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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형의 비시장 전략 경영 

성공 비즈니스가 곧 사회 혁신이다 

우리 사회가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따라 운영되는 한 정부와 정당, 전문가단체, 시민단체, 직능단체, 기업, 언론, 일반 공중 등 누구든지 비시장 영역의 활동 주체가 될 수 있다.

▎2021년 7월 2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 방송통신위원회는 ‘인앱결제’ 강제 도입을 막는 이른바 ‘구글 갑질방지법’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통과시켜 법제화했다.
지난 칼럼에서 기업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비시장 전략 경영을 제시했다. 이번에는 최근 사례를 들어 비시장 전략 경영을 어떻게 실행할지 소개한다.

글로벌 애플리케이션 시장을 선도하는 대형 플랫폼 기업 A사는 게임 외 앱에서 자체 결제 시스템 사용을 강제하지 않았다. 하지만 2020년 6월 인앱결제 의무화와 함께 게임 앱에만 적용되던 수수료 30%를 모든 앱에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에 따르면 웹툰, 음악, 동영상 등 거의 모든 콘텐트 앱에 결제 수수료가 적용되는 동시에, 앱 개발자나 기업이 다른 결제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까지 막는 효과가 있었다. A사의 새로운 정책 발표는 국내외에서 웹툰과 웹소설 등 개인 창작자를 비롯해 스타트업 등 소규모 업체뿐만 아니라, 앱을 기반으로 사업하는 이해당사자 대부분의 거센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결국 대형 플랫폼 회사들이 수수료를 세금처럼 걷는 것 아니냐는 반발과 함께 각국에서 사회적 이슈로 확대됐고, 세계 주요 국가에서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인앱결제 의무화 정책’을 철회하도록 하는 법안들이 발의되는 계기가 됐다.

한국이 주도한 세계 최초 ‘인앱결제 강제 방지법’

우리나라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들이 발의됐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주한 미국대사관과 주한 미국상공회의소는 이 법안들이 한미자유무역협정 위반 여부로 무역분쟁의 소지가 있고,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우리 정부와 국회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국회는 2021년 8월 31일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자사의 인앱결제를 강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세계 최초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이 통과된 후 세계 각국에서는 유사한 내용을 담은 법안이 통과되었거나 심의 중이다.

이 법안이 논의되는 입법 공간에는 행정부와 국회뿐만 아니라 외국 의회 관계자와 전문가, 관련 기관을 포함해 경제적·이념적으로 이해관계가 있는 수많은 관계자가 참여했다. 여러 쟁점을 중심으로 진영이 형성되고 활동하는 대표적인 비시장 전략 경영의 영역이었다. 우리 사회가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따라 운영되는 한 정부와 정당, 전문가단체, 시민단체, 직능단체, 기업, 언론, 일반 공중 등 누구든지 비시장 영역의 활동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방증하는 사례였다. 아울러 이 사례는 기업과 시장이 사회 속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비시장 환경은 시장과 다른 특성과 원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특히 비시장 환경의 세 가지 구조적 특징을 잘 예시했다.

첫째, 추구하는 이익의 차이다. 시장에서는 모든 행동이 사적 이익으로 귀결된다. 이에 반해 비시장에서는 모든 행동이 넓은 범위의 집단에 영향을 미치는 공적 이익으로 귀결된다. 위 사례에서는 독점 규제, 중소상공업자 보호라는 공익이 거대 기업 A사의 영업이익 증가라는 사익을 제한하는 결과에 이르게 했다.

그러나 모든 경우의 비시장 전략 경영에서 기업의 이익보다 공익이 우선시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기업과 사회의 공동 번영이라는 목표를 중심으로 민간과 공공 간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메커니즘을 전략적으로 설계한다면, 기업은 비시장 전략 경영으로 현재의 시장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도 있다. 테슬라가 기후위기 극복이라는 공익을 중심으로 형성된 탄소배출권 제도를 이용해 지난 2023년 17억9000만 달러(2조4500억원)를 벌어들인 것이 한 예다.

둘째, 보편적으로 교환되는 가치의 차이다. 시장에서는 돈이 모든 행위의 척도로 작용한다. 반면 비시장 환경에서는 누가 어떤 의견과 욕구에 따라 활동하고 있고,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려고 하는지에 관한 정보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통화다. 이 사례에서 각 행위자가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어떤 논리적 기반하에 정보를 유통하며, 어떤 방식의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등이 법안 논의·통과 과정의 핵심을 이룬다.

셋째는 집단행동이 갖는 정당성의 차이다. 시장에서는 기업의 지배력이 중요하다. 그러니 기업은 공동행위나 정보교환을 하며 담합함으로써 지배력을 키우고 시장을 왜곡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 때문에 사회는 자유로운 시장경쟁을 위해 기업의 집단행동을 금지한다. 반면 비시장 환경에서는 기업이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안에서 관련 이해관계자들과 협력해야 성공한다. 인앱결제 방지 법안 사례에서도 법안에 대한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연합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업의 태도 변화

이러한 구조적 특성 때문에 비시장 환경의 작동 원리는 시장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시장에는 보이지 않는 손, 즉 가격을 기준으로 수요와 공급 법칙이 자동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비시장에서는 다양한 힘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각양각색의 보이는 손, 즉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서로 연합해 경쟁적으로 작동한다.

효과적인 비시장 전략 경영을 위해 기업은 비시장 환경 내 쟁점과 이해관계자들을 사회 전체의 위상에서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접근 방법을 시스템 공공업무(Systems Public Affairs: SPA)라고 부른다. 생물학에서 유래해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시스템 접근 방법을 차용한 개념이다.

SPA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기업의 태도 변화가 필수다. 기업은 비시장 환경을 타의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인식하거나 단순한 규제 집합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기업은 비시장 환경 변화를 사후적으로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선제적으로 활용해 경제적 가치와 경쟁우위,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해지면 성공적인 비즈니스 성과와 사회 혁신을 함께 촉진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안정성을 높여 기업의 주주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 또 정책 입안자, 전문가 그룹, 시민사회 등과 협력하는 과정에서 기업 이익뿐만 아니라, 공익을 위한 법과 규제의 프레임워크를 만들 수 있다. 위 사례에서도 A사와 달리 법안 통과로 이익을 얻는 다른 기업집단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사의 기업가치를 보호했다.

무엇보다 다른 조직이나 공공 부문과 협력을 일상화하고, 비즈니스 속성에 따라 비시장 환경의 제약 조건을 완화하거나 강화해야 한다. 기업은 기존의 시장전략을 혁신하는 과정에서 비시장 전략을 결합함으로써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일 수 있다. 비시장 전략 경영 시대는 이제 피할 수 없다. 성공적 실행을 위한 준거틀인 SPA를 활용해 기업들이 당면한 정치사회적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바란다. 나아가 기업과 사회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함께 높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이보형 - 리스크 진단과 대응 전략 개발, 이슈 및 위기관리 컨설팅, 퍼블릭 어페어즈 분야 전문가이자 마콜컨설팅그룹 사장. 지난 22년 동안 공공과 민간 영역의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해 전문성을 쌓아왔다. 2002년 국내 최초로 퍼블릭 어페어즈 서비스를 론칭해 수백 건의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마콜과 옥스퍼드대학이 공동으로 개발한 비시장 전략 경영 컨설팅에 기반한 시스템스 퍼블릭 어페어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2406호 (202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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