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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유럽을 감동시킨 국제창가학회(SGI)의 평화 행보 

인류 평화 위해 동·서양 정신 손 맞잡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유럽 각국서 공식 불교단체로 공인하는 분위기 확산
2017 바티칸 국제회의에 불교단체 중 유일하게 참석


▎기독교 문명권인 유럽에서 창가학회를 공식 불교 단체로 인정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 창가학회가 종교를 초월해 펼쳐온 세계 평화를 위한 활동이 결실을 거두고 있다. 2015년 6월 27일 이탈리아 마테오 렌치 총리(왼쪽)가 창가학회를 공식 종교 단체로 인정하는 종교협약에 서명하고 있다. / 사진:창가학회
유럽과 서양 문명을 대표하는 종교가 가톨릭이라면, 불교는 동양 문명과 철학의 정수(精髓)라 할 수 있다. 양단의 문명을 대표하는 두 종교의 만남과 대화는 전 인류의 화합과 평화를 개척하는 큰 걸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 각국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국제창가학회(SGI)가 가톨릭과 종교 간 대화를 통해 벽을 허물려는 시도는 그래서 더욱 의미 깊다. 창가학회 회원들의 이 같은 노력에 가톨릭 교회는 물론이고 각국 중앙·지방정부에서도 창가학회를 공식 불교 단체로 인정하고 대화 상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독일은 공식 종교단체로, 이탈리아는 ‘종교협약’ 희소식


▎2017년 11월 바티칸에서 열린 ‘완전한 군축과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전망’을 주제로 한 국제회의는 유럽에서 활발한 종교 간 대화의 마중물이 됐다. 이 회의에서 이케다 히로마사 SGI 부회장은 ‘인간정신의 변혁’을 주제로 발표했다. / 사진:창가학회
독일에서 창가학회를 공식 종교단체로 인정하는 정부 결정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2023년 5월 독일 헤센주는 불교 단체로는 처음으로 독일SGI를 ‘공법사단법인’으로 인가했다. 독일SGI가 주정부에 신청서를 제출한 지 4년 반 만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독일은 ‘민법상 종교단체’와 ‘공법상 종교단체(공법사단법인)’를 구분하고 있는데, 공법 사단법인은 국가로부터 자립성과 교단의 영속성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공법 사단법인이 되면 세금과 민사소송법상 우대, 유치원 운영 등 여러 면에서 종교단체로서 우대 혜택이 주어진다. 독일에서 기독교 이외에 공법 사단법인으로 인가받은 종교는 유대교, 이슬람교 정도다. 불교 단체로는 독일SGI가 최초다. 독일의 공법상 종교 단체가 기독교 계열로 한정돼 있던 역사를 감안하면 불교 단체 최초로 인가받았다는 건 유럽에서 창가학회 활동이 결실을 거두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다.

독일에 창가학회의 첫걸음이 내디뎌진 건 지금으로부터 63년 전이다. 이케다 다이사쿠 SGI 회장이 1961년 10월 독일을 처음 방문하면서 창가학회의 소명이 시작됐다. 당시는 동서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우뚝 서서 베를린을 둘로 갈라놓고 있던 시대였다. 베를린 장벽 앞에서 이케다 회장은 평화 건설을 맹세했다. 이후 이케다 회장은 독일을 일곱 차례나 방문해 독일 땅에 ‘평화의 씨앗’을 꾸준히 심었다. 바이체커 전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자와 데볼라프 박사 등 독일 정치인과 지식인들을 만나 평화 구축에 관해 대화했다.

드리치치 독일SGI 이사장은 지난해 11월 15일 세이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사회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단체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케다 선생님을 비롯해 평소 지지해주시는 모든 분들 덕분”이라며 “니치렌(日蓮) 불법의 철학과 창가(創價) 3대 회장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세계 평화와 사회 번영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케다 회장의 선행(先行)을 본받아 독일SGI 회원들은 핵무기 폐기를 위한 전시나, 회관을 지역에 개방하는 오픈데이 등 창가학회를 알리는 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현재 독일SGI는 5개 방면 30개 지역본부를 갖추고 독일 사회에 생명 존엄의 철학을 전파하고 있다.

이탈리아SGI는 2016년을 기념비적인 해로 꼽는다. 이탈리아 정부가 창가학회를 공식 종교단체로 공인한 첫해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정부와 이탈리아SGI가 2015년에 체결한 종교협약을 이탈리아 의회가 만장일치로 가결함에 따라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이 이를 정식 공표했다.

2016년 6월 14일 이탈리아 하원 본회의에서 의원 342명이 참석해 종교협약 결의에 관한 투표를 실시했다. 이는 이탈리아SGI가 2001년 4월 내무부에 종교협약을 신청한 지 15년 만에 이룬 쾌거다. 줄리오 말콤 하원 의원은 “이번 종교협약은 가톨릭이 아닌 다른 종교를 실천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며, 신교의 자유를 확보하는 중요한 법안”이라며 “이것은 이탈리아를 더욱 충실한 사회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엘뷔라 사비노 의원은 “창가학회와 국가 사이의 관계를 인정할 때가 왔다. 창가학회는 늘 평화의 메시지를 발신하고자 노력한 단체다. 한 사람의 양심과 사상 그리고 종교를 떳떳이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자 이 법안에 찬성한다”고 했다.

이탈리아SGI는 이케다 회장의 이탈리아 방문 이후 핵무기 폐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는 한편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전시를 여는 등 불법(佛法)을 바탕으로 한 평화·문화·교육 운동에 매진해왔다. 이를 통해 이탈리아 사회에 생명 존엄의 철학을 넓혀 시민을 계발하고 연대를 맺는 데 힘썼다.

종교협약은 이탈리아 헌법 제8조에 의거해 국가와 종교단체가 맺는 법적인 약정이다. 국가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 협약이 정식으로 발효된 종교단체는 교육, 연구기관 설립 등 여러 권리를 인정받는다. 이탈리아SGI는 학교 등 교육기관을 자유롭게 설립할 권리와 회원이 종교적 경축일을 준수할 권리가 인정되는 등 일정한 권리와 혜택을 얻는다.

‘2017 바티칸 국제회의’ 계기 종교 간 대화 급물살


▎2017년 3월 11일 이탈리아 피렌체시는 이케다 다이사쿠 SGI 회장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했다. 이탈리아SGI는 이케다 회장의 이탈리아 방문 이후 불법(佛法)을 바탕으로 한 평화·문화·교육 운동에 매진해왔다. / 사진:창가학회
2015년 6월 마테오 렌치 총리가 피렌체의 이탈리아 문화회관을 방문해 이탈리아SGI 나카지마 이사장과 종교협약에 조인했다.

렌치 총리는 “한 사람의 위대한 인간혁명은 이윽고 한 나라의 숙명도 전환하고 나아가 전 인류의 숙명 전환도 가능케 한다”는 이케다 회장의 인간혁명 사상을 언급하면서 “이것은 이탈리아 사회에서도 매우 중요한 기본”이라고 평가했다.

유럽에서 활발한 종교 간 대화 활동의 촉진제가 된 사건은 2017년 11월 바티칸 국제회의에 SGI 대표단이 참석한 것이다. ‘완전한 군축과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전망’을 주제로 한 국제회의가 이틀에 걸쳐 바티칸에서 열렸다. ‘온전한 인간발전 촉진을 위한 교황청 부서(이하 인간발전부)’ 주최로 개최했다.

이 회의에 이케다 히로마사 SGI 부회장을 비롯한 SGI 방문단이 협력단체 자격으로 참석했다. 회의 첫날 히로마사 부회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고 이케다 회장의 전언을 전했다. 이튿날에는 히로마사 부회장이 나서 ‘인간정신의 변혁’을 주제로 발표했다.

회의를 주최한 바티칸 인간발전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의교서 ‘인간 발전’을 통해 설립을 발표했고 2017년 1월 1일부터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12개 평의회 중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 등 4개 평의회를 통합한 이 부서는 환경, 평화, 인권, 인도(人道) 문제를 담당한다.

인간발전부를 설립하기 위해 실바노 토마시 교황 대사는 201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한 ‘핵무기의 비인도성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SGI 대표와 만났다. 이 만남을 통해 SGI가 핵무기 폐기를 목표로 전개하는 풀뿌리 운동을 교황청은 인상 깊게 주목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7년 국제회의에서 SGI가 불교단체 중 유일하게 초대받은 배경으로 짐작된다. SGI 외에 퍼그워시회의, 미국 조지타운대 등이 협력단체로 참여했고, 각국 정부와 시민사회 대표, 노벨평화상 수상자 등이 회의에 참석했다.

당시 회의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핵 폐기를 강조했다. 교황 알현 자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핵무기의 우발적인 사고 위험성을 고려하면 그 사용 위험과 보유 자체도 있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인류의 평화적 공생은 무기가 아닌 연대의 윤리로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과 국제지뢰금지운동(ICBL) 창립자 조디 윌리엄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베아트리스 핀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 사무총장 등이 발표에 나섰다. 핀 사무총장은 “핵 폐기를 향한 길에서 신앙심은 공포에 지배된 세계에 희망을 보내고 어둠에 빛을 비추는 힘”이라고 말했다.

회의 둘째 날 ‘평화를 향한 길과 증언’을 주제로 한 세션에서 히로마사 SGI 부회장은 연(緣)에 따라 변화하는 생명의 가변성을 언급하면서 인간정신의 변혁은 생명의 선성(善性)을 명확하게 나타낸다고 주장했다. 히로마사 부회장은 “핵무기 폐기는 핵무기를 용인하는 ‘생명의 마성(魔性)’과 벌이는 싸움이고 핵 군축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향한 도전에서 인간 생명의 가능성이 개화한다”고 강조했다.

교의(敎義) 달라도 ‘평화 만든다’는 대의(大義)로 한마음

이어 핵무기의 인도성을 둘러싼 논의를 지지하는 이유로 핵 문제는 윤리와 도덕의 문제이며, 그런 의미에서 종교는 적극적으로 역할을 완수했다고도 했다. SGI도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다’는 감정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한 연대]전(展)을 여러 나라에서 개최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대화’를 중심으로 의식 계발과 청년 육성을 실천했다고 소개했다.

당시 이탈리아SGI 청년부가 대화를 중심으로 펼친 ‘핵무기는 필요 없다’ 운동을 대표적 사례로 들 수 있다. 이탈리아SGI 청년부는 국제회의 기간 중에도 회의장 홀에서 ‘핵무기는 필요 없다’ 전시를 열어 주목받았다.

당시 국제회의는 종교와 교의는 다르지만, ‘평화를 만든다’는 대의 아래에서 누구나 협력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계기였다. SGI의 활동은 특히 평범하면서도 가장 분명한 메시지를 품고 평화의 길을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참석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교황청과 SGI가 핵 폐기 활동에 발걸음을 함께하기로 한 것은 가장 의미 있는 일대 사건이었다. 국제회의 개막 하루 전날 SGI 방문단은 인간발전부 피터 턱슨 장관, 실바노 토마시 교황대사와 회견을 가졌다. 히로마사 부회장은 “종교적 사명을 한층 더 자각하고 핵무기 폐기의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턱슨 장관은 “날로 심각해지는 핵무기 개발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화가 필요하고 신앙이 있는 사람들이 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409호 (202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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