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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원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 

세계를 사로잡은 발레리노 

여경미 기자
아메리칸발레시어터가 메트포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올해 여름 시즌 공연을 시작한다. 6월과 7월 두 달간 [오네긴]을 시작으로 [울프 웍스], [백조의 호수], [로미오와 줄리엣], [초콜릿처럼 물처럼]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안주원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는 [백조의 호수]에서 ‘지크프리트 왕자’, [초콜릿처럼 물처럼]에서 ‘페드로’로 관객들을 만난다.

▎안주원씨는 2013년 ABT 세컨드컴퍼니에 입단해 2014년 메인컴퍼니 코르드 발레, 2019년 솔로이스트, 2020년 수석무용수 자리에 올랐다. 한국인이 이 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가 된 것은 발레리나 서희씨에 이어 두 번째다.
1939년 미국 뉴욕에서 설립된 아메리칸발레시어터(American Ballet Theater, 이하 ABT)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레퍼토리들을 개발하고 재능 있는 안무가들의 창작을 장려하겠다는 목적으로, 창단 이후 오랫동안 클래식발레와 모던발레의 레퍼토리 폭을 넓혀왔다.

ABT를 주도한 루이사 체이스와 오리버 스미스는 [백조의 호수], [지젤] 등 클래식발레에 충실한 무대를 선보였고 조지 발란신, 앤터니 튜더, 제롬 로빈스 등 거장 안무가들과 관계를 맺으며 모던발레의 진수를 선보였다. 탄탄한 실력을 갖춘 무용수를 선발하고 방대한 레퍼토리를 보유해,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과 볼쇼이발레단, 영국 로열발레단, 프랑스 파리 오페라발레단 등과 함께 세계 최고 발레단으로 꼽힌다. 2006년 미국 의회에서 ‘미국 국립 발레단’으로 인정받았다. 2020년 한국인이 ABT에서 수석무용수가 된 것은 2012년 서희씨에 이어 두 번째이고, 창단 이후 첫 아시아 출신 남성 수석무용수 발탁이다.

안주원 수석무용수가 발레를 시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다. 통상적으로 문화예술계에서 이름을 알린 예술인들이 취학 전부터 재능을 보인 것과 달리, 안주원 수석무용수가 발레를 하게 된 계기는 평범하다. 발레학원을 운영하던 이모가 권해 키 성장과 자세 교정을 목적으로 발레를 시작했다. 짧은 시간 안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선화예술고등학교 발레과에 입학했고 2012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부터 [파키타], [레이몬다], [라 바야데르], [돈키호테] 등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탄탄하게 실력을 쌓아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2학년 때인 2013년, 뉴욕에서 열린 유스아메리카그랑프리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유스아메리카그랑프리는 전 세계 발레단 단장들이 모여 그해에 특출한 무용수들을 발굴하는 자리다. 지난 2000년 창설된 세계 최대 규모의 발레 콩쿠르로, 발레 꿈나무들의 올림픽으로 불리며 만9~19세까지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안주원 무용수가 출전했을 때도 일본, 파리, 브라질 등 세계 각국의 무용수 7000명이 응모했고 1차 오디션 합격률이 5%에 불과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안주원 무용수는 [백조의 호수] 중 ‘지크프리트 왕자’의 바리에이션을 선보여 높은 점수를 얻었고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이 자리에서 안주원 무용수를 눈여겨본 ABT에서 ABT 세컨드컴퍼니 입단과 장학금을 제안했다. 그렇게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세계적 발레리노로서 안주원 무용수의 서막이 열렸다. 잠시 휴가차 한국에 온 안주원 수석무용수를 포브스코리아가 만났다.

탄탄한 실력을 쌓아간 발레리노


유스아메리카그랑프리 수상 이전에도 수상 경력이 무척 화려하다.

2008년 서울발레콩쿠르 금상, 2011년 동아무용콩쿠르 주니어 부문 금상, 2012년 제25회 불가리 바르나 국제발레콩쿠르 시니어 부문 3위, 2013년 제13회 유스아메리카그랑프리 파드되 부문 동상과 시니어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유스아메리카그랑프리를 수상해 ABT의 눈에 든 것은 맞다. ABT는 아카데미, 콩쿠르, 다른 발레단에서의 활동을 꾸준히 지켜본 후에 입단 기회를 제공한다.

중학교 1학년에 발레를 시작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재능이 탁월했나 보다.

갑자기 스타가 된 것이 아니라 2013년 ABT 세컨드컴퍼니 입단, 2014년 ABT 메인컴퍼니 코르드 발레 승급, 2019년 ABT 솔로이스트 승급, 2020년 ABT 수석무용수로 승급하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갔다. 그 과정에서 주역부터 서브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했다. [유령들의 모임]에서 무라사키와 [뉴 아메리칸 로맨스], [부코비나의 노래]에서 주연을 맡아 연기했다. 많은 관객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으로는 알렉세이 라트만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에서 호두까기 왕자·아라비아 남자·러시아 춤·스페인 춤, [돈키호테]의 바실리오, [신데렐라]의 카발리에 등 주요 배역을 두루 거쳤다.

ABT는 6~7월에 여름 시즌 공연을 한다. 이 시즌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다른 배역을 연기해야 할 정도로, 다양한 레퍼토리를 준비해야 해 어려움이 따른다. 무대에서 실수 없이 완벽한 무대를 선보이려면 매일 꾸준한 연습이 답인 것 같다.

몸으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보니, 무엇보다 컨디션 조절이 중요할 것 같다.

맞다. 그날의 몸 상태가 무대를 상당히 좌지우지한다. 완벽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연습하지만 내 마음과 달리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애를 먹기도 한다. 대체로 무용수에게 식단 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되지만, 나만의 비법이라면 몸에 나쁜 것은 전혀 하지 않는 것이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나 [백조의 호수]에서는 발레리나와 발레리노가 함께 춤을 추는 파드되(pas de deux)가 클라이맥스다. 발레리노는 함께 춤을 추는 발레리나를 들어 올려야 하고 연습량도 많기 때문에 지나친 식단 관리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ABT 무대의 특징이라면.

같은 작품이라도 어떤 발레단이 공연하는지, 어느 예술감독이 총괄했는지, 누구의 안무인지에 따라 작품 색깔이 달라진다. 관객 입장에서는 그런 게 작품을 보는 맛이기도 하다. 한국 발레단의 군무는 마치 하나인 듯한 일체감이 특징이지만 ABT는 다양한 인종의 무용수 80~90명이 모여 개성 있는 무대를 연출하는 게 특징이다. 여러 국가와 각기 다른 교육 시스템에서 발레를 배운 무용수들이 한 무대에 서다 보니, 최대한 많이 연습해 군무에서 미묘한 차이를 좁히려 한다. ABT의 또 다른 특징은 단원들의 다양성, 형평성이나 포용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점이다. ABT는 무용수들의 엄격한 자기 관리를 지원하고 보험이나 치료 혜택을 체계적으로 제공한다. 또 훈련과 휴식 시간의 규율을 철저히 지키며 외부 활동을 자유롭게 보장한다. 이런 ABT만의 복지가 세계 최고의 무용수들을 이곳으로 모이게 하는 것 같다.

ABT에서 어떤 무대가 가장 기억에 남는지.

ABT에서 가장 의지하는 단원을 꼽으라면, 당연히 한 살 형인 한성우 단원이다. ABT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도 한성우 단원과 함께 춘 [백조의 호수] 나폴리 춤이다. [백조의 호수]에서는 왕자의 신부 후보로 헝가리, 러시아, 스페인, 나폴리, 폴란드 국적 신부가 등장한다. 한성우 단원과 둘이서 나폴리 춤을 춘 적이 있는데, 10여 년간 무용수로 생활했던 기간 중에 나로서는 가장 의미 있는 무대였다. 세계 무대에서 두 한국인이 함께 춤췄다는 점이 자랑스러웠다. 가끔은 꿈의 무대라 할 수 있는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등에서 공연한다는 자부심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연 중 박수를 치는 것이 금기처럼 여겨진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관객들은 무대가 끝나면 박수를 치며 끝날 때까지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하지만, 미국 관객들은 하이라이트 등에도 박수를 치며 무용수와 함께 축제처럼 즐기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리여리한 청순가련형의 고전발레만이 아닌 [초콜릿처럼 물처럼]같이, 우리가 아는 스토리와 괴리가 있는 새로운 스토리도 ABT 무대만의 특징이다.

제2의 안주원을 꿈꾸는 이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어릴 때 기량을 닦으면서 대회 출전과 입상 경력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무용수가 될 것인가에 대한 준비가 더 중요한 거 같다. 당장 수상했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수상하지 못했다고 꿈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 어떤 콩쿠르에 나가든지 의연한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콩쿠르에서 1등이냐, 2등이냐는 무용단에서 크게 개의치 않는다. 평소 해외 콩쿠르나 대회 입상 경력보다는 어떤 무용수가 되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무대에 섰는데, 그런 마음가짐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앞으로 목표는.

나 역시 한 무대 한 무대에 최선을 다하며 나만의 레퍼토리를 만들어가는 무용수로 성장하려 노력 중이다. 쿠바 태생 미국 발레 댄서인 롤란도 사라비아가 롤 모델이다. 그는 쿠바 국립발레단, 휴스턴 발레단, 마이애미시티 발레단, 아메리칸 발레시어터 등 많은 무용단에서 객원 아티스트로 활동했고 2021년에는 로어노크 발레시어터의 예술감독으로 임명됐다. 해외 무대에서 ‘이 사람이 출연한다면, 이 무대는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발레리노로 성장하고 싶다.

- 여경미 기자 yeo.kyeongmi@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406호 (202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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