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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배 전 SK그룹 부회장 

전략은 잊으라고 있는 것 

노유선 기자
김신배 전 SK그룹 부회장은 국내 유수 대기업을 무대 삼아 ‘통신 전략가’로 활약했다. 그가 ‘코칭 전도사’로 제2의 인생을 열었다. 그의 비즈니스 코칭 강연을 듣고자 각종 협회와 포럼, 대학에서 러브콜을 보낸다. 김 전 부회장에게서 한 수 배우고자 하는 경영자가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 포브스코리아가 그 한 수를 전한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기업 3사를 두루 거친 그는 어디서든 ‘전략가’로 통했다. 13년간 삼성맨으로, 21년간 SK맨으로, 이후 포스코 사외이사로 지내는 동안 그의 활약상은 언제나 빛났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달랐다. ‘고독한 승부사’였던 그는 이같이 고백했다. “운이 좋은 덕분에 오랫동안 경영자로 일했지만 외로웠어요. 조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 최고경영자(CEO)라지 않습니까.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어요.”

김신배(69) 전 SK그룹 부회장의 이야기다. 그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서 수많은 CEO를 돕는 데 매진해왔다. 누구보다 그들의 심정과 고민을 잘 알기 때문이다. 김 전 부회장은 ‘비즈니스 코칭’을 주제로 활발하게 강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2018년 하버드·메디치 포럼에서 김 전 부회장이 발언한 내용은 CEO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된다. 당시 그는 ‘질문 경영’을 강조하며 “상황이 바뀔 때마다 적절한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이 경영”이라고 설파했다. 한국경제인협회 [차세대 CEO 아카데미] 강연을 앞둔 그는 여전히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소통의 리더십으로 SK그룹을 이끌었던 김 전 부회장은 ‘준비된 멘토’이기도 했다. 그는 “코치 자격 과정도 이수했다”며 “신임 CEO나 후보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경영상 고민으로 밤을 지새우는 현직 CEO에게는 행운이다. 김 전 부회장이 멘토를 자처하지 않고 은둔해 있었다면 그들은 몇 날 며칠이고 고뇌했을 것이다. 그는 “협회나 대학 강연이든 포럼이든 요청이 오면 거의 다 간다”며 “내가 아는 걸 가능한 한 많이 전달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 전 부회장을 혹평하는 사람은 없다. 호평만 자자할 뿐이다. 신수정 KT 부사장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김 전 부회장을 ‘직장 최고의 상사’라고 치켜세웠다. 수년 전 김 전 부회장은 신 부사장에게 “최고의 사람들을 키우거나 확보하지 못했다면 대표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조언해 신 부사장이 크게 감동했다는 후문이다. 지난 8월 12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본사에서 김 전 부회장을 만났다. 나이에 비해 젊고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매우 꼼꼼했다. 자신의 경영 철학과 경영자의 자세, 오늘날 필요한 리더십을 세세하게 설명했다. 그와 함께 과거로 돌아가 경영자로서의 발자취를 따라가봤다. 그가 왜 전략가로 불리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시간이었다. 김 전 부회장은 코칭에 대한 특별한 애정도 밝혔다.

전쟁터에서 백전백승하는 비책


삼성과 SK, 포스코를 모두 경험한 김 전 부회장은 기업 세 곳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각 기업을 관통하는 경영 철학과 조직문화, 리더십 스타일을 묻는 질문에, 그는 “차이점이 극명하다”며 “기업의 근간인 조직문화를 만드는 창업자의 철학은 각 기업에 도도히 계승되고 있다”고 답했다.

“업종에 따라 비즈니스 문화가 다를 수밖에 없죠. 기업은 주력 사업에 맞는 옷을 입고 있어요. 기술 개발이 최우선인 삼성에서는 인재가 가장 중요합니다. 달리 ‘관리의 삼성’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인재를 철저하고 치밀하게 챙기는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어요. 포스코는 프로세스에 참여한 모든 구성원의 팀워크를 중시합니다. 끈끈한 정은 애사심으로 이어집니다.”

가장 오랫동안 경영 일선에서 활동한 SK에 대해서 김 전 부회장은 말을 아끼지 않았다. SK는 2대 회장인 고 최종현 전 회장의 경영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최 전 회장은 ‘Super Excellent’라는 말을 자주 언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출범한 SK 최고협의기구 수펙스(SUPEX)추구협의회도 이 말의 앞 글자를 땄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SK 계열사 CEO들이 모여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협의체다. 김 전 부회장은 “SK는 제조업으로 시작했지만 서비스업 비중이 커지고 여러 차례 굵직한 인수합병(M&A)을 거쳐 조직문화가 유연해지고 토론 문화가 정착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SK는 대한석유공사(1980년)와 한국이동통신(1994년), 신세기통신(2002년), 하나로텔레콤(옛 하나로통신·2008년), 하이닉스반도체(2012년) 등을 인수하면서 몸집을 키워왔다. 김 전 부회장은 “여러 기업이 합쳐지면서 서로 다른 문화를 유연하게 수용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며 “다양함을 인정하고 포용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SK는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통신업계에서 타고난 전략가로 통하는 김 전 부회장에게 ‘전략가에게 필수적인 역량’을 물었다. 그는 “꼭 말하고 싶은 이야기”라며 미소로 화답했다. 김 전 부회장은 세 가지 역량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첫째, 실행력과 디테일에 답이 있어요. 물론 전략은 필요하죠. 하지만 전략을 짜는 순간 그 전략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전략에 매몰되어 있으면 안 됩니다. 시장은 살아 있는 생물이고 경쟁사도 금세 전략을 눈치채기 때문이죠. 실행하며 디테일을 채우고 전략을 진화해나가야 합니다. 또 컨설팅업체의 전략에 너무 의존하지 않길 바랍니다. 실행력은 컨설팅업체가 아닌 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김 전 부회장은 두 번째 필수 요소로 ‘서프라이즈(surprise)’와 ‘스피드(speed)’를 꼽았다. 그는 “고금을 불문하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핵심은 이 두 가지”라며 “놀라운 혁신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추진력이 승리를 이끈다”고 주장했다.

“예상치 못한 전략으로 빠르게 승부수를 띄우면 상대편은 혼란에 빠져 전열이 흩어지고 맙니다. 그러면 게임은 끝납니다. 모든 게임이 그래요. 스피드는 과감한 추진력을 뜻하는데, 일찍(early) 빠르게(fast) 자주(frequently) 혁신을 시도하는 자만이 승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시행착오가 있다면 이것도 빨리빨리 해결해나가는 거죠. 실수나 실패가 발생하면 거기서 무엇을 배울지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실수한 구성원을 질책하면 아무도 새롭게 시도하려고 나서지 않겠죠.”

그는 시장 변화에 따라 기회와 위협을 알아내는 통찰력도 중요하다고 봤다. 김 전 부회장은 오늘날 CEO에게 “의문과 의심은 통찰력을 키우는 지름길”이라며 “세상의 통념과 선입견을 계속 의심하면서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항상 변화와 혁신을 준비하되, 회사가 가진 자원과 강약점을 정확히 파악해 각종 시나리오에 대비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경영은 양손으로 하는 종합예술


▎‘코칭 전도사’로 변신한 김신배 전 SK그룹 부회장은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코칭을 필수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SKT 대표와 SK C&C 대표, SK그룹 부회장 등 오랜 기간 수장(首長)으로서 기업을 이끌었던 그에게 경영이란 무엇인지 묻자 “별다를 게 없다”는 다소 엉뚱한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설명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김 전 부회장은 “기업경영이나 가족관계나 인생살이는 다 똑같다”고 단언했다. 오랜 경험에서 나온 묵직한 울림이자 지혜였다. 그는 “사람을 대할 때 내 관심사와 욕구, 어젠다만 고집하지 말고 상대의 것도 인정해야 한다”며 “우리는 어디서든 혼자가 아닌 조직 안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구성원에게 쓴소리를 하지 않을 수는 없겠죠. 항상 듣기 좋은 말만 할 수는 없습니다. 요즘 CEO 중에는 쓴소리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쓴소리를 해가며 오래된 경륜에서 나오는 지혜와 교훈을 구성원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칭찬과 공감만이 능사가 아니에요. 다만 쓴소리를 할 때는 구성원이 자신을 위한 말이라고 믿어줄 만큼 신뢰가 구축돼 있어야 합니다.”

종합하면 김 전 부회장의 경영 철학은 구성원에게 관용을 베풀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자에 무게중심을 두되 두 가지 방식을 조화롭게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장 불이 났는데 토론할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라며 “비상시엔 카리스마 있는 명령과 지시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책상을 손으로 탁 치며 “경영은 상황에 따라 적합한 소통 방식을 취하는 종합예술”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김 전 부회장의 눈에 오늘날 활동 중인 CEO는 어떻게 비칠까. 그들에 대한 평가를 요청했다. 김 전 부회장은 “이전 세대와 비교해 요즘 CEO는 개성이 뚜렷하고 자기표현에 능숙하며 글로벌 역량도 탁월하다”며 “신기술과 신사업에 대한 이해도도 높은 편”이라고 칭찬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아쉬운 점을 언급하는 시간은 더 길었다. 김 전 부회장은 그들에게 이른바 ‘양손 경영’에 힘쓰고 조직문화를 챙길 것을 주문했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맞는 말입니다. 창업과 M&A, 신사업 기획도 중요하지만 넥스트 스텝인 운영 최적화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업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는 색다른 아이디어와 신기술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구성원을 끌어모으는 리더십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한 손으로는 기술과 경영환경이 격변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맞게 신속하게 프로젝트를 개선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윤리의식을 기반으로 조직을 운영해야 합니다.”

오늘날 기업의 조직문화에 대해선 “시급한 당면 과제”라고 비판했다. 김 전 부회장은 “기업의 성패는 대부분 전략의 실패가 아니라 조직문화의 실패에서 비롯된다”며 “다수 기업이 조직문화 혁신을 나중에 해도 되는 과제로 미뤄두는데, 이는 6개월 내에 못 하면 영원히 못하는 일이다”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어 “리더는 구성원의 니즈는 무엇이고 그가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이며 그 과정에서 마주한 도전은 무엇인지 물어봐야 한다”며 “구성원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내면에 있는 진짜 고민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도와줄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먼저 물어보는 것이 핵심이에요. 그리고 도와주려면 제대로 도와줘야 합니다. 도와주고 나서도 구성원에게 일이 잘 해결됐는지 다시 물어봐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구성원이라도 리더에게 마음을 열기 마련입니다. 이에 감동한 구성원은 또 다른 구성원을 같은 방식으로 돕게 되겠죠. 역지사지의 선순환이 있어야 조직이 건강해지고 뭘 해도 잘되는 조직이 됩니다.”

난쟁이를 어깨 위에 올려라

약 21년간 몸담았던 SK에서 얻은 추억도 김 전 부회장에겐 소중한 자산이다. 그는 LG가 고배를 마신 하나로통신 인수에 성공했고, SK그룹의 숙원 과제였던 SKC&C 코스피 상장에도 성공했다. 하나로통신 인수에 대해 그는 “때를 기다리다가 2008년 1월에 마치 전광석화처럼 인수했다”며 “SKT 입장에서 하나로통신 인수는 매우 간절하고 절박한 과제였다”고 회고했다. 당시 SKT는 모바일 시장 점유율 52%를 기록했지만 타사 유선 망을 빌려 쓰는 터라 유선 서비스에서는 취약했다고 한다.

김 전 부회장의 활약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8년 찾아온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2009년 1월, 김 전 부회장은 SK C&C CEO(부회장)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그의 임무는 몇 년째 못 하고 있는 코스피 상장이었다. 이에 그는 전 직원 설득에 나선 결과 그해 11월 SK C&C는 마침내 상장에 성공했다. 이 밖에도 김 전 부회장은 1999년 SKT 수도권지사장을 맡아 매출을 큰 폭으로 올렸다. 그 성과를 인정받아 이후 신세기통신 인수단장으로 낙점되기도 했다. 당시 그의 활약은 SKT 가입자 1000만 시대를 여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전 부회장의 좌우명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선 난쟁이가 더 멀리 본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그가 생각하는 올바른 경영자의 자세가 함축돼 있다. 김 전 부회장은 “거인이 힘으로 제압하면 난쟁이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갈 엄두도 못 낼 것”이라며 “거인이 난쟁이를 어깨에 올려줘야만 함께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영자도 지시와 명령만 할 것이 아니라 구성원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들에게 동등한 발언 기회를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내용은 그의 번역서 [아웃워드 마인드셋]에도 담겨 있다. [아웃워드 마인드셋]에는 이 같은 대목이 있다.

“리더라면 조직에 미션을 제공하고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맞지만, 겸양을 갖춘 훌륭한 리더라면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직원들이 스스로 상황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 29쪽

최근 그가 강조하는 코칭도 이와 다르지 않다. ‘코칭전도사’답게 김 전 부회장은 인터뷰 사이사이 코칭의 중요성을 자주 언급했다. 꽤 오래전부터 코칭 활동을 해온 그에게 계기를 묻자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SKT 대표로 5년간 일했어요. 이른바 Beyond Telecom, 통신사업 이후에 무엇을 할지 고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플랫폼과 애플리케이션, 아이폰 등 새로운 기술이 쏟아지는 겁니다. 통신업계에 오랫동안 몸담아왔지만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기술이었어요. 도저히 제가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이란 생각과 함께 젊은 구성원들이 저보다 잘 알겠구나 싶었죠. 그렇다면 대표인 제가 어떻게 그들을 리드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때 코칭에 눈을 떴죠.

코칭은 상대방에게 좋은 질문을 던져서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좋은 질문을 받으면 잠재된 역량을 끌어내 실력을 최대치로 발휘할 수 있어요. 또 코칭은 축적된 경험에서 나온 지혜를 전해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비즈니스 코칭도 마찬가지예요. 리더가 공동의 목표를 향해 유능한 구성원과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돕는 거죠.”

인터뷰 말미에 김 전 부회장은 역지사지를 다시 언급했다. 그는 “오늘날 한국 사회 문제 대부분이 ‘역지사지의 선순환 구조’가 막혔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본다”며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코칭을 필수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당부의 말을 남겼다.

※ 약력 - 1978년 삼성물산
1983년 삼성전자
1995년 한국이동통신(SKT 전신) 사업전략 담당
2001년 SKT 전략기획부문장
2004년 SKT 대표이사
2009년 SK C&C 대표이사
2011년 SK그룹 부회장
2017년 포스코 사외이사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409호 (202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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