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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찬이 만난 혁신 리더(27) 류상훈 모든·부산탱크터미널 대표 

가장 친환경적인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 

장진원 기자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탱크터미널 기업 대표가 폐배터리를 재활용하는 스타트업 창업에 나섰다. 류상훈 모든·부산탱크터미널 대표는 50년을 이어온 전통 기간산업을 넘어 변화와 혁신에 과감히 몸을 던졌다.

▎류상훈 대표는 전통 산업인 액체화물 터미널과 별개로 폐배터리를 재활용하는 스타트업 창업에 도전했다.
부산시 사하구 감천항 서편부두에 들어서면 바다와 맞닿을 듯 가까운 곳에 서 있는 원형 탱크 수십 기가 눈에 들어온다. 작게는 330킬로리터(㎘), 크게는 6950㎘에 달하는 초대형 탱크들이 위풍당당하다. 모두 부산탱크터미널과 모든이 운영하는 액체화물 터미널 설비다.

(주)모든과 부산탱크터미널(주)은 수출입 액체화물을 전용으로 취급하는 전문기업이다. 영업용 보세창고와 일반 창고를 보유한 종합물류·하역 전문 업체로, 현재 부산탱크터미널과 모든을 합쳐 탱크 79기, 총 17만 ㎘의 저장능력을 보유한 중견 터미널사다. 석유류와 케미컬 제품을 취급하는 모든·부산탱크터미널은 부산 감천만이라는 전략적 지역에 자리했다. 3만 톤급 대형 선박이 부두에 직접 접안할 수 있고, 탱크터미널로 연결된 송유관을 통해 모든 액체화물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운송하고 저장한다.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부산을 대표하는 액체화물 전문 기간산업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대표가 류상훈 모든·부산탱크터미널 대표를 만나 인프라스트럭처 경영에 대해 물었다. 류 대표는 최근 2차전지 스타트업도 창업해 새로운 미래 먹거리 창출에 나섰다. 오랜 업력을 쌓아온 기간산업과 그린에너지 산업이 어떻게 조화를 이뤄나갈지도 궁금한 대목 중 하나다.

일반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업이다. 소개 부탁한다.

액체화물 창고라 이해하면 쉽다. 부친께서 지난 1973년 (주)모든을 설립하셨다. 설립 당시에는 ‘모든석유’라는 사명으로 폐유를 정제해 제품을 만드는 리파이너리, 즉 정제사였다. 이후 국내 정유사들이 대기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정유 사업을 접고 탱크터미널이라는 보관 업종으로 전환했다. 현재 회사가 자리한 감천항 일대는 원래 전부 바다였다. 약 6만6000㎡(2만 평)를 단계별로 매립했고, 현재 약 17만㎘의 액체화물을 저장할 수 있게 됐다.

사업 허가가 필요한 산업이라 신규 사업자 진입이 어렵겠다.

그런 편이다. 현재 부산시도 더는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새 부두를 건설하고 관련 사업을 하려면 그만큼의 경제효과가 나와야 하는데, 신규 수요가 어느 날 갑자기 폭증하는 사업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업 허가를 받기가 어렵다. 부친이 창업한 모든과 달리 부산탱크터미널은 본래 엘지상사에서 운영하던 회사였다. 같은 지역에서 서로 과도하게 경쟁하느니 통합해 시너지를 내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해 지난 2003년 인수했다. 두 회사로 나뉘어 있지만 사업 내용은 같다. 부산탱크터미널은 석유제품에, 모든은 케미컬에 특화돼 있는데, 추후 합병 계획도 있다.

탱크에 보관된 화물은 어떻게 관리·운영되나.

선박에서 벌크(가공 전 원재료 상태)로 들어온 화물들을 우리 장비로 하역해 지정된 탱크, 즉 저장고에 보관한다. 액체 종류마다 배관도 별도로 구분돼 있다. 케미컬 화물은 변색·변질될 위험도 있어 적정 온도 등 저장 노하우가 필요하다. 석유류 제품은 휘발성이 강해 중량 관리에 대한 기술도 요구된다. 아무래도 장치산업이다 보니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드는 사업이다. 특히 매립지에 탱크를 구축하다 보니 여러 환경 관련 법률이나 소방법 등 규제가 많다. 단순 보관 개념이 아니라, 화물의 물성과 규정에 맞게 보관해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옛날에는 폭발 같은 안전사고도 왕왕 있었다. 다행히 내가 대표직을 맡은 후엔 특별한 사고는 없었다.

화물별로 저장 방식이 다른가.

그렇다. 현재 우리가 취급하는 화물 종류가 30여 종이다. 선박 엔진유까지 따지면 훨씬 많다. 화물 종류에 따라 탱크도 제각각이다. 일례로 제품의 산성이 강하면 스틸 탱크에는 보관할 수 없다. 특히나 민감한 액체나 식용 화물은 탱크를 바꿀 때 고압 샌딩으로 처리하는 등 까다로운 작업을 거쳐야 한다.

들어보니 제일 중요한 게 안전관리이겠다.


▎류상훈 대표(좌)와 최영찬 대표가 대형 탱크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맞다. 제조 공장처럼 긴박하게 돌아가는 시스템은 아니지만, 모든 관리가 지상 수십 미터 위에서 이뤄지는 고소작업이다. 게다가 큰 장비들이 움직이는 만큼 안전 확보가 최우선일 수밖에 없다.

사업에 영향을 주는 리스크 요인은 없나.

주로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기 쉬운 구조다.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대표적이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이 막히다 보니 우리 매출도 떨어졌다. 석유류 제품은 다른 나라에서 대체 수입하는 필수재니 다행히 민감하게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앞서 말한 대로 제일 중요한 건 오히려 안전관리와 환경규제다.

창업 스토리가 궁금하다. 부친께서 창업하셨나.

경남 거창에서 교사로 일하시던 조부께서 버스 석 대로 삼신교통(현재 관계사)을 창업해 운수업에 뛰어드셨다. 부친인 류용주 회장님이 20대 초반에 가업을 이어받았고 이후 신용금고, 모든 등을 인수하면서 사업을 확대했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버지가 대학 졸업 즈음인 23세에 회사를 물려받으셨다. 실제로 회사를 키우고 성장시킨 건 부친 대에 이르러서다. 운수업을 시작으로 주유소, 경정비, 석유대리점, 정비공장 등 관련 업종으로 확대하셨다. 시장을 읽는 눈이 뛰어나셨다고 생각한다. 모든은 창업이 아닌 인수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탱크가 6~7개였는데, 이를 70기가 넘는 규모로 키우셨다. 지금도 운수사업을 계속하고 계신다. 창업 후 접은 사업은 신용금고 하나뿐이다.

연세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처음부터 가업을 잇겠다는 각오였나.

전공이 전공인지라 그런 말을 종종 듣는데, 가업 때문에 화학을 전공한 건 아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유학을 준비 중이었다. 전공 특성상 석박사 과정을 준비하는 동기가 많았는데, 난 공부보다는 경영이나 금융 쪽에 관심이 많았다. 친구 따라 수도권 IT 대기업에서 인턴도 했는데, 6개월 만인 28살에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내려왔다. 내가 합류했을 때는 냉동창고도 있었다. 대한민국에 들어오는 바나나와 파인애플 절반을 우리가 보관했다. 덕분에 필리핀 등 동남아도 자주 방문했다.

그래도 전공이 현재 업종에 도움을 주지는 않나.

탱크터미널 사업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게 맞다. 하지만 입사 당시에는 별 관련이 없었다. 초기에는 냉동창고업, 어류 수매업 등 다양한 일을 했다. 자갈치시장에서 선장님들을 만나고, 고등어가 안 잡히면 해외에서 수입하기도 했다. 대리로 입사했는데, 이런 일들을 배우고 처리하기 위해 필리핀, 태국, 중국을 수시로 찾았다. 그러다 탱크터미널이라는 본업에 집중하기로 결정하면서 기존 사업들은 과감히 접었다.

탱크터미널에 집중하면서 달라진 게 있었나.

오랜 업력에 비해 업무에 필요한 매뉴얼 자체가 없었다. 중소기업들이 이런 경우가 많다. 그래서 초기에는 서류 만드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많이 쏟았다. 상벌 규정, 직원 복지 등 회사 규모에 비해 규정이 너무 미비했다. 4~5개월 가까이 사업 자체보다는 회사의 틀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정말 힘들었다. 회사에 오래 계신 분들은 부친과 함께한 역전의 용사들 아닌가. 어느 날 갑자기 젊은 아들이 회사에 들어와 뭔가를 바꾼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저항도 심했다. 임직원들을 일일이 만나서 이야기하고 설득해 바꿔나갔다. 덕분에 소주도 원 없이 마셨다. 그렇게 하나씩 바꿔나갔다. 무엇보다 원칙을 세우는 데 집중했다.

최근 배터리 재활용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어떤 사업인가.

지난 2020년 에코알앤에스를 창업했다. 전기차나 휴대폰을 사용하고 나면 폐배터리가 남는다. 여기서 리튬, 코발트, 니켈 같은 금속을 회수해 재활용하는 사업이다. 이를 다시 새 배터리 제조에 활용하면 환경보호에 도움이 되고 비용도 크게 낮출 수 있다. 요즘 가장 뜨겁게 떠오르는 분야다.

제조업은 항상 혁신, 기술개발, 수출 등으로 기민하게 움직인다. 인프라 기반 사업과는 거리가 먼데, 직접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말씀하신 대로 우리 업 자체가 매일 치열하게 회의하고 대처하고, 제조업처럼 현장을 초 단위로 관리해야 하는 건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예전부터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소위 ‘금수저’였다. 유복한 집에 태어난 건 물론 복이다. 그런데 왜 항상 드라마나 영화 속 금수저들은 상태가 안 좋게 묘사될까. 정말 싫었다. 뭔가 내 손으로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대표이사가 되고 난 뒤 회사 매출과 이익 구조가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했다. 아무것도 없는 바닥부터 내 일을 시작해 성과를 이루고 싶다. 또 하나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이었다. 해외를 많이 다니면서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폐배터리 재활용이라는 아이템은 어떻게 찾았나

정말 우연한 계기였다. 서울 등 대도시에는 승용차는 물론 이미 대형 버스가 전기와 수소 에너지원으로 교체 중이다. 부친이 경영하시는 회사에서도 전기버스를 들여왔다. 배터리가 필수재가 됐다는 걸 깨닫게 됐는데, 그 무렵 부경대 금속공학과 왕재필 교수를 여기 계신 최 대표 소개로 만났다. 그러면서 기존과는 다른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을 접했다.

어떤 기술인가.

폐배터리 재활용은 이미 국내 대기업들이 진출한 시장으로, 모두 습식 기술을 이용한다. 황산 등을 이용해서 배터리를 녹여내는 방식인데, 폐수 등 2차 환경오염 문제가 따라와 문제다. 우리는 용광로나 전기로에 녹여내는 건식 기술을 이용한다.

건식과 습식 방식의 차이는 무엇인가

일단 습식은 폐배터리에서 나온 원료들, 즉 가루들을 황산에 넣어서 분리한다. 폐수가 남을 수밖에 없어서 2차 정화 과정이 필수다. 우리가 개발한 건식 방식은 특별한 부원료를 넣어가면서 가열해서 분리한다. 보통 가열하면 오염된 기체가 발생하기 쉬운데, 에코알앤에스는 그런 게 없다. 폐배터리를 부숴 가루 상태로 만든 후 불순물을 빼내면, 전해질 같은 까만 가루가 남는다. 블랙파우더다. 여기에 코발트나 니켈 등이 남아 있는 상태다. 에코알앤에스의 최종 목표는 폐배터리를 통째로 전기로에 넣는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지금은 방전, 분해 등의 공정이 필요하다.

건식 방식은 에코알앤에스가 유일한가.

그렇지는 않다. 고려아연이나 영풍 같은 대기업과 몇몇 중소기업도 시도 중이다. 에코알앤에스가 가진 차별점, 강점은 친환경에 있다. 우리 공정에서 가장 큰 특징이 CO2를 주요하게 활용한다는 점이다. 다른 많은 산업군에서 CO2를 절감하려고 노력하는 것과는 반대다. 오염원인 CO2를 부원료로 사용하니 전체적인 CO2 절감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기존 사업과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힘든 점은 없나.

하나부터 열까지 어렵지 않은 게 없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다. 금속공학에 문외한인 데다가 관련 산업에 대한 네트워크도 없으니 하나하나 묻고 공부하는 심정으로 해오고 있다. 1세대 창업가들을 존경하는 마음도 새삼 커졌다. 그분들이야말로 정말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시작한 분들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변화해야 한다. 산업의 변화 속도가 너무나 빠르다. 특히 자동차, 선박(조선) 시장은 패러다임 자체가 달라지는 모멘텀을 맞고 있다. 내연기관에서 전기모터로. 선박도 벙커시유 엔진에서 수소나 엘엔지(LNG) 등으로 진화한다. 그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지금 있는 것들을 지키기도 어렵다. 특히 인공지능(AI)은 전통 제조 영역뿐 아니라 사회, 문화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거다.

현재 에코알앤에스 경영의 중점은 어디에 두고 있나.

스타트업이다 보니 펀딩, 기술 고도화, 인재 확보, 네트워크, 협력 강화 등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단기 비전은 유럽 공장 설립이다. 환경법이나 규제는 국내보다 유럽이 훨씬 앞서 있다. 오히려 유럽에서 우리 기술력이 빛을 발할 거라 본다. 장기적으로는 폐배터리를 넘어 자원순환이라는 큰 축을 구축해야 한다. 스타트업 중 가장 어려운 분야가 장치산업이라고 하더라. 일정 규모 매출이 나오려면 장비 투자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창업과 경영 하나하나가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지만, 우리가 가진 기술력만큼은 월등하다고 자부한다. 실제로 전기차 폐배터리가 의미 있는 수준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2026년 이후가 될 거라 예상한다.

류 대표처럼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려는 2세 기업가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아직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한 처지라 조언을 하기엔 부족하다고 본다. 다만 최근 들어 관련 질문이 많아진 건 사실이다. 처음에는 어떻게 투자를 받았냐고 물었는데, 요즘은 아이템을 어떻게 찾았냐는 질문이 부쩍 늘었다. 그만큼 기존 사업을 바탕으로 한 신사업 투자에 목이 마르다는 뜻이다. 경영과 창업은 완전히 다르다. 대부분의 2세 기업가는 경영을 하지 창업은 잘 모른다. 나 역시 에코알앤에스 창업에서 정말 많은 걸 배우고 있다. 지역 경제와 기업의 발전을 위해서 새로운 도전이 더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최영찬- 선박과 플랜트 분야 제조업을 영위하는 선보공업의 차세대 경영인이다. 제조업체들이 스타트업 및 투자 생태계와 어떻게 공존하고 미래 사업을 만들지 고민하면서 선보엔젤파트너스와 기업 연합형 CVC인 라이트하우스를 창업했다. 200여 개 스타트업에 투자했으며, 컴퍼니빌딩 프로젝트와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을 공동경영 형태로 성장시키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창업한 2개 법인과 별도로 3개 프로젝트의 공동대표로도 활동하면서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_ 사진 최재승 객원기자

202408호 (202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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