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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포커스] SK그룹 경영전략회의에서 무슨 말이 오갔나 

“변화에 선제적 대응 못하면 돌연사… 체질 개선하고 AI·반도체 드라이브”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최창원, 최고협의기구 컨트롤하며 조직에 ‘긴장감’… 에너지 사업 리밸런싱은 최재원이
최태원 회장,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 구축에 매진… “‘AI 리더십’ 강화에 생사 달려” 절박


▎최태원 SK 회장이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4’가 개막한 2월 26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피라 그란 비아 전시장에서 SKT 부스를 둘러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 사진:연합뉴스
SK그룹에 변화 바람이 거세다. 밸류체인을 재정비하는 등 그룹 차원의 포트폴리오 조정 작업에 시동을 걸었다. 미래 성장 동력인 SK온의 전기차 배터리 사업이 일시적 수요 감소로 주춤하자 인공지능(AI)과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성능 반도체로 극복한다는 포석이다.

변화의 추진 동력은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오너 경영인들이다. SK 관계자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해부터 내부 임직원들에게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SK그룹은 ‘서든데스(돌연사)’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고 한다. 최근 전면에 나서 SK그룹 쇄신 작업을 추진하는 이는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다. 최 회장의 사촌동생으로,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인 그는 올해부터 그룹 최고 의사협의기구를 컨트롤하면서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선택과 집중’ SK그룹 군살 빼기 시동


▎최태원 SK 회장이 6월 28~29일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린 경영전략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오프닝 스피치를 하고 있다. / 사진:SK 수펙스추구협의회
최창원 의장은 주요 사장단 회의를 월 2회 토요일마다 열고 있다. 최 의장은 올해 초 임직원 상견례 자리에서 “미래 준비 과정에서 기존 질서의 붕괴는 갑자기 발생하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변화의 과정 중 실패가 있을 순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선제적으로 준비해온 만큼 성공의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임직원들에게 전달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최 의장은 이어 “서든데스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미래 유망 분야를 선점하면서 꿋꿋이 나아가자”고 피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SK 내부에서는 최 의장의 이 같은 경영 방향성이 평소 자기관리에 철저한 그의 스타일에서 비롯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 의장은 조직 내부에서 부지런하기로 유명하다. 새벽에 출근해 업무를 미리 꼼꼼하게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술도 입에 대지 않고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최 의장의 경영 스타일에 대해 내부에서 ‘건강한 긴장감’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최 의장은 주변에 요구를 하는 대신 본인 스스로를 갈고 닦기 위해 노력하고, 이러한 리더십을 통해 자연스럽게 주변과 조직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성향이라는 전언이다. SK 관계자는 “연초 임직원 미팅 자리에서 발표한 자료조차도 최 의장이 전날 저녁까지 직접 만든 것이었다고 한다”며 “그의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수펙스 임원들에게도 긴장감을 형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태원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의 역할이 커진 것도 눈에 띈다. SK온을 이끌던 최 수석부회장은 최근 SK온의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SK이노베이션은 SK그룹의 에너지 사업을 대표하는 중간지주회사다. SK에너지, SK지오센트릭, SK온, SK엔무브, SK인천석유화학,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SK아이이테크놀로지, SK어스온, SK엔텀 등 9개 사업자회사를 두고 있다. 최 수석부회장은 SK이노베이션 계열의 에너지·그린 사업 전반에 대한 지정학적 리스크 대응과 글로벌 성장 전략 실행에 힘을 싣고 있다. 증권가는 최 수석부회장이 그동안 맡고 있던 SK그룹 수석부회장과 SK E&S 수석부회장을 계속 겸임하는 만큼, 그룹 미래 에너지 사업의 구조조정과 시너지를 창출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노우호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SK그룹 사업 리밸런싱의 일환으로 SK이노베이션과 SK E&S를 합병하는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며 “SK이노베이션의 순자산가치(NAV)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SK그룹을 총괄하는 최태원 회장은 글로벌 산업 트렌드 분석과 미래 먹거리 발굴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4월 엔비디아를 시작으로 세계 AI 산업을 이끄는 ‘빅 테크’ 리더들과 잇따라 접촉해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공동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 회장은 최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 등 미국 현지 정보기술(IT) 업계 인사들을 연이어 만났다. SK 관계자는 “반도체부터 서비스까지 AI 업계 리더들과 대화하면서 SK의 AI 경쟁력 강화 방안과 ‘사람’을 향하는 SK의 AI 사업 방향성을 구체화한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SK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 6월 말 미국 시애틀 아마존 본사에서 앤디 재시 CEO와 만나 AI, 반도체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재시 CEO는 AI, 클라우드 전문가다. 아마존은 최근 머신러닝(ML) 학습과 추론에 특화한 자체 AI 반도체 ‘트레이니움’, ‘인퍼런시아’를 개발하는 등 반도체 설계부터 서비스까지 AI 전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두 반도체는 처음부터 AI를 위해 개발한 반도체로, 고성능 HBM을 필요로 한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5세대 HBM인 ‘HBM3E’ 양산에 성공하고 고객사에 납품을 시작하는 등 AI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2026년까지 80조원 확보해 AI·반도체 투자”


▎SK이노베이션은 지난 6월 초 최재원 SK온 수석부회장을 신임 수석부회장으로 선임했다. 최태원 회장의 동생인 최 수석부회장은 SK그룹 수석부회장 등을 겸임하며 그룹 에너지 사업의 구조조정과 시너지를 창출하는 역할을 수행할 전망이다. 사진은 2023년 8월 서울 광진구 그랜드워커힐에서 열린 ‘이천포럼 2023’에서 개회사를 하는 최재원 수석부회장. / 사진:SK그룹
최 회장은 또, 새너제이 인텔 본사에서 팻 겔싱어 CEO를 만나 반도체 분야에서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두 사람은 AI 시대를 맞아 첨단 반도체 제조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 등을 모색했다. SK하이닉스는 인텔과 협업해 2022년 12월 세계 최고속 수준인 초당 8기가비트 이상의 속도를 구현한 서버용 D램 ‘DDR5 MCR DIMM’을 최초로 개발한 바 있다. 지난해 1월에는 10나노급 4세대(1a) DDR5 서버용 D램과 인텔의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인 ‘4세대 인텔 제온 스케일러블 프로세서’ 간 호환성 검증을 세계 최초로 인증받기도 했다. 양사는 이 결과를 ‘백서(White Paper)’로 공개하는 등 협력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SK그룹의 사업 리밸런싱 작업 추진 방향은 최근 열린 경영전략회의 내용을 토대로 그 틀을 가늠해볼 수 있다. SK그룹은 6월 28일부터 이틀간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에서 경영전략회의를 열고, 미래 준비와 질적 성장을 위해 선제적·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회의는 해외 출장 중이던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화상으로 참여했고, 최창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주요 계열사 CEO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회의에서는 상반기 밸류체인 재정비 등을 위해 운영한 TF 활동 결과들을 공유했고, 각 사가 합의한 방향성에 맞춰 하반기부터 각 사별 이사회에서 구체적 실행 방안 등을 추진한다.

최태원 회장은 최근 그룹 차원의 포트폴리오 조정 등과 관련해 “‘새로운 트랜지션(전환) 시대’를 맞아 미래 준비 등을 위한 선제적이고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어 “지금 미국에서는 AI 말고는 할 얘기가 없다고 할 정도로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면서 “그룹 보유 역량을 활용해 서비스부터 인프라까지 ‘AI 밸류체인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SK가 강점을 지닌 ‘에너지 솔루션’ 분야도 글로벌 시장에서 AI 못지않은 성장 기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최 회장은 “그린·화학·바이오 사업 부문은 시장 변화와 기술 경쟁력 등을 면밀히 따져서 선택과 집중, 그리고 내실 경영을 통해 ‘질적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창원 의장은 “우리에겐 ‘질적 성장’ 등 선명한 목표가 있고, 꾸준히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면서 “각 사별로 진행 중인 ’운영 개선’ 등에 속도를 내 시장에 기대와 신뢰로 보답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최 의장은 사업 재조정 과정에서 컴플라이언스(준법) 등 기본과 원칙을 철저히 준수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계열사 수 ‘관리 가능한 범위’로 체질 개선”


▎SK는 2023년 12월 7일 그룹 최고협의기구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를 열어 최태원 회장의 사촌 동생인 최창원 SK 디스커버리 부회장을 임기 2년의 새 의장으로 선임했다. 사진은 2022년 6월 SK바이오사이언스 본사에서 열린 글로벌포럼에서 발언하는 최창원 부회장. / 사진:연합뉴스
SK 경영진은 이번 회의에서 수익성 개선과 사업 구조 최적화, 시너지 제고 등으로 2026년까지 80조원의 재원을 확보해 AI, 반도체 등 미래 성장 분야에 대한 투자와 주주환원 등에 활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운영 개선을 통해 3년 내 30조원의 잉여현금흐름(FCF)을 만들어 부채 비율을 100% 이하로 관리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올해 세전이익을 22조원 안팎으로, 2026년 세전이익 목표를 40조원대로 잡았다.

SK그룹은 AI, 반도체 투자를 통해 AI 데이터센터와 개인형 AI 비서(PAA)를 포함한 AI 서비스 등 AI 밸류체인을 더욱 정교화해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해 나간다는 목표다. 이와 관련해 SK하이닉스는 2028년까지 총 103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HBM 등 AI 관련사업 분야에 전체의 80%(82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는 AI 데이터센터 사업에 5년간 3조4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SK그룹 CEO들은 전체 계열사 수를 ‘관리 가능한 범위’로 조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데도 공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과정에서 우량 자산은 지속적으로 내재화하고, 미래성장사업 간 시너지를 극대화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다는 방침이다.

이틀간 20여 시간에 걸쳐 열띤 토론을 벌인 경영진들은 사업 재조정 못지않게 그룹 고유의 경영체계인 ‘SK경영관리시스템(SKMS)’과 수펙스(SUPEX·Super Excellent) 추구 정신의 회복과 실천이 중요한 시점이라는 데도 인식을 같이했다고 한다. SKMS는 최종현 선대회장이 1979년 처음 정립한 이후 45년간 경영 환경 변화에 맞춰 개정을 거듭하며 고도화되고 있는 SK 경영의 근간이다. CEO들은 회의에서 “도전적 경영 환경을 극복하고 다가올 미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룹 전 구성원이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asic)’는 정신으로 합심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뜻을 모았다.

CEO들은 이와 관련해 향후 SKMS를 이천포럼(8월)과 CEO세미나(10월)로 이어지는 주요 경영회의체에서 토론 의제와 중점 과제로 정해 각 사별 실천 활동을 공유하고 강화하기로 했다. 또한, 구성원들이 SKMS 정신을 발휘하면서 업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지속적으로 찾아 고도화해 나가기로 했다. SK그룹 관계자는 “다가올 큰 기회에 대비해 성장의 밑거름을 충분히 확보하자는 것이 이번 회의의 출발점이자 결론”이라며 “미래 지향적 투자 활동은 SK 기업 가치 제고 외에 경제 활성화 등을 통해 국가 경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

202408호 (20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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