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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풍향] 尹-韓 ‘검사내전’ 시작됐다 

윤석열과 한동훈은 오월동주… ‘검사공동체’ 굴레 언제 깨질까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친한계, 당내 주류 친윤계와 전면전 피하고 게릴라전 선회
한동훈이 좌천시킨 심우정, 검찰총장으로 복귀 갈등 예고


▎손 맞잡은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추경호 원내대표. /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한동훈 대표는 62.8%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지난해 12월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된 것과 달리 이번에는 자력으로 대표직에 선출된 만큼 그의 발언이나 행동에 힘과 무게감이 실릴 것은 자명하다. 실제 한 대표는 취임사에서 “국민 눈높이에 더 반응하자”고 밝히면서 대통령실에 대한 비판적 스탠스를 언제든지 취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국민 눈높이’는 한 대표가 지난 1월 명품백 수수 논란을 일으킨 김건희 여사를 겨냥하며 쓴 표현이다. 그 문제로 용산 대통령실로부터 사퇴 종용까지 받았으나 당 대표로 선출된 날 전당대회 현장에 축사하러 나온 윤 대통령의 면전에서 보란 듯이 ‘국민 눈높이’ 발언을 재차 꺼내든 것이다. 총선 당시 김 여사가 명품백 수수 논란에 대한 사과 의향을 한 대표에게 직접 전했으나 묵살됐고 이를 안 윤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사실이 전당대회 기간 밝혀진 만큼 한 대표의 이날 발언 의도는 명백해 보였다.

여의도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의 갈등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서로의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분간은 ‘허니문’ 기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총선 이후 ‘레임덕’ 위기에 직면한 윤 대통령에게도, 아직은 당내 세가 부족한 한 대표에게도 정면충돌은 양측 모두 공멸할 수 있는 위기가 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 몰락하면 보수 진영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인 조기 대선을 맞게 된다. 이 경우 한 대표의 정치 생명도 사실상 끝난다고 봐야 한다. 차기 지도자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엎치락뒤치락해도 막상 선거가 시작되면 탄핵당한 정당의 후보는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현재 상황이 ‘오월동주(吳越同舟·적대 관계에 있는 사람끼리 이해 때문에 뭉치는 경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韓, 당내 입지 구축 험난 예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7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7월 30일 정진석 비서실장이 배석한 자리에서 한 대표를 대통령실에 불러 90분간 회동했다. 두 사람 간 대화 내용은 검찰 시절 회상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이 주로 얘기했고 한 대표는 듣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검찰 시절 두 사람은 사실상 한몸처럼 지냈다. 윤 대통령은 ‘검사공동체’의 굴레를 한 대표에게 강조하려는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권력의 수직적 구도를 보여주려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한 대표가 당장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민심과 여론의 선택을 받은 것과 달리 원외 대표라는 한계와 더불어 당내 세력이 부족한 탓이다. 윤 대통령 선거캠프 출신의 한 대통령실 행정관은 “소위 말하는 친 한동훈(친한)파 의원은 많이 잡아도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자기 존재감을 키우려는 주장만 펼쳤다가는 당 장악 실패는 물론 정치 수명마저 단축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 대표는 새 지도부 인선 구성에서 인력난을 여실히 드러냈다. 당 사무총장에 서범수 의원을 임명한 것부터 그렇다. 사무총장은 당 조직과 자금을 관리하기 때문에 당내 주류이면서도 대표가 믿을 만한 측근이 통상 임명된다. 그런데 서 의원은 계파색이 옅고 한 대표와도 접점이 없다. 오히려 이준석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게 더 유명할 정도다. 한 대표는 지난 총선에서 서 의원 지역구에 지원 유세를 단 한 번도 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비서실장에 박정하 의원을 앉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박 의원은 원희룡 전 의원의 제주도지사 시절 정무부지사를 지낸 바 있다. 당내 계파 구도를 고려한 인선이라는 설명이다. 차기 지방선거의 출마자를 점검해야 할 조직부총장에는 베테랑이 아닌 초선의 정성국 의원이 임명됐다.

다만 한 대표는 정책위의장직을 놓고선 친윤계와 신경전을 벌였다. 한 대표 취임 당시 정책위의장은 친윤 정점식 의원이었다. 윤 대통령의 대학 후배이며 검사 임관 동기다. 가족 간에도 친분이 있고 윤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전해진다. 한 대표 측은 정책위의장이 민생 이슈에 대응하고 당의 정책을 구현하는 수장이므로 측근을 앉혀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이는 표면상의 이유일 뿐, 최고위원회에서 과반으로 친한계가 주도권을 쥐려면 정책위의장을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친윤계는 정책위의장 임기가 1년인 점을 들어 정 의원의 버티기에 힘을 실었지만 정진석 비서실장이 한 대표에게 정 의원의 유임 의견을 전달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무게중심이 친한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당무 개입 논란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결국 한 대표가 정 의원에게 직접 거취 표명을 주문했고, 정 의원이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친윤계가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현재 지도부 구성에서는 전체 9명의 최고위원 중 친한계는 5명(한동훈·진종오·장동혁·김종혁·김상훈)이다. 친윤계 4명(추경호·인요한·김재원·김민전)보다 근소 우위를 점하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 데도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건 한 대표의 당내 입지 구축이 그만큼 험난하다는 방증이다. 재선의 여당 A 의원은 “의원들 사이에선 지도부의 당직 제안을 거절하는 기류가 강했다. 대통령과 거듭 충돌하면서 존재감을 키운 데다 대권도 불분명한 한 대표 편에 서는 부담을 벌써부터 감수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라고 했다.

치고 빠지는 친한계의 게릴라전


▎심우정 검찰총장 후보자가 8월 12일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현재 윤·한 갈등의 전체적인 흐름은 당내 자기 세력을 확고히 뿌리내린 윤 대통령의 진영에 맞서 한 대표가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을 벌이는 형국으로 비친다. 큰 점수를 따내진 못하지만 정치 현안에 자신의 입장을 밝히면서 존재감을 유지하는 전략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한 대표의 능력은 ‘언론 플레이’다. 검사 한동훈을 기억하는 법조 기자들은 수사가 난관에 부딪히면 그가 평소 관계가 좋은 언론사를 통해 수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기사가 나오도록 제보했다는 말도 한다. 실제 한 대표가 비대위원장 시절 김 여사를 겨냥한 비판 발언으로 대통령실 사퇴 종용을 받았다는 사실의 출처도 한 대표 측이라는 건 여의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윤 대통령의 당무 개입 논란이 불거졌고 한 대표는 당시 비대위원장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에 대한 양측의 이견이 드러나는 과정에서도 이 같은 양상이 반복됐다. 한 대표의 ‘김경수 복권 반대론’은 공적인 소통창구가 아닌 언론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됐다. “보수 지지자들의 분노가 크다”는 게 이유였다. 친윤계는 사면이 대통령 고유 권한인데 여당 대표가 반대하는 것은 금도를 넘은 거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또한 한 대표가 언론에 흘리는 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다며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파문이 일자 한 대표는 “제 뜻은 충분히 전달됐다”며 한발 물러서는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그가 친윤계를 도발하고 보수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계획한 것이라면 충분한 점수를 따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서도 한 대표는 “굳이 논의를 이어갈 실익이 없다”고 했다. 전당대회 기간 ‘제3자 추천안’을 대안으로 제시한 그다. 민주당 추천 특검이 아닌 중도의 입장에서 사안을 들여다볼 특검이라면 합리적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는 ‘특검법은 절대 안 된다’는 타 후보들과의 차별성을 드러내면서 민심의 선택을 받았다. 하지만 당내에서 특검 반대론에 봉착하자 한 대표는 입장을 선회했다. 친한계 핵심도 민주당 특검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었을 뿐 특검 자체가 필요한 건 아니었다는 취지로 언론에 밝혔다. 이 역시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식의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퇴임 직전의 대통령이 누구는 당선시킬 수 없어도 누구든 떨어뜨릴 수 있다는 건 정치권의 유명한 경구다. 하물며 임기 반환점도 돌지 않은 윤 대통령을 상대로 대권을 꿈꾸는 한 대표가 당내 주류 세력인 친윤계와 전면전을 펼쳤다가는 대통령과의 충돌로 몰락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나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수 있다. 이에 한 대표는 외곽으로부터 내부로 진입해 자신의 세력화를 이루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한 대비책이 ‘지구당 부활’이다. 현재 원내 정치인은 지역사무소를 차리고 정치후원금을 받을 수 있으나, 원외 정치인은 불가하다. 하지만 지구당이 부활하면 원외도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현직 의원들의 권한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한 대표는 표면상 ‘정치 기득권 타파’를 명분으로 앞세우지만, 실상은 원외 인사들을 키운 뒤 자기 세력으로 편입시켜 당권을 확실히 쥐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게 국민의힘 당직자들의 시선이다.

한 대표의 또 다른 외곽 지지 세력은 충성도 높은 팬덤이다. 최근 이들의 결집력이나 온라인상의 행보가 지나치게 강성이어서 일부 언론에선 이재명 대표의 팬덤인 ‘개딸’을 빌려 ‘한딸(한동훈의 딸)’로 표현할 정도다. 앞서 정 의원에 대해 대통령실의 유임 얘기가 언론에서 흘러나왔을 때 한딸들은 정 의원의 SNS에 사퇴를 촉구하는 댓글을 다는 등 여론전을 펼친 바 있다. 지나친 댓글 쇄도에 정 의원은 SNS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기도 했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심우정 법무부 차관이 신임 검찰총장에 내정되면서 검찰 권력이 완전히 재편된 것이 한 대표에겐 불리한 시그널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앞서 윤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인 박성재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전임인 한 대표가 구성한 검찰 내 ‘한동훈 라인’이 퇴조한 바 있다. 이들의 수장 격인 이원석 전 검찰총장은 중도하차 없이 퇴임하게 됐지만 그를 바라보는 용산의 시선이 곱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검찰권력 재편은 한동훈에 악재

이 전 총장은 김 여사와 관련된 도이치모터스 사건을 사실상 유보 상태로 뒀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나 이재명 대표 관련 사건을 검찰 수장으로서 챙기는 인상은 남기지 못했다. 오히려 전당대회 투표가 한창인 7월 20일 서울중앙지검이 김 여사를 대통령 경호처 부속 청사에서 비공개 조사하고 사후 보고한데 대해 “자신이 패싱당했다”는 취지의 입장을 돌연 공개한 탓에 보수진영의 비판을 받았다. 당시 정치권에선 김 여사 사과 논란이 한창일 때 한 대표에게 힘을 실어줬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반면 심 신임 검찰총장은 대표적인 기획통으로 ‘한 대표’와는 오히려 접점이 없는 인사다. 추미애 전 장관 때 기조실장으로서 윤석열 당시 총장 징계에 반대를 표명한 것이 유명하지만 이미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심 총장은 형사1부장으로 손발을 맞춘 이력이 있다. 사실 한 대표와의 관계를 따지면, 그가 장관 시절 심 총장은 서울동부지검장에서 인천지검장으로 밀려났다가 한 대표의 임기가 다하자 대검 차장으로 돌아온 과거가 있다. 한 번 좌천되면 다시는 중앙으로 복귀하기 어려운 검찰 인사 특성을 고려하면, 한 대표와는 오히려 악연인 셈이다. 온화한 성격의 그가 한 대표를 견제하기엔 최적의 인사라는 법조계의 평가가 나오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202409호 (202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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