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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우가 만난 예술계 파워리더(27) 이예린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부원장 

섬세한 감성과 절제된 이성으로 빚은 소리 

정소나 기자
음악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마음에 평화와 위안을 주는 힘을 가졌다. 온 세상이 초록으로 반짝거리는 신록의 계절. 푸른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처럼 청아하고 영롱한 플루트 선율로 일상에 지친 마음을 맑게 정화해주는 플루티스트 이예린 교수를 만났다.

▎플루티스트로서 국내외 다양한 연주 일정을 소화하고, 예술 인재 육성·후원 사업까지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예린 교수.
인간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수많은 악기 중 관악기는 일반적으로 파이프 형태의 악기에 손으로 구멍을 막고 숨을 불어넣을 때 나는 여러 소리를 통해 음을 표현한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친숙한 플루트는 최고 음역을 연주하는 목관악기이며, 청초하고 섬세한 선율을 노래한다. 멜로디가 높은 음역으로 치솟아 오를 때는 크리스털처럼 맑고 청아한 음색을, 낮은 음역에서는 풍부하고 농익은 음색을 내는 반전 매력을 뽐내며 사랑받는, 오케스트라 앙상블에서 한 축이 되는 악기다.

정승우 이사장이 만난 6월의 아티스트는 ‘섬세한 감성과 절제된 이성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연주자’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부원장이자 기악과 교수로 재직 중인 플루티스트 이예린 교수이다.

그는 만 14살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정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소르본대학에서 음악학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리옹 국립 고등음악원에서 플루트계의 최고 권위자 필립 베르놀드 교수, 독일 뮌헨 음대에서 거장 안드라스 아도리앙 교수를 사사하며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쳤다. 귀국 이후 수원시립교향악단 수석 연주자, 예술의전당 아티스트로 발탁되고 서울 신인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주목받았다. 또 KBS교향악단, 수원시향, 경기 필하모닉, 대구시향, 청주시향, 프라임 하모닉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하고, 프랑스 Ars Antonina협회 초청 독주회, 한국·튀르키예 수교 50주년 기념 안탈리아 국립 오케스트라 협연, 대관령 국제음악제 ‘저명 연주가 시리즈’ 등에 초청되어 호평을 받으며 수많은 국내외 무대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4년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첫 플루트 전임교수로 임용돼 순수 국내파 재학생들을 차이코프스키, 프라하 봄, 고베, 센다이, 막상스 라리외 등 국제 유수 콩쿠르에 내보내 입상하게 하는 등 교육자로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인터뷰 장소에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이예린 교수의 음반 ‘Flashback(회상)’이 잔잔하게 울러 퍼졌다. 플루트만이 표현할 수 있는 청초한 선율에 깊이 있고 다채로운 음색, 섬세한 표현력을 곁들인 연주는 초여름 푸른 하늘처럼 맑고 청량한 소리로 공간을 채웠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최초의 총장 직선제 시행 이후 음악원 부원장으로 선임되었다.

2021년 당시 음악원장이던 김대진 교수님이 한예종 제9대 총장으로 당선되신 후, 연이어 치른 선거에서 첼리스트 이강호 교수님이 음악원장으로 당선되시면서 내가 부원장을 맡게 됐다. 부원장은 음악원에서 엄마 같은 자리다. 우리 음악원의 젊은 음악가들이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인정받을 수 있도록 작은 문제부터 꼼꼼히 살피며 뒷바라지에 힘쓰고 있다.

지난해 열린 음악원의 포르테 페스티벌이 화제를 모았는데.

2023년 음악원 개원 30주년을 맞아 크고 작은 연주와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그중 10월 4일부터 7일까지 메인 행사로 기획한 포르테 페스티벌(Forte Festival)이 개최됐다. ‘강점’이라는 의미의 ‘Forte’처럼 한예종 음악원만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구성과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축제 기간 동안 음악원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K-Arts 오디션을 시작으로 음악학과가 주관한 심포지엄, 성악과의 음악회, 작곡과의 작품 발표 연주회, 고음악 연주회, 음악원의 대표 오케스트라인 크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 등 수준 높고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 음악원의 지나온 3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비전이 제시된 의미 있는 행사로 기억된다.

K-Arts 오디션에서 세계 음악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아티스트가 발굴되고 있다.

올해로 5회를 맞이하는 K-Arts 오디션은 내가 음악원 부원장으로 부임하고 맡았던 첫 번째 프로젝트라 개인적으로 애정을 가지고 진행하는 행사다. 건반, 성악, 현악, 타악 부문에서 치열한 내부 오디션을 거쳐 각 분야의 우승자가 발탁되면 지휘자, 공연기획자, 공연장 종사자, 방송국 PD, 기자 등 외부 전문가로 심사위원단을 구성해 갈라 형식의 본선 무대를 준비한다. 거기서 우승자로 선정된 학생들에게는 해외 오케스트라 협연과 학교 내외부의 기획 연주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기회가 주어진다.

아직 역사는 길지 않지만 피아니스트 박재홍, 바이올리니스트 김시준, 첼리스트 이동열·박상혁, 클라리네티스트 서예빈, 플루티스트 유채연·김예성 등이 선발돼 실력 있는 연주자들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음악원 학생들에게는 꼭 한 번쯤은 도전해보고 싶은 꿈의 무대이기도 하다.

다른 관악기에 없는 플루트만의 매력은 뭘까.

플루트는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과 함께 목관악기군에 속하지만 나무뿐만 아니라 특성이 다른 여러 가지 소재를 활용해 폭넓고 다양한 음색을 연출할 수 있다. 다른 관악기와 달리 입에 물고 연주하는 리드를 사용하지 않고 악기 안으로 불어넣는 바람과 마우스피스 밖으로 빠져나가는 바람 사이의 균형을 이용해 소리를 만들어낸다. 그야말로 ‘소리 반, 공기 반’으로 색다르고 매력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것이 플루트만의 매력이자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왕성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연주를 해오면서 보람을 느끼거나 어려운 순간도 많았을 것 같은데.

좋은 무대에 설 기회가 많이 주어져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무대에 설 때마다 배워나가고 있기에 연주자를 꿈꾸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개인적으로 음악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즐거움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가치중립적인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음악을 하면서 받았던 기쁨과 위안이 나의 연주를 통해 청중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때 큰 보람을 느낀다.

반면 나 같은 연주자들에게는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이 필연적으로 동반된다. 혼자 연습하며 외로운 순간들도 버텨내야 한다. 가족과 학생들, 내게 주어진 무대 사이에서 삶의 균형을 맞춰나가는 일이 늘 쉽지 않은 선택의 연속이기에 지칠 때도 있다.

얼마 전 연주를 마치고 한 청중에게서 “이 순간 내가 살아 있고, 이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커다란 행복이라고 느꼈다”는 감상평을 전해 들었다. 벅찬 감동과 함께 음악을 시작할 때 가졌던 초심을 되새기며 연주마다 더욱더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승우 이사장이 이예린 교수를 만나 한국 클래식 음악계와 음악 교육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화음과 음색으로 구성된 전통적인 연주도 있지만, 이안 클라크의 ‘줌 튜브’ 같은 현대음악에는 날숨의 박자와 강약 등 테크닉 위주로 구성된 곡도 있다. 특별히 선호하는 스타일은.

시대와 장소, 다양한 시조의 구분을 불문하고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곡이 정말 많기 때문에 단순히 어떤 스타일을 선호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현대 작곡가 중에서도 특별히 질문에서 언급한 이안 클라크는 뛰어난 플루티스트로서 악기의 특성과 기술적인 면을 매우 잘 이해하는 작곡가이기에 그의 작품들은 조금은 특별한 것 같다. 색다른 테크닉을 활용해 이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신비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클라크의 작품을 공부하고 연주하면서 큰 기쁨을 느끼고, 청중에게도 많은 호응을 얻곤 한다.

현악기는 오래된 악기일수록 더 비싸고 소리가 좋다고 하던데, 관악기도 마찬가지인가.

일반적으로 오래된 현악기는 제작 과정에서 사용된 재료의 특성으로 인해 더 풍부하고 깊은 음색을 내며, 예술적 가치가 높아지기도 한다. 반면 관악기는 악기 자체의 구조와 재료에 따라 소리의 품질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몇백 년이 지나도 연주가 가능한 현악기에 비해 관악기의 수명은 보통 15~20년 정도로 짧은 편이다. 주로 악기의 상태와 유지 보수 여부, 사용하는 연주자의 습관과 제작된 재료의 품질에 따라 수명이 달라진다. 물론 예외도 있다. 최근에 테스트를 해본 악기 중 제작된 지 무려 40년이 된 악기가 있었는데, 너무나 관리가 잘되어 있고, 소리의 길이 탁월하게 잘 나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플루트의 종류도 생각보다 다양한 것 같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C조 플루트, 한 옥타브 높은 피콜로플루트, 저음역대의 알토플루트, 베이스플루트, 콘트라베이스 플루트 등 음역대가 다양한 플루트를 만날 수 있다. 나무, 금, 은, 백금, 플라스틱 등 악기를 제작할 때 사용하는 소재를 다양하게 조합해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악기들이 만들어진다.

키에 구멍이 뚫려 있는 플루트(오픈 키)와 막혀 있는 플루트(클로즈드 키)의 차이가 뭔가.

두 악기 모두 연주할 때 손가락으로 키를 닫으며 음정을 만든다. 오픈 키의 경우 추가로 뚫린 작은 구멍으로 음정을 조절해서 더 세밀한 간격의 미분음을 만들 수 있고, 막혀 있는 키에 비해 더욱더 섬세한 울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열려 있는 키를 꼭 막으며 소리를 내야 하기에 손가락 위치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클로즈드 키의 경우 키가 모두 막혀 있기 때문에 손가락 위치를 신경 쓰지 않아도 소리가 새지 않아 입문자나 초보자가 연주하기에 좋다.

한국의 음악 영재들이 전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음악 영재교육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은.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에서도 ‘K 클래식’이 높은 평가를 받으며 훌륭한 연주자가 많이 배출되고 있어 너무나 자랑스러운 마음이 든다. 이와 동시에 아직 준비되지 않은, 너무 어린 스타들이 배출되는 것에 대해서는 늘 조심스러운 마음이 있다.

단순히 악기를 다루는 뛰어난 기술뿐만 아니라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기반으로 인성, 창의력과 유연성, 소통 능력 등 다양한 덕목과 리더십을 갖추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예술가를 양성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이를 위해 필요한 커리큘럼과 인성, 소통 교육 등에 관해 많은 교수님과 각자의 경험을 나누며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음악 영재들이 음악적 재능과 열정을 바탕으로 창의성, 자기 표현력, 인지 능력, 문화적 감수성을 계발하고 자신의 재능과 독창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교육자들의 역할이다.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의 음악, 기타 예술 분야를 경험하고 이해하는 작업을 통해 미래 예술가들의 전인적 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교육 현장에서도 최선을 다해 도울 생각이다.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당장 6월 2일에는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는 제10회 계촌클래식 축제에서 온드림 앙상블과의 협연이 예정되어 있다. 6월 7일에는 2024년 서울 국제 시각장애 예술인 뮤직 페스티벌&아트마켓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레전드 교수음악회에 참여한다. 7월에는 청주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이 계획되어 있는 등 올해 연주 일정이 빽빽하게 잡혀 있다.

지금보다 더 배우고, 더 발전하고, 더 최선을 다해서 연주가 좀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정승우 -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리=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_ 사진 임익순 객원기자

202406호 (202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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