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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 대한민국의 성장동력 ‘ 국민정서법’에 발목 잡혔다? 

갈림길에서 우왕좌왕하는 ‘카지노 정책’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관료사회는 복합리조트 육성 강조하면서도 카지노에 부정적인 국민 여론에 몸 사려…불투명한 사업성, 엄격한 사업 요건에 외국인 투자자도 뒷걸음질

▎박근혜 대통령이 7월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관광진흥확대회의를 시작하면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복합리조트형 카지노 외자 유치를 적극 검토하라고 한 데 이어 문화체육관광부도 국적 크루즈 선상 카지노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카지노를 허용해 경제발전의 돌파구를 연 싱가포르처럼 한국도 발상의 전환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

싱가포르 창이공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공항 관계자들에게서 ‘Twenty, twenty(20, 20)’라는 말을 간혹 듣게 된다. 공항에서 이 나라가 자랑하는 복합리조트 단지인 ‘마리나베이샌즈’나 ‘리조트월드센토사’까지 20달러만 내면 20분 만에 달려간다는 뜻이다. 싱가포르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꼭 들르는 명소다.

복합리조트(IR·Integrated Resort)란 일정 규모 이상의 숙박시설과 레저·스포츠 시설, 국제회의 시설, 테마파크, 카지노가 한데 어울린 위락시설이다. 가족단위로 놀러 와서 남녀노소가 각기 관심사에 따라 즐길 수 있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윤희로 코트라 싱가포르무역관장은 “싱가포르는 면적이 서울의 1.2배 정도”라며 “관문인 창이공항에서 주요 관광지까지의 편리한 접근성을 자랑한다”고 말했다.

이런 창이공항도 인천공항 앞에서는 작아진다. 인천공항은 국제공항협의회(ACI)가 주관하는 세계 공항 서비스평가에서 7년 연속 ‘최우수공항’으로 선정됐다. 창이공항은 인천공항의 그늘에 가려 만년 2위 신세다. 윤 관장은 “창이공항 최고 경영진을 만나보면 인천공항의 서비스 체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며 아주 부러워한다”고 전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인천공항에도 결핍된 게 하나 있다. 바로 ‘마리나베이샌즈’나 ‘리조트월드센토사’ 같은 복합리조트가 인근에 없다는 사실이다. 현재 공항배후부지인 국제업무단지(IBC-Ⅰ지역)에다 파라다이스골든게이트가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를 짓는 중이다.

최정철 인천시장 비서실장은 “인천공항 정도의 위상과 항공 네트워크를 감안하면 당연히 호텔, 컨벤션, 카지노, 쇼핑 산업을 아우르는 복합리조트 단지를 끼고 있어야 한다”면서 “세계 주요 공항 중에서 유독 인천공항만이 공항 기능만으로 선전한다”고 했다.

그는 인천공항 이용객들이 영종도 등지의 복합리조트에 여장을 풀고 휴식과 쇼핑을 한다면 인천의 산업경제 지도는 다시 그려질 것이라고 호언했다. “아마 인천공항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열 배가 넘는 수익을 거두게 될 것”이라고 복합리조트가 주는 경제효과를 설명했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갖는 투자 리스크

정부도 복합리조트와 같은 융·복합 관광산업 육성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7월 17일 박근혜 대통령 주제로 열린 제1차 관광진흥확대회의에서 복합리조트 및 MICE산업 육성을 강조하면서 싱가포르 복합리조트 개발을 모범 사례로 제시했다. MICE산업이란 기업회의(Meeting), 포상관광(Incentives), 컨벤션(Convention), 이벤트와 박람전시회(Events & Exhibition)를 융합한 신산업으로 부가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 등 경제 파급효과도 큰 분야라는 게 문체부의 진단이다.

나아가 정부가 제시하는 요건을 충족하는 국적 크루즈선에 외국인 전용 카지노 도입을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모철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도 이날 기자들에게 “복합리조트 단지를 향후 미래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면서 “외국인 투자 유치와 관련해서도 관계기관 용역도 실시하고 그에 따른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이 사업에 힘을 실어줬다.

지자체와 정부의 말은 비슷해도 실행 방법과 속도를 둘러싼 속내는 다르다. 인천시는 복합리조트의 핵심 시설인 카지노 유치에 혈안이지만 인허가권자인 문체부는 엄격한 심사절차를 강조하는 등 신중한 접근을 꾀한다. 대표적인 예가 인천시가 경제자유구역인 영종도 북쪽 끝에 조성하려는 ‘미단시티’다.

서울 도심에서 40㎞, 인천국제공항에서 10㎞ 떨어진 인천시 영종도 운북동에 자리한 미단시티는 269만9946㎡(약 81만6000평)의 부지 위에 주거·레저·비즈니스·문화·교육 시설이 집적된 복합레저단지로 조성된다. 인천도시공사·리포 그룹(인도네시아)·GS건설·SK건설·포스코·외환은행 등 공공기관, 국내 기업과 은행, 외국계 자본이 주주로 참여한다.


현재 미단시티는 진입로와 상하수도·가스·전기·통신 등의 기반공사가 완료돼 건물만 올리면 된다. 카지노를 비롯해 호텔·국제의료센터·외국인학교·쇼핑몰을 유치해 인천의 ‘마리나베이샌즈’가 되려는 야심을 불태운다. 미단시티 복합리조트가 완공되면 연 800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아 관광수입만 연간 4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게 인천시의 계산이다.

미단시티는 인천경제자유구역(IFEZ) 안에 있다. 경제자유구역이란 외국인 투자기업의 경영환경과 외국인의 생활여건을 개선하기 위하여 조성된 지역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2003년 8월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내에서 처음 지정됐다. 2008년 이 법에 외국인 전용 카지노업 허가에 관한 특례조항이 신설되자 외국 투자자를 찾아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볐다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의 이승주 투자유치본부장이 말했다.

웬일인지 MGM·샌즈·겐팅·윈과 같은 내로라하는 카지노 기업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내국인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카지노는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인천만 아니라 부산·대구·새만금·황해·광양만 등의 여타 경제자유구역에서도 이 특례조항에 따라 외국 투자를 유치했다는 소식은 없다. 이승주 본부장은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 해외 자본이 득달같이 달려든다고 보면 오산”이라고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의 카지노 투자에는 리스크가 따라붙었다. 현행법은 외국인 투자자가 먼저 5억 달러 이상을 들여 특1급 호텔 혹은 컨벤션센터 등을 건설하고, 그 뒤에 한국 정부가 카지노 허가 여부를 결정토록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호텔 등에 실물 투자를 완료하고도 카지노 허가가 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손실을 우려해 투자를 기피하게 됐다.

이 본부장은 “5억 달러를 퍼붓고도 다른 이유때문에 허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투자자 리스크가 장벽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는 투자와 관련한 모든 요건을 갖춘 경우에도 ‘허가를 할 수 있다’고 규정돼있다. 다른 사정이 있으면 거부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이래서는 외국인 투자가 요원하다고 해서 도입된 게 사전 심사제도다. 현행법은 그대로 둔 채 시행령을 고쳐 이 제도를 도입했다. 외국인 투자자가 외국인 전용 카지노 본허가를 신청하기에 앞서 투자자 및 투자내용의 자격에 대한 심사를 문체부에 청구하는 제도다. 투자자는 다음의 요건을 반드시 충족해야 한다.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국내법인을 설립하고 자본금 5000만 달러를 납입해야 한다.

투자적정등급(BBB) 이상의 신용상태를 증명해야 하고, 투자자금이 범죄수익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 해당 법인 임원의 결격사유가 없다는 점 등도 함께 밝혀야 한다. 그 전제가 성립하면 복합리조트 투자계획서 및 외국인전용카지노업 운영계획서를 문체부에 보내 적합성 여부를 청구한다.

사전심사제가 요구하는 요건을 갖추면 정부는 적합성에 관해서는 ‘노(NO)’라고 할 수 없게 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강조했다. 이는 지난해 9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외국인 투자 부진을 질책하며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을 다그친 덕에 가능해졌다.




투자의 운명을 가르는 ‘사전심사제’와 ‘공모제’

우여곡절 끝에 법령이 정비되면서 일부 외국자본이 반응했다. 미국 시저스엔터테인먼트와 인도네시아 리포그룹이 합작한 리포&시저스 컨소시엄이 영종도 미단시티에, 일본계 유니버설 엔터테인먼트가 영종도 국제업무단지(IBC-II 지역)에 카지노를 비롯한 복합리조트를 건설하겠다며 사전심사를 청구했다.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사전심사 청구 결과는 참담했다. 둘 다 지난 6월 19일 문체부로부터 사전심사 부적합 판정 결과를 통보받았다. 리포&시저스는 신용등급(BBB) 요건을 못 채웠고, 유니버설 엔터테인먼트는 카지노 운영 경험 미비 등으로 평가 점수가 기준에 미달했다고 한다.

사전심사제를 지렛대 삼아 외국 자본을 어렵게 유치한 인천시는 아연실색했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7월 1일 “MICE 산업을 육성하려면 유흥·문화가 함께 발달해줘야 한다”며 “국가 예산 달라는 것도 아닌데 투자하겠다는 사업자를 발로 차는 건 어리석은 행정”이라고 정부를 질타했다.

그는 또 “카지노는 유인 효과와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영종도가 동북아 레저복합도시로 발전하려면 필수적인 시설”이라며 “어떤 형태로든 다시 설득해 영종도에 카지노를 비롯한 레저복합시설을 유치할 것”고 다짐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리포&시저스로 하여금 신용등급을 개선해 이르면 9월 늦어도 10월 안으로 사전심사를 재청구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카지노사업 주무부서인 문체부는 사전심사제에 매달리는 인천시와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유진룡 문화체육부장관은 송 시장의 기자회견 이틀 뒤인 7월 3일 기자간담회에서 민간이 요청하면 심사를 해서 적합성 여부를 판정해주는 현행 사전심사제를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사전심사제가 계속된다면 사전심사 청구가 남발된다는 우려에서다. 유 장관은 산업통상자원부와도 협의를 마쳤다고 밝혔다.

이에 인천시를 비롯한 카지노 추진 주체들은 반발했다. 경제자유구역 외국인 자본 유치 업무를 담당하는 민간기업의 관계자는 공모제 전환 방침이 외국인의 투자 의욕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전심사제를 통해 겨우 외국자본을 달래왔는데 이제 와서 그 방식을 바꾸면 투자자들의 발길을 돌리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내국인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 관심을 기울이는 외국자본은 그리 흔치 않다”면서 “원할 때 언제든지 적합성 청구를 할 수 있는 사전심사제를 버리고, 정부가 정하는 시점에 의향서를 제출해야 하는 공모제로 간다면 우리 정부가 외자 유치에 미온적이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발산하게 된다”고 했다.

투자 유치를 하는 입장에서는 투자자의 마음이 움직일 때 잽싸게 구슬려 투자 의향을 실천에 옮기도록 하는 게 중요한데 정작 정부는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라는 식의 행정으로 되돌아간다는 불만이다. “돈을 싸 들고 와서 우리집 대문 앞에서 기다리는 외국인 투자자는 없다”고 이 관계자는 강조했다.

오래지 않아 우려하는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전북 군산과 부안을 잇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33.9㎞) 안에 간척지와 호수를 조성하는 새만금 개발사업에 적신호가 켜졌다. 고군산군도지구(무녀도·신시도) 또는 새만금관광단지에 외국인 전용카지노 등 복합리조트 건립을 추진 중이던 새만금개발청은 올 8월 6일 투자교섭이 오가던 외국기업으로부터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내용은 이랬다.


▎지난 1월 리포&시저스와 유니버설 엔터테인먼트가 정부에 사전 심사를 청구한 영종도 카지노 신청지 위치도.
“새만금 사업을 해보겠다고 숨 바쁘게 여기까지 왔다. 우여곡절 끝에 거의 왔다고 생각을 했는데 인천 영종도 카지노 심사 불허, 중국자본에 대한 한국여론(차이나머니 제주 대공습 보도) 등을 감안하여 새만금 투자를 잠정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손을 털고 가겠다는, 새만금개발청에게는 날벼락과 다를 바 없는 소식이었다.

새만금개발청에 날아든 결별의 이메일

새만금은 영종도보다 사정이 더 열악하다. 영종도의 미단시티는 그래도 기반시설을 다 닦아놓은 상태여서 복합리조트 투자자를 물색하는 입장이지만, 새만금 지역은 그런 기반시설조차 미비하다. 기반시설을 갖추면서 숙원사업인 복합리조트 건설도 해야 하는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새만금개발청이 해외 투자자 확보에 동분서주하던 지난해 6월 중국의 D건설과 선이 닿았다. 올 5월엔 D기업이 다리를 놓은 홍콩과 중국의 주요 투자자들이 새만금 투자를 결정하고, 6월 새만금 현지를 방문하기도 했다.

토지매입 가격 등 투자조건을 잠정 타결짓고 7월말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합의한 터였다. 그러던 차에 전격적인 보류 결정 통보가 날아든 것이다.

조창완 새만금개발청 관광개발부 전문위원은 “문체부의 부적합 판정을 보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정부가 카지노 관련한 제도에 폐쇄적이라는 인상을 갖게 된다”면서 “이 기업 또한 그런 점을 고려해 협상을 유보한 것”이라고 했다.

지자체들은 그나마 박 대통령의 말에 한 가닥 희망을 거는 듯하다. 7월 17일 관광진흥확대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외국자본 유치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종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의 발언에 “법도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므로 특별한 경우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보완하면 된다”면서 “이것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으므로 적극 검토해주길 바란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8월 7일 경제관계장관회의와 경제·민생활성화 대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기업 투자에 어려움이 없도록 산업단지 등 계획입지 제도와 환경관련 규제를 체계적으로 개선하고, 규제 절차도 간소화·투명화하겠다”며 “복합리조트, 의료관광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전의 계기는 쉽게 올 것 같지는 않아보인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 사전심사제를 공모제로 바꾸는 문체부의 방침은 확고하다. 지난해 9월 사전심사제 도입 이후 적합성 심사 청구를 한 사례는 지난 1월의 두 건이 전부다. 정부 입장에서도 사전심사제를 막상 시행해보니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했다.

사전심사제는 투자자가 신청을 해오면 정부는 ‘민원사무처리법’을 준용해 언제든지 심사를 해줘야 한다. 정부는 카지노 허가라는 게 다른 것과 달리 금지된 행위를 특별히 허가해주는 특허의 성격을 갖는다고 여긴다. 따라서 누가 하고 싶다고 해서 적합성을 심사해주는 것 자체가 심사청구의 난립을 불러오는 등 적절치 않다는 게 문체부의 시각이다.

안신영 문체부 관광산업과 팀장은 “카지노 정책은 정부의 시책과 구상이라는 큰 그림에서 접근해야 한다”면서 “단지 사업자가 하고 싶다고 해서 그때그때 응하다 보면 정책 부분에서 정부의 재량권이 많이 축소된다”고 말했다. 투자자 리스크를 줄여주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정책판단 여지마저 잠식당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투자자와 정부 양쪽을 두루 배려한 것이 바로 유진룡 장관이 말한 공모제인 셈이다.

외국인투자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진 산업통상자원부도 문체부와 보조를 맞춘다.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공모제는 두 부처의 윗분들이 협의한 사안”이라며 “외국인 전용 카지노 투자 유치 건은 주무부서인 문체부가 그리는 청사진에 우리부가 협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심지어 모철민 수석도 “(외국인 투자 유치 방식 문제는) 청와대가 답할 사안이 아니라 문체부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박 대통령이 “법도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법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게 아니다”, “특별한 경우는 긍정적으로 되게 하려면 할 수도 있다” 등 영종도 카지노 유치에 힘을 실어줬으나 정부 부서에서는 법과 절차를 먼저 따진다. 리포&시저스가 신용등급을 개선해 사전심사를 재청구하더라도 결과를 낙관하기 어려운 이유다.


▎복합리조트 마리나베이샌즈는 싱가포르의 국가 이미지를 확 바꾸며 나라를 대표하는 관광상품으로 자리잡았다.



내국인에게는 사행산업, 외국인에게는 관광산업?

외국인 전용 카지노 허가에는 실정법 외에도 ‘국민정서법’도 알게 모르게 작용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다른 사업과 달리 사행산업으로 분류된 카지노의 특성, 한국사회가 카지노를 바라보는 눈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기존 업자들의 반발도 무시하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카지노 산업은 단순히 외자유치라는 시장논리에 맡겨서 해결할 사안이 아니라는 게 정부 입장으로 해석된다.

아직도 카지노가 주는 어감은 어둡기만 하다. 카지노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에 의해 경마·경륜·경정·복권 등과 함께 사행산업으로 분류된다.

국무총리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위원장 김성이)가 사행산업을 통합·관리하면서 국내총생산(GDP)에서 사행산업 매출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일정 수준으로 묶어둔다. 사행산업은 총량규제 대상인 것이다.

또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출입이 허락된 강원랜드 외에 내국인은 여타 국내 카지노의 출입이 금지된다. 그러면서 외국인에게는 관광산업이라는 명목으로 카지노 이용을 권장하는 우리 사회의 이중 잣대도 복합리조트 산업 추진에는 걸림돌이다.

기존 업자들의 반발도 정책 결정을 미루게 하는 요인이다. 신규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해외 관광객을 불러오면 국가적으로는 이익이지만 기존의 국내 업자들은 시장을 잠식당한다는 피해의식을 갖게 된다.

이들은 외국인 전용 카지노 신규 허가가 과당경쟁과 출혈 경쟁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현재 국내 카지노 사업장은 모두 17곳이다. 내국인 출입도 허용되는 강원랜드를 제외한 16개 사업장이 외국인 전용이다. 이 판국에 아무리 경제자유구역이라지만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신설한다면 기존 업자들과 파이를 나눠 가져야 한다.

요즘은 중국인 관광객 증가로 제주지역 카지노 업계도 흑자로 돌아섰다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국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는 파라다이스그룹과 그랜드코리아레저(GKL)이 기록적인 수익을 올리는 반면, 지방카지노는 늘 적자를 봤다. 제주도 사업장의 경우 카지노 주요 고객이던 일본인 관광객이 줄면서 심각한 불황에 시달기도 했다. 일본 관광객이 그랬듯이 언젠가는 중국 관광객도 감소할 것이고 또다시 카지노 시설은 포화상태로 내몰릴 수도 있다고 권영기 한국카지노업관광협회 사무국장은 진단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국내 카지노 사업장이 경제자유구역으로 이전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권 국장은 “현행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외국 자본에게만 카지노 문호를 개방하고 있어 국내 카지노 업계는 역차별당한다”면서 “외국자본 유치의 필요성은 이해하지만 자칫 거대 외국자본이 외국인 고객을 싹쓸이하는 사태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제주도의 8개 외국인 전용 카지노 업체들에게 영종도로 갈 거냐고 물으면 대부분 짐을 쌀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이는 외국인 투자유치라는 경제자유구역 설치 취지와 어긋나는 사업자 중심의 사고방식이라 수용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명박 정부가 갓 출범한 5년 전에도 이랬다. 2009년 한국관광공사의 자회사인 GKL의 권오남 사장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영종도와 새만금에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포함한 대규모 복합리조트를 세워야 한다. 이곳에 가서 게임도 하고 가족단위로 휴가도 즐기고 심지어 고급 의료 서비스까지 받는다고 생각해보라. 엄청난 국가적 경쟁력이 생긴다”고 했다. 권 사장 발언의 방점은 그 다음에 찍혔다.

“그런데 한국에서 카지노라고 하면 조직폭력배, 검은돈, 이면의 거래 등 하여튼 복잡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다보니 정부 관료 입장에서는 카지노에 대한 국민 인식이 너무 부정적이라 자칫 정책을 섣불리 다뤘다가는 지탄을 받기 쉽다. 그래서 누가 나서서 자발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사업이 바로 카지노다.”

현상유지라는 어정쩡한 타협

권 사장은 한국에서 카지노 산업이 육성되지 못하는 이유의 하나로 ‘담당자들이 너무 자주 바뀌는 점’도 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관료사회는 이 문제에 관한 한 ‘현상유지’라는 어정쩡한 타협을 선호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 허가 문제는 이처럼 외국자본, 국내자본, 정부, 지자체의 입장과 이익이 얽히고설키다 보니 일의 진척이 늦어진다. 5년 전과 지금이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이유다.

문체부는 싱가포르의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접근 방식이 복합리조트를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분석한다. 즉 철저한 사실 기반의 타당성 조사(콘셉트 제안, 카지노 부작용 대책), 장기간의 투명한 소통(국회, 종교계 등), 글로벌 투자자를 위한 입찰 설계 등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한쪽 면만 본 것에 불과하다. 카지노를 대하는 싱가포르의 관점이 빠져있다. 림 스위 니안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 국장은 카지노는 도박장 그 자체라기 보단 관광산업의 한 영역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카지노의 역할에 대해 “관광객들이 싱가포르에 오도록 유도하는 것”이라면서도 “복합리조트 매출에서 카지노가 차지하는 비중은 10%도 안 된다”고 했다.

마리나베이샌즈의 경우 컨벤션 센터·호텔·쇼핑몰처럼 카지노 역시 전체의 일부일 뿐이다. 림 국장은 “카지노는 우리가 외화를 벌도록 해주는 관광산업의 일부”라는 점을 강조했다.

싱가포르는 카지노(10%)를 제외한 관광산업(90%)을 보고 달려간다면, 우리 정부는 10%에 묶여 나머지 90%마저 제자리를 맴돈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5년 뒤 새 정부가 들어서도 같은 얘기가 되풀이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201310호 (201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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