1948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 어려운 대표적 이유는 말하기에 대한 부담감 때문일 것이다. 어릴 적부터 선생님에게서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아” 또는 “지금은 실력을 평가받는 자리가 아니야”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지만 표현의 부담을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한다.

한국의 교육 환경에서 무언가를 그린다는 것은 곧 수행평가로 연결되었고, 선생님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부담스럽다. 특히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것을 남들 앞에서 수행하는 것 자체에 불편함을 느낀다. 평가에 민감하고 타인의 시선에 예민한 사람일수록 말하기의 기술이 표현의 장애물처럼 느껴질 것이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은 기존 작가들이 보여준 표현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그러나 그전에도 폴록은 다른 화가들처럼 무언가를 묘사하는 작업을 했다. [서부로 가는 길]은 잭슨 폴록의 초기 작품으로, 대중적으로 유명한 그의 화풍은 보이지 않는다. 폴록은 스케치를 하고, 명암을 넣고, 붓 터치를 조절하여 잘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다. 당시에는 입체주의와 표현주의, 추상표현주의가 유행했고, 폴록은 그 시대 작가들이 선호하는 화풍으로 작업을 했다. 그러나 폴록을 스타로 만든 것은 모두가 좋다고 말하는 기법과 방식이 아니었다, 그는 이젤에 캔버스를 놓고 작업하는 대신, 마룻바닥에 캔버스를 놓고 공업용 페인트를 떨어뜨리는 드로핑 기술을 선보였다.

표현 기술을 너무 잘 아는 사람들이 표현을 어려워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필자가 몸담고 있는 미술치료 현장에서 미술을 전공했거나 미술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완성도에 대한 기준이 남들보다 높다. 미술 전공자들은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리면 어쨌든 잘 그렸다는 평가를 자주 들으며 성장해왔다. 같은 미술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경쟁도 있고, 비교도 있겠지만, 비전공자들 사이에서는 미술로 인해 빛나는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미술치료사가 어떤 말을 해도 ‘그래도 그림은 내가 여기서 제일 잘 그려야지’ 혹은 ‘그래도 와, 진짜 잘 그리시네요~라는 말을 들어야지’라고 자동적으로 결심을 한다. 때로는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보다 오히려 너무 잘 아는 사람들이 미술의 기술적 부담을 내려놓기를 더 어려워한다. 폴록은 그런 기법과 기술에서 벗어났고, 그 덕분에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정립할 수 있었다. ‘잘하기’에서 벗어난 순간, 특별한 사람이 된 것이다.

표현이 차단된 사람들


▎빈센트 반 고흐 [꽃 핀 아몬드 나무] 1890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 반 고흐에게 쓴 편지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감정이란 때로 너무 강렬하여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게 해. 별로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말하거나 글을 쓰는 것처럼 감정에 사로잡힌 몸놀림이 내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일관성을 가지고 질서정연하게 그림을 그려나가.”

이 내용만 보면 감정 표현은 그냥 숨 쉬듯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미술 철학자 존 듀이는 이처럼 자연스럽게 감정을 미술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재 주어진 경험 상황을 잘 아는 사람, 관련된 내용들을 평소에 자주 관찰하고 심사숙고했던 사람, 상상력을 가지고 보고 듣는 것을 진지하게 재구성하는 사람들에게만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한정한다.

어떤 사람들은 표현 전반이 차단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은 지지받지 못한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에 기인할 가능성이 높다. 자기주장을 한 아이가 경청받지 못하거나 꾸지람을 들었을 때,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면 상처받거나 혼난다는 것을 학습한다. 그리고 (상처받거나 혼날 사건을 만들지 않으려고) 표현을 최소화하며 지내는 것이 자신이 생존하는 데 더 유리하다는 것을 파악한다.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조이스 맥두걸은 표현이 단절된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초기 외상이 무의식적으로 감정을 억압하고 있어서 내면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따르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상황은 전형적인 심리적 외상보다는 누적 발달 외상(Cumulative Developmental Trauma: CDT)으로 볼 수 있다.

존 듀이는 많은 사람이 자아를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행위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아 고문을 당하는 듯한 내면의 고통을 겪는 불행한 사태에 처한다고 설명한다. 감정 표현이 서투른 사람들은 불안정한 애착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있다. 어린 시절 정서적 발달이 훼손되어 감정이 차단된 것이다. 감정이 받아들여진 경험도 없고(있어도 기억에서 삭제되었고), 표현이 존중받는 안전한 환경에 머무른 적도 없을 것이다. 보유한 알맹이는 있지만(없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외부 세계와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표현이 너무 어려운 사람들이 상담실을 방문하면, 상담자는 이 사람 안에 존재하는 살아 있는 이야기들이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이야기가 마음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서두르거나 압박하면 이야기가 도망가기 때문이다. 듀이는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들이 출구를 찾을 수 있도록 적당한 문을 만드는 시간과 노력은 필수라고 설명한다. 이 공간에서는 무언가 도전해봐도 괜찮겠다는 낯선 느낌을 갖도록 한다. 그 낯섦도 그대로 존중받고 수용되는 경험을 하면서 한 걸음씩 안전하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는 방법을 훈련하게 될 것이다.

감정과 생각에 압도당한 사람들


▎잭슨 폴록 [벽화] 1943
표현이 차단된 것과 반대로, 생각과 감정이 가득 차서 쉽게 언어로 전환되지 않기도 한다. 압도된 상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정신적 과잉 상태일 수 있고, 둘째는 무기력감을 느끼는 경우이다.

첫째, 정신적 과잉 상태는 정신활동의 양이 많다기보다는 생각들이 쉼이나 멈출 틈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정신분석학계에서는 이런 경향을 ADHD 환자나 감정 통제가 어려운 환자로 보는 편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심리치료사 크리스텔 프티콜랭은 저서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에서 이들은 정신질환자가 아니라 ‘정신적 과잉행동인’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폴록의 작품 [벽화]에는 감당할 수 없이 꿈틀대는 에너지가 가득 차 있다. 그 어떤 강조도 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에너지들이 서로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아우성치고 있는 듯하다. 이런 경우에 필요한 것은 무언가를 더 ‘넣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과정이다. 무언가를 심상화하고 떠올리는 작업보다 선행해야 하는 것은 현재의 자신에게 집중하고, 멈추어서 감정과 생각들이 요동치는 모습을 떨어져서 관찰하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제3자가 되어 천천히 설명해보거나, 관찰되는 부분 중 일부만 떼어내어 집중해볼 수도 있다. 그리고 생각의 호흡이 안정되었다고 느낄 때 이 장면을 언어로 표현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둘째, 자신의 감정은 다룰 수 없는 거대한 존재라 인식하고 무기력감을 느껴 다루지 못하는 경우이다. 아마도 이런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마주하거나 감정을 조절하려는 과거의 도전들이 성공적이지 못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유사한 감정이 느껴질 때마다 학습된 무기력이 아무것도 못 하게 멈춰 세우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과거 경험과 현재 경험을 분리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자신을 퇴행하게 할 수도 있고, 분노하거나 좌절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자신의 무기력감에 도전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안다면 이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줄일 수도 있다. 생각과 감정의 덩어리가 너무 방대하다고 느껴져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상황 속에 포함된 요소들을 분리하여 쪼개서 접근해보는 것을 권한다. 버겁게 느껴지는 상황들도 더 작은 단위로 나누어 접근하면 충분히 다룰 수 있는 크기로 분해되기도 한다.

※ 김소울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전공 겸임교수이자 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다. 치유미술관 외 19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404호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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