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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역대급 총선에 여론조사 전문가 희비 

무대는 끝났다, 빗나간 예측과 빚이 남았다 

조득진 월간중앙 선임기자
여론조사 ‘깜깜이 기간’에 판세 변동… 출구조사 오류에 고개 숙인 방송사
선거 비용 ‘정산의 시간’… 송영길·심상정 전액, 이낙연·조응천 반액 돌려받아


▎‘환호와 실망’. 지난 4월 1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각각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시청하고 있다.
제22대 총선의 긴 레이스가 더불어민주당·더불어민주연합 175석, 국민의힘·국민의미래 108석, 조국혁신당 12석 등의 결과와 함께 막을 내렸다. ‘민주당 승리, 국민의힘 고전’은 일찌감치 예상된 결과였지만 180석이 넘는 범야권의 압승에 전문가뿐만 아니라 국민들 사이에서도 ‘이 정도였나’ 하는 반응이 나온다. “정권심판론이 강하게 먹히면서 다른 이슈들이 민심 변화에 크게 작용하지 못했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그러나 이는 ‘後見之明(후견지명)’, 결과를 보고 나온 분석이다. 사실 이번 총선 역시 이슈 때마다 여론이 요동쳤다. 2월부터 4월 초까지 각종 이슈에 따라 각 당의 지지율은 크게 움직였고, 대통령의 국정 방향 또한 민심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전문가들은 그때마다 여론조사 결과와 현장 민심을 바탕으로 총선 결과를 전망했다.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권역별 판세는 물론이고 관심지역의 당락 예측까지 등장했다. 월간중앙이 전문가 분석, 여론조사와 출구조사가 실제 총선 개표 결과와 어떻게, 왜 달랐는지 살펴보았다.

이번 총선을 보면 결과적으로 많은 전문가들의 예측이 빗나갔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총선을 하루 앞둔 4월 9일 국민의힘 예상 확보 의석수를 130석(비례 16석 포함)으로 전망했다. “(여론조사에서) 보수이념 지형과 국민의힘이 우위를 보이고, 가장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도 38%로 낮지 않다”며 “세 가지 지표 중 하나라도 흔들려야 정권심판론이 들불같이 일어난다. 누구 하나 압승하는 결과는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 교수는 민주당과 더불어민주연합이 146석을, 조국혁신당은 7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 역시 “민주당이 우세한 듯 결론이 나오겠지만 압승은 쉽지 않다”고 예측했다. 그는 비례를 포함해 민주당이 143석, 국민의힘이 148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했다. 조국혁신당은 10~12석, 개혁신당은 2~3석으로 점쳤다.

예측 빗나간 ‘엄문어’, ‘족집게’ 등극 장성철


예측이 가장 어긋난 전문가는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으로 압승할 것을 정확히 예측해 ‘엄문어’(월드컵 승패 적중률이 높았던 문어에 비유)라는 별명을 얻었던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이다. 그는 3월 중순 비례를 포함해 민주당 117석, 국민의힘 167석, 조국혁신당 8석 등 여권의 과반 확보를 예측했다. 이어 요동치는 민심에 따라 4월 초순엔 민주당 131석, 국민의힘 149석, 조국혁신당 8석으로 조정했지만 여전히 여권의 승리를 예측했다. 그러나 개표 결과 지역구에서 40석 이상 차이가 났다. 엄 소장은 ‘스윙 보터’ 충청권에서 국민의힘이 28석 중 17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결과는 6석에 그쳤다. ‘24 대 24, 반반 싸움’이라고 전망한 서울에서도 민주당 37석, 국민의힘 11석으로 나타났다. 경기지역 전망에서도 민주당 35석, 국민의힘 25석을 예측해 큰 차이를 보였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막판 보수 결집 분위기가 있어서 뒤집힐 것으로 예상했는데, 낙동강벨트 정도만 보수 결집이 이뤄지고 충청, 수도권엔 미치지 못했다”며 “이재명 민주당 대표나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보다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분노가 그만큼 컸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가장 적중한 전문가는 장성철 공감과논쟁정책센터 소장이다. 장 소장은 4월 3일 한 토론회에서 ‘범야권 199석 vs 범여권 101석’, ‘민주 179석, 국힘 101석, 조국 13석’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민주당은 지역구 166석과 비례 13석, 국민의힘은 지역구 85석과 비례 16석으로 예측했다. 조국혁신당 13석, 개혁신당 3석이었다. 전체적인 적중률은 95% 수준. 장 소장은 권역별 전망에서도 결과와 근사치를 내놓았다.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많은 선거구(60개)를 가진 경기도의 판세를 더불어민주당이 50석, 국민의힘이 10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장 소장은 월간중앙과의 통화에서 “이번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의 패배”라고 말했다. 그는 “정권심판론에 대한 지지가 높았고, 윤 대통령에 대한 비호감의 결과였다. 국민의힘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극복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며 “선거 막바지 조국혁신당의 부상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등판에 위기감을 느낀 영남 보수표가 낙동강 벨트에 몰리면서 가까스로 개헌저지선을 지켰다”고 분석했다.

장 소장의 높은 적중률은 각종 여론조사 결과와 함께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통한 각 지역 민심 체크 덕분이다. 전문가 대부분이 경기도 화성을에 출마한 이준석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낮게 봤을 때 장 소장은 ‘유세장으로 몰리는 시민들의 자발적 모임’을 보면서 이 후보의 당선을 예측했다. 장 소장은 “구체적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는’ 80~85석, 전국적인 지지율에 따른 비례대표 15~20석을 바탕으로 예측했다”고 말했다.

72억 들인 출구조사, 사전투표 탓에 무용지물?


▎광주 광산을에서 출마해 득표율 13.84%를 보인 이낙연 개혁신당 공동대표. 그는 득표율이 15%에 미치지 못해 선거 비용의 50%만 보전받는다.
“범야권, 200석 안팎 압승 전망… 국민의힘 ‘개헌저지선’ 100석 위태”

4월 10일 오후 6시 투표가 종료되자 KBS, MBC, SBS 등 각 방송사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띄운 자막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민주당·민주연합 합산 의석수를 KBS는 178~196석으로, MBC는 184~197석, SBS도 183~197석으로 발표했다. 국민의힘·국민의미래 의석수 범위는 87~105석(KBS), 85~99석(MBC), 85~110석(SBS)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이 출구조사 결과는 모두 빗나갔다.

서울 동작을에선 출구조사와 달리 나경원 국민의힘 후보가 류삼영 민주당 후보를 9.0%p 차로 이겼고, 경기 성남분당갑에서는 출구조사에서 5.6%p 차로 밀렸던 안철수 국민의힘 후보가 개표 결과 이광재 민주당 후보를 6.6%p 차로 제쳤다. 경기 화성을에선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공영운 민주당 후보를, 서울 도봉갑에선 김재섭 국민의힘 후보가 안귀령 민주당 후보를 꺾었다. 이렇게 출구조사와 달리 실제 개표에서 당락이 뒤바뀐 지역구는 254곳 가운데 18곳이나 됐다. 출구조사에 모두 72억원을 쏟아부었던 지상파 3사는 결국 메인뉴스에서 시청자에게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출구조사 오류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31.3%라는 역대급 사전투표율이 꼽힌다. 사전투표는 출구조사의 직접 대상이 아니다. 방송 3사는 사전투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사전투표자의 지역, 성별, 연령대 등의 통계자료를 받아 여론조사를 통해 표심을 물어본다. 이번엔 접전지 55개 지역구에 전화 여론조사로 사전투표 표심을 파악하고, 나머지 199개 지역구에 대해선 이를 근거로 본 투표 출구조사를 보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을 뽑았다는 응답이 실제보다 과다 표집돼 전체 판세를 예측하는 데 실패했다는 분석이다.

달라진 사전투표 양상도 예측 불허에 한몫했다. 통상 사전투표에는 진보성향의 유권자가 몰린다고 본다. 하지만 이번 사전투표에선 60대가 314만1737명(22.69%)으로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많았고 50대 312만 명(22.5%), 40대 217만 명(15.7%), 70대 이상 207만 명(15%)으로 뒤를 이었다.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37.7%로 4년 전 총선(30.6%)과 비교해 크게 늘었다. 보수 성향이 강한 60대 이상 연령대는 보통 여당 지지세가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사실 총선은 ‘출구조사의 무덤’으로 불린다. 선거구별 조사를 진행해야 하는 총선은 전국이 하나의 모집단인 대선이나 규모가 큰 지방선거보다 예측하기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모수가 작아 이번에도 오차범위 5%p 차로 당락이 갈린 경합 선거구가 50여 곳에 이른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사전투표와 당일투표 유권자들을 별도로 분석해야 출구조사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한국조사연구학회는 2021년 학술 논문에서 “진보·보수 효과에 편향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전투표자와 당일투표자 사이에 선거 관심도, 정치적 태도, 연령, 직업 등에 차이가 있다”고 분석했다.

무소속 완주한 장예찬은 빈손 퇴장

총선이 끝나자 승자와 패자 사이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낙선자들 입장에서는 선거 비용을 돌려받느냐, 빈손으로 떠나느냐 문제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무대는 끝이 났고, 이제 ‘정산의 시간’이 온 것이다. 공직선거법은 선거비용 제한액 범위 내에서 선거일 후 국가가 선거 비용을 부담하도록 규정한다. 지역구에서 15% 이상을 득표하면 선거 비용 전액을, 10~15% 미만이면 절반을 지원받지만 10%에 못 미치면 단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후보자들의 선거운동 비용을 평균 2억1800만원으로 제한했다.

정산 결과 누가 웃고, 누가 울까? 우선 광주 서구갑에서 ‘옥중 출마’로 선거를 치른 송영길 소나무당 대표는 투표수 8만3480표 중 1만4292표를 얻어 득표율 17.38%로 선거 비용 전액을 돌려받는다. 보석 청구 기각으로 유권자와 악수 한 번 해보지 못했지만 어쨌든 선거 비용은 전액 보전 받게 됐다. 선거 패배와 함께 정계 은퇴를 선언한 심상정 녹색정의당 대표도 경기 고양갑에서 18.41% 득표율을 보여 마찬가지로 전액 보전 받는다. 박근혜 정부 시절 경제부총리로 ‘친박 좌장’으로 불렸지만 경북 경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1663표(1.16%p) 차로 석패한 최경환 후보, 민주당 탈당 뒤 국민의힘에 입당해 대전 유성을에서 출마한 이상민 의원도 비용 전액을 돌려 받는다.

광주 광산을에 출마했던 이낙연 새로운미래 대표는 득표율 13.84%를 보여 선거비용 절반만 보전 받게 됐다. 4선 국회의원, 전남도지사, 국무총리, 여당 대표를 역임한 호남의 거물 정치인의 초라한 뒷모습이다. 민주당에서 개혁신당으로 옮겨 경기 남양주갑에서 출마한 조응천 후보 역시 13.18% 득표율로 가까스로 절반을 지켜냈다.

선거기간 내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낙선과 함께 선거 비용과 기탁금까지 모두 날린 후보들도 많다. 국민의힘 소속으로 공천을 받았을 당시 지지율이 50% 이상 나오기도 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참모 1호’ 장예찬 부산 수영구 무소속 후보는 9.18%의 득표율로 선거 비용을 한 푼도 보전받지 못하게 됐다. 그는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 없이 완주하면서 선거기간 내내 여당 지지층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 밖에 이원욱 개혁신당 경기 화성정 후보(9.22%), 홍영표 새로운미래 경기 부평을 후보(8.25%) 등도 빈손으로 총선을 마감했다.

- 조득진 월간중앙 선임기자 chodj21@joongang.co.kr

202405호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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