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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시리즈|공기업, 혁신과 상생이 답이다] 24조원대 원전 수주 잭팟 한국수력원자력의 비결은? 

검증된 기술력과 ‘밀착 스킨십’ 체코 마음 사로잡았다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한전기술·대우건설 등과 민·관합 동 팀 코리아 꾸려 ‘톱니바퀴 협업’
체코, 추가 건설 때도 우선협상 옵션… ‘원전 르네상스’ 기대감 커져


▎황주호(앞줄 왼쪽 셋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4월 29일 체코 신규 원전 건설사업 발주사(EDU II)를 방문해 입찰서를 제출한 뒤 발주사의 모회사인 체코전력공사의 다니엘 베네쉬 사장과 악수하고 있다. / 사진:한국수력원자력
국내 유일 원자력발전소 운영 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가장 핫한 공기업으로 떠올랐다. 한수원을 주축으로 한 민·관 합동 ‘팀코리아’가 최근 체코 두코바니 5·6호기 신규원전사업 우선협상대상에 선정되면서다. 우선협상대상은 발주사와 단독으로 원전 건설을 위한 계약조건을 최종 조율하는 협상권을 쥐게 된다. 한국이 체코 원전 수주를 사실상 확정했다는 핑크빛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두코바니 원전 2기의 예상 사업비는 약 24조원 규모로 알려졌다. 체코는 한수원과 협상을 거쳐 내년 3월 최종 계약을 체결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이후 16년 만에 역대 두 번째 원전 수출을 앞두게 됐다.

역대 두 번째 원전 수출 가시화

한수원의 이번 수주는 고사 위기에 몰렸던 국내 원전 생태계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준 격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추가 수주 가능성도 열려 있다. 당초 두코바니 5호기만 건설할 예정이던 체코가 지난 1월 최대 4기를 건설할 여지가 있음을 공표하고 입찰 참여사들에 입찰서를 수정해 제출할 것을 요청한 까닭이다.

체코 정부는 향후 테믈린 지역에 2기(3·4호기)의 원전을 추가 건설할 경우 한수원에 우선 협상권을 주는 옵션을 제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협상에 따라 한수원이 최대 4기의 체코 원전을 수주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수원이 원전 강국 프랑스를 유럽 안방에서 제치고 입찰을 따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검증된 원전 기술력은 물론 수년간 체코와 다져온 ‘원전 스킨십’도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의 원전 건설·운영 능력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입증됐다. 1970년대 원전 도입과 함께 50여 년간 국내외에서 원전을 건설하고 운영하면서 관련 기술력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바라카 원전 건설 때는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 예산 내 적기 시공)’을 준수해 주목받았다.

한수원은 이번 체코 원전 수주전에서도 발주사가 정한 일정을 준수한 유일한 입찰 참여사였다. 한수원은 경쟁사들이 입찰서 제출 일정 연기를 요청한 것과 달리 유일하게 정해진 일정대로 입찰서를 제출했다. 이와 관련해 체코 정부 고위관계자는 “한국 친구들은 입찰서 제출에 있어서도 ‘온 타임 온 버짓’의 능력을 보여줬다”고 공개적으로 추켜세우기도 했다.

한수원이 주축이 돼 입찰서 작성에 참여한 한국전력기술과 한전원자력연료, 한전KPS, 대우건설, 두산에너빌리티 등 ‘팀 코리아’의 유기적 협업 과정도 돋보였다. 한수원은 체코 원전 수주전에서 설비 용량을 기존 1400메가와트(MW) 규모에서 1000MW로 낮춘 신규 모델인 ‘APR1000’ 노형을 제시하며 총력전을 펼쳤다. 원전 설계를 전담하는 한국전력기술의 발 빠른 대응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전기술은 2016년 체코 정부가 원전 건설을 추진한 직후부터 APR1000 설계에 착수했고, APR1000은 지난 3월 유럽사업자요건(EUR) 인증을 취득하며 현지에서 안전성 등을 입증 받았다. 체코는 제한된 전력망과 냉각 수량 등을 이유로 신규 원전 건설 논의 단계부터 1200MW급 이하 노형을 요구해 왔다.

대우건설 등 민간기업의 활약상도 눈에 띈다. 대우건설은 이번 수주전 승리를 위해 백정완 사장의 진두지휘 아래 70여 명의 직원을 투입했다. 대우건설에 따르면 투입된 직원들의 체코 현지 출장 횟수만 20여 회에 이른다. 또한 2019년 6월부터 체코 프라하사무소와 경주 합동사무소에 직원들을 파견해 팀 코리아 일원으로 긴밀한 팀워크를 이루도록 했다고 한다. 대우건설의 원자력 경력 보유 직원은 15년 이상이 450명, 10년 이상은 710명에 달한다.

대우건설은 체코 원전 시공 주간사로 두산에너빌리티와 조인트벤처를 구성해 주설비공사와 기기 설치, 인프라 건설 등 시공 전반을 책임지게 된다. 대우건설은 월성 원자력발전소 3·4호기, 신월성 원자력발전소 1·2호기 주설비공사 등 대형 상용 원전 시공을 도맡아 왔다. 국내 건설사 최초로 요르단에 연구용 원자로를 일괄 수출한 것은 물론 방사능폐기물 처리장을 비롯해 원전 해체 분야까지 수행한 경험도 지녔다. 대우건설이 설계, 시공, 유지보수, 해체에 이르는 원자력 전 분야에 대한 토털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건설사로 꼽히는 이유다.

정부도 전방위 지원하며 힘 실어


▎한수원을 주축으로 한 민·관 합동 ‘팀 코리아’가 최근 체코 두코바니 5·6호기 신규원전사업 우선협상대상에 선정됐다. 사진은 체코 두코바니 원전 전경. / 사진:한국수력원자력
팀 코리아는 한국이 원전 기술을 전수받았던 유럽으로 ‘K-원전’이 역진출할 수 있도록 최종 과정까지 방심하지 않고 전력 질주한다는 계획이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정상 차원의 원전 세일즈 활동과 함께 정부도 전방위 지원 활동으로 수주 경쟁에 힘을 실어줬다”며 “체코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계약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 신규 원전 건설의 최종 계약 체결까지 성공해 2009년 UAE의 감동을 다시 국민 여러분께 선사할 것”이라고 했다.

한수원은 이번 수주 과정에서 체코 현지인의 마음을 얻는 데에도 지극정성을 기울였다. 2016년부터 신규 원전 예정 지역을 대상으로 한 봉사활동 등을 통해 스킨십을 강화해 온 것.

한수원 직원과 국내 대학생 등으로 구성된 글로벌봉사단은 매년 현지 복지시설과 학교 등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벌였다. 봉사단은 태권도 시범을 비롯해 풍물·국악·K-팝 댄스 공연을 선보이는 등 양국 간 문화 교류 확장에 앞장서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2019년 말부터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사태가 걸림돌이 됐다. 항공편이 막혀 스킨십을 이어갈 수 없었지만, 한수원은 팬데믹을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

팬데믹이 절정에 치닫던 무렵, 일회용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체코 신규 원전 예정 지역 주민들은 바느질로 천 마스크를 만들어 사용해야만 했다. 한국 사정도 비슷해 약국과 대형마트 등에 일회용 마스크를 구하기 위한 행렬이 길게 늘어서던 때다. 소식을 접한 한수원은 현지로 보낼 위생용품을 백방으로 수소문했고, 해외에서 어렵사리 마스크와 손 소독제, 호흡보조장치 등을 구해 전달할 수 있었다. 현지 주민들이 한수원을 진정한 동반자로 인정하게 된 계기였다.

원전 수주 숨은 공신 ‘체코와의 동행’

체코 아이스하키팀을 후원한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이스하키는 체코에서 ‘국민 스포츠’나 다름없다. 한수원은 이 점을 활용해 원전 예정 지역 주민들과의 믿음의 접점을 효과적으로 늘려 나갔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체코 국가대표팀이 아이스하키 종목에 출전하자 한수원은 체코가 치른 예선 세 경기에 직원들로 구성된 응원단을 파견했다. 체코 주요 인사들을 경기에 초청해 아이스하키로 하나가 되는 시간을 만들기도 했다.

한수원은 더 나아가 그해부터 체코 원전 예정 지역을 연고로 둔 아이스하키팀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선수들이 한수원의 영문 약자인 ‘KHNP’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경기한 것은 물론 팀 홈 구장 이름도 ‘KHNP 아레나’로 바뀌었다. 원전 예정 지역 주민 중 한수원을 모르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가 된 까닭이다.

한수원은 지난 6월 우선협상대상 발표와 무관하게 2024~2025 시즌 후원 계약을 체결하면서 한수원에 대한 주민들의 호감도를 더욱 끌어올렸다. 지자체, 상공회의소, 지역협의회 등 신규 원전 예정 지역 주요 단체가 자발적으로 우선협상대상 발표 전 일제히 한수원에 대한 굳은 지지를 공개 선언하게 된 배경이다.

한수원은 현지 기업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에도 공을 들였다. 원전 건설을 위해 현지 기업과의 협력도 필수적이라고 판단한 한수원은 ‘한-체 원자력 및 문화교류의 날’, ‘한국 원자력 및 첨단산업의 날’ 등의 행사를 내세워 현지 기업들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는 등 협력을 강화해 왔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체코와의 상생을 위한 노력들이 크게 눈에 띄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진심을 듬뿍 담은 장장 8년여간의 구슬땀이 체코 신규 원전사업 우선협상대상에 선정되는 데 일조한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전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전력의 31.56%를 생산하는 한국 최대 발전회사인 한수원은 사업 특성을 살려 국내에서도 에너지를 주제로 한 사회공헌 활동들을 펼치고 있다. 전국의 어두운 골목길을 변화시키기 위해 2014년 시작한 ‘안심가로등’ 사업이 대표적이다.

낮에 충전한 태양광으로 밤에 불을 밝히는 안심가로등은 일반 가로등보다 1.5배 밝아 주민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것은 물론 자정 이후 밝기가 조절돼 주변 동·식물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는다. 한번 충전으로 7일 이상 불을 켤 수 있어 장마철에도 유용하게 작동한다. 한수원은 지난해까지 전국 75개 지역에 3222본의 안심가로등을 설치했다.

안심가로등은 1본당 연간 1053킬로와트시(kWh)의 전기 절약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연간 약 5억여원의 공공 전기료 절감 효과를 거두는 동시에 연간 약 1500t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 환경보호 역할도 감당한다는 게 한수원의 설명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선정된 지역 지자체에서 추천하는 저소득 가구의 의료비와 생활비를 지원하는 ‘반딧불 희망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해 취약계층 총 1658가구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줬다”고 했다.

사회공헌 활동에도 ‘진심’


▎체코 정부는 향후 테믈린 지역에 2기의 원전을 추가 건설할 경우 한수원에 우선 협상권을 주는 옵션을 제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은 체코 테믈린 원전 전경. / 사진:한국수력원자력
한수원은 지난해부터 변화하는 수요에 발맞춰 태양광 가로등뿐 아니라 CCTV, 영상검지센서 등 정보통신기술을 결합한 스마트폴 가로등도 함께 지원하고 있다. 인구 밀집도가 높은 서울 홍대거리와 종로 마로니에 공원 일대를 시작으로 전국으로 넓혀나갈 계획이다.

취약 계층 청소년의 안정된 사회 정착을 지원하는 ‘열여덟 혼자서기’ 프로젝트도 한수원의 대표 사회공헌 사업 중 하나다. 한수원에 따르면 국내 아동복지시설에서 만 18세가 돼 퇴소하는 청소년이 연간 2000명 이상에 달한다. 이들 자립준비청년 대부분은 생활고와 주거 빈곤·정서 문제를 겪고 있다.

이에 한수원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청소년들이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해 건강하게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일회성 또는 단순 물적 지원보다는 실질적 자립 역량을 강화시켜줄 수 있는 내용들로 사업을 꾸리고 있다는 게 한수원의 설명이다. 나와 같은 상황의 또래와 심리적 지지체계를 형성해 정서적 유대를 가질 수 있는 자조모임, 경제적 위험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경제교육, 적성을 개발하고 진로를 구체화할 수 있도록 돕는 직업체험과 인턴십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했다.

한수원은 경제적 부족함을 호소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이 한시라도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매월 30만원씩 5년간 생활비를 지원하고, 취업 성공을 통해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취업성공수당 100만원과 취업준비비용 10만원도 지원하고 있다. 갑작스런 사고나 질병에 대비한 긴급 의료비 지원 시스템도 마련했다.

이 밖에도 한수원은 교육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층 아동의 안전과 행복을 위한 ‘지역아동센터 행복나눔(구.행복더함 희망나래)’ 사업을 통해 전국 지역아동센터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도서관을 조성해 주는 등 학습 격차 해소를 위해 기초 학습과 경험 학습을 지원하고 있다.

한수원은 지난해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저소득 가구의 어려움을 줄여 주고자 약 30억원을 들여 에너지효율이 낮아진 가구를 대상으로 고효율 냉난방 기기 구입·교체와 저비용 연료 전환, 에너지효율 개선 시공 등 중·장기 차원의 에너지 절감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한수원은 세상에 빛을 밝히는 기업으로서 앞으로도 필요한 곳에 희망의 빛을 선물하겠다”며 “국민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사회공헌 사업을 발굴해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기겠다”고 했다.

-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

202409호 (202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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