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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안 물건에도 심리적 소유감이 생길까?기존 연구들은 가방, 자동차, 신발 등 실체가 있는 물건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어왔는데, 그렇다면 사람들은 만질 수 있는 현물이 없는 메타버스 안에서의 사물도 확장된 자아의 일환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메타버스 안의 사물은 빠른 시간 안에 무한대로 복사할 수 있어서 희귀성이 없다.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는 메타버스 안의 물건에도 심리적인 소유감이 생겨서 그 물건이 파손되거나 소멸될 때 심리적인 타격을 입는지 궁금했다.기존 문헌에 따르면 가상이나 디지털 물건에도 심리적 소유감이 생기기는 한다. 그런데 재생산이 용이하기 때문에 분실하기 어렵고(그 자리에서 다시 만들어지는 것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을까) 실체나 현물이 없기 때문에 딱히 파손이라 보기 힘들다. 우리 센터의 최근 실험 결과에 따르면, 어쨌든 내가 한 번이라도 소유했던 경험이 있는 ‘내 것’에 손해를 입으면 마음이 상하기 마련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심리적 소유감의 강도에 따라 타격감도 다르다는 점이다. 가령, 내 것이기는 하나 내가 고르지 않고 그저 주어진 메타버스 안의 물건들에는 심리적 소유감이 있기는 하나, 내가 직접 고르고 사용해본 물건들에 대한 소유감보다는 낮기 마련이다. 이때 갑자기 메타버스 안에 어떤 사고가 발생하여 물건들이 망가지거나 분실되면 사람들은 소유감이 높았던 물건들에 대해서는 심리적인 타격감을 받아 기분이 크게 나빠지지만, 소유감이 낮은 물건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따라서 메타버스에서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소비활동을 하며 얻게 된 가상의 물건들을 사용하면 할수록, 픽셀들로만 이루어진 물건에도 심리적인 소유감을 느끼게 되어 쉽게 똑같은 형상으로 금세 재생산해낼 수 있다 하더라도 ‘내 것’이었던 원래의 물건에 강한 애착을 갖게 된다. 현실 세계에서도 같은 모양의 옷, 신발, 보석이 많아도 그중 하나를 고르고 착용해 ‘내 것’으로 심리적 소유감을 형성하게 되면 대량으로 생산되어 타인들이 소유한 똑같은 옷, 신발, 보석이 많다 하더라도 내 것은 유독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수백,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아바타용 신발과 옷들이 얼핏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사실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이미 똑같이 생긴 사물들에도 무형의 가치를 달리 책정하고 기꺼이 돈을 지불하며 소유하고 싶어 한다.클릭 한 번에 다른 가상 세계로 이동하고 광물과 보석 등의 이미지를 본뜬 3D 장신구로 아바타를 장식해도 잘 눈에 띄지 않는 메타버스 안에서 큰 집, 큰 차, 명품 가방, 보석 등 현물 가치로 과시할 수 있는 현실 세계의 자산들이 가상공간에서도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가상공간에서 정복욕과 과시욕을 채울 수 있는 것들은 현재로서는 아바타가 입고 쓰는 것들에 국한되어 있지만 미래에는 메타버스를 좀 더 선명하고 생동감 있게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예: 화소, 오디오 품질, 헤드셋 스펙)이나 아바타가 움직이는 속도 혹은 다양한 얼굴 표정과 현실감 등으로 과시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많은 사물을 빠르게 복사할 수 있는 공간인 만큼, 물건의 희소성(예: 몇 개만 제작한 디자인)은 더욱 특별하게 여겨질 것이고, 물질적인 ‘내 것’들이 사라질수록 아이러니하게 메타버스 안에서 명예나 지위 등 무형자산의 가치가 더 상승할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소비하고 소유하려는 본능, ‘내 것’에 강한 애착을 느끼는 심리적 소유감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현실 세계에서 메타버스 공간으로 삶의 많은 부분이 이동하게 되면서 우리가 소유하는 것들의 형태와 성질이 달라질 것이다.
※ 안선주 - 조지아대 첨단 컴퓨터-인간 생태계 센터(Center for Advanced Computer-Human ecosystems) 센터장이며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뉴미디어와 이용자 행동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의료, 소비자심리학, 교육과 연계한 가상현실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 대화형 디지털 미디어에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2022년 초 TED talks에서 ‘일상생활에 가상현실 통합’이란 주제로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