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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종교 간 대화의 씨앗 뿌린 이케다 회장의 발자취 

“열린 대화가 마음과 마음 잇는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기독교·유교·이슬람교·힌두교 등 종교 지성들과 수시로 대화
“상대의 선성(善性)에 대한 믿음과 인내가 대화의 양 바퀴”


▎1997년 9월 도쿄에서 이케다 다이사쿠 SGI 회장은 힌두교의 지성으로 꼽히는 베드 난다 세계법률가협회 명예회장과 대담했다. 이케다 회장은 다양한 종교와 국적의 지성들을 만나 세계 평화 실현을 위해 뜻을 모았다. / 사진:창가학회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SGI 회장이 뿌린 종교 간 대화의 씨앗은 수십 년이 흘러 세계 곳곳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있다. 이케다 회장은 늘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07년 이탈리아 국립 팔레르모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발표한 기념강연은 대화를 강조한 기념비적 연설로 꼽힌다. 그는 ‘문명의 십자로에서 인간문화의 흥륭(興隆)을’이란 제목의 강연을 통해 “의사소통 수단이나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마음과 마음을 맺는 대화가 여전히 결핍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케다 회장은 의사소통의 방식과 요건을 ▷가치창조의 원천으로서 문명 간 교류 ▷내발적 정신을 바탕으로 한 열린 대화 ▷교육으로 ‘평화문화’ 창출 이렇게 세 가지로 요약했다. 그는 문명과 문명의 관계를 평화적이고 창조적인 방향으로 전환하는 원동력이 바로 ‘내발적 정신을 바탕으로 한 열린 대화’라고 했다.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내 각각의 다양성을 살리는 ‘열린 정신의 대화’가 인간의 마음과 마음을 맺는 유대의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이케다 회장은 20세기를 ‘대량 살상의 세기’라고 규정했다. ‘적과 아군’, ‘선과 악’의 이원론이 지구적 규모로 진행돼 전쟁과 파괴를 되풀이했다는 것이다. 외재(外在)적 차이에서 비롯된 저주를 타파하고 평화와 공생의 지구사회를 구축하는 원천으로 이케다 회장은 ‘대화’를 꼽았다. “내적인 악이 밖으로 발현되는 것을 억누르고 선을 나타내도록 연마하는 작업이 바로 창조적 대화의 진면목”이라고 강조하면서 불교의 ‘선악불이(善惡不二)’ 사상을 소개했다. 모든 인간의 생명에는 잠재적으로 선악의 양면이 갖춰져 있어, 연에 따라 선과 악으로 바뀐다는 내용이다.

또 ‘그들도 나와 같고, 나도 그들과 같다’는 부처의 가르침을 인용해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하면서 상대의 선성(善性)을 믿고 호소하는 대화는, 자기를 통제하고 규율하는 힘을 확고히 단련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인간이 갖춘 ‘선성에 대한 신뢰’, 그것을 끈기 있게 끌어내는 ‘인내의 정신’이 대화를 유지하는 양 바퀴라고도 설명했다. 이것이 바로 종교 간 대화의 ‘화룡점정’이란 것. 이케다 회장이 종교 간 대화를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그 다음 설명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본디 종교의 사명은 ‘생명 존엄’이라는 인류 보편적 지평에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돌아오게 하고 평화 문화를 구축하기 위한 에토스(도덕적 기풍)의 원천이 되어 그것을 확립하는 것에 있다는 게 이케다 회장의 생각이다. ‘대화’는 사람들을 좁은 편견과 증오의 저주에서 해방시키는 것이고, ‘교육’은 평화적 공존의 삶의 자세를 사회에 정착시키고 시대의 확실한 사상으로 고양하는 것이란 설명이다.

유교와의 대화 - 뚜 웨이밍 교수와의 대화


▎2005년 4월 일본의 소카대학교에서 중국 문명 연구 일인자로 꼽히는 뚜 웨이밍 하버드대 교수와 대화하고 있다. 1년 반에 걸친 두 사람의 대화는 대담집 [대화의 문명-평화의 희망철학을 말한다]로 출간됐다. / 사진:창가학회
이케다 회장은 2007년 1월 중국 문명 연구 일인자로 꼽히는 뚜 웨이밍 하버드대 교수와 1년 반에 걸쳐 대화를 거듭하며 대담집 [대화의 문명-평화의 희망철학을 말한다]를 펴냈다. 뚜 웨이밍 교수는 2001년 유엔이 지정한 ‘문명 간 대화의 해’에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 세계 각 문명의 식자를 초청해 개최한 ‘현인회의’에 유교 문명 대표로 참가한 유교 연구의 권위자다.

두 사람은 1995년 하와이에서 개최된 SGI 세계청년평화문화제에서 처음 만났다. 그 뒤로 깊이 교류하며 2000년에는 도다기념국제평화연구소가 오키나와에서 개최한 국제회의에 참석하고, 2005년에는 소카대학교 입학식에도 참석해 우의를 다졌다.

뚜 웨이밍 교수와 이케다 회장은 ‘휴머니즘’이란 키워드로 공감대를 형성했다. 뚜 웨이밍 박사는 유교의 천인합일(天人合一) 철학으로 대표되는 ‘유교 휴머니즘’을 선양했는데, 이 정신성과 ‘불교 휴머니즘’은 기본이념이 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이후 두 사람의 대화는 활기를 띠게 된다. 뚜 웨이밍 교수는 “석존도 공자도 방향은 다르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길을 지향한 점에서 서로 통한다”고 말했고, 이케다 회장도 “모두 (‘민중을 위해’, ‘인간을 위해’라는) 인간주의로 관철했다”고 화답했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는 자신의 신념과 사상을 교조적으로 내세우고 다른 정신적 전통을 부정하려는 편협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대화를 중시한다는 공통점을 내세워 유교와 불교가 “함께 ‘세계시민’의 정신과 양립하는 사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케다 회장은 특히 유교에서 발단한 중국의 ‘대동사상’에 주목했다. 대동사상에 맥동하는 조화의 정신이 바로 다양성을 살리면서 다양성을 통합하는 지혜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케다 회장은 대동사상이 쑨원이나 저우언라이의 신념과도 맥동한다고 봤다. 이케다 회장은 “중국 역사의 저류를 이뤄온 ‘대동’이라는 정신성과 ‘공생’이라는 삶의 방식은 21세기 인류 평화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뚜 웨이밍 교수는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 철학과 사상을 꿰뚫고 있는 이케다 회장이야말로 현대세계에서 가장 숙달된 대화의 달인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슬람과의 대화 – 마지드 테라니안 박사와 대담


▎2017년 이탈리아SGI 청년부가 진행한 ‘핵무기는 필요 없다’ 전시. / 사진:창가학회
1996년 2월 설립한 도다기념국제평화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지낸 마지드 테라니안 박사는 이란 태생의 이슬람교도다. 1992년 7월 실크로드 유적지로 향하는 여행 도중 도쿄에 들렀을 때 이케다 회장과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눴다. 당시 3시간에 걸친 대담은 훗날 테라니안 박사가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는 대화였다”고 회고한 대로 ‘대화의 예술을 소중히 하는 또 한 사람의 소크라테스를 발견한 만남’이었다.

이후 두 사람의 대화는 8년에 걸쳐 서신을 나누며 무르익었고, [21세기를 위한 선택]이란 제목의 대담집으로 출간됐다.

테라니안 박사는 젊은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며 조국의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34세 때 이란으로 일시 귀국했을 때 부당한 혐의로 구속당하고 7년간 당국의 감시 속에서 생활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2007년 12월 도쿄에서 만난 이케다 회장과 마지드 테라니안 박사. 두 사람은 1992년 처음 만난 뒤 8년에 걸쳐 서신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 사진:창가학회
테라니안 박사는 이케다 회장과의 대화에서 “커뮤니케이션의 통로는 점점 확대되고 있는데 대화 자체는 참으로 부족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대화가 바로 생명과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대화가 없는 세계는 암흑”이라며 대화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했다.

이에 이케다 회장은 대화를 성립시키기 위한 전제로 ‘인간에게 갖춰진 선성을 믿고 거기에 호소하고 작용하는 대화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논했다. 이케다 회장은 “대화가 바로 평화를 여는 무기다. 이는 불교의 근본정신이기도 하다”고 피력했다. 이슬람문명의 진수에 대해 테라니안 박사는 ‘다양성’을 꼽았다. “이슬람은 다른 문화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임으로써 더욱 풍부해졌다”는 것이다. “이슬람에서 무력을 호소하는 행위는 자위적 경우에만 허용된다”라는 교의를 소개했다.

이케다 회장도 “적이냐 내편이냐라는 식의 단순 도식화는 부정확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편견을 심어주는 실로 위험한 것”이라고 호응했다. 두 사람은 “극복하지 못할 대립은 결코 없고, 대화에 바탕을 둔 우정을 확대하는 일이 바로 평화를 확대하는 일로 이어진다”고 뜻을 모았다.

힌두교와의 대화 – 베드 난다와의 대담


▎2024년 1월 20일 이탈리아 피렌체시에서 열린 이케다 회장의 추모식에서는 종교와 문명의 벽을 넘어 세계 평화에 진력했던 이케다 회장의 뜻을 기렸다. / 사진:창가학회
인도는 이케다 회장이 남다른 관심을 가진 나라 중 하나다. 이케다 회장은 1961년에 처음으로 인도를 방문했다. 이후 간디와 타고르의 삶을 예찬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여러 강연과 대화에서 때때로 인용하기도 했다.

이케다 회장의 글을 엮어 최근 출간한 [나의 인물관](중앙일보s)에서 그는 비폭력 저항을 이끌었던 간디에 대해 “자신의 죽음을 각오하고 온몸으로 전 인민의 방패가 되고자 했던 숭고한 영혼”이라고 칭송했다. 인도의 시성(詩聖)이라 불리는 타고르에 대해선 “타고르의 생명 그릇에 가득 찬 기름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인류애의 불꽃으로 빛났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케다 회장은 힌두교의 지성 중 한 명인 베드 난다 세계법률가협회 명예회장과 대담을 가졌다. 두 사람의 대담은 [인도의 정신-불교와 힌두교]라는 책으로도 출간됐다.

난다 회장은 인도 북서부(현재 파키스탄령) 출신으로 힌두교와 간디주의에 조예가 깊다. 미국 덴버대학교 교수, 부학장을 지낸 세계적으로 저명한 국제법학자인 그는 핵무기 사용과 위협이 갖는 위법성을 추궁하는 ‘세계법정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두 사람의 대담은 종교와 국제 문제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었다. 이케다 회장은 “힌두교와 불교의 차이를 초월해 근저에 흐르는 ‘인도의 정신’을 샘솟게 해 현대의 병리와 위기를 극복하는 방도를 함께 탐구하고 싶다”고 했다. 힌두교가 설하는 인생의 4대 목적, 불교와 공통성, 자연과 공생하는 철학, 미래를 여는 인간교육 등 철학적 문제 외에도 ‘개발도상국 원조가 왜 빈곤을 확대했는가’, ‘지구사회 창출을 위한 유엔의 역할’, ‘일본의 국제 공헌에는 아시아의 신뢰를 받는 것이 불가결’ 등 현실적인 국제 문제에 관해 논했다.

난다 박사는 “간디는 비폭력운동 중 수차례 투옥되면서도 신념을 관철,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대립을 이해로 바꿔갔다”고 말했고, 이케다 회장은 “적도 아군으로 바꾸는 것이 대화의 힘”이라며 공감했다. 또 이케다 회장은 “다른 민족이나 종교에 대한 인식도 비록 ‘한 사람’일지라도 직접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가 된다면, 거기서부터 보이는 ‘풍경’도 자연히 바뀌지 않을까”라며 종교 간 대화, 나아가 한 사람을 소중히 하는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난다 박사는 “인종이나 종교가 다른 사람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서로 존중하는 것이 힌두교의 중심 신념”이라며 “종교나 국가가 다른 여러 학자를 결집해 문명 간 대화를 나누고 지혜를 공유하는 이케다 박사의 이상은 인도가 가진 역사 그리고 도덕적 기풍과 공명한다”고 화답했다.

스페인에서 꽃 피운 ‘종교 간 대화’의 씨앗


▎2017년 9월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핵무기금지조약’ 제1회 서명식에서 핵무기폐기국제운동 (ICAN)과 SGI 대표단이 핵무기 폐기를 위한 풀뿌리 운동 전개를 다짐했다. / 사진:창가학회
이케다 회장이 뿌린 종교 간 대화의 씨앗은 특히 스페인에서 활발한 대화로 꽃을 피우고 있다.

지난 2월 19일 스페인 마드리드 시내에 있는 가톨릭교회 연수센터에서 스페인가톨릭주교협의회 주최로 종교 간 대화 행사가 열렸다. 행사에는 주교협의회의 종교간대화평의회 회장인 프란치스코 코세사펠레르 주교와 로마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인 미겔 앙헬 아유소 기소 추기경이 참석했다. 엔리케 카푸트 스페인SGI 이사장도 이날 행사에 참석해 ‘불교의 정신성과 기도’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스페인은 종교 간 대화의 지평을 넓히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나라 중 하나다. 약 보름 뒤인 3월 6일에는 스페인 팔플로나시(市)에서 공립 나바라대학교와 스페인 총리부, 법무부 등이 주최한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정부와의 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여러 종교의 법적 입장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열린 행사에 대학교수와 법률가, 종교단체 관련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정부와 협정이 체결돼 있지 않은 여러 종교 대표들도 참석해 종교의 법적 평등화를 촉구했다. 스페인SGI 이사장도 스페인불교연맹 대표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유럽의 다른 여러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에서도 가톨릭은 다른 종교에 비해 우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법적 권리에 있어서도 스페인은 종교를 다섯 가지로 구분한다. ▷가톨릭 교회 ▷정부와 협정이 체결된 종교(이슬람교·유대교·기독교계) ▷노토리오 아라이고(‘뿌리내림’이란 뜻으로, 스페인에서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널리 분포돼 있다고 인정되는 종교를 의미)로 인정은 받았지만, 정부와 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종교(불교·동방정교회·일부 개신교) ▷종교국에 등록돼 있으나 아무런 지위를 갖지 못한 종교 ▷종교국에 등록돼 있지 않은 종교 등이다.

종교 간 대화 행사가 열릴 때마다 스페인SGI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21~22일 스페인SGI가 카탈루냐유네스코협회 종교간대화센터와 공동으로 ‘종교의 밤’ 행사를 주최하기도 했다. 바르셀로나 시청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창가학회의 불교 철학과 운동이 소개됐다.

20~21일에는 카탈루냐주(州)의 50여 개 종교 단체가 참여해 서로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종교의 밤’은 매년 9월 바르셀로나에서 실시되고 있고, 스페인SGI는 7차례에 걸쳐 행사에 참여해왔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409호 (202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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