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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욱-양인모의 ‘무한 품질’ 이야기 (01) 

초일류 품질, 2% 벽을 넘어라 

장진원 기자
포브스코리아가 한국 제조업의 품질 혁신을 위한 제언에 나섰다. 삼성을 대표하는 CTO이자 혁신 전도사인 손욱 전 농심 회장·삼성SDI 사장과 양인모 비즈이노 대표가 만나 식스시그마 이후 멈춰버린 한국 제조업의 품질 혁신 위기를 진단했다. 두 사람 모두 초일류 품질 달성을 위한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한 우리 기업의 현실을 우려하며 3세대 품질 혁신을 주문했다.

▎손욱 전 농심 회장(오른쪽)과 양인모 비즈이노 대표가 만나 한국 제조업의 3세대 품질 혁신을 주문했다.
1993년 6월 7일은 한국 제조업의 대전환이 시작된 역사적인 날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 주요 계열사 임원 수백여 명을 한꺼번에 불러들였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라는 절체절명의 위기감은 ‘신경영’ 선언으로 이어졌다. 이 회장은 2년 뒤인 1995년 3월 들어 자사 제품을 태워 없애는 극단적 조치까지 취했다. 이른바 ‘삼성 휴대폰 화형식’이다. ‘질 100%’를 향한 이 회장과 삼성의 다짐은 한국 제조업의 품질 혁신을 몇 단계 끌어올린 기폭제가 됐다. 삼성이 반도체, 휴대폰, 가전 등에서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올라선 결정적 배경이 바로 품질 혁신이다.

삼성을 시작으로 LG,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다른 대기업들도 품질에 모든 것을 거는 혁신에 대대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 삼성SDI와 LG전자(가전) 등에서 적극 도입한 식스시그마(six sigma, 100만 개 제품 중 3~4개 불량만 허용하는 품질 혁신 운동)는 산업화 초기의 1세대 혁신을 넘어, 본격적인 통계적·과학적 품질 혁신 시대를 열었다. 오늘날 반도체, 가전, 자동차 등 주요 제조업에서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과 대등한 경쟁을 벌이는 원천이 바로 식스시그마를 통한 2세대 품질 혁신 운동이었다.

지금은 어떨까? 2023년 미국소비자만족지수(ACSI) 조사에 따르면 생활 가전부문 1위를 LG전자, 월풀, 하이얼이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어땠을까. 4위였다. TV 부문에선 LG전자가 1위, 삼성전자·TCL·하이센스가 공동 2위를 차지했다.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2세대 품질 혁신으로 글로벌 제조 강국이 된 한국이, 3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중국의 거센 도전을 받게 된 셈이다. 한국이 일본 소니와 파나소닉, 도시바를 넘어섰듯, 중국이 우리를 넘어설 날이 머지않았다는 위기의식이 시나브로 현실화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2024년 현재 한국의 제조업은 글로벌 초일류 품질에 도달한 걸까. 포브스코리아가 손욱 전 농심 회장·전 삼성SDI 사장과 양인모 비즈이노 대표의 특별 대담을 마련했다. 손 전 회장은 40여 년간 삼성그룹에서 근무한 정통 ‘삼성맨’이자 국내 최고 기술경영자(CTO)로서 평생을 혁신에 전념해왔다. 이건희 회장의 최측근으로서 ‘신경영’을 보좌했고, 삼성그룹의 품질 혁신과 정보 시스템 구축을 지휘한 혁신 전도사다. 양 대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한국생산성본부, 한국능률협회 등에서 일했다. 국내 컨설턴트 중 식스시그마 컨설팅을 시작한 1세대다. 최근에는 특히 식스시그마의 상위 버전인 DFSS(Design For Six Sigma) 보급과 컨설팅에 중심을 두고 활동 중이다.

손 전 회장과 양 대표는 입을 모아 “한국 제조업은 극소수 기업을 제외하고는 아직 초일류 품질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2000년대 중반 들어 식스시그마 등 품질 혁신을 향한 도전과 열정이 유야무야 무뎌졌고, 그사이 ‘잃어버린 20년’이 지나버렸다는 충격적인 진단이다. 손 전 회장은 “DFSS를 기반으로 한 3세대 품질 혁신으로 초일류 제조로 올라서야 한다”면서 “한국제조는 아직 2% 부족하다”고 단언했다.

손욱: 이런 자리를 만들어준 포브스코리아에 감사하다. 지금 우리 제조업은 초일류 품질이라는 가치가 무뎌져가는 가운데 마지막 남은 2%의 벽을 넘어서지 못해 주저앉기 직전이다. 이런 진단을 하는 전문가도, 기업도, 최고경영자(CEO)도 드문 상황이다. 한국의 품질 혁신운동이 200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퇴화하기 시작했는데, 이번을 기회로 3세대 품질 혁신에 나서야 한다. 그게 우리 제조의 살길이다.

양인모: 회장님은 삼성전기와 전자, 삼성SDI 등 현장에서 한국 제조업의 품질 혁신을 이끄신 주역이시다. 국내 제조업 품질 혁신이 어떻게 시작돼 현재에 이르렀는지 개괄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손: 1960년대 초까지 한국은 품질이라는 단어조차도 없었던 농경사회에 머물렀다. 1968년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본격화되고 한일협정이 이뤄지면서 일본의 제조기술과 품질기술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산업화와 품질경영의 시작이다. 1970년대 들어선 일본에서 전사적품질관리(TQC)와 품질관리분임조(QC Circle) 활동을 도입해 산업화와 함께 기초적인 품질 혁신 활동이 시작됐다. 이게 1세대 품질 혁신이다.

수출입국을 기치로 강력하게 추진된 산업화를 통해 한국 경제는 고속 성장을 이뤄왔다. 하지만 제조업은 “값은 싼데 품질은 낮다”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해 한계 국면으로 치닫고 있었다. 당시 경종을 울린 게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이었다. 이 회장은 잭 웰치 GE 회장과의 친분으로 1996년 들어 GE식 식스시그마 품질경영 혁신을 추진했다. 1세대 품질 혁신이 QC(품질관리), IE(산업공학), VE(가치공학)를 기반으로 한 아래로부터의 개선 활동 중심이었다면, 2세대 품질 혁신은 식스시그마를 목표로 통계적·과학적 방법을 적용해 근본적인 품질 혁신을 추진했다.

2세대 식스시그마는 DMAIC(Define Measure Analyze Improve Control) 등 프로세스 개선 활동이 중심이었다. 이에 비해 3세대 식스시그마는 DFSS(Design For Six Sigma)가 중심이다. 기업 조직 전체의 비즈니스 사이클 개선을 목표로 ‘처음부터 올바르게’, 즉 애초 설계 단계부터 제도와 시스템,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을 말한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품질 수준은 초일류에서 2% 부족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더욱이 중국 기업들의 품질 수준은 급격히 향상돼 이미 세계시장에서 위협적인 존재로 떠올랐다. 식스시그마 품질경영을 선두에서 이끌던 국내 제조 대기업들이 2세대 식스시그마의 성공에 안주해 마지막 고개를 넘지 못하고 위기 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양: 회장님의 진단이 정확하다. 국내 제조업은 대기업마저도 2세대 품질 혁신인 식스시그마 이후 다음 스텝을 밟지 못하고 있다. 3세대 품질 혁신의 핵심은 DFSS인데, 이를 잘못 알고 있거나 받아들인 것이 가장 큰 패착이다. 현재 국내 기업 중 DFSS를 제대로 받아들여 품질혁신을 지속하는 곳은 LG전자 정도로 평가한다. LG전자는 식스시그마를 주도한 GE와 협력사 관계였다. 제대로 된 DFSS 방법론을 전수받은 배경으로 짐작된다. LG전자의 생활 가전제품들이 오늘날 세계적인 명품으로 인정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손욱 전 농심 회장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품질 혁신 노력이 2000년대 중반 이후 사라졌다고 진단했다.
손: 2000년대 초반, 삼성전자도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식스시그마(DMAIC)와 DFSS를 도입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후 품질 혁신에 대한 열정과 자세가 예전만 못한 것 같다. 이렇게 된 원인과 배경이 있을 것이다.

양: 나 역시 1990년대 후반까지 DMAIC 중심으로 품질혁신 컨설팅을 해왔다. DMAIC는 정의(Define), 측정(Measure), 분석(Analyze), 개선(Improve), 관리(Control)의 앞 글자를 딴 약자다. 품질 오류의 근본 원인을 찾아 이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DMAIC의 한계는 이미 불량품 생산을 전제한 후, 원인을 찾아 개선한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DFSS는 처음 설계 단계부터 올바르게 설계해 불량을 차단한다는 개념이다. 우연한 기회에 GE의 DFSS를 접한 후 10년 넘게 연구와 기업 현장 적용을 통해 DFSS를 제대로 정립하게 됐다.

손: 삼성전자가 그랬듯 국내 제조 대기업들도 DFSS를 받아들여 적용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일류 품질혁신을 이뤄내지 못한 원인은 무엇인가.

양: 회장님 말씀대로 대기업들은 식스시그마 이후 미국 등에서 DFSS를 도입했다. 하지만 GE가 정립한 제대로 된 방법론은 아니었다는 게 그간의 연구에서 내린 나의 결론이다. 실제 컨설팅 과정에서 국내 기업 대부분이 잘못 전해진 DFSS를 도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LG전자 정도를 제외하면 DFSS를 제대로 구현한 곳이 없는데, 문제는 기업들이 이미 기존 시스템에 큰돈을 투자했다는 점이다. 기업 내부에서 전면 재검토를 주장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CEO도 이에 관심이 없거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손: 제대로 된 DFSS의 핵심은 ‘예측적 설계’에 있다. 제품 양산 전부터 품질 수준을 예측해 설계한다는 의미다. 안타깝게도 우리 기업은 아직도 대부분 ‘반응적 설계’에 머물러 있다.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 개선해나간다는 개념이다.

양: 일기예보에 비유하면 쉬울 것 같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장비도 좋아지면서 날씨를 결정하는 요인들을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온도, 습도, 풍속, 풍향, 구름의 양 등 하위 요인들을 명확히 측정하고 이를 종합해 시간대별로 날씨를 예측한다. ‘오늘 날씨는’ 개념이 아니라 ‘1시간 뒤 날씨는’이 가능해진 것이다. DFSS, 즉 예측적 설계도 이와 같다. 제품 양산 시 하위 구성품의 변화, 즉 산포(散布)를 반영해 제품의 품질 수준을 미리 정확히 예측해 설계하는 방법이다. 산포란 측정치의 크기가 고르지 않은 것, 쉽게 말해 허용오차를 말한다. 제품 제조에 투입되는 각 하위 구성품의 양산 시 산포를 설계에 반영하면 ‘예측된 설계 산포’와 ‘양산 시 실제 산포’가 같아진다. 이를 기반으로 제품의 내구성과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다. 올바른 품질 설계를 통해 신뢰성을 확보하고, 관리 체계를 확립하는 올바른 제조업 경영을 위해서는 현재의 제품 설계 수준을 첨단 일기예보 수준으로 선진화해야 한다.


손: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자. 국산 자동차의 품질이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다고 하지만, 여전히 유럽과 일본의 품질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냉정한 평가다. 이런 평가가 가장 두드러지는 게 바로 제품의 신뢰도다. 이제 막 나온 신차의 품질평가는 국산차나 해외 유명 메이커나 별 차이가 없다. 문제는 출시 3년 정도 지나서다. 소비자 신뢰도 조사에선 여전히 국산차가 톱클래스에 미치지 못한다. 신뢰도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제품의 품질을 말한다. 처음엔 쌩쌩 잘 달리지만, 몇 년 지나면 여기저기서 잔고장이 나온다. 이 역시 설계 단계에서 하위 구성품의 산포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양: 회장님 말씀대로 국내 제조업은 아직 예측적 설계가 아닌 ‘반응적 설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수십 년 전에 채용한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실정이다. 반응적 설계에선 하위 구성품의 산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명목값’을 반영해 설계한다. 그런 후 소수의 샘플을 제작해 제품의 특성을 측정한 후(평가품질) 이를 양산에 일괄적으로 반영하는 방식이다. 산포를 반영한 제대로 된 설계(예측품질)를 할 수 없으니 양산 시 불량이 발생하는 게 당연하다. 일단 설계 → 문제 발생 →지속적 개선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손: 일본은 이미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손잡고 기술경영을 도입했다. 전투기와 항공모함을 만들지 않았나. 패전 후 몰락했지만,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지원을 받아 기사회생했다. 에드워즈 데밍 박사의 품질 혁신 이론을 받아들인 끝에 1980년대 들어선 미국의 제조 품질을 앞지르며 세계 최고의 제조 강국이 됐다. 그때 만들어진 게 TQC(Total Quality Control), 즉 전사적 품질관리다. 여기에 프로세스 혁신을 도입한 토요타는 자기들만의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인 TPS(Toyota Production System)까지 만들어냈다. 현재 전 세계 대부분이 이걸 표준으로 삼는다. 1970년대 말 일본 제품의 공습에 충격을 받은 미국 제조 현장은 산업 공동화까지 겪으며 문을 닫는 공장이 속출했다. 그때 나타난 구세주가 바로 잭 웰치다. 기초기술이 앞섬에도 일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상황에서 일하는 방법과 구조를 모두 뜯어고치는 리엔지니어링, 리스트럭처링을 단행했다. 기존 QC로는 아무리 해도 일본에 안 되니 되니 모토롤라의 식스시그마를 도입해 DFSS로 발전시켰다. ISO9000(국제표준화기구 ISO가 제정한 품질보증 및 품질관리를 위한 국제 규격)도 그때 확립됐다. 노스펙 노워크(No Spec, No Work), 즉 정해진 규격과 표준대로만 일한다는 개념이 뿌리내렸다. 한국의 제조 현장에서는 스펙대로 하는 회사를 지금도 찾기 어렵다.

양: 회장님 말씀이 맞다. 한국은 DFSS는 고사하고 ISO9000도 실패했다. 유럽의 한 바이어가 ‘한국에선 석 달 만에 ISO9000 인증을 받는다’고 하니 깜짝 놀라더라. 외국은 3년씩 걸린다. 데이터를 수집해 통계적으로 분석한다는 건 과학적 의사결정을 의미한다. 과학적품질 혁신 노력이 사라지면서 우리 기업들은 식스시그마나 DFSS가 우리 실정과는 맞지 않는다는 인식까지 갖게 됐다. 이는 곧 과학적 품질관리 내지 과학적 경영이 필요 없다는 말과 같다.

손: 미국은 식스시그마 이전부터 ISO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일본의 품질 공세를 이겨낸 미국의 저력이 바로 ISO와 식스시그마, DFSS에서 나온다. 미국은 일본을 뛰어넘기 위해 끊임없이 품질 혁신 운동을 이어오고 있다. 미국 500대 기업 중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제조기업들이 여전히 DFSS 등 품질 혁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에는 TQC 개념 등 자기만의 방법론이 최고라는 교조적 신앙 같은 게 있다. 과거 고정세도(고화질) TV가 대세였을 때 일본 TV의 화질이 정말 좋았다. 물리적·화학적 방식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이 디지털전환에 나섰다. 둘 사이에서 고민하던 삼성전자도 미국을 따라 디지털로 바꿨다. 오늘날 한국 TV가 세계를 석권한 배경이다. 휴대폰도 마찬가지다. 당시 국내 과학자들이 유럽, 일본, 미국 방식을 놓고 고민하다가 미국의 퀄컴 방식을 받아들였다. “우리 방식이 최고다”라는 도그마를 버리지 못하고 쇠퇴한 게 일본인데, 한국도 초일류를 위한 2%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양: 일본은 설계품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강건설계와 산포 개념을 도입한 다구치 설계 방법을 개발했다. 그러나 이 방법도 반응적 설계 방식이라 처음부터 올바른 설계를 할 수 없어 문제가 발생되면 개선하는 방식을 취한다. 반면 GE는 개선조차도 낭비로 인식했다. 하위 구성품의 산포를 반영해 양산 시 품질을 예측함으로써 처음부터 올바른 설계를 할 수 있는 DFSS를 개발한 배경이다. 미국 500대 기업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2000년대 중반부터 더욱 혁신적인 신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FFE(Fuzzy Front End)에 중점을 두는 R&D를 하고 있다. 신제품 기획은 정형화·체계화가 어려워 Fuzzy, 즉 흐릿하다는 용어를 사용한다. DFSS가 생산 현장의 빅데이터를 활용해 예측적 설계(예측생산)를 하는 것이라면, FFE에서는 고객의 니즈(Needs) 데이터를 활용해 예측설계, 예측판매를 할 수 있다. 즉, 예측경영을 구현할 수 있다. 시장에서 잘 팔릴지도 모르는 제품을, 올바르게 설계하지도 못해, 품질수준을 모른 채 판매하는 회사와 예측경영을 하는 회사의 경쟁은 불을 보듯 빤하다.


▎양인모 비즈이노 대표는 하위 구성품의 산포를 설계에 반영하는 ‘예측적 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손: 통계적·과학적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사례가 있다. 1991년 삼성 최초의 중국 공장 건설을 위해 광둥성을 찾았을 때 일이다. 현지 관계자에게 좋은 땅 좀 소개하라 하니 “여기 이미 훌륭한 공장들이 있으니 보여주겠다”고 하더라. 미국의 유명한 장난감 회사였다. 종업원 5000명이 일하는 큰 공장을 1시간 정도 돌아봤는데, 놀랍게도 총책임자가 베이징대 출신의 27세 현지인이었다. 미국인은 한 명도 없었다. “어떻게 미국 사람 하나 없이 완벽한 품질을 만드냐”고 물었더니 “ISO9000에 정확히 맞춰 일하니 굳이 본사가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라. 이미 미국은 그때부터 통계적·과학적 생산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 사람 몇십 명이 일일이 현지에서 감독한다. 비용은 비용대로 들고 품질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지금도 그렇다. 미국은 철저하게 시스템 중심이다. 모든 것을 룰대로 한다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

양: 우리 제조업은 지난 20년간 올바른 DFSS, 즉 예측적 설계를 받아들이지 못해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더 남은 시간이 없다. 굉장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제라도 제대로 된 DFSS를 추진해야 한다. 그러려면 R&D뿐 아니라 영업, 마케팅, 생산, 구매, 나아가 협력업체까지 모두 함께하는 체계로 바꿔나가야 한다. DFSS를 단순한 툴이 아니라 프로세스 개선이자 전략으로 삼고, 또 생활화해 문화로 정착해야 한다. 결국 CEO가 큰 위기의식을 갖고 독려하는 수밖에 없다. 일단 DFSS가 정착되면 이를 기반으로 FFE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손: 어느 날 보니 우리가 일본의 가전을 다 추월했다. 일본의 거대 기업들이 몰락했다. 그런데 똑같은 방식으로 중국이 우리 자리를 차지할 거란 위기의식은 없는 것 같다. 제대로 된 품질 경쟁력을 갖춘 산업 체질로 바꾸지 않으면 머지않아 일본 신세가 될 게 빤하다. 그나마 일본은 소부장 등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보유한 초우량 기업들이 여전히 건재하다. 우린 그런 기반 없이 제조 조립 기술로만 싸워왔다. 1996년 식스시그마 도입으로 시작한 과학적·통계적 품질관리를 한 단계 진화한 DFSS로 끌고 갔어야 했는데, 기회를 놓쳤다. 이제라도 범국민적인 관심과 노력으로 초일류 품질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게 우리 제조업이 살길이다.

양: 품질의 침체는 대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국내 대학에서 품질관리는 완전 사양 학문이다. 전공한 사람이 없어 신규 품질관리 교수를 찾기가 힘들 정도다. 산업공학은 여전히 하류 단계인 생산 품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설계품질 교육도 반응적 설계에 머물러 있다. FFE 단계의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내용이 경영학으로 치부돼 품질 영역에선 전혀 다루지 않는다. 품질을 전공한 학생조차 DFSS와 FFE를 모른다. 미국은 ASME(미국기계기술자협회) 주도로 이공계 대학 전체에서 PRP(Product Realization Process)를 가르친다. 우리는 이런 교육 없이 기업에 가서야 겨우겨우 품질관리를 배우고, 그나마 입사해 퇴사 때까지 특정 부문에서만 일하다 보니 자기 영역의 효율만 중시하는 사일로(Silo) 문화에 빠지기 쉽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409호 (202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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