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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찬이 만난 혁신 리더(28) 김민지 브이드림 대표 

누구라도 일할 수 있는 세상 

장진원 기자
국내 장애인 수는 정식 등록자만 265만 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실제 노동 현장에 투입돼 일하는 장애인은 채 1.5%도 안 된다. 김민지 대표가 설립한 브이드림은 일할 수 있는 장애인과 이들을 채용할 기업을 연결했다. 2018년 창업 후 지금까지 브이드림을 통해 일하는 기쁨을 누리는 장애인은 3000여 명이 넘는다.

▎김민지 브이드림 대표가 내놓은 장애인 HR 서비스 ‘플립’을 통해 기업에 고용돼 ‘일하고 있는’ 장애인은 3000여 명에 이른다.
국내 장애인 수는 265만 명(2022년 기준)에 달한다. 전체 인구의 5.2%로, 10명 중 2~3명이 장애인이라는 의미다. 국가에 등록된 장애인만 그렇다. 미등록 장애인까지 더하면 5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국민 10명 중 1명꼴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 가운데 ‘일할 수 있는’ 장애인은 얼마나 될까? 무려 73%에 달한다. 사고 등 후천적 원인에 의한 장애인도 전체의 88.1%다.

‘장애는 타고난 핸디캡’이라는 왜곡된 인식은 이 같은 통계 앞에서 무너진다. 전체 국민 10명 중 1명이 장애인이고, 이들 대부분이 후천적으로 장애를 얻었고, 100명 중 70명 넘는 장애인이 고용과 근로가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로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장애인은 전체의 1.41%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난 2018년 김민지 대표가 창업한 브이드림은 장애인을 위한 ‘세상에 없는 솔루션’을 내놓았다. 장애인이 고용과 노동에서 철저하게 소외돼 있다는, 누구나 알지만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를 솔루션으로 풀어내겠다는 비전에서다. 브이드림이 선보인 장애인 인사관리(HR)와 직무 매칭 시스템, 원격근무 솔루션으로 취업에 성공한 장애인은 현재 3000명이 넘는다. 김 대표는 지난 2018년 잘나가던 IT 기업 임원 자리를 박차고 나와 장애인을 위한 스타트업 창업에 나섰다.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대표가 김 대표를 만나 장애인 전문 HR 솔루션 개발과 창업에 나선 이유를 물었다.

2018년 브이드림을 창업했다. 이전에는 어떤 경력을 쌓았나.

창업 직전까지 부산 IT 기업인 제로웹에서 임원으로 일했다. 국내에서 모바일 홈페이지를 처음 만든 회사로, 데이터에 기반해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한 소프트웨어 회사다. 초창기 멤버로 참여해 7년 정도 열심히 일했다.

원래 전공이 IT 분야였나.

전혀 아니다. 미술을 전공했다. 졸업 후엔 퍼스널컬러 이미지메이킹 분야에서 오래 일했다. 그러면서 제로웹 영업팀 직원을 비즈니스 관계로 만났는데, 이분이 함께 일하자며 스카우트를 제의했다. 결국 자리를 옮겼고, 기획 파트에서 일을 시작했다. 영업에 재능이 있었는지, 이후 굵직한 투자를 유치하면서 보직이 아예 영업으로 바뀌었다. 웬만한 공공기관과 기업 영업, 대외 활동을 도맡았다. 당시 영업 현장에서 만났던 분들이 창업할 때도 큰 도움을 주셨다. 제로웹은 이사 커리어를 끝으로 퇴사했다.

평소 접했던 분야도 아닌데, 장애인 HR 솔루션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클라이언트들을 만날 때마다 “장애인고용부담금이 몇십억원 나왔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하소연을 자주 들었다. 우리나라는 사업장 규모에 따라 일정 비율의 장애인을 고용해야 한다. 장애인의무고용제도다.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기업부터 의무적으로 장애인을 채용해야 하고, 100인 이상 기업부턴 장애인을 채용하지 않으면 부담금이 발생한다. 그런데 국내 기업의 78%가 부담금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상시근로자가 300명이면 부담금이 4억원 가까이 된다. 민간기업은 100명당 3.1%, 공공기관은 3.6%를 반드시 채용해야 한다. 2025년부터는 ESG 경영평가에 반영된다. 상장기업 공시의 무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공공 부문은 경영평가에 장애인 의무고용 현황을 반영한다.

기업의 애로만 듣고 창업에 나선 건 아닐 것 같다.

오지랖이 넓어서다.(웃음) 어릴 적부터 주변에 장애인이 많았다. 제일 친한 친구도 후천적 장애를 가졌고, 가족 중에도 장애인이 있다. 친한 사촌언니도 모야모야병에 걸려 50대에 시각장애를 얻었다. 나보다 컴퓨터를 더 잘 다루는데 취업이 안 되는 경우도 많았다. 자연스럽게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장애인 특화 비즈니스를 선택한 계기는 무엇인가.

앞서 말했듯이 기업 관계자들의 하소연을 자주 접하면서다. 장애인을 채용하고 싶어도 그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어느 정도의 장애를 가졌는지, 장애인을 채용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등 장애인 HR에 관한 정보가 거의 전무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니 아깝지만 부담금을 내고 마는 곳이 허다했다.

세상에 없던 비즈니스, 그것도 철저히 소외된 분야니 어려움이 컸겠다.

‘맨땅에 헤딩’ 그 자체였다. 전국의 특수학교, 복지기관 등 안 가본 곳이 없다. 지금은 30만 명에 이르는 전국 장애인 인재풀을 확보했다. 기업도 발로 뛰면서 조사했다. 전국 500개 기업을 전수조사했는데 “장애인용 설비를 따로 구비해야 하고, 채용 시 의사소통도 어려우니 차라리 부담금을 내는 게 낫다”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장애인 의무고용 대상 기업 중 78%가 실제 고용 대신 부담금을 선택하는 이유다. 2022년에 걷힌 부담금만 1조8000억원에 달한다. 국내 굴지 대기업 한 곳에서만 400억원 넘는 돈을 납부했다.

창업 초기, 사업을 어떻게 구체화해갔는지 궁금하다.


▎김민지 대표와 최영찬 대표가 발달장애인이 그린 미술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인사관리 경력과 경험을 토대로 2018년부터 기업이 장애인을 채용할 때 겪는 애로 사항을 직접 발로 뛰며 조사했다. 500곳이 넘는다. 초기 서비스 기획 단계에서 장애인 근로자의 재택근무가 꼭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초반에는 장애인과 기업을 연결하고, 일일이 (재택근무) 출근 도장을 수기로 받는 등 정말 맨땅에 헤딩하는 수준이었다. 이후 장애인의 호응과 기업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고, 자동화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2019년 1월 베타서비스를 시작했고 4월 들어 정식 서비스를 론칭했다. 장애인 특화 인사관리 플랫폼 플립(Flipped)이다.

개발 과정이 궁금하다.

일할 수 있는 장애인이 전체의 73%에 달한다. 국내 생산인구는 50년 뒤 현재의 절반으로 줄어들 걸로 예상된다. 장애인 고용 확대가 국가경제에도 필수라는 걸 확신했다. 우리는 제일 먼저 장애인들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파악해 분류하는 데 집중했다. 우리 시스템에 등록해 직무 매칭을 받으려면 처음에 80가지 항목에 대한 테스트를 받는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한 장애인 AI직무매칭 플랫폼 사업을 우리가 따낸 결과다. 이에 따라 일할 수 있는 장애인을 크게 어시스턴트, 제너럴리스트, 스페셜리스트로 분류했다. 각 분류에 따라 사무보조부터 디자인, 개발, 행정 등 세부 분류도 완성했다. 플립은 이를 기반으로 제공하는 인사관리 서비스다. 2021년 6월에 특허등록을 완료했다. 장애인들의 노무, 근태는 물론 웹 접근성을 강화해 굉장히 쓰기 편리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들을 채용하는 대기업들도 우리 시스템을 그대로 쓴다. 다자간 화상채팅, 쪽지 같은 실시간 소통이 플립에서 다 이뤄진다. 장애 유형별, 기업 맞춤형 직무 개발 플랫폼 역할도 하고 있다. 장애인과 이들을 채용한 기업이 함께 이용하는 B2B SaaS로 이해하면 쉽다.

실제 장애인 채용 사례를 소개해줄 수 있나.

우리 서비스를 이용해 채용에 성공한 장애인이 3000명을 넘어섰다. 홈플러스가 좋은 예다. 현재 장애인 70명이 챗봇 서비스, 영상 편집 부문에서 일하고 있다. 야놀자는 우리 시스템을 도입하기 전에는 부담금을 엄청 내던 기업이었는데 지금은 고용장려금을 받는 기업으로 거듭났다. 기업과 장애인 모두 만족도가 높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구축하려면 엄청난 양의 빅데이터가 필요하다. 이런 데이터는 자동차, 저런 데이터는 신호등이라는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이를 데이터 레이블링이라고 하는데, 굉장히 반복적인 업무다. 이런 작업에서는 집중력이 높은 자폐 장애인들이 큰 메리트가 있다. 최근 한 챗봇 제작 기업이 비장애인 아르바이트 30명을 전부 장애인으로 교체한 사례도 있다.

기업이 장애인을 채용해 얻는 이익은 무엇인가.

특정 부문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업무 능력에 차이가 없다면 장애인을 채용하는 게 비용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상시근로자 400명 기준으로 장애인 12명을 고용하지 않으면 1년에 3억5000만원이 넘는 돈을 부담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그런데 중증장애인 1명을 채용하면 경증장애인 2명 채용으로 인정해주는 제도가 있다. 우리 시스템으로 중증장애인 6명을 고용하면 인건비와 시스템 이용료 등을 모두 합해도 1억원 초반대에 해결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소아마비 같은 뇌병변장애는 인지능력이 손상된 게 아니다. 이런 분들에게 맞춤형 업무 환경만 제공하면 비장애인과 비교해 손색없이 일할 수 있다. 우리가 그런 분들을 발굴해서 시스템과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실제로 기업 만족도도 엄청나게 높다. 장애인 채용이 번거롭다는 기업의 인식 자체도 크게 바뀌었다.

플립 외에 주요 비즈니스는 어떤 게 있나.

장애인 특화 재택근무 시스템인 플립에서 매출의 80%가 나온다. 플랫폼 사용료로 1년 계약 시 1인당 50만원을 받는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장애인을 위한 업무 교육 시스템도 완료했다. 몽골은 우리보다 더 강력한 장애인의무고용제도가 있다. 부담금을 내지 않으면 직원들 월급에서 갹출할 정도로 엄격하다. 얼마 전 몽골 재무협회 관계자들이 방문했는데 “어메이징한 시스템”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2022년에는 베트남 노동부 산하 장애인지원센터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장기적으로는 디지털 안심케어·커뮤니티 플랫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케어·통합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싶다. 98% 이상이 재택근무다 보니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 커뮤니티가 엄청나게 활성화되고 있다.

창업 7년 차에 이런 성과들을 이뤄낸 게 대단하다.

개발자 출신 CEO들이 약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영업이다. ‘들이대’가 안 된다.(웃음) 창업 초기엔 웬만한 아웃바운드 콜을 내가 다 처리했다. 페이스북을 보고 휠체어 탄 프로필이 있는 분을 찾아 하루 50명 넘게 친구 신청을 했다. 우리 사업 얘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올렸다. 이런 게 브이드림의 아이덴티티다. 지금도 직원들에게 “어느 외판원 못지않게 지나가는 길에 얼굴 들이밀고 인사하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철저히 현장형 실행 중심으로 움직이는 회사다. 지금 운영하는 시스템도 주기적으로 설문조사를 받아 리뉴얼한다. 장애인과 기업, 즉 고객들이 우리 서비스를 좋아하느냐 아니냐가 사업의 최우선 방향이다. 덕분에 여기저기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너무 많이 듣는다. 첫 월급을 받아 떡을 보내주신 분도 있다. 스스로도 너무 행복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 최영찬 - 선박과 플랜트 분야 제조업을 영위하는 선보공업의 차세대 경영인이다. 제조업체들이 스타트업 및 투자 생태계와 어떻게 공존하고 미래 사업을 만들지 고민하면서 선보엔젤파트너스와 기업 연합형 CVC인 라이트하우스를 창업했다. 200여 개 스타트업에 투자했으며, 컴퍼니빌딩 프로젝트와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을 공동경영 형태로 성장시키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창업한 2개 법인과 별도로 3개 프로젝트의 공동대표로도 활동하면서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_ 사진 최기웅 기자

202409호 (202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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