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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만 베르티스 대표 

임상 프로테오믹스의 강자 

여경미 기자
‘인체의 설계도’라 불리는 인간의 유전자는 3만 개인 반면, 단백질은 그보다 더 많은 100만 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단백질은 아직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미지의 생명과학 영역으로 꼽힌다. 한승만 베르티스 대표는 “단백질이 특정 질병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하면 질병 진단 기술과 치료제 개발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한승만 베르티스 대표는 “SAN 모델은 임상 샘플의 단백질 질량분석 스펙트럼을 가지고 환자를 판별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췌장암과 난소암 등 몇 가지 암종을 대상으로 적용했을 때, 질병 유무를 95% 이상 정확도로 판별했다”고 소개했다.
지난 4월, 베르티스는 프로테오믹스(Proteomics, 단백체학) 기술 기반 유방암 조기진단 혈액검사 솔루션으로 포브스코리아 ‘2024 대한민국 AI 50’ 기업에 선정됐다. 프로테오믹스란 단백질 간 상호작용과 기능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 ‘21세기 프런티어 사업’으로 선정됐다. 이후 프로테오믹스 이용 기술개발 사업단을 꾸리면서 개인의 유전적·생리적 특성에 맞게 질병을 예방하는 정밀의료 기술로 주목받았다.

2003년부터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HGP, Human Genome Project)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다. 또 유전자 정보를 매개로 유전자 발현의 조절 등에 관여하는 리노핵산 RNA(Ribonucleic acid)와 단백체학, 대사체학, 유전체학 등 다중체학인 멀티오믹스(Multi Omics) 분야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한승만 베르티스 대표는 SK케미칼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미국 MIT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그는 창업 아이템을 고민하던 중 프로테오믹스를 접하게 됐다. 프로테오믹스 분야에서 상당한 연구 실적을 쌓고 세계적인 유방암 명의로 알려진 노동영 서울대 교수를 찾아갔다. 당시 노 교수는 유방암 치료의 세계적 기준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명의 중의 명의였다. 과거에는 유방암에 걸리면 액와부(겨드랑이)까지 유방 전체를 제거했지만, 노 교수는 국내 처음으로 ‘감시 림프절 생검’을 도입해 림프절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으면 림프절을 절제하지 않았다.

‘단백질을 정복한다면 모든 인간의 질병을 정복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한 대표는 프로테오믹스 기반 조기진단 기술 개발 기업을 창업하고 싶다는 뜻을 노 교수에게 전했다. 그렇게 2014년 베르티스가 설립됐고 노 교수는 서울대 정년퇴임 후 2021년 베르티스 대표로 취임했다. 강남차병원 병원장도 겸직하고 있다.

베르티스 유방암 혈액검사의 차별점은.

베르티스는 프로테오믹스 기반 바이오인포매틱스(Bioinformatics)에 AI 기술을 도입했다. 세계 최초로 유방암 조기진단 혈액검사 마스토체크(MASTOCHECK)를 상용화했다. 프로테오믹스는 특정 질병에 발현되는 특이 단백질 발굴에 주로 응용되는데, 마스토체크는 유방암을 주로 일으키는 단백질 정량(Protein Quantification)으로 유방암을 초기(0~2기)부터 진단할 수 있다. 임상시험에서 마스토체크를 활용하면 83%의 정확도로 유방암 여부를 진단할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또 기존에는 3개 단백질의 정량으로 판단했지만, 최근에는 9개 단백질의 정량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정확도를 90% 정도까지 끌어올렸다. 현재 마스토체크 후속 버전의 제품 허가를 위한 확증 임상을 진행 중이다.

베르티스는 유방암을 시작으로 췌장암, 난소암 등으로 진단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대부분 3기 이상에서 발견되는 췌장암은 발견 후 수술할 수 있는 환자가 10~20%에 불과하다. 이런 환자들을 암 1기에 발견하면 생존율을 높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외에도 사람이 일일이 계산했던 타깃 바이오마커(Biomarker) 정량값 피크를 AI 소프트웨어가 자동 계산하는 DeepMRM도 개발해 진단 검사 제품의 원가절감과 접근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질량분석 기반 오믹스 분석 서비스인 PASS를 출시했다.

PASS(Pan-omics Analysis Service & Solution)는 시료 수집으로 전체 단백체, 타깃 단백질, 단일 세포 등에 대한 정성·정량 분석, 생물정보학 기반 단백체 데이터 분석과 해석 등이 가능한 베르티스의 분석 솔루션이다. 2022년 5월 출시 후 2024년 7월까지 PASS를 기반으로 신약 개발 등 연구개발(R&D)뿐 아니라 목적에 특화된 맞춤형 결과를 제공해 누적 54개 산학연 고객사를 대상으로 103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LLM을 기반으로 개발 중인 SAN 모델도 설명해달라.

프로테오믹스 분야는 단백질 동정(Protein Identification)과 단백질 정량에만 초점이 맞춰져 발달했다. 전체 질량분석 데이터 중 약 30~40%만이 유전자 기반 단백질 서열 정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전체 단백체의 광범위한 분석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SAN(Spectrum is All you Need) 모델은 단백질 질량분석 스펙트럼을 언어로 변환하고 단백질 데이터 분포와 LLM 모델로 구현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시료별로 질량분석기에서 생성된 모든 스펙트럼 데이터를 고유문법 체계를 통해 문장으로 변환한다. 환자와 정상인에게서 생성된 문장을 학습한 SAN 모델은 환자와 정상인의 스펙트럼 문장을 구분하고 실제 임상 샘플의 스펙트럼 문장으로 환자인지 정상인인지 판별한다. SAN 모델의 장점 중 하나는 기존에 약 30~40%만 사용됐던 질량분석 데이터를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로써 기존 프로테오믹스의 한계를 뛰어넘어 단백질 분포 데이터 차이를 학습하고 타깃 질병 유무 등 건강 정보를 도출한다. SAN 모델을 통해 단백질 데이터 분석부터 제품, 서비스 상용화까지 프로테오믹스 기술 실현의 전 단계를 아우르는 기술 체계로 정밀의료 기술을 구현하고자 한다.

SAN 모델은 어디까지 개발됐나.

SAN 모델은 췌장암과 난소암 등 몇 가지 암종을 대상으로 적용했을 때, 질병 유무를 95% 이상 정확도로 판별했다. 이 결과는 지난 2022년 멕시코에서 개최된 프로테오믹스 학회인 세계단백체학회(HUPO, Human Proteome Organization)에서 발표됐다. SAN을 기반으로 단백질이나 유전자, 리노핵산, 대사물질 등을 이용해 몸 안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지표를 의미하는 바이오마커를 특정하지 않고 질량분석으로 진단 정확도가 높은 새로운 진단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3년 안에 상용화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베르티스가 추구하는 글로벌 전략은.

전 세계 프로테오믹스 시장은 2021년 기준 한화 30조8987억원에서 2026년에는 66조6887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아직 건강검진이 대중화되지 않은 국가에서 주요한 진단검사 지위를 선점하고자 동남아시아 시장과 중동 시장에 진출하려 한다. 다양한 인종이 모이는 싱가포르는 전통적인 유전체학 강국이다. 싱가포르에 있는 레플스병원과 건강검진 수탁기관인 이노케스트 등과 지속해서 협업하며, 사우디아라비아의 생명공학 기업 사우디백스(SaudiVax inc)와 마스토체크프로모션·판매 대행 계약을 체결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유방촬영술이 보급되기는 했지만, 문화 특성상 여자가 남자 의사에게 가슴을 노출하는 건 어렵기 때문에 실시율이 상당히 낮다.

앞으로의 목표는.

단백질은 질병 발현의 실제 신호로, 프로테오믹스 기술은 병의 진단, 신약 개발, 치료 등을 좌지우지할 수 있어 바이오산업의 반도체라고 부른다. 반도체가 전자산업의 모든 영역에서 필요하듯이 프로테오믹스는 병 진단, 신약 개발, 치료 등 바이오헬스 대부분에 활용되며, 점차 활용 분야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미국 FDA 가이드라인에 신약 개발이나 환자 치료 시 프로테오믹스 데이터를 활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되었으며, 암 정복을 위한 신약 개발에 프로테오믹스 대가가 합류하는 것이 추세다. 베르티스는 프로테오믹스 기술을 실제 임상에서 상용화해 사업적 성과를 제시하는 등 정밀의료 기술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머신러닝 기반 알고리즘을 적용해 여러 질환에 대한 바이오 마커 조합 선점과 함께 후속 조기진단 솔루션의 정확도를 높이고자 한다.

베르티스는 내년을 목표로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는 바이오 시장의 투자 혹한기였다고 하지만, 베르티스는 마스토체크, PASS 서비스, 후속 진단 검사의 확장성과 상용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2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SAN 모델 개발을 완성하고 베르티스의 기술력을 원하는 고객 목적에 맞게 단백체 분석, 바이오마커 발굴·검증, 신약 연구개발, 생산 등에 필요한 분석 솔루션을 제공할 계획이다.

※ 한승만 베르티스 대표
전 Zenitas Investment 파트너
전 Bain & Company 매니저
전 미국 MIT 경영학 석사(MBA)
전 SK케미칼 연구소 연구원

- 여경미 기자 yeo.kyeongmi@joongang.co.kr _ 사진 최기웅 기자

202409호 (202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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