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이강호의 생각 여행(56) 합스부르크 왕가의 흥망과 글로벌 리더십 

 

합스부르크 왕가는 13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의 패권을 잡았던 가문이다. 오랜 기간 유럽을 제패했던 이들의 역사는 오늘날 복잡한 국제관계 속 국가의 생존 방법을 고민하게 만든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통치자로 40년간 재위한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의 동상. 비엔나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에 있다.
역사와 예술, 음악의 도시 비엔나로 향했다. 오래전 오스트리안 에어라인 편으로 비엔나에 도착했을 때는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는 동시에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오스트리아에 도착해 클래식 음악을 들으니 역시 수많은 거장을 배출한 나라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음악가라고 하면 구스타프 말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안톤 브루크너, 프란츠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1세,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요제프 하이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이 곧바로 떠오른다. 음악을 모른다 해도 이름만큼은 누구나 들어봤을, 세계 음악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거장들이다.

이번 출장은 기업은 물론 문화의 향기에 젖어볼 기대를 품고 오스트리아를 찾았다. 먼저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궁전 두 곳을 방문했다. 첫 번째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Der Kuss)] 등 독보적인 미술품을 소장하고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 중인 벨베데레 궁전이다. 들뜬 기대감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벨베데레 궁전은 비엔나 남동쪽에 자리한다. 바로크양식으로 지은 이곳은 드넓은 정원을 가운데 두고 상부 벨베데레 궁전과 하부 벨베데레 궁전으로 나뉜다. 합스부르크 왕가에 헌신한 명장인 오이겐 폰 사보이공(Prinz von Savoyen Eugen, 1663~1736)이 건축가 요한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에게 설계를 맡겨 벨베데레 상궁을 1723년에 완성했다. 오스트리아가 대국으로 가는 길에 지대한 공을 세운 오이겐 장군이 1736년 사망한 후, 벨베데레 궁전은 합스부르크가에서 사들였다. 그 후 이 궁전은 궁정 축제의 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영국·프랑스·소련 4개국에 의해 10년 동안 분할 점령 통치를 당했던 오스트리아는 1955년 5월 15일 ‘오스트리아국가조약’으로 독립을 회복했는데, 그 조인식이 열린 장소도 벨베데레 궁전이다.

유럽 역사와 문화의 수도 비엔나


▎세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자연사 박물관 중 하나인 비엔나 자연사 박물관.
상부 벨베데레 궁전에 들어서니 입구 오른쪽에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이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였던 마리아 테레지아의 입상 조각이 보인다. 그 왼쪽에는 남편인 신성로마제국의 프란츠 1세 입상이 있다. 이 궁전은 전체가 미술관이다. 그중에서도 오스트리아 미술 역사상 최고 걸작으로 알려진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키스] 작품이 전시된 공간은 항상 수많은 인파로 붐빈다. [키스]는 오스트리아 밖으로 반출되지 않는다. 그러니 진품을 보려면 이곳을 직접 찾아야만 한다. 엄청나게 많은 관람객이 방문하는 이유다. 여러 각도에서 이 진귀한 작품을 사진으로 담았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귀한 문화재가 있어서 전 세계에서 많은 방문객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품은 눈부신 황금색 망토를 입은 두 남녀가 아름다운 꽃밭에서 사랑의 키스를 하려는 장면을 너무도 아름답게 표현했다. 특히 황금색 바탕에 파랑·주황·보라·핑크색의 동그란 꽃무늬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머리에 별 모양의 흰 꽃과 동그란 모양의 파란색 꽃을 꽂고 남자의 품에 쏙 안긴 모습이 화려하면서도 사랑스럽다. 여자의 뽀얀 어깨 살결과 하얀 얼굴에 초승달 같은 눈썹이 보이고, 그 아래로 지그시 감은 속눈썹과 연결된 예쁜 코, 그 아래 붉은 입술이 수줍게 사랑을 열망하는 듯 아름답다. 황금색이 찬란한 [키스]에 대한 해석과 평론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걸작을 보며 깊은 감동을 안고 다른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클림트의 또 다른 걸작 [유디트]와 여성 초상화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또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에 있는 길, 1902]과 오스트리아 화가 에곤 실레(Egon Schiele)의 [포옹]을 비롯한 여러 명작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의 [알프스를 건너는 나폴레옹 또는 생베르나르 고개의 나폴레옹: Napoleon at the Great St. Bernhard Pass, 1801] 앞에 많은 관람객이 몰려 있었다. 알프스산맥 언덕에서 갈기를 휘날리며 큰 눈을 부릅뜬 채 앞발을 쳐든 백마, 그 위에서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오른손으로 부대를 이끄는 황제 나폴레옹의 위용이 대단하다. 이 작품은 나폴레옹과 그의 군대가 1800년 5월 그랑 생베르나르 고개를 통과해 실제로 알프스산맥을 넘어간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말발굽 밑 바위에 자신의 이름인 보나파르트를 크게 새기고, 그 밑에는 그 옛날 2차 포에니전쟁 중 코끼리를 몰고 알프스를 넘은 한니발(Hannibal)과 카롤루스 왕조 제2대 프랑크 국왕이자 초대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카롤루스 대제(라틴어: Carolus Magnus, 프랑스어: 샤를마뉴)를 희미하게 새겨 놓았다.


▎비엔나 도심 슈테판 광장에 자리한 슈테판 대성당의 웅장한 내부.
이 초상화를 본 많은 사람이 나폴레옹에 대해 멋들어진 황제 이미지를 갖게 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림에 묘사된 백마를 타고 가파른 산을 넘을 수 없었고 노새를 타고 고개를 넘었다. 의상도 그림과 달랐는데, 나폴레옹이 마렝고전투(Battle of Marengo)에서 입었던 유니폼에서 영감을 받아 그렸다고 한다. 이 그림은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1801년부터 1805년 사이에 그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승마 초상화 5점 시리즈 중 하나다. 1803년 버전은 밀라노로 배달됐는데, 1816년 오스트리아군이 압수했다. 그리고 1834년 들어 비엔나 벨베데레에 설치됐다. 역사적인 그림을 벨베데레 궁전에서 직접 감상하다 보니 비엔나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본 영화 [나폴레옹]이 떠올랐다. 영화 속 장면들과 연계해 영웅의 역사를 떠올려봤다.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쇤브룬궁(Schloss Schönbrunn)이다. 방 1441개를 갖춘 이곳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궁전이자 방문객이 가장 많이 찾는 유적지다. 이곳은 18세기 중엽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여름 별장으로 지어졌다. 궁전과 160헥타르(160만㎡) 면적의 공원은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궁전에 들어서니 한쪽 벽에 세 부분으로 걸려 있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계보가 눈길을 끈다. 계보의 첫 단계는 1273년부터 1740년까지(Genealogy of the House Habsburg, Part I: 1273~1740)다. 두 번째는 1740년부터 1918년까지(Genealogy of the House Habsburg, Part II: 1740~1918)이고, 마지막 세 번째는 레오폴트 2세부터 군주제 말기(Leopold Il to the end of the Monarchy)까지의 사진과 연도를 그래프 형식으로 상세하게 표시했다. 무척이나 복잡한 합스부르크 가문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오페라 [파우스트]를 마친 성악가들의 커튼콜 장면.
궁전 안 중요한 방들을 돌아봤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엄청나게 큰 천장화,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그림과 초상화들이 인상적이었다. 쇤브룬 궁전의 정원은 유럽을 오랫동안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품격과 취향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정원을 건너 멀리 언덕 위에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합스부르크 왕가를 찬미하기 위해 건축된 글로리에터가 멋진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1918년 왕가가 붕괴하고 오스트리아 공화국이 출범하자 쇤브룬 궁전은 박물관이 됐다. 1961년에는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소련 흐루쇼프의 회담이 이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쇤부룬 궁전을 돌아보며 1918년에서 1273년을 빼보니 무려 645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합스부르크 가문이 유럽을 지배했다. 특히 40년간 재위했고 자녀를 16명이나 둔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황후의 통치술이 문득 궁금해졌다.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는 국제 무대


▎드넓은 정원과 멀리 보이는 하부 벨베데레 궁전.
비엔나에 가면 반드시 방문해야 할 장소가 있다. 바로 세계 3대 오페라극장으로 손꼽히는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이다. 예전에 갔을 때는 발코니석에 앉아서 최신식 무대로 연출한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었다. 이번에 관람한 오페라는 괴테의 [파우스트]다. 세계적인 성악가들이 최고의 극장에서 연기하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파우스트]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사전에 한국어로 된 오페라 해설을 몇 번 보며 관람 준비를 마쳤다. 세계 최정상 성악가들이 무대에서 노래하며 혼신을 다해 연기하는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찬란한 감동이다. 특히 이번 [파우스트] 오페라는 시대를 바꾸어 무대 중간에 현대식 스크린을 설치해서 영상을 가미했다. 관객들이 더 잘 이해하고 훨씬 큰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연출이 돋보인 무대였다.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은 1869년 모차르트의 [돈 지오반니]로 막을 올린 이후 역사에 남을 만한 수많은 공연을 선보였다.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건축한 오페라극장은 건축물 자체로도 훌륭한 역사적 유적이고, 내부도 아름다운 조명과 장식들로 호화스럽기 그지없다. 언제라도 꼭 다시 돌아가 관람하고 싶은 세계 최정상 극장이 바로 비엔나 오페라극장이다.

비엔나에서 꼭 들러야 할 곳이 또 있다. 오스트리아의 화가·건축가·환경운동가인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의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와 ‘쿤스트하우스 빈’이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의 아이디어와 콘셉트를 따라 1985년에 완공된 비엔나의 아파트 주택이다. 핑크·파랑·노랑·흰색 등 각기 다른 색상의 외벽,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창문과 원형 발코니, 담쟁이를 입힌 건물과 나무가 작가의 자연주의 사상을 드러낸다. 직선으로 각진 일반 건물들과는 확연히 차별화된 예술작품 같은 건축물이다.

도로에도 디자인을 입힌 ‘예술의 길(Art Path)’을 따라서 ‘쿤스트하우스 빈’에 도착했다. 안내자를 따라서 건물 안 여러 층을 오르는 동안 벽에 소개된 훈데르트바서의 일생을 접할 수 있었다. ‘색채의 마술사’라고도 불리는 훈데르트바서의 특이하고 현란한 그림 작품들을 감상했다. 색상과 곡선, 자연과 환경을 중시한 예술가의 차별화된 노력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철강회사인 뵈스트알피네(Voestalpine)를 방문하기 위해서 오스트리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린츠(Linz)를 찾았다. 린츠는 오스트리아 북부를 대표하는 도시다. 북쪽으로 체코 국경과 가깝고 도나우강을 끼고 있어 체코와 폴란드, 이탈리아 등을 잇는 중요한 교통 요지다. 도심을 거닐어 보니 상점들이 잘 정돈돼 있다. 서기 799년부터 역사가 기록된 아주 예쁜 도시였다. 특히 작은 규모의 도시에 무척이나 멋진 분위기를 뽐내는 대형 서점이 있어 놀랐다. 그 곳에서 차 한잔을 즐겼다.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인 비엔나 국립오페라극장의 멋진 야경.
린츠 출신으로 유명한 이는 행성운동법칙을 만든 수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와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가 있다. 아돌프 히틀러도 린츠 인근에서 태어나 린츠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뵈스트알피네는 철강 제품을 생산·가공·유통하는 세계적인 오스트리아 기업이다. 멀리서부터 생산 공장 외벽에 ‘뵈스트알피네, 한 발짝 앞으로: Voestalpine, ONE STEP AHEAD’라고 쓴 사인이 눈에 들어온다. 로비 입구 천장에 있는 철강회사다운 멋진 실내 조형물이 일행을 맞이했다. 회의실에서 회사 관계자로부터 브리핑을 들었다. 철강이라는 업종에서 풍기는 예상과 달리 혁신과 환경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했고, 특히 탈탄소화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낮추는 데 큰 목표를 두고 있었다. 용광로에서 철강을 생산하는 현장을 직접 내려다보며 이 거대 기업이 두 자리 숫자의 경상이익을 내는 경영 비결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오스트리아를 찾아 합스부르크 왕가가 오랜 기간 유럽을 지배한 역사적 과정을 들여다봤다. 복잡한 국제관계 속에서 국가의 생존과 부흥을 위한 수많은 전쟁과 정략결혼, 국가 간 이해관계에 따른 국제 협상력과 정보력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했다.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인지 최근 국제 상황도 녹록지 않다. 미·중·러 관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중동 전쟁, 미국과 유럽의 정치적 불안정,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고환율·고금리 문제 등 어느 하나 지나치지 못할 어려운 과제들이 놓여 있다. 국제 무대에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 어떤 국제협상력과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지는 오롯이 우리의 몫이라는 것이 이번 오스트리아 여행에서 새삼 얻은 교훈이다.

※ 이강호 -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세계 최대 펌프 제조기업인 덴마크 그런포스그룹의 한국 법인 창립 CEO 등 33년간 글로벌 기업 및 한국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고, 2014년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다국적기업 최고경영자협회(KCMC) 회장 및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와 2세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을 컨설팅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408호 (202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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