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51) 

봄의 모순 - 빛이 가진 양면성 

꽃 내음이 완연한 봄을 만끽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큰 일교차에 마음이 싱숭생숭한 사람도 있다. 당신의 봄은 어떠한가. 봄을 그린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며 자신만의 봄을 정의해보자.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바람 꽃] 1903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플로라는 꽃의 여신이다. 플로라는 남편인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자신의 시녀 아네모네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플로라는 화가 나서 아네모네를 멀리 있는 포모노 궁전으로 내쫓았는데, 바람의 신이었던 남편은 아네모네를 쉽게 찾아내어 다시 만나러 갔다. 이 사실을 안 플로라가 제비로 변신해 포모노 궁전에 찾아가보니 남편과 아네모네가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다시금 화가 난 플로라는 아네모네를 꽃으로 바꿔버렸고, 남편은 아네모네를 잊지 못해, 봄이 될 때마다 따듯한 바람을 보내 아네모네가 화려한 꽃을 피우게 했다.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작업하는 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가 그린 [바람꽃]에는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아네모네와 휘몰아치는 봄바람이 등장한다. 분명 따듯한 봄바람일 텐데 왠지 버거워 보인다.

많은 신화에 바람과 꽃, 봄이 함께 등장한다. 그리고 아름다워 보이는 봄에 관한 이야기 뒤에는 누군가의 상처와 고통이 함께 묻어 있다는 사실도 발견된다.

스프링 피크


▎이중섭 [벚꽃 위의 새] 1954
따듯한 햇살이 내리쬐는 봄이 오면, 새싹과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난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새 학기를 맞이하고, 많은 분야에서 겨우내 멈춰 있던 에너지를 발산하기 시작한다. 이제 추위는 사라지고, 충만함이 다가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한국 화가 이중섭이 그린 [벚꽃 위의 새]는 얼핏 보면 따듯한 봄날에 핀 벚꽃, 그 위에 내려앉은 하얀 새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가지가 더 있다. 그림 오른쪽 나무에는 녹색 개구리, 우측 상단에는 노란 나비가 보인다. 개구리가 잡아먹으려 했던 나비는 위기에서 벗어났고,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고 갈뻔했던 개구리는 이제 새 앞에서 죽음을 맞이할 위기에 놓였다. 얼핏 아름다워 보이는 그림이지만 그 안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먹고 먹히는 관계도가 보인다.

빛이 강하면 결국 그림자도 강해진다. 3월부터 5월, 가장 따듯하고 생기 넘치는 이때는 사람들에게도 희망이 차오를 것 같지만, 실상은 자살자가 가장 많은 시기다. 겨울철인 11월부터 2월까지는 상대적으로 자살률이 낮고 봄이 되면 높아지는 현상을 ‘스프링 피크(spring peak)’라고 부른다.

계절성우울증은 일반적으로 가을에 접어들면서 우울감을 호소하는 증상을 지칭한다. 일조량이 급감하면서 세로토닌이 줄어들고 멜라토닌이 증가하면서 우울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봄에 일조량이 늘어나면서 개인에 따라서는 오히려 불안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가을과 겨울에 느끼는 우울감은 무기력감이 주요 증상이라면 봄에 찾아오는 우울감은 감정의 진폭이 커지며 충동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만물이 찬란하게 살아 움직이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도 자신의 삶을 비관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나만 준비되지 않은 마음, 내 계획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것이다. 남반구인 호주에서도 봄에 해당하는 10월에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것은 봄의 찬란함이 가진 모순을 확연히 보여 준다.

벨 에포크


▎제임스 티소 [야망을 품은 여자] 1885
인류 역사에서도 봄이라는 계절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벨 에포크(Belle Époque)는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시기를 이르는 말로,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이다. 정확히는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 말, 에드워드 시대, 독일의 빌헬름 시대를 일컫는 말이지만 유럽 전반에서 그 무렵을 지칭하는 말로 널리 사용된다. 사회적·기술적·정치적으로 번성했으며, 미국 서부의 골드러시부터 남극 탐험 등 미지의 지역을 정복하기 위한 도전도 함께했던 시기다. 제임스 티소의 [야망을 품은 여자]는 19세기 말 프랑스 귀족 여성들의 의복을 상세히 표현했다. 상류층은 값비싸고 화려한 옷을 입고, 그들만의 공간에서 고급 문화를 향유했다.

그런데 이런 찬란함 뒤에는 어둠도 함께 존재했다. 서구 열강과 일본은 제국주의 식민지를 확장해나가고 있었고, 이로 인해 무고한 수많은 사람이 노예가 됐다. 영국의 대표 화가 윌리엄 터너는 작품 [노예선]에서 이 시기의 비참함을 간접적으로 알렸다. 1400만 명이 한순간에 노예가 되어 좁디좁은 배 안에서 물건처럼 이송되었다. 수갑을 찬 채로 빽빽하게 누워서 배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고, 노예 500만 명이 배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강제 노역 과정에서 사망했다. 사망한 노예들은 인권없는 물건 취급을 받았다. 1781년 9월, 노예를 실은 배가 아프리카 연안을 출발해 자메이카로 향하는 도중에 400명 중 132명이 사슬이 묶인 채 카리브해에 던져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1783년 법정에서 다뤄졌고, 1833년 노예제 폐지 법안이 통과됐다. 터너는 이 사건을 고발하기 위해 [노예선]을 창작했다.

식민지화한 노예가 아닌 서구 열강 자국민 하급계층의 생활도 버거웠다. 노동자를 위한 법적 조치는 미비했고, 어린이들조차 노동 전선에 있었다. 노동자들의 인권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고, 모든 것은 사회에서 중요하다고 지정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흘러갔다.

당시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갈아 넣어 탄생한 서구 열강의 최첨단 기술이 응집된 작품이 탄생했는데, 바로 초호화 여객선 타이태닉이었다. 그러나 타이태닉호는 1912년 빙산과 충돌해 1514명이 사망했다. 2년 뒤에 제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며 아름다운 시대, 벨 에포크는 막을 내렸다.

상대적 박탈감 vs 행복의 동일시


▎윌리엄 터너 [노예선: 죽은 자와 죽어가는 자를 바다에 던지다] 1840
여행 예능이나 먹방 예능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얻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남이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를 비교하게 되어 불쾌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둘의 차이는 타인을 바라보는 한 개인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행복을 그린 화가’라는 별명을 지닌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로, ‘삶이 이미 힘든데, 그림에서까지 힘든 것을 그릴 필요는 없다’는 설명을 하기도 했다. 행복한 사람들을 자신의 그림에 담고, 자신도 그 사람들에게서 행복의 기운을 받고, 또 자신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행복 에너지가 전달되었으면 했던 것이 화가의 바람이다.

르누아르는 타인의 행복을 자신과 동일시했다. 그래서 부자들이 낮 시간에 한가롭게 놀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의뢰했을 때, 가난하고 노동을 해야 하는 자신을 비관하기보다 그들의 행복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봄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봄이 올 때마다 우울감을 느끼는 패턴이 있는 사람이라면 봄이 다가오기 전 겨울이 끝나갈 무렵부터 햇볕에 노출되는 시간을 늘려 갑자기 찾아오는 봄의 우울감을 막도록 노력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신경전달물질의 변화 이외에 봄이 오면 길거리에서 보이는 연인과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가는 사람이라면 다르게 바라보는 관점을 갖도록 연습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만약 내 주변에 불행한 사람들만 보인다면 과연 나는 행복해질까? 한숨과 눈물, 절망이 주변에 있다면 상대적으로 나는 살아갈 의지를 가지게 될까?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긍정적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 속한 환경에서 지내고 있는 것이 주는 장점이 떠오를 것이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그네] 1876
만약 봄이 되면 새 학기가 시작되거나 새로운 지점에 발령이 나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면 새로움에서 얻는 기회와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들 목적을 향해 전진하는데 여전히 멈춰 있는 스스로를 한심해하고 있다면 충분히 충전해서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축적하고 있는 지금의 나를 칭찬해보면 어떨까.

봄은 따듯하다고 생각되지만 의외로 춥다. 그리고 봄바람은 시원하다고 생각되지만 봄은 의외로 덥다. 겨울과 여름이 공존한다. 모두가 준비하고 시작하려는 가능성의 시간이기에 나에게 여전히 겨울이 잔존하는 것도, 가끔 충동적으로 만드는 여름이 존재하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그런 불안정한 나를 만났을 때 나를 너무 미워하기보다는 희망을 꿈꾸는 것이, 그리고 지금을 불안해하는 나를 더 예쁘게 봐주는 것이 이 봄을 더 건강하게 보내는 방법이 될 것이다.

※ 김소울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전공 겸임교수이자 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다. [치유미술관] 외 19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405호 (20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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