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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취재]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왜 대한축구협회 회장직에 집착할까 

“반대 여론과 문체부 밀어내기에도 버티면 4선 연임 기정사실”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올림픽 본선 탈락, 감독 선임 논란 등 책임론 쏟아져도 회고록 출간하며 사퇴론 일축
尹 정부 칼날에서 자신과 회사 지키고, 축구협회의 현대家 계승 위해서도 못 물러나


▎정몽규(오른쪽) 대한축구협회장은 그동안의 공적을 “10점 만점에 8점”이라고 자평했지만 정작 현실 세계에선 고립된 상태로 거센 사퇴 여론에 직면해 있다. / 사진:연합뉴스
"긍정적으로 보자면 굉장한 ‘원영적 사고’죠.” 정몽규(62)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2024년 7월 자전적 에세이 [축구의 시대]를 펴낸 데 대해 한 축구인은 이렇게 촌평했다. 여기서 ‘원영적 사고’란 걸그룹 아이브(IVE) 멤버 장원영의 초월적 긍정 마인드로부터 비롯된 인터넷 밈을 일컫는다. 문제는 ‘원영적 사고’가 때에 따라선 아큐의 정신승리처럼 비칠 수 있다는 데 있다. 가까운 예로 정 회장은 8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과 면담했다. 파리올림픽 기간이었고,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은 40년 만에 올림픽 본선에도 못 나간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 회장은 굳이 파리를 찾았고, 인판티노 회장에게 [축구의 시대]를 선물한 사진을 공개한 것이다.

책에서 정 회장은 “어느 종목도 국가대표팀 성적이 나쁘다고 회장 퇴진을 요구하지는 않는다”며 “이럴 때마다 축구협회장이나 국가대표팀 감독은 ‘국민 욕받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내 임기 도중 이뤄냈던 업적에 대해 점수를 매겨보라고 한다면 10점 만점에 8점 정도는 된다고 대답하고 싶다”고 자평했다. “나는 점수에 상당히 박한 편이라 내가 8점이라고 하면 상당히 높은 점수”라고 덧붙였다.

[축구의 시대] 저자 소개란에는 “축구와 인연을 맺은 지 30년이 넘었다. 2013년부터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축구와 기업을 통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항상 고민하고 있다. 가족, 축구, 기업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고 나와 있다. 책 뒷표지에는 “나는 한국 축구를 사랑한다. 그것이 이 책을 쓴 이유”라고 큰 글자로 강조돼 있다.

이에 대해 ‘원영적 사고’를 언급한 축구인은 “정 회장은 분명히 축구를 향한 소명의식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무언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것이다 사랑은 아니다”라며 “사랑을 받는 대상한테는 늘 고마운 것이 아닐 수 있다”고 비판했다.

문체부와 체육회 불화 속 어부지리 출마?


▎정몽규(왼쪽) 대한축구협회장은 8월 파리올림픽 기간 인판티노 FIFA 회장과 만나 회고록을 선물했다. 국민적 질타가 쏟아질수록 FIFA에 의존하려는 정 회장의 심중이 읽힌다. / 사진:FIFA
[축구의 시대]의 부제는 ‘정몽규 축구 30년’이다.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과오만 있을 순 없다. 정 회장은 1994년 울산 현대 축구단 구단주로 축구와 인연을 시작했다. 이어 1997년 전북 현대 구단주를 거쳐 2000년 1월부터 현재까지 부산 아이파크 구단주를 맡고 있다. 2011년 1월에는 K리그를 총괄하는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로 선출됐다. 이어 2013년 1월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3차례 연임에 성공했다. 2017년 1월부터는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2024년 5월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집행위원회 위원이 됐다.

그의 임기 동안 남자 대표팀은 2014년 인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2022년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까지 3연속 금메달을 땄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파울루 벤투 감독이 지휘한 대표팀은 16강에 진출했다. 이 밖에 지속적인 유소년 축구 투자로 20세 이하(U-20) 월드컵 두 대회 연속 4강이라는 결실을 봤다. 또 K리그 승강제 도입과 저연령 선수 의무출전 제도 도입 등에 관해서도 정 회장은 [축구의 시대] 4장과 5장 전체를 할애하며 자찬했다.

여기서 진지하게 음미할 대목은 책의 내용을 떠나서, ‘왜 이 시국에 정 회장이 출간을 강행했느냐’는 물음이다. 축구계에서는 “정 회장이 축구협회장 4선을 위해 출마하려면 필요한 점수를 쌓아야 한다. 아카이브 사업 관련 점수를 따기 위해 여론이 이런데도 회고록을 낸 것”이라는 해석이 정설처럼 통한다. 정 회장은 이미 축구협회장을 3차례 연임했다. 그의 임기는 2025년 1월 종료된다. 원래 체육단체 임원 연임은 최대 3선까지만 가능했다. 하지만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승인’을 받으면 4선에 도전할 수 있는 ‘예외 규정’이 생기며 상황이 변했다.

결국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위원장과 위원이 누가 되느냐가 중대한 변수다. 대한체육회 정관 43조에 따르면, ‘대의원 총회 의결로 선임 권한을 대한체육회장에게 위임할 수 있으며 문체부 장관과 협의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여기서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과 유인촌 문체부장관이 갈등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체육계에선 “문체부 뜻대로 안 되는 사람이 딱 두 명 있는데 이기흥과 정몽규”라는 말이 돈다.

사실상 이 예외 규정 ‘장벽’만 돌파하면 정 회장의 4연임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정 회장이 출마만 할 수 있다면 무조건 당선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약 300명의 선거인단 중 대략 40%에 달하는 인원이 K리그 감독, 선수, 심판 등 직능별 대표들이다. 복수의 축구 소식통은 “정 회장이 K리그 선거인단을 장악하기 위해 굉장히 공을 들였다. 소통을 이토록 안 하는 와중에도 K리그 인맥 관리만큼은 예외”라며 “그 결과 이쪽에 소위 ‘친정몽규’ 사람이 많이 있다”고 분석한다. 다시 말해 외부 압력에 의해 정 회장이 스스로 후보 사퇴를 하지 않는 한, ‘무조건 당선 각’이라는 이야기다.

“정 회장 향한 용산의 감정은 더 악화”


▎유인촌(왼쪽) 문체부 장관은 정몽규 회장의 4연임에 회의적이다. 하지만 이기흥(오른쪽) 대한체육회장이 예외 규정을 적용하면 정 회장은 출마 자격을 갖춘다. / 사진:연합뉴스
정 회장의 4선 도전에 대해 문체부는 회의적인 입장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미 7월 18일 장미란 문체부 2차관은 “많은 분이 축구협회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해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로부터 불과 하루 뒤인 19일 문체부는 ‘홍명보 대표팀 감독 선임 절차가 축구협회 내부 규정을 준수했는지’에 관한 감사 착수를 알렸다.

축구협회 사정에 정통한 익명의 관계자는 “감사에서 심각한 문제점이 나온다 해도 문체부가 축구협회 회장을 징계할 권한은 없다”며 “다만 어떤 중대한 잘못이 알려지면 (여론에 의해) 정 회장이 못버티고 물러나는 시나리오를 문체부는 염두에 둘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를 뒤집어 해석하면, 정 회장이 버티면 끌어내릴 방법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다가 홍 감독 선임에 정 회장이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표면적으로는 이임생 기술이사가 전권을 쥐고 임명했기 때문이다. 결국 정 회장이 백기를 들 정도로 강력한 한방이 감사에서 나오느냐가 관건이다. 이에 대해 이 인사는 “축구협회가 외국인 감독을 뽑지 못한 배경에는 결국 돈 문제가 있다”며 “축구협회 재정의 상당 비중이 현재 짓고 있는 천안축구종합센터로 가고 있다. 그 돈의 흐름을 집중적으로 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겉으론 ‘홍명보 감독 선임’을 두고 다투지만, 깊이 들여다볼수록 정부와 축구협회의 헤게모니 전쟁이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두 방향에서 제기될 수 있다. 일단 ‘왜 이토록 윤석열 정부는 정 회장의 연임을 못마땅하게 여길까’가 하나다. 그리고 ‘이 정도로 수모를 당하면서도 왜 정 회장은 연임에 이토록 집착할까’가 다른 하나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실마리는 2022년 1월 11일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파크는 정 회장이 경영하는 HDC현대산업개발의 아파트 브랜드다. 그 직후 3월 대선에서 승리한 윤석열 정부 내에서 ‘현대산업개발을 손봐야 한다’는 기류가 일었다. 용산의 냉랭한 시선을 돌려놓기 위해 정 회장은 2022년 9월 ‘축구협회의 2023년 아시안컵 한국 유치 도전’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하지만 2022년 10월 개최지 결과 발표는 경악스러운 수준이었다. 한국은 0표라는 참패를 당했고, 개최권은 카타르로 돌아갔다. 참담한 결과는 용산의 ‘격노’를 불러왔다. 당시 증언에 의하면 “개표 직전까지도 축구협회가 용산 대통령실에 ‘한국 개최가 유력하다’고 보고했다”고 알려졌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 직후인 그해 12월, 16강 진출을 이룬 대표팀은 귀국 다음 날 대통령실에 초청받았다. 이때 정몽규 회장이 초대받지 못한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손흥민과 벤투 등 선수와 감독은 물론 팀닥터와 조리사까지 초청받았지만, 정 회장은 빠진 것이다.

한편으로 정 회장의 시점에서 상황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축구협회 회장직을 놓지 않으려 하는 이유는 큰 틀에서 두 가지로 해석된다. 일단 정 회장과 현대산업개발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용산 대통령실의 칼날을 비켜가기 위해서라도 축구협회 회장 직함은 반드시 필요한 일종의 보호막이다. FIFA 정관에는 ‘연맹과 협회, 리그의 정치적 중립성의 의무’라는 것이 명시돼 있다. 일례로 FIFA는 2015년 인도네시아 정부가 자국 축구협회를 장악했다고 판단하자, 인도네시아의 2018년 러시아월드컵 출전을 금지한 바 있다. 이번에 문체부 감사가 개시되자 축구협회 측에서 “정부 역시 FIFA 정관을 참고할 필요는 있을 것”이라고 대응한 배경이다. 정 회장 자신과 회사를 위해서라도 대한축구협회 회장 직함이 간절한 상황인 셈이다.

또 하나의 이유에 대해 박문성 축구해설위원은 “본인의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현대가 전체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정몽준 전 대한축구협회 회장 시절부터 현대가에서 축구협회를 가업처럼 이어가고 있는데, 이 명맥이 정몽규 회장대에서 불명예스럽게 끊어져선 안 된다는 사명감 같은 마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축구계에선 정몽준 전 회장(현 아산재단 이사장)의 막후 영향력이 공공연하게 거론된다. 먼 미래 일이지만 정몽규 회장이 4선을 마친 뒤, 정 전 회장의 아들인 정기선(42) HD현대중공업 부회장에게 축구협회 수장직을 계승하는 시나리오가 퍼져 있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대표팀 사령탑으로 낙점된 홍명보 감독의 직전 소속팀이 울산HD FC였다. 이 팀은 HD현대중공업을 모기업으로 두고 있다. 그래서 ‘정몽준 전 회장의 사전 양해 없이 축구협회가 홍 감독을 빼내 올 수 있었겠느냐’는 시각이 존재한다.

물론 이임생 기술이사가 전권을 쥐고 홍 감독을 선택한 모양새는 갖췄다. 이 이사는 지난 7월 8일 울먹이면서 왜 홍 감독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한 브리핑을 가졌다. 하지만 왜 감독 선임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눈물을 흘려야 했는지를 두고 의구심은 더 커졌다. 아울러 이 이사가 총대를 메는 과정에서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는 철저하게 무력화됐다. 전력강화위원회에서 추천한 외국인 감독 후보군이 결과적으로 무시됐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9일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이 사퇴한 속사정도 여기에 담겨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정 회장 얼굴만 쳐다보는 축구협회”

박 해설위원은 “공정에 관한 우리 사회의 민감지수가 올라갔다”며 “‘왜 홍명보 감독에게만 예외를 적용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 축구협회를 보며 팬들은 납득을 못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 축구의 레전드인 박지성까지 “지금은 체계가 완전히 무너졌다”며 “마땅한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내려올지 말지는 결국 회장이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축구계에서는 “정 회장이 취임 초기 주니어보드 (젊은 실무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만든 회의)를 열던, 소통하는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동시에 “정 회장 얼굴만 쳐다보는 축구협회의 구조가 바뀔 리 없다. 결국 교체가 답”이라는 목소리도 비등하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409호 (202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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