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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하라다 미노루 창가학회 회장과 프란치스코 교황 회견 

인간애 바탕에 둔 세계 평화 여정 ‘한마음’ 확인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바티칸에서 세계 평화·핵 폐기 등에 공감대 형성
가톨릭 관계자·피렌체 시장 등 만나 유대 쌓고 협력 논의


▎2024년 5월 10일 바티칸 사도궁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하라다 미노루 창가학회 회장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두 사람은 세계 평화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 사진:바티칸
하라다 미노루(原田稔) 창가학회 회장이 2024년 5월 10일 바티칸 사도궁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회견했다. 아르헨티나 태생의 첫 남미 출신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분쟁과 환경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종교 간 대화를 실천하고 교회 개혁에 힘써왔다.

교황은 2023년 이케다 회장 서거 때 이탈리아 SGI를 통해 조의를 보내기도 했다. 조의문에서 “이케다 박사가 긴 생애에 걸쳐 이뤄낸 선(善), 그중에서도 평화 그리고 종교 간 대화의 촉진을 위해 진력한 일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기억에 담아두고 있다”고 기렸다.

하라다 회장과의 이번 회견에서 교황은 “기다리고 있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하라다 회장이 “혼미한 현대사회에서 평화를 염원하는 종교로서 차이를 극복하며, 인간애를 바탕으로 함께 행동하고 싶다”고 하자, 교황은 “정말 훌륭한 생각이다”라고 화답했다.

창가학회 이념과 활동에 깊이 공감한 교황


▎하라다 미노루 회장 일행은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회견에 이어 마우로 감베티 추기경(왼쪽에서 셋째)을 만나 종교 간 대화와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 사진:창가학회
이어서 하라다 회장이 “인류의 행복과 세계 평화를 위해 앞으로도 함께 나아가고 싶다”고 말했고, 교황은 현대사회의 정세를 안타까워하며 “전쟁은 패배의 증거이기에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라다 회장은 창가학회 활동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이케다 회장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반세기 넘게 핵무기 폐기 운동을 실천하고 있으며 창가학회와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이 협력관계라는 점과 이케다 회장이 2023년에 발표한 제언에서 ‘핵무기 선제사용 포기’를 언급한 점을 소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한 어조로 핵무기를 비판하고 창가학회의 실천에 대해 “훌륭하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라고 호응했다.

하라다 회장은 소설 [신·인간혁명] 서두에 씌어 있는 “전쟁만큼 잔혹한 것은 없다. 전쟁만큼 비참한 것은 없다”를 언급하며 창가학회가 이 정신을 근본으로 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황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찬성한다. 나도 같은 의견”이라고 공감을 표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30분가량 이어졌다. 이번 회견은 2017년 이케다 히로마사 SGI 부회장 일행이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전망’을 주제로 한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바티칸을 방문해 교황을 알현한 이후 두 번째다.

교황과의 만남은 이케다 회장의 오랜 염원이기도 했다. 이케다 회장은 평화를 위해 종교 간 대화를 관철하는 가운데 1975년에 교황과의 회견도 예정돼 있었지만, 여러 사정이 겹치면서 실현되지 못했다. 하라다 회장은 “오늘은 이케다 선생님의 의지를 실현해 교황과 회견한 역사적인 날”이라고 자평했다.

성 에지디오 공동체 창설자와 대화


▎하라다 미노루 회장 일행이 다리오 나르델라 피렌체 시장(왼쪽에서 셋째)을 만나 환담하고 있다. 나르델라 시장은 피렌체시의 문화·예술적 수준을 극찬했던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에게 명예시민 칭호를 수여하는 등 창가학회와 깊은 우호를 다져왔다. / 사진:창가학회
하라다 회장 일행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접견한 뒤 로마 시내에서 마우로 감베티 추기경과 회견했다. 감베티 추기경은 2021년에 설립한 재단 ‘모든 형제들’의 회장으로, 예술 진흥과 민족·문화·종교 간 대화 촉진에 힘써왔다. 재단 이름은 2020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표한 회칙에 언급된 ‘모든 형제들’에서 인용했다.

하라다 회장은 회칙에 나오는 생명 존엄의 이념을 소개하며 인간의 생명에 갖춰진 불성을 믿고 개성을 소중히 하는 ‘앵매도리’(櫻梅桃李; 벚꽃·매화·복숭아꽃·자두꽃을 말하며, 색이나 형태·향 등의 특질을 바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기답게 멋지게 피는 모습을 인간사회의 개인의 모습으로 비유)의 법리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정신은 두 신앙에 공통된 점이기에 평화를 위해 함께 행동하자”고 염원했다.

감베티 추기경도 “창가학회에는 깊은 인간애가 있다. 인간은 세속적인 권력이나 경제력을 초월해 저마다 본디 갖추고 있는 미(美)라는 인간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대화로 상대를 알아간다’, ‘교육’, ‘미술’이라는 재단의 세 가지 이념을 소개하고 종교 간 대화를 함께 추진해 교육과 문화교류를 위해 협력하자고 제안했다.

하라다 회장을 비롯한 이탈리아 방문단은 이어서 로마 시내에 있는 성 에지디오 공동체 본부도 방문했다. 방문단은 성 에지디오 공동체 창설자인 안드레아 리카르디 교수, 체사레 주코니 사무총장, 알베르토 콰트루치 종교 간 대화 책임자와 회견했다.

성 에지디오 공동체는 국제적인 인도주의 지원 등에 힘쓰는 가톨릭 신도단체다. 세계 각지에 평화의 네트워크를 넓혀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고 모잠비크 등에서 일어나는 분쟁 조정에 공헌하며 호평을 얻었다.

창가학회와 성 에지디오 공동체는 10년 넘게 종교 간 대화와 평화를 위한 협력을 이어왔다. 하라다 회장은 이케다 회장 서거에 조의문을 보내준 데 감사를 표하고, 사상과 신조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통해 마음을 맺은 이케다 회장의 행동을 소개했다. 이어서 평화로운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한층 힘을 합쳐 나가자고 말했다.

리카르디 교수는 서로 협력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각지에서 일어나는 분쟁 등 국제사회를 둘러싼 상황을 염려했다. 그러면서 “창가학회와 우호관계를 만들면서 신앙의 대상은 달라도 평화와 대화라는 같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앞으로도 함께 손잡고 평화를 가로막는 벽을 뚫고 나아가겠다”고 화답했다.

‘이케다 광장’ 만든 피렌체 시장 만나 우의 다져


▎이케다 다이사쿠 SGI 회장이 1994년 6월 1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합대학인 이탈리아 볼로냐대학교에서 강연하고 있다. / 사진:창가학회
하라다 회장은 이탈리아 방문 일정 중 2014년에 취임해 평화 구축을 목표로 문화·교육 정책 등에 힘을 쏟고 있는 다리오 나르델라 피렌체 시장도 만났다. 나르델라 시장과 창가학회의 인연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피렌체시가 이케다 회장에게 명예시민 칭호를 수여할 때 나르델라 시장이 직접 수여사를 발표했다. 그리고 올해 1월 피렌체시청사인 베키오궁전에서 열린 이케다 회장 추모식에서 나르델라 시장은 “이케다 선생님은 젊은 세대에게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줬고, 핵무기 폐기와 환경 보호, 국가 간 관계 구축 등에 진력한 ‘평화 건설자’”라고 추모했다.

피렌체시는 지난 4월 이케다 회장을 기리기 위해 ‘이케다 다이사쿠 광장’을 만들기도 했다. 나르델라 시장은 이케다 회장에 대한 조의문을 읽는 동안 이탈리아SGI 벗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술회했다. 또 일본을 방문했을 때 시나노마치 민주음악협회 문화센터를 방문해 음악을 소중히 여기는 이케다 회장의 마음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오랫동안 이탈리아SGI와 교류하며 학회와 맺은 우정은 가장 큰 보배며, 앞으로도 세계 평화를 위해 함께 공헌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케다 회장은 생전에 이탈리아, 특히 피렌체의 높은 문화·예술적 수준을 극찬하곤 했다. 1992년 6월 30일 피렌체시의 ‘플로린 금화’ 수여식에서 그는 서명부에 피렌체를 ‘세계 문화의 도시’, ‘꽃의 도시’라고 극찬했다. 청년과 창가학회 회원 등에게 보내는 여러 서신에서 피렌체를 언급하는 등 이케다 박사에게 피렌체는 영감을 주는 도시이기도 했다.

그렇게 피렌체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가진 이케다 박사에게 피렌체시는 2017년 3월 11일 ‘명예시민’ 칭호를 수여했다. 이케다 회장이 인간정신의 조화와 평화 건설에 공헌한 점을 인정한 것이다. 수여식에는 나르델라 피렌체 시장과 시 관계자, 이탈리아SGI 관계자 등 600명이 참석했다. 수여식이 거행된 베키오궁전 근처의 시뇨리아 광장에선 시민과 이탈리아 SGI 회원 등 4000여 명이 모여 대형 모니터를 통해 수여식을 지켜봤다.

이케다 회장은 1981년과 1992년, 1994년 세 차례 피렌체를 방문했다. 1994년에는 시에서 개최한 도쿄후지미술관 소장 ‘일본미술의 명보전’에 참석해 문화 교류에 힘썼다. 이 방문을 계기로 피렌체의 SGI 회원들은 핵무기 폐기를 알리는 전시와 강연 등 시민의식 계발에 힘을 쏟아 지역 사회에서 신뢰를 쌓았다.

명예시민 칭호를 발의한 안드레아 시의원은 “이번 수여는 의회가 만장일치로 의결해 이케다 박사를 우리 시의 시민으로 맞이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보기 드문 일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피렌체의 최고 영예를 세 개나 받은 인물은 피렌체시 역사에서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피렌체시는 이케다 회장이 문화와 평화를 위해 공헌한 점을 기려 ‘플로린 금화’(1992)와 ‘평화의 인장’(2007)을 수여했다.

이케다 회장은 히로마사 SGI 부회장이 대독한 인사말을 통해 “청년들과 함께 피렌체에서 인간주의의 꽃을 활짝 피우겠다”고 화답했다.

[박스기사] 학문 교류로 이어가는 이탈리아와 창가학회의 인연

이탈리아에서 창가학회는 낯선 이방인의 종교가 아니다. 세계 평화 구축을 위한 동반자다. 이케다 회장은 이탈리아에서 1999년 11월 아르메노시 명예시민을 시작으로 팔레르모시, 피렌체시를 포함해 50여 개 시에서 명예시민 칭호를 받았다. 피렌체시에서 열린 명예시민 칭호 수여식은 이탈리아 국영방송을 통해 전국에 방영됐을 정도로 관심이 컸다.

1994년 6월 1일 이케다 회장은 개교 900주년을 맞이한 볼로냐대학교에서 특별 강연을 가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안목과 인류의 의회 – 유엔의 미래에 대한 고찰’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이케다 회장은 “유엔 시스템의 본질은 소프트파워에 있고 정신적·이념적인 면에서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볼로냐대학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합대학으로 꼽힌다. 단테를 비롯해 페트라르카, 코페르니쿠스 등 인류 문명을 개척한 인재들을 배출한 ‘영지(英智)의 대성(大城)’으로 불린다.

이케다 회장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삶을 언급하면서 내면을 변혁하는 ‘자신을 제어하는 의지’와 창조를 멈추지 않는 ‘끊임없는 비상’이 바로 계승해야 할 정신적 유산이고 새로운 국제질서를 형성하는 빛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케다 회장을 초빙한 파비오 로베르시 모나코 전 총장은 “이 강연을 듣고 확실히 이케다 회장은 모범으로 삼아야 할 세계시민이라고 확신했다”며 “회장의 제언이나 행동을 규범으로 삼아 절대 희망을 잃지 않고 인내해 계속 행동하는 일이 중요하다”라고 했다.

이케다 회장이 강연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 소카대학교와 볼로냐대학교는 많은 학생과 교수가 학문적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409호 (202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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