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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주 센터장의 메타버스 로드맵 짚어보기 

현실과 실재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 

메타버스가 전 세계 많은 사람을 연결해주는 차세대 SNS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미래의 미팅과 학회는 굳이 비행기나 차를 타고 이동하지 않아도 메타버스형 가상 공간에서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지난 4월 캐나다에서 열린 ‘현실에 대한 의심’학회에서 애플 비전 프로 페르소나들이 학회장에 있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하면서 화이트보드 등으로 작업하고 있는 모습. / 사진:USC
지난달 캐나다에서 컴퓨터공학, 커뮤니케이션학, 심리학, 교육학, 정보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석학, 신진 과학자, 업계 전문가 등 40여 명을 초빙하여 ‘현실에 대한 의심(Questioning Reality)’ 학회를 개최했다. 조지아주립대학과 토론토대학이 공동 주최한 이번 학회는 이미 생성된 지식을 공유하는 전형적인 학회 모델보다는 지금 현재 학자들을 골몰하게 만드는 현실과 실재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들을 다양한 토론을 거쳐 이끌어내는 탈구조적 학회(Unconferencing) 방식을 채택했다.

이번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독일, 싱가포르, 대만 등지에서 과학자 수십 명이 비행기, 기차, 자동차를 타고 이동해서 2박 3일을 함께 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참가자들이 모인 가운데 가장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던 주제는 메타버스를 이용한 온라인 학회의 가능성이었다. 국립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과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등 미국의 여러 정부 부처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최근 몇 년간 지켜봐온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미국 정부는 대체 왜 경제·과학 발전에 도움이 되는 과학자들의 출장을 줄이고 싶어 할까?

필자도 1년에 평균 5~6회 이상 학회에 참석하는데, 아무래도 융합과학의 성격이 강한 메타버스 분야를 연구하다 보니 사회과학, 인문학, 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회에 가게 되는 것 같다. 보통 학회에서 중점적인 학술 활동은 전 세계 연구 기관에서 새로 생성된 지식에 대한 발표와 공유다. 물론, 관심 있는 논문이라면 추후에 다운로드해서 읽어볼 수 있지만 발표를 듣다 보면 논문에서 여러 이유(글자 수 제한, 논리의 흐름)로 싣지 못한, 연구와 관련된 깨알 같은 에피소드를 저자 직강으로 듣는 재미가 있다. 또 논문 발표 외에도 지식산업의 일종인 학계의 흐름을 한눈에 보기 쉽고, 그 산업을 뒷받침하고 있는 다양한 활동(문헌의 출판 방향 설정, 기술·방법론 워크숍, 채용 인터뷰 등)도 학회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학회에서 ‘학(學)’에만 너무 열중하다 보면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회(會)’를 놓치게 된다. 통상적으로 학회는 주요 명소나 관광지에서 개최되는 경우가 많아 ‘놀러 간다’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물론, 대학원 시절부터 같은 학회에 매년 참석하다 보면 십수 년간 친분이 쌓여 참가자들끼리 일정이 끝나고 밤에 술을 한잔 기울이기도 하고, 발표가 끝나고 관광지를 잠깐 같이 돌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과학에 대한 과학(science of science, 과학계의 구조와 과학 활동에 대한 연구를 하는 분야) 논문들에 따르면, 오프라인으로 대면하여 관계맺음이 이루어지면서 거기서부터 형성되는 공동연구와 그 네트워크에 의해 파생되는 시너지효과들이 미래 과학의 판도를 뒤흔들 만한 임팩트를 가지고 온다. 일례로,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는 데 필요했던 결정적인 발전도 이런 학회에서 우연히 만난 두 백신 연구자에 의해 이루어졌다. 회식이 일의 연장선에 있는 것처럼 학회도 결국 과학자들끼리 만나 어깨를 부딪히며 새로운 발견과 학문의 접점을 만들어나가는 자리이므로, 학회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상태로 학문을 지속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학회의 어두운 단면, 기후변화와 사회적 비용

이렇게 좋은 오프라인 학회 활동을 미국 정부는 왜 줄이려고 할까? 과학 발전은 경제 발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사실 미국 정부가 걱정하는 건 과학자들의 학술 활동이 아니다. 다만, 이런 학술 활동을 위해 전 세계에서 모이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을 간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미팅이나 학회 참석을 위한 이동이 미국 전체 출장의 40%에 육박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사람들이 자가격리를 하게 되자 탄소배출량이 급격하게 줄면서 근래에 보기 힘들었던 생태계 치유 현상들을 세계 각국에서 목격했다. 이는 우리의 이동수단을 점진적으로 줄이고 바꿔나가야 할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장애나 경비, 혹은 자녀 양육 문제 등으로 이동 거리가 먼 장소에서 열리는 학회에 자주 참석하지 못하는 과학자들의 숫자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학자들보다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학회에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는 과학자들이 네트워크를 더욱 돈독하게 다지고 논문에 출판되지도 않은 가장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하는 일이 늘면서, 새로운 지식과 학술 자원을 널리 공유하기 위한 자리인데도 학회가 더 많이 열릴수록 지식, 자금, 인력 등 많은 자원이 참석자들 위주로 편중되어 학계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는 지적도 많다. 또 3~4일간 계속 되는 학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그 기간 동안 남겨진 수업과 업무에 지장이 생기는 사회적 비용도 무시하기 힘들다.

학회의 미래, 미래의 학회

이번 학회에 참가한 40여 명 중 7명이 개인 소장하고 있는 애플 비전 프로(Vision Pro) 헤드셋을 들고 왔고, 이 중에는 애플에서 초창기 비전 프로 개발에 참여했던 사람도 있었다. 각자 애플 비전 프로를 쓴 상태에서 학회장의 다른 방이나 복도 등으로 이동해 행사장에 모여 있던 참가자들과 원격으로 교류해봤다. 비전 프로 헤드셋을 쓴 참가자들은 머신러닝 기법으로 생성된 투명 아바타(Apple Persona)를 사용해 토르소 형태로 머리와 상반신 일부가 떠 있는데, 이들의 존재를 볼 수 있는 건 비전 프로를 사용하고 있거나 헤드셋에서 보이는 것을 핸드폰으로 공유/미러링하고 있는 사람들뿐이다. 다른 참가자들은 페르소나가 바로 옆에 동동 떠 있어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라, 하나의 현실에서 두 개의 평행 우주-가상 공간이 보이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애플의 페르소나는 얼굴 표정의 움직임 등이 굉장히 정교한 편이고 정확히 그 사람의 키 정도 높이에 떠 있어서 투명한 느낌이 나는데도, 그 페르소나를 뚫고 지나가기 힘들었다. 분명 헤드셋을 쓰고 있는 사람들 눈에만 보이는 픽셀인 줄 알면서도 굳이 페르소나와 부딪히지 않으려고 돌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몰입감이 훨씬 높은 가상현실(VR)에서 회의를 진행할 때 가장 불편한 부분은 현실 세계의 사람이나 물건들과 완전히 격리된 상태라서, 현실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이야기를 하기 힘들고 핸드폰을 볼 수도 없다는 점이다. 대신 몰입감이 좋기 때문에 화상회의를 할 때처럼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카메라를 끈 채 다른 일에 열중하는 사람은 없다. 반면, 혼합현실의 한 종류인 비전 프로는 전부 다 같이 헤드셋을 쓴 상태가 아니라면 이번 학회에서의 상황처럼 모두 같은 공간에 있기는 하지만 마치 평행의 우주에 있는 듯 사람들 사이의 교류가 분리된다.

비전 프로를 여러 참가자와 같이 사용해보니 앞으로 멀지 않은 미래에 혼합현실을 응용한 하이브리드형 학회가 가능할 것 같다.

※ 안선주 - 조지아대 첨단 컴퓨터-인간 생태계 센터(Center for Advanced Computer-Human ecosystems) 센터장이며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뉴미디어와 이용자 행동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의료, 소비자심리학, 교육과 연계한 가상현실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 대화형 디지털 미디어에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2022년 초 TED talks에서 ‘일상생활에 가상현실 통합’이란 주제로 발표한 바 있다.

202406호 (202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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