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집중분석] 美 대선 대진표 결정, 한국 경제 손익계산서 

어게인 ‘아메리카 퍼스트’ vs 진보적 ‘카멀라노믹스' 

조득진 월간중앙 선임기자
트럼프, IRA· 칩스 폐지 공약… 살떨리는 한국 배터리·전기차·반도체
해리스, ‘바이드노믹스’ 정책 이어받을 것… 누가 되든 보호무역 장벽


이번 미국 대선은 사상 첫 유색(흑인) 여성의 대통령 후보 출마로 다양성을 중시하는 민주당과 백인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트럼프 후보 간의 ‘국가 정체성’ 대결로 치러지게 됐다. 국제적으로는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감당해온 패권국가로서의 역할을 계속 수행할 것인지 주목된다. 무엇보다 ‘폴리코노미(Policonomy)’의 파급력으로, 미국의 정치가 자국의 경제를 어떻게 휘두를지 각국이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이미 트럼프의 강경 발언에 글로벌 주식시장에서는 빅테크와 반도체 주식이 한차례 요동치기도 했다.

美 우선주의냐, 다자간 동맹이냐


한국 역시 예외일 수 없다. 특히 트럼프 재집권 시 예상되는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 강화는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통상 압력에 의해 대미 수출이 역풍을 맞는 데다, 바이드노믹스 정책을 믿고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던 한국 대기업들은 손익이 갈릴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해리스 중 누가 당선되든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흐름은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이 때문에 정부와 기업이 각 후보의 승리를 가정해 정치·경제·외교 문제에 먼저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학개미, 동학개미 역시 나름의 투자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시 ‘트럼프노믹스 2.0’이 매우 빠르고 강력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방점은 무역과 산업정책에 찍힐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7월 16일(현지시간) 공개된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재집권 시 중국에 60% 이상의 관세 폭탄을 퍼부을 수 있다. 또 모든 나라에서 미국으로 유입되는 수입품에도 관세 10%를 일률적으로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재임 시절인 2018년 중국과 고율 관세를 주고받으며 무역전쟁으로까지 비화했던 정책을 더 강화하려는 구상이다. ‘바이든 뒤집기’도 눈에 띈다.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미국 내에서 만든 배터리·전기차에 한정해 보조금과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제도)로 대표되는 친환경 산업정책을 폐기하고, 자동차 등 전통 제조업과 자국 내 반도체 생산 확충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를 대체로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해리스는 바이든 재임 시절 경제 성과를 강조하며 자유무역을 옹호하면서도, 중국에 대한 강경 기조를 지지하고, 노동자 권리와 환경 보호를 강조해왔다. 반도체지원법(CHIPS Act, 칩스법)과 IRA를 통해 반도체와 전기차, 친환경 에너지 국내 투자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유지할 전망이다. 동시에 젠더, 인종, 소수자에 대한 평등 및 보호 정책은 더 진보적으로 강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7월 28일(현지시간)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드노믹스’ 정책 기조를 지속하면서도 조금 더 진보적인 모습의 ‘카멀라노믹스’ 경제정책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공통점도 있다. 누가 되든 보호무역 장벽이 높아지고, 미·중 갈등이 최악의 국면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두 사람 모두 미국 내 제조업 투자에 인센티브를 주고, 첨단 기술에서 미국과 경쟁하는 외국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경제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 등 대 중국 압박이 핵심 공약이다. 7월 22일(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해리스가 바이든의 중국 정책을 이어받을 것이며 트럼프와 비교했을 때 오히려 중국 압박을 더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칩 워〉 저자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학교 교수는 “누가 선거에서 이기든 미국이 제재 조치를 한두 단계 더 강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해리스가 당선될 경우 지난 4년간 경험한 한·미 관계의 연속성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에는 ‘트럼프 리스크’의 충격을 줄이는 일이 중요해진다. 전문가들은 두 후보 모두 보호무역주의 기조는 같기 때문에 이를 효과적으로 대응할 전략을 짜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미 협력을 지속하되 중국과의 갈등은 피하고, 중국 외 시장으로의 공급망 다각화 노력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무역전쟁의 본질이 기술 패권 전쟁인 만큼 주력 업종의 경쟁력을 키우는 산업정책과 수출 다변화 전략을 마련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장 큰 변화요인은 무역통상 분야에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트럼프 1기 이후 산업과 경제를 보호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무역에 적극적으로 개입, 수입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한 시도인데, 성과도 있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무역수지 적자 폭은 7734억 달러로 전년 대비 18.7% 감소했다. 특히 중국 무역 적자는 전년 대비 26.9% 줄어든 2794억 달러를 기록했다.

무역흑자 껑충 뛴 한국, 타깃 될 수도


▎부산항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 야적장에 선적을 앞둔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문제는 트럼프가 공언한 것처럼 중국에 60% 이상의 관세 폭탄을 부과하면 경제 성장 둔화로 한국의 대중 수출도 감소한다는 것이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이 경우 중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절반 이상 급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의 중간재 수출에 타격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관세 10% 일괄적 부과도 한국에는 부담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 상대국인 한국에까지 보편 관세 10%를 추가 부과하면 한국의 대미 수출은 약 152억 달러(약 21조원) 감소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더 우려되는 것은 한국이 직접 표적이 되는 상황이다. 미국은 올해 상반기 중국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 됐다. 인공지능(AI) 수요 확대로 반도체 수출이 급증하고, 친환경차 등 자동차 수출이 늘어난 덕분이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올해 상반기 무역수지 적자 6위 국가(340억 달러)다. 2022년 9위(439억 달러)로 10위권에 들어서더니 지난해 8위(514억 달러)에 이어 올해 상반기 순위가 껑충 뛰었다. 하지만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캠프에서 무역 적자 원인으로 한국·일본·유럽·멕시코·캐나다산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을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한국에 통상 압력 등 더 큰 청구서를 내밀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과거를 보면 트럼프는 동맹국이라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 자동차산업의 적자를 이유로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해 미국에 수출하는 픽업트럭 관세 25%를 2040년 말까지 20년 연장시켰다. 반면 미국 자동차의 한국 수출은 제작사별로 연간 5만 대까지 미국 기준만 충족하면 가능케 했다. 트럼프에 이어 바이든 정부에서도 자국민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한국 대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압박하기도 했다.

배터리· 반도체 지원, 뒤집기냐 굳히기냐


산업연구원 등 연구기관의 보고서를 보면 트럼프 집권 시 한국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는 재집권에 성공하면 바이든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폐기하고 화석연료 투자를 늘리겠다고 공언해왔다. 특히 막대한 전기차 보조금으로 한국 기업의 대미 수출을 늘렸던 IRA에 대해 폐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트럼프는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자동차 100%를 전기차로 할 수는 없다. 전기차는 주행거리가 짧고 매우 비싸고 무겁다”며 “그들은(바이든 행정부)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엄청난 양의 보조금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IRA가 폐지되면 2차전지 업종과 전기차에서 손해를 보게 된다. 한화투자증권은 “미국 내 보조금이 사라지거나 감소하면 전기차 가격 상승 및 판매량이 감소해 전기차 생산 확대를 위해 투자한 기업에 경제적 부담을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에 공장을 둔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한국 2차전지 업체와 조지아에 전기차 전용공장을 건설 중인 현대차가 그 대상이다. 물론 트럼프 공약이 실현되려면 상·하원까지 공화당이 장악해야 하는 변수가 있지만, 정책 기조가 바뀌는 것만으로도 한국에 부담이 될 수 있어 다각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도 트럼프의 당선 여부에 따라 큰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트럼프는 기회 있을 때마다 “바이든 정부의 칩스법 지원으로 대만이 미국 반도체 사업을 전부 가져갔고, 이젠 보조금까지 가져가고 있다. 미국에 방위비를 내야 한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방위비와 TSMC를 묶어 거론한 것인데, 같은 논리라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미국에서 받게 될 보조금에 트집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 산업연구원은 “트럼프 당선 시 ‘반도체지원법’ 인센티브와 관련해 동일 수준의 추가 투자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으며, 중국 ICT 제조업 대상 고율 관세 부과로 우리 반도체 판로에 단기적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에 반도체 사업장을 두고 있는 삼성과 SK로서는 대외 리스크에 대응할 중장기 전략을 긴밀히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 기자간담회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보조금을 안 준다면 우리도 완전히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며 불확실성이 가중될 경우 투자획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표했다. 업계에서는 해리스가 당선되더라도 한국 반도체기업에 ‘대중국 제재 참여’, ‘미 생산시설 투자’ 등의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전, 화석연료 투자 확대를 예고한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조선·방산업과 건설기계 등이 수혜를 볼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특히 화석연료 투자가 늘면 액화천연가스(LNG)선 발주가 늘어 조선업 호황기가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HD현대건설기계는 7월 24일 콘퍼런스콜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 사업 수요를 상당히 캡처(capture, 포획)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화오션도 7월 26일 콘퍼런스콜에서 “미 대선 결과가 LNG선 발주에 중요한 영향을 줄 것”이라며 “결과에 따라 LNG 신규 파이프라인 승인 가속화로 신조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민주당 백악관, 상·하원 양분 때 주가 좋았다?


▎지난 8월 5일 코스피가 미국 경기 침체 공포를 반영하면서 2600선마저 붕괴됐다.
최근 미국 주식시장에서 기술주가 크게 하락하면서 한국 등 전 세계 주식시장이 한바탕 휘청거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트럼프가 기술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견지하자 ‘M7(애플·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아마존·메타·테슬라 등 7개의 빅테크기업)’ 중심의 나스닥지수와 S&P500지수 등 미국 주식시장이 동요한 것이다. 기술주는 대표적인 ‘트럼프 피해주’로 꼽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발언이 투자자들을 흔들며 반도체 주식 폭락을 야기했다”고 분석했고, 투자전문매체 배런스는 “트럼프는 아직 선거에서 이기지 않았다. 그런데 주식 시장은 그가 이미 대통령이 된 것처럼 행동한다”는 제목을 뽑았다.

또 다른 트럼프 대표 피해주 섹터는 ‘친환경’이다. IRA 등 바이든의 기후 정책을 폐지할 것이라고 줄곧 목소리를 높인 탓에 첫 TV토론에서 트럼프가 승기를 잡은 이후 태양광 등 친환경에너지 관련주는 일제히 하락세를 나타냈다. 공화당 하원에서는 이미 전기차, 친환경에너지에 대한 보조금 지급, 메탄가스 배출 규제 등을 되돌리기 위한 법안을 제출한 상태이기도 하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트럼프 수혜주로 에너지·금융·산업재 등 공화당의 정책 가치에 부합하는 산업들을 꼽았다. 그는 “방산·조선·원전 등은 수혜를 받을 수 있다”며 “각국의 방위비 증가, 우크라이나 재건 산업, 미국의 조선업 협력, 전력 수요 확보에 따른 원전 가동이 새로운 상승 동력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해리스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태양광·풍력, 탄소중립 관련 기업 주가가 부양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의 전기차 보조금 관련 정책이 지속된다면 전기차·배터리 관련주 역시 수혜 대상이다. 최근 해리스의 인기가 치솟자 국내 투자자 사이에서 ‘해리스 특징주’를 찾아나서는 분위기도 보인다.

미국에선 최근 흥미로운 분석이 나왔다. 역사적으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고, 상하원을 양당이 나눠 가졌을 때 미 증시 단기수익률이 가장 높았다는 내용이다. 미국 유에스(US)뱅코프의 은행 자회사인 유에스뱅크는 7월 22일(현지시간) 보고서 ‘대선이 증시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1948~2023년까지 75년간의 시장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대선에서 민주당이 백악관을 차지하고 상·하원을 공화당과 민주당이 나눠 가졌을 때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의 3개월 평균 수익률이 3.93%로 가장 높았다고 발표했다. 다음으로 수익률이 높았던 것은 민주당이 백악관을, 공화당이 상·하원을 지배한 경우다.

한국 안보·경제 위한 최상의 결과는

현재 트럼프와 해리스는 7개 경합주에서 초접전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대결로 대선판이 짜였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정치 인생에서 처음으로 경쟁자에게 언론의 주목을 빼앗겼다”며 “미국 언론은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해리스 부통령에 관한 기사를 더 많이 쏟아내고 있으며, 내용도 대부분 긍정적”이라고 보도했다. 오는 9월 10일 해리스, 트럼프 두 후보 간 TV토론 맞대결 결과가 향후 지지율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웠던 도널드 트럼프의 1기 행정부를 경험한 한국 등 미국의 우방국과 대미무역 흑자국들은 대체로 민주당의 승리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한국 입장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트럼프 2기에 예상되는 이민 규제, 보호무역, 해외 방위 부담 축소 등 대외정책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국가로 멕시코, 독일, 중국, 일본, 캐나다와 함께 한국을 꼽았다. 김원호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트럼프의 재집권 시도가 또다시 실패하면 공화당 내 반트럼프 보수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져 트럼프 이전의 자유무역과 동맹 강화로 돌아갈 것”이라며 “한국의 국가안보와 지속적인 경제 발전에 최선인 미국 대선 시나리오는 민주당 승리에 이은 공화당의 정체성 회복”이라고 분석했다.

- 조득진 월간중앙 선임기자 chodj21@joongang.co.kr

202409호 (2024.08.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