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특별취재] ‘창’과 ‘방패’의 싸움, 고양시 경제자유구역 

‘수도권 비대화’일까, ‘국가 신성장동력’일까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수십 년 된 수도권정비계획법 체계, 철학 재검토 주장도
산업입지 둘러싼 이항대립 뛰어넘어야 조성 작업 탄력


▎지난해 4월 일산동구 Y컨벤션에서 열린 고양 경제자유구역 비전 선포식. / 사진:고양시
대한민국 지역균형발전의 한계선을 꼽자면 아마도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판교가 1순위로 꼽힐 것 같다. 남쪽 지방에서는 ‘판교’를 ‘소프트웨어 인력의 남방한계선’이라 부른다. 판교는 디지털 인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그래서 그 아래 위도(緯度)로는 IT 등 첨단산업 인력이 내려오기를 꺼려 인력 공동화(空洞化)가 심화한다는 게 충청 이남 비(非)수도권의 푸념이다.

북쪽 지방에서도 판교와 분당은 애증(愛憎)이 교차하는 도시이다. 특히 서울 북쪽의 일산을 품고 있는 경기도 고양특례시에게 분당과 판교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롤모델과도 같다. 고양시는 500만 평을 웃도는 경제자유구역을 만들어 판교테크노밸리와 하이테크 전략산업 분야에서 진검승부를 펼치고자 한다.

원래 고양과 분당은 출발점이 같았다. 1991년 제1기 신도시로 시작한 분당과 일산의 당시 주택 가격은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집값에서 분당이 일산을 더블스코어로 앞서는 등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이와 관련해 고양시는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산업시설”이라며 “지역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런 자족 기능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산업시설, 자족 기능은 바로 판교테크노밸리에 대한 선망을 투영한다. 분당 판교테크노밸리의 2022년 매출 총액이 167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곳에 첨단기업이 대거 입주하면서 지역 내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동을 촉진하고, 분당의 경제 기반을 다졌다. 판교테크노밸리에서 나오는 매출과 세수(稅收)는 분당을 이른바 ‘천당 아래 분당’의 지위로 격상시켰다.

원래 일산은 1기 신도시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고양은 몰라도 일산은 알았다. 고양시 안에 일산이 있음에도 1기 신도시가 들어선 일산의 지명도가 고양시를 대표하는 듯한 양상이었다. 일산은 신도시의 메카였다. 그에 힘입어 고양시도 인구 108만 명의 대도시로 발돋움했지만, 주로 고밀도 주택단지라는 ‘베드타운’으로서의 역할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역내총생산도 20조원대를 갓 넘긴 수준에 머문다. 수도권 집중 억제를 겨냥한 각종 규제에 막혀 산업 단지 등 일자리 창출에 필요한 자족 기능을 갖추지 못한 결과라는 게 고양시의 진단이다.

현재 고양시는 전역이 ‘수도권정비계획법’ 상의 과밀억제권역에 속한다. 과밀억제권에서는 학교, 공공 청사 등 인구집중 유발 시설의 신설 또는 증설이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공업 지역 지정도 엄격하게 제한된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은 수도권 집중을 막는 조항을 많이 담고 있다.

자유로의 만성적 교통난 해결할 근본 해법


▎시민 상당수가 서울 등지로 출·퇴근하는 고양시 인근 자유로는 늘 차량으로 붐빈다. / 사진:고양시
게다가 고양시는 개발제한구역(42.3%)과 군사시설보호구역(37.35%) 등 시역(市域)의 대부분이 중첩 규제 대상으로 묶여 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세계에서 뛰어난 5대 도시’에 고양시를 선정하기도 했다. 이는 고양이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에 걸맞은 녹지·공원·생활 인프라를 구비한, 살기 좋은 도시라는 측면을 반영했다. 반면 재정자립도는 내리막길이다. 2010년 56.4%에서 2022년 32.8%로 내려앉았다. 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산업적으로 성장은 더디고, 고용 창출도 굼뜬 지자체가 바로 고양시다.

“기업이 없으니 일자리가 부족하고, 인구만 급증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의 몫으로 돌아온다”는 게 고양시의 하소연이다. 고양 시민 108만 명 중 약 39%가 서울 등지로 출·퇴근하는 등 만성적인 교통난을 겪는다. 비슷한 규모의 수원시나 용인시보다 타지로의 출·퇴근 인구가 훨씬 많은 편이다. 인구는 많고 일자리는 제자리걸음인 도시의 불균형이 낳은 진풍경이다.

고양시는 이들 시민을 위해 도로·철도를 확충해 교통 편익을 도모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직면했다. 고양시가 534만 평(17.66㎢) 규모의 경제자유구역 조성에 나선 배경이기도 하다. 고양시는 “첨단산업 활성화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고 여기에 주변 지역을 잇는 교통기능까지 강화한다면 고양시는 수도권의 핵심 거점으로서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며 경제자유구역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경제자유구역은 고양시의 미래에 어떤 활로를 제공하는 걸까?

‘경제자유구역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은 외국인 기업과 투자 유치를 위해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고양시는 “과밀억제권역 행위 제한 배제가 가능한 현행법상 유일한 제도인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통해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글로벌 산업을 육성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경제자유구역은 고양시가 기업을 데려오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확실한 카드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새로 유치되는 외국인 투자 기업에서 일하는 고양시민들이 늘어나면 출·퇴근 고통도 줄어든다. 일자리와 함께 늘어난 세수를 고양시 기반시설 확충에 투입하면 그 혜택이 시민들에게 다시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다.

“이를 통해 시민들이 고양시 안에서 일하고, 소비하고, 생활하여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는 자족도시로 고양시가 도약하게 될 것”이라고 이동환 고양특례시장은 말한다.

이 사안은 수도권정비계획법 대(對) 경제자유구역특별법이 경합하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고양시 언급에서 알 수 있듯 수도권정비계획법이 ‘창’이라면 경제자유구역특별법은 ‘방패’이기 때문이다.

고양시는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는 수도권을 눌러 지방을 키워주는 방식은 한계에 와 있으며,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 성장하는 방안을 모색할 때라고 강조한다. 고양 경제자유구역도 크게 보면 지역균형발전의 일부분이라는 관점이다.

반면, 비수도권에서는 고양 경제자유구역 지정이 결국 수도권 집중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계한다. 산업과 인구의 분산, 권력의 분권을 통해 대한민국 경쟁력을 키우는 지역균형발전 정책과 어긋난다는 점에서 반대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가와지 볍씨’와 화훼, K-푸드 특화 전략


▎고양 경제자유구역의 주요 시설이 들어설 고양시 장항동과 대화동 일대 전경.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고양시는 500만 평 경제자유구역이라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승부수를 던졌다. 수도권 경쟁력을 키워 나라의 미래를 다지겠다는 의지를 표방한다. 글로벌 보호무역 시대에는 미래산업 육성과 산업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필요하다. 그 일환으로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수도권(고양시)에 기존 경제자유구역을 압도하는 매머드급 경제자유구역을 조성하자는 제안이다. 고양시는 입지적 장점으로 꼽는 바이오·정밀의료, K-컬처, 스마트 모빌리티, 전시 컨벤션(MICE) 등 4개 핵심 산업을 중점 육성하겠다는 구상이다.

고양시의 역사성을 부각하는 스토리텔링도 눈길을 끈다. 고양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인 ‘가와지’ 볍씨가 출토된 지역이다. 고양시 대화동의 옛 지명인 가와지에서 5000년 전에 재배된 볍씨가 발견됐다. 이에 착안해 자체 개발한 벼 품종인 ‘가와지 1호’ 보급에 나서는 등 농업 기반 도시 고양의 면모를 다시 일깨우고 있다. 고양시는 화훼로도 유명하다. 장미 최대 생산지인 고양은 전국 생산량의 24%를 키워낸다. 또 ‘비모란접목선인장’도 수출하는 등 고양시는 농업으로 특화될 여건도 갖췄다. 배추, 상추, 시금치 같은 엽채류는 전국에서 1등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고양시의 자랑이다.

이동환 고양시장은 “이런 기반 위에 고양시는 수경재배를 통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스마트팜의 메카가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스마트팜을 다수 조성해 K-푸드와 같은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그의 포부다.

경제자유구역의 성패는 외국인 투자 유치 성과에 좌우된다. 적극적인 투자를 유발하자면 학교, 병원, 문화 시설, 각종 연구기관과 같은 정주 환경 조성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신재생에너지 등을 활용한 친환경 도시계획 특화전략을 수립했다고 고양시는 밝혔다. 첨단산업, 서비스, 주거,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스마트 시스템과 그린 인프라가 결부된 사람 중심의 최고 정주 여건과 인프라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경기도는 현재 고양과 안산 두 곳에서 신청한 경제자유구역 조성 방안에 대한 검토 작업을 진행 중이다. 경제자유구역 지정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환경부, 농림부 등 관계 부처 및 기관의 사전 협의를 거쳐 산자부 산하 경제자유구역심의위원회에서 지정 여부를 평가하게 된다.

이런 고양시의 경제자유구역 지정까지는 거쳐야 할 관문이 여럿이다.

“외국 자본에 필요한 만큼 부지 제공”


▎고양시청 2층 복도 벽에 조성된 ‘고양 600년 역사 이야기’ 맨 위를 5000년 된 가와지 볍씨 스토리가 장식하고 있다. 아래 작은 원 안이 가와지 볍씨 설명.
먼저 선행 경제자유구역과의 차별성부터 증명해야 한다. 현재 경제자유구역은 총 9개 지역에서 조성, 운영 중이다. 2003년 인천을 시작으로 부산·진해, 광양만권, 경기, 대구·경북, 충북, 동해안권, 광주, 울산 등에 지정됐다. 경기의 경우 평택 포승, 현덕, 시흥 배곧 등 경기도 남서쪽 3개 지구에서 사업비 3조원 규모로 개발되고 있다. 이번에 고양시가 추진하는 경제자유구역의 사업비는 23조원에 달하며, 2025년부터 2035년까지 고양시 장항, 대화, 송포동 일원에 조성될 예정이다.

534만 평에 달하는 고양 경제자유구역 규모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의 기본 정책 수단인 ‘공장 총량제’와 직결되는 사안이기도 하다. 산자부는 국내 경제자유구역 면적 총량을 360㎢로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9개 지역에 총 271㎢ 면적의 경제자유구역이 지정됐다. 추가 지정까지 남은 용량은 88.6㎢다. 고양시가 기대하는 면적은 17.66㎢에 달한다. 정부 일각에서는 공장 총량제를 더 키우자는 의견도 있지만, 지방에서는 공장 총량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으로 받아들인다.

현재 전국 9개 지역에 조성되고 또 추가 조성이 추진되는 경제자유구역을 이대로 끌고 가도 좋은가에 대한 물음도 제기된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경제자유구역이 무질서하게 조성되면서 기대했던 정책 효과는 내지 못하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면서 “제도의 전면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고양시는 기존 경제자유구역을 초월하는 존재 이유를 국가경쟁력 향상이라는 관점에서 증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고양시는 “경제자유구역의 성공은 입지 수요와 기업 유치에 달려 있다”면서 “외국투자기업이 선호하는 곳에 필요한 만큼의 부지를 조성하는 게 경제자유구역특별법의 근본 목적에 부합한다”고 답한다. 고양시는 ▷1기 신도시의 인프라를 활용한 ‘우수한 정주 환경’ ▷‘서울 및 수도권 접근성’ ▷‘반경 20㎞ 내 15개 이상의 주요 대학 소재’ 등 최적의 입지를 성공 포인트로 제시한다. “국가 차원에서 가장 성공할 수 있는 지역에 경제자유구역을 조성해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동반 성장하는 모델을 만들 것”이라는 게 고양시의 논리다.

앞서 창과 방패에 비유한 ‘수도권정비계획법’과 ‘경제자유구역특별법’에 대한 접근법도 시각에 따라 상이하다. 비수도권에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견줘 수도권 비중이 지나치게 커서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도권정비계획법’과 공장 총량제는 지방이 아닌 수도권의 체력을 키워 주는 ‘부담 중량’이라는 인식이 오래전부터 뿌리를 내려왔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지낸 이민원 광주대 명예교수는 2012년 발간된 저서 [균형이 희망이다]에서 “공장 총량제의 진정한 목표는 기업의 지방 분산이 아니라 수도권 과밀로 인한 비용 증가를 막는 것”이라며 공장 총량제 완화론에 쐐기를 박기도 했다.

‘구성의 오류’ 고양시 넘어설까?


▎1996년 당시의 일산 신도시 전경. 고양시는 지금 인구 108만의 대도시로 성장했다.
반면, 고양시는 ‘경제자유구역특별법’을 통해 조성되는 경제자유구역이 대한민국 신(新)산업생태계를 만들어 비수도권에 고루 혜택을 안긴다는 믿음이 확고하다. 김현호 고양시정연구원장은 탈(脫)중국이라는 글로벌 산업·투자 지형 재편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경제자유구역을 잘 활용하자고 제안한다.

미국, 유럽 등 서방 자본주의 진영은 ‘세계의 공장’ 중국에 의존하던 제조업의 상당수를 자국 또는 제3국으로 이전하는 추세이다. 한국은 인도, 동남아와 함께 탈중국의 대안적 생산 기지 내지 협력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현호 원장은 “외국인 투자 수요가 있는 고양시에 경제자유구역을 지정하면 지역과 국가의 경쟁력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며 “고양 경제자유구역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나눠서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상관성은 늘 제기되는 전형적이고 표준적인 논쟁으로 이어진다. 바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관계가 ‘제로섬(Zero-sum) 게임’인지, ‘플러스섬(Plus-sum) 게임’인지에 대한 엇갈린 견해들이다.

국가 공간 정책의 핵심은 주민 삶의 질 향상에 있다는 의견을 보자, 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그의 저서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에서 주민의 행복감이 높아지는 쪽으로 균형의 모습을 그려 나가야 하며, 일정한 쏠림현상은 불가피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공간이 의인화되면 모든 국토 구석구석이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하지만 공간의 가치는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똑같이 취급되지도 않는다. 한국의 약 3850만 필지에 사람과 일자리를 정확히 똑같게 분산시키면 된다. 이런 형태로 국토의 균형적 발전을 이뤄야 한다고 말하는 아마도 그는 비웃음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 책의 핵심은 “공간에는 위계가 있고, 위계 상의 거점을 잘 이용해 권역 전반에 걸쳐서 균형을 잡을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고양시의 경제자유구역은 이 관점에 일면 부합한다. 모든 공간이 균등하게 발전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그럴 수도 없으므로 고양시 지자체장은 주민 삶의 질을 높이려는 방향으로 도시 기능 재편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동환 고양시장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수도권 전체를 하나로 보고 도시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산업 분야의 경우 수도권 권역별로 조정과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산업은 역할을 나누고 인프라는 연계할 때 경쟁력을 끌어올리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수도권은 서울, 경기, 인천 이렇게 광역지자체 개념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지역별, 블록별로 역할을 분담하는 방법을 찾아봐야 할 시점이다. 고양시만 하더라도 인접한 파주, 김포와의 연계를 통해 수도권 안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렇게 총론에서 궤를 같이하는 주장들도 각론에서는 따로 갈 수 있다. 마 교수는 사회학에서 말하는 ‘구성(構成)의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면 수도권 지자체의 양보도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구성의 오류’란 개별적으로 타당한 얘기가 전체적으로는 맞지 않는 현상을 일컫는다. 개인에게 올바른 행동이 구성원 전체에게는 그렇지 않게 귀결되는 경우에 해당 한다.

마 교수는 고양시의 경제자유구역 추진과 관련해 “수도권 주민들도 사실 자족성이 있는 곳에서 살면 좋고 그럴 권리도 있다”면서도 “그런데 수도권에서 이런 정책들이 계속 나오면 지방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고양 경제자유구역이 조성돼서 새 일자리가 제공되면 지방에서 청년 세대가 이곳으로 올라오게 되고, 가뜩이나 인구 감소로 힘든 지방은 더 버틸 재간이 있겠느냐는 물음이다.

산업 구조 변화와 공장 총량제 무력화


▎지난해 3월 K-바이오 클러스터 조성 협의차 독일 리드디스커버리센터를 방문한 이동환 고양시장. / 사진:고양시장
나아가 세 번에 걸쳐 추진되는 수도권 신도시 조성도 이런 사이클의 산물로 마 교수는 해석한다. 1980~90년대 청년 인구가 수도권으로 쏠리면서 서울의 주택이 부족하고 집값은 상승했다. 이에 서울 인근 1기 신도시에 입주한 주민들을 위해 광역교통망을 깔았다. 이런 사이클이 세 번에 걸쳐 이뤄지면서 현재 3기 신도시 건설에 이르게 됐다는 게 마 교수의 해석이다. 마 교수는 “앞으로도 이런 방식을 되풀이할 것인지,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국정 목표의 하나로 설정했다. 당장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모토로 하는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도 수도권 산업 입지 증가에 난색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 전문가 중에는 지금과 같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반대편에 놓고 산업 입지를 논의하는 이항대립(二項對立)적 접근에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이영성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 확대를 막고자 도입한 공장 총량제가 산업 구조 전환에 따라 차츰 무력화하는 흐름에 주목한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의 여파로 성장동력의 중심축이 굴뚝 산업에서 첨단 IT산업으로 이동하는 글로벌 추세와 맞물린다. 이 교수는 “이제 고부가가치의 상당 부분은 중화학공업 같은 거대한 공장 가동보다는 벤처스타트업이나 빅 테크 기업의 혁신에서 발생한다”면서 “벤처스타트업 같은 산업은 공장 총량제에 걸리지 않아 우리나라 산업 입지와 판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궁극적으로 도시의 특징은 핵심 산업이 좌우하며, 그 핵심 사업은 국내만이 아닌 국제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시각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경제에서 벤처 스타트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2021년 대비 2022년 고용증가율을 보면 일반기업은 2.4% 증가한 데 비해, 벤처스타트업은 8.1%의 약진세를 보였다. 국가 경제의 성장동력과 일자리 창출의 원천이 기존의 굴뚝기업에서 점차 첨단 IT산업 쪽으로 전환되는 추세라는 게 산업연구원 같은 국책연구기관의 평가다.

경제자유구역을 만들려는 고양시의 시도 역시 이런 경제 환경 변화의 산물로 이 교수는 이해한다. 인구 100만 명의 고양시라면 반도체 설계, 2차전지, 자동차 연구·개발(R&D)센터와 같은 지식집약산업과 동행할 충분한 여건과 의지를 갖춘 도시임이 분명하다. 이 교수는 “이런 곳이 과밀억제권역으로 묶여 일자리는 안 생기니 경제자유구역을 통해 규제를 우회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이를 비판하기보다는 수십 년 된 수도권정비계획법의 관리 체계와 철학, 접근 방식을 재고해볼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전체가 원 시티(One-city) 시대?


▎고양시의 명물 호수공원의 노래하는 분수대. 영국 BBC는 고양시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세계에서 뛰어난 5대 도시’에 선정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과 인력을 두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나누는 게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강명구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수도권을 규제해야 지방이 산다는 시각은 20세기 산업화시대 산물”이라며 “4차 산업혁명 이후 사회경제구조가 변화하는 만큼 전체 국토가 발전하는 새 방안을 짜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산업 입지에 규제를 가하면 수도권이나 비수도권 모두 이익을 얻지 못한다. 수도권을 누른다고 기업이 지방으로 가는 게 아니라 해외로 빠져나간다. 이제는 나라 전체를 한 덩어리의 땅으로 보고 ‘원 시티(One-city)’ 개념으로 발전전략을 모색할 때다.”

기업들이 수도권과 맞닿은 충청권에 입주하면 수도권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도 변수로 작용한다. 기업들이 굳이 동해안 등 남부 지방으로 내려갈 이유가 줄어드는 것이다. 기업들이 점점 더 수도권에 집착할 가능성도 있다. 이 문제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이나 공장 총량제라는 규제 장치로 막을 수 없는 물결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균형발전에 관한 견해는 늘 현기증이 날 정도로 찬반이 팽팽하게 맞선다. 또 어디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는 사안이 바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문제이다. 결국 이 문제는 가치의 총량 크기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가치란 좋은지 나쁜지, 중요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하는 과정을 수반한다. 수도권에 새로운 산업 집적시설이 들어서는 것에 회의적인 이들을 ‘가치’의 관점에서 설득하는 일도 경제자유구역을 추진하는 고양시에 주어진 몫이다. 이 또한 정교한 논리와 공고한 지지 여론이 뒷받침돼야 하는 사안이다.

-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202408호 (2024.07.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