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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경기] 중대기로 놓인 일산 K-컬처밸리 

“K-콘텐트 메카 사업, 경기도가 책임지고 반드시 완성”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국내 최대 한류 메카 조성사업 첫 삽 뜨고 8년째 공정률 ‘3%’
CJ라이브시티와 맺은 사업 협약 해제 초강수… 공영개발 가닥


▎경기도 고양시 장항동의 K-컬처밸리 사업 부지는 공사를 시작한 지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부분 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방치돼 있다. 이곳에는 대형 K-팝 공연장(조감도)과 호텔 등 K-콘텐트 복합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 사진:네이버 항공지도 캡처, 경기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의 일산호수공원 근처에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공터가 있다. 부채꼴 모양의 공터에는 기초공사를 하다 만 듯한 현장이 있고, 나머지는 풀이 무성하게 방치돼 있다. 현장 출입구에는 ‘CJ라이브시티(Live City) 아레나 신축공사현장’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이곳은 경기도가 한류의 메카를 만들겠다며 야심 차게 추진한 K-컬처밸리 예정지다.

K-컬처밸리 사업이 처음 시작된 건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 등 한류 콘텐트가 해외에서 인기를 얻자 경기도가 킨텍스 주변을 미국의 영화산업 중심지인 할리우드를 본뜬 한류우드로 개발하기로 하면서부터다. 2015년 CJ라이브시티가 사업을 맡았고, 2016년에 첫 삽을 떴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올해 완공돼 근사한 공연장과 부대시설이 들어섰어야 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공사는 거의 진행되지 않은 채 8년째 빈 땅으로 남아 있다.

최근 들어 경기도가 기존 사업자와 협약을 해제하고 직접 추진하기로 하면서 K-컬처밸리 사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경기도는 민간에 맡기지 않고 공영방식으로 개발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기존 사업자와의 법적 분쟁과 주민 반발 등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고 K-콘텐트 메카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7월 10일 경기도는 K-컬처밸리 사업 기자회견을 열고 CJ라이브시티와 맺은 협약을 해제한다고 밝혔다. 김성중 행정1부지사는 “CJ라이브시티의 사업추진 의지 부족으로 더 이상 도민의 불이익을 초래하지 않도록 협약 해제를 결정하게 됐다”며 “8년간의 K-컬처밸리 사업이 협약 해제에 이르게 된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부지사는 이어 “책임 있는 추진과 최소한의 공공성 담보를 위해 공영개발 방식으로 추진할 계획”이라며 “경제자유구역을 K-콘텐트 복합문화단지 사업지구까지 포함해 고양시만의 특색을 표현한 MICE(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 콘텐트 중심의 새로운 경제자유구역 수립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서 “이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수립해 발표하겠다”고 덧붙였다.

K-컬처밸리는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일대 30만2152㎡ 부지에 테마파크, 상업시설, 융복합공연장, 호텔 등을 조성하는 대형 개발사업이다. 2015년 사업을 시작할 때 그린 청사진에는 K-컬처 사업을 진행해 10년간 일자리 11만 개가 창출되고 16조원 규모의 생산유발효과를 기대했다. 2015년 12월에는 당시 대표적인 한류 콘텐트 기업으로 꼽히는 CJ ENM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이듬해 6월 경기도와 사업부지 매매 및 대부계약을 맺어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차은택씨 개입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기도의회 행정사무조사 실시 등으로 사업이 지연됐다. 이후 사업을 재개하기 위해 개발계획 변경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문턱을 넘지 못하다가 2018년 11월에야 삼수 끝에 도시계획심의를 통과해 사업 재개의 불씨를 다시 살렸다.

그 뒤로도 CJ ENM과 기본협약을 체결하고 호텔부지 내 소규모 공연장 공사를 진행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진척이 없었다. 다시 2년이 흐른 2020년 경기도는 K-컬처밸리 성공을 위해 다시 사업자의 요청을 받아들여 사업계획을 일부 변경했다. K-팝의 인기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자 해외 팬덤을 노리고 원형 공연장(아레나)을 짓는 것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4만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아레나와 함께 한류 콘텐트로 구성된 콘텐트파크를 조성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CJ 측(CJ라이브시티)도 글로벌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AEG와 파트너십을 맺고 첨단 공연장을 건립하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AEG는 영국 런던 O2아레나 등 세계 곳곳에 300여 개의 아레나와 컨벤션센터를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일산 재도약’ 기대받았던 ‘국내 최대’ K-팝 공연장 사업


▎7월 11일 김성중 경기도 행정1부지사가 공사가 멈춘 고양시 K-컬처밸리 사업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경기도는 사업시행자인 CJ라이브시티와의 협약을 해제하고 경기도가 중심이 돼 개발을 진행하기로 했다. / 사진:경기도
이윽고 2021년 10월 27일 국내 최초 대규모 K-팝 공연장인 K-컬처밸리 아레나가 2024년 완공을 목표로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CJ 측은 아레나가 완공되면 연간 2000만 명이 방문해 고양 일산지역경제 활성화를 견인할 거라고 했다. 늦어도 2024년 6월까지 테마파크와 상업·숙박시설 등 K-컬처밸리 공사를 모두 마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공사는 전혀 진척되지 않고 시간만 흘렀다. 이번에는 공사비 상승과 고금리에 따른 프로젝트파이낸싱(PF) 조성의 어려움이 발목을 붙잡았다. K-컬처밸리 사업에 관계된 부서에서 일했던 전직 경기도 공무원은 “CJ 측의 사업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업계획 변경 요구 다 들어줬는데 8년째 ‘제자리’


▎2021년 10월 27일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와 경기도, 고양시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K-컬처밸리 아레나 사업 착공식’이 열렸다. CJ라이브시티는 2024년 준공을 목표로 공사를 시작했지만, 공사비 증가 등 여러 이유로 공사를 계획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 사진:경기도
경기도는 사업 정상화를 위해 중앙정부 차원의 정책적인 지원을 촉구했다. 경기도는 3월에 낸 입장문을 통해 국토교통부 및 기획재정부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중앙정부 산하 공공기관의 직·간접적인 사업 참여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업시행자인 CJ라이브시티 측에도 사업을 계속할 의지를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도는 입장문에서 “사업 기간 연장을 포함해 네 차례의 사업계획 변경에 합의하는 등 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노력해왔다”며 “공사가 중지된 아레나 공사를 즉각 재개하고 사업 추진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등 사업 추진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업이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경기도가 한 걸음 양보하면서 겨우 사업의 불씨는 살려왔지만, 현재 전체 공정률은 총사업비 대비 약 3%에 불과하다. 착공식을 연 지 8년이 지나도록 진행된 공사라곤 호텔 실내공연장 등 일부 시설 기초공사 정도다. 사업 종료 시점(2024년 6월)이 임박한 상황에서 CJ라이브시티 측은 지체상금을 감면해 달라고 경기도에 요구했지만, 그 문제는 도지사의 권한 밖이다. 자칫하다간 특혜나 배임의 법적 책임이 따를 수 있는 문제다.

결국 사업 기간 종료를 앞두고 경기도와 사업자 간 최종 협상이 결렬되자 경기도는 협약 해제 후 개발 방식 변경이란 초강수를 뒀다. 경기도는 7월 1일에 기자회견을 열어 “사업 기간을 연장하고 감사원 사전컨설팅 결과 등을 종합해서 협의해 나가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CJ 측이 수용할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해 합의가 불가능하게 됐다”고 밝혔다.

경기도가 CJ라이브시티와의 사업 협약을 해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고양 지역을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10년 넘게 기다려온 고양시민의 허탈감이 특히 컸다. 경기도청 홈페이지에 사업 해제와 관련된 자세한 소명을 요구하는 청원 글이 올라왔고, 1만 명 넘는 주민이 동의했다. 온라인에선 ‘CJ라이브시티 백지화 반대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져 1인 시위와 도청 앞 규탄 집회 등을 예고했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김용태 국민의힘 고양정 당협위원장은 “경기 북부 주민의 염원을 무시한 도는 K-컬처밸리 사업이 조속히 시행될 수 있도록 국토부의 조정안을 전면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혁 국민의힘 고양병 당협위원장도 “아레나 공연장 건설과 K-컬처밸리 사업은 베드타운에서 벗어나려는 고양시민의 꿈과 희망이었다”면서 경기도에 합리적인 설명과 대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지금까지 사업 정상화를 위해 여론 대응을 자제해왔던 경기도는 “사업을 무산한 게 아니라 정상화하려는 것”이라며 반박에 나섰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직접 고양 지역 국회의원들을 만나 K-컬처밸리 대책을 논의하고 민심을 달랬다. 경기도는 연일 언론브리핑을 통해 세간의 억측을 적극 해명하고 있다.

“사업자 믿었지만, 의지 안 보여 중대 결단”

8년 넘게 사업이 지지부진했는데도 해제하지 않은이유에 대해 경기도는 “완공기한(2020년 8월)이 지나 해제권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사업시행자의 지속적인 추진 의사 표명으로 사업의 성공을 위해 해제권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업자 측의 성의를 믿고 기다려줬다는 얘기다. 경기도는 또 “지난 8년간 총사업비 대비 전체 공정률 3%로서 향후 사업 준공이 매우 불확실했다”고 설명했다. 만약 사업 기간 연장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기간이 종료될 경우 협약 효력이 상실돼 원상복구 명령, 지체 상금 부과, 계약금 몰취 등 경기도의 해제·해지 권리가 소멸되는 것도 문제였다.

김성중 경기도 행정1부지사는 기자들과 만나 “K-컬처밸리 협약 해지는 책임 있는 사업 추진을 위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 부지사는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계약 해지로 여러 어려움을 겪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해지라는 어려운 결정을 한 이유는 K-컬처밸리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기도는 우선 사업을 직접 챙긴다는 의미에서 경기도가 참여하는 공영개발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경기도와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중심이 되거나 다른 기관을 참여시키는 방법, 특수목적법인을 구성해 경기도 GH-경기관광공사 등이 참여하는 방법 등이 거론된다. 다만 구체적인 모델은 검토가 끝나야 윤곽을 알 수 있다.

K-컬처밸리와 킨텍스 일대를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해 외국인 투자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하기로 했다. 김 부지사는 “그동안 경제자유구역은 주로 제조업이나 IT 기업 중심으로 지정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킨텍스의 MICE와 K-컬처 등 콘텐트 중심의 경제자유구역이 만들어지면 훨씬 경쟁력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경기도는 고양시, GH,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TF를 구성해 지역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개발 콘셉트 선정 등 사업 효과를 극대화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계획이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u.gilyong@joongang.co.kr

202408호 (20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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