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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국정원 퇴직자 모임 ‘양지회’ 이끄는 장종한 회장 

“국정원 조사권 폐지? 국가 안보 포기하겠다는 것”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대공 수사 손발 묶여… 대공수사권도 복원해야”
“해외 네트워크·노하우 수사기관에 이전? 불가능”


▎장종한 양지회장은 “국정원 대공수사권에 이어 조사권까지 폐지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조사권 폐지는 안보를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22대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가정보원(국정원) 조사권 폐지 법안을 추진하면서 국가 안보에 끼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월간중앙이 국가정보원 퇴직자 모임인 양지회의 장종한 회장을 만난 이유다. 장 회장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국정원 조사권 폐지 법안을 대표 발의한 이기헌 민주당 의원(경기 고양시병)이 법안 추진을 재고해줄 것을 요청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국가의 존립이 위협 받는 순간에 놓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터뷰는 7월 24일과 8월 8일 두 차례 이뤄졌다. 양지회 사무실에 함께 있던 황윤덕 양지회 부회장(전 국정원 대공수사단장)의 발언도 같이 담았다.

‘음지에서 일한 보람 양지에서 이어가자’라는 회훈(會訓)이 눈에 띈다.

“국가를 위해 이 한몸 불사른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요즘은 마음이 대단히 무겁다. 국회에서 국정원 조사권 폐지 움직임이 보이기 때문이다. 조사권 폐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나로서는 걱정이 앞선다.” (이기헌 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3일 국정원이 안보 범죄와 관련한 정보를 수집할 때 필요한 현장조사·문서열람·시료 채취·자료제출요구·진술요청 등의 조사권을 폐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정원이 안보 범죄 조사권을 갖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국정원 조사권 폐지는 ‘안보 포기’와 같은 의미다. 국정원 대공수사권 박탈에 이어 조사권까지 폐지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조사권 폐지는 민주당의 자기 모순 아닌가?”

왜 민주당의 자기 모순인가?

“민주당은 지난 2020년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기능을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3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올해 1월부터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폐지됐다. 대신 부여된 게 행정 행위인 조사권이다. 즉, 조사권이 부여된 지 고작 반년밖에 안 되는 셈이다. 그런 조사권을 불과 반년 만에 폐지하려 한다? 자기모순이다. 가뜩이나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로 안보 공백이 생긴 와중에 조사권까지 폐지하려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대공수사권이 폐지된 것이 아니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로 이관된 것 아닌가?

“정확히 봐야 한다. 이관이 아닌 폐지다. 대공수사는 전통적으로 국정원, 경찰, 방첩사라는 3축 체제를 통해 이뤄졌다. 경찰도 과거부터 줄곧 대공수사를 해왔다는 의미다. 민주당은 그런 3축 체제 중 핵심인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했다. 만약 조사권도 폐지한다면 이는 위헌 소지까지 있다. 행정조사기본법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모든 행정기관은 지난 2007년 행정조사기본법이 제정된 이후 조사권을 부여받았다. 아무리 거대 야당이라고 해도 삼권분립과 법치주의까지 훼손해서는 안 된다. 만약 조사권마저 폐지된다면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진지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다.”

“분단국가에 걸맞은 정보기관 복원 절실”

한평생 국정원에 몸담은 서훈 전 국정원장도 대공수사 이전에 찬성한 바 있다.

“서훈 전 원장은 대공수사를 직접 해본 적이 없다. 과거 서동권 안기부장(국정원장) 보좌관으로 있다가 미국 연수를 갔다. 이후 귀국해서는 대북 전략실에서 일했다. 각자의 전문성을 인정해야 조직이 발전한다. 대공수사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대공수사권 폐지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안다.”

조사권 폐지 반발이 국정원의 집단이기주의라는 지적도 있다.

“동의할 수 없다. 나를 비롯한 모든 국정원 직원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조직이 아닌 국가를 위해 충성한다는 마음뿐이다. 국가수사본부에서 대공수사를 제대로 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지금 국수본의 현실을 알기에 마음이 무거운 것이다. 결코 집단이기주의가 아니다. 대한민국 대공수사의 손발이 묶인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국수본의 대공수사력에 회의적인 이유는?

“우선 대공수사는 방대한 해외 네트워크가 필수다. 해외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금의 국수본이 해외 네트워크를 갖추기 위해선 최소 20년은 필요할 거다. 3년의 유예기간으로는 국정원이 60여 년간 쌓은 해외 네트워크를 전수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론과 현실의 괴리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해외에서도 국정원 직원을 카운터 파트너로 여긴다. 대공수사권 폐지는 이론적으론 아름다울 수 있으나 현실을 조금이라도 알면 결코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 국수본의 대공수사력이 제한되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가 있는가?

“국정원은 국수본과 달리 대공수사에 최적합한 인재들로 구성돼 있다. 예를 들어 우르두어(파키스탄과 인도 일부 지역의 공용어)와 페르시아어 등 특수어 능력자와 암호 해석 능력을 갖춘 인재들로 구성돼 있다. 특히 암호 해석을 위해 수학 박사학위 소지자들을 적극 채용했다. 국정원의 스테가노그라피 해독 능력은 이런 인재들이 오랜 기간 함께 근무하며 노하우(Know-how)를 쌓으며 생긴 것이다. 반면 국수본을 비롯한 경찰은 2~3년마다 인사이동을 한다. 장기간 수사에 매진해야 하는 대공수사와는 맞지 않다. 오늘날 국수본 안보수사국이 기피 부서가 된 이유다. 반면 국정원은 자신만의 전공 분야에서 30여 년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한다.”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도 미국의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처럼 이원화되는 게 이상적 아닌가?

“국가마다 적합한 정보기관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가령 미국에는 패트리어트법(애국법)이 있다. 미국 정보당국은 패트리어트법을 통해 사실상 모든 통화 내용을 도·감청 할 수 있다. 국정원은 단 한 번도 패트리어트법을 요구한 적이 없다. 또 국정원은 영국의 MI5처럼 형법상 면책특권을 부여해달라고 요구한 적도 없다. 그저 분단국가에 걸맞은 정보기관의 모습을 갖춰 달라는 것이다.”

미국은 국가정보국(DNI)이 CIA와 FBI를 총괄한다. 우리나라도 국정원과 국수본 위에 DNI를 두면 되지 않나?

“DNI를 신설하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충돌할 것이다. 이처럼 국가마다 정보기관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독일 정보기관인 연방헌법보호청은 수사권은 없지만, 신문조서와 인터넷 기록 조회 등 사실상 수사권에 버금가는 조사권을 갖고 있다. 지금 국정원에 부여된 조사권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하다. 아울러 국정원은 DNI 역할도 해왔다. 다만, 국정원 ‘개혁’이란 미명하에 조정 기능은 약화된 상태다. 하루빨리 대공수사권 복원은 물론 국내 정보담당관(IO) 제도도 복원해야 한다.”

“국내 정보담당관 있었다면 요소수 대란도 없었을 것”


▎장종한 양지회장은 “국수본에 국정원의 해외 네트워크를 3년 안에 넘기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정보담당관 제도는 국내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해 폐지된 것으로 아는데…

“국정원 직원들에게 ‘국가정보원’은 평생직장이다. 정치에 개입할 경우 최대 7년의 징역형에 처하는 데 누가 감히 정치에 개입하겠는가? 국내 정보담당관이 있었다면 지난 2021년 요소수 대란 사태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서훈 전 국정원장은 지난 2017년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근절을 위해 국내 정보담당관 제도를 폐지했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과거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주한미군 2사단을 한국 정부 몰래 철수시키려 했다. 실제 우리 정부에 알리지 않고 항공편으로 조용히 미군을 철수시키고 있었다. 당시 동두천에서 근무하던 국정원 정보담당관이 이를 눈치채고 보고를 올린 덕분에 주한미군 2사단 철수가 중단됐다. 해당 보고를 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급히 동해안에서 대규모 미사일 발사 훈련을 강행했다. 그제야 미국은 2사단 철수를 중단했다. 국정원 국내 정보담당관은 이처럼 고급 정보를 생산해 낸다. 지난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국내 정보담당관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자국 정보기관을 악마화해서는 안돼”

하마스의 기습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정보 실패 아닌가?

“정확히 봐야 한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이스라엘 영토의 일부로 본다. 이스라엘 국내정보기관인 신베트가 관할하는 이유다. 이스라엘 해외 담당 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실패로 치부해선 안 된다. 국내 정보가 이처럼 중요하다. 우리도 하루빨리 국내 정보담당관 제도를 복원해야 한다(이 대목은 황윤덕 양지회 부회장이 설명한 내용을 추가해 정리했다).”

국정원이 국수본과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유하면 되지 않을까?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현장에선 국수본에 정보를 넘기고 싶어도 무서워서 못 넘긴다고 한다. 국정원이 입수한 정보가 국정원 밖으로 나갈 때는 정보 습득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누가, 언제, 누구로부터 정보를 받았는지가 드러난다는 이야기다. 결국 국정원 입장에선 제한적인 정보를 국수본에 넘길 수밖에 없다. 국정원과 국수본의 협조에 한계가 분명한 이유다. 아울러 국수본 수사심의위원회도 국정원과 국수본 간 정보 공유를 가로막는 요소다.”(수사심의위원회는 국수본 주요 수사 정책 자문과 권고를 위해 지난 2021년 4월 국수본에 설치된 자문위원회다. 주요 수사 정책 수립과 결정에 대해 자문·권고하는 역할과 함께 경찰 종결 사건 점검 결과에 대한 심의도 맡는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위원장을 맡은 제1기 수사심의위원회는 법학계, 언론계, 학계 등 외부위원 16명과 수사기획조정관 등 내부위원 13명으로 구성됐다.)

수사심의위원회가 국수본의 대공수사력을 저해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국정원 입장에선 어렵게 취득한 정보를 국수본에 넘겨도 결국 민간 자문기구인 수사심의위원회에 보고된다는 점에서 망설일 수밖에 없다. 총체적 난국이다.”

장 회장이 그리는 바람직한 국정원 청사진은?

“대한민국에 걸맞은 정보기관으로 복원돼야 한다. 전 세계 모든 민주주의 국가라면 정권 교체는 당연한 일이다. 다만, 우리나라처럼 특정 진영의 정부가 정보기관을 악마화하는 경우는 드물다. 과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이란과 대화에 나섰지만, 자국 정보기관을 악마화하지는 않았다. 정보기관의 기능에 손을 대지도 않았다. 정보기관이 정치에 휘말리면 국가 안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 순간에도 우리 국정원 후배들은 목숨을 걸고 국가를 위해 일하고 있다. 퇴직한 선배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후배들이 국가를 위해 일하게 해달라.”

- 글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kim.taewook@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202409호 (202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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