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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이재명의 민주당, ‘개딸’에 점령됐나 

휴대폰 문자 폭탄과 테러가 당심(黨心)?… 민심 확장에는 한계 뚜렷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이재명의 ‘기본사회’, 민주당 당 강령까지 수록… 사당화 가속
내부 경쟁자는 숙청해서 몰아낸다지만 중도층 잡기 어려워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월 5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해 추미애·전현희 의원 등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차기 지도부 구성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대표는 90%에 육박하는 누적 득표율을 기록했다. 2021년 10월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며 당내 주류로 떠오른 뒤 3년 만에 민주당을 완전히 장악했다. 당초 민주당은 당원도, 계파도 많다 보니 여러 주장과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정당이었다. 지난 정부 청와대 출신인 친문재인계와 참여정부 출신 친노무현계가 양대 산맥을 이루는 가운데 친이낙연계, 친박원순계, 더민초(김근태계), 구 동교동계 등 나열하기도 벅찰정도다. 민주당에 오랫동안 몸담아온 당직자 A씨는 “의원총회는 물론이고, 무슨 회의만 열리면 계파끼리 싸우고 난리가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대판 싸우고 나서 뒤늦게 “건강한 정당은 일사불란하지 않다. 다양한 목소리가 민주주의”라면서 수습하던 게 과거 민주당의 모습이었다.

그때만 해도 이 대표는 ‘변방의 장수’쯤으로 여겨졌다. 2017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와 대놓고 각을 세워 ‘비문’으로 내몰린 뒤에는 아웃사이더 취급까지 받았다. 주류에서 철저하게 밀려난 이 대표는 20대 대선 경선에서 기사회생했다. 그리고는 대선 본선에서 지고도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를 통해 자신의 정치 인생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돼 원내에 입성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강성 지지층인 ‘개혁의 딸’(개딸), ‘더민주 전국혁신회의’(혁신회의) 등을 키우며 당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2023년 12월에는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뽑는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투표 비중을 줄이고 권리당원 비중을 높이도록 당헌을 개정했다. 현역 의원과 지역위원장 등 현역 정치인의 힘을 빼는 대신 지지층의 힘을 대폭 키운 것이다. 8월 18일 전당대회에서 전대미문의 득표율이 나온 배경이다.

전당대회 표심까지 좌우한 극성스런 ‘개딸’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3년 9월 27일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계파 정치에 대한 여론의 호불호는 있겠지만 민주계열 정당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유신체제 때조차 김영삼·김대중 두 정치거물들 간에 경쟁이 있었다. 하지만 작금의 민주당에는 입 다물고 침묵을 지키거나 이 대표에 대한 찬사를 읊는 양자택일만 남았다. 실제 이번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출마한 정봉주 전 의원은 이 대표의 권력을 제대로 체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당대회 초반까지만 해도 정 전 의원은 최고위원 후보 가운데 누적 득표율 1위를 달렸다. 지난 총선에서 ‘목발경품’(지뢰를 밟아 다리를 절단당한 군인에게 목발을 경품으로 선물하자고 주장해 물의를 일으킨 사건) 막말로 졸지에 공천 배제까지 당했지만 당원들로부터 특유의 ‘대여 전투력’을 인정받아 이변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 대표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선거 러닝메이트인 김민석 의원(최고위원 후보)을 초대해 “왜 (김민석의) 표가 안 나오느냐”고 말한 뒤 선거 판도에 변화가 생겼다. 직전까지 4위에 불과했던 김 의원이 단숨에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에 반발한 정 전 의원은 “이재명팔이(이재명 대표 이름을 팔아 선거 치르는 후보를 지칭) 내가 도려낸다”는 강경 발언으로 개딸과 혁신회의를 겨냥했다가 고초를 겪었다.

반면 최고위원 후보 대다수는 ‘이재명 마케팅’으로 자신을 장식하기 바빴다. 그들의 속내가 어떻든 이 대표의 눈 밖에 나면 개딸을 비롯한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주적(主敵)으로 취급당해 문자 폭탄 공격을 당하는 것은 물론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 유튜브와 SNS 등에 비난 일색으로 채워질 악플을 각오해야 하고, 이른바 ‘수박’으로 낙인 찍혀 배척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배척당한 대표적 인사가 이번 전당대회에 당권주자로 나선 김두관 전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소수 강경 ‘개혁의 딸’ 목소리가 당을 장악하고 ‘혁신회의’가 이 후보의 홍위병이 돼 줄을 세우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다”라고 말한 뒤부터 개딸의 집중 공격을 받아 지역 경선 때마다 지지율 10%도 채우지 못하고 체면만 구겼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의 개막과 함께 정치를 시작한 이 대표는 행운아라는 얘기가 있다. [2021·2022 이재명론]의 공동저자 장동훈의 말이다. 실제로 이 대표는 SNS 정치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만큼 SNS를 통한 개딸 세력의 응집과 폭발력을 노련하게 조련하는 방법도 알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 하나를 보자. 지난해 8월 15일 이 대표는 네 번째 검찰 출석을 앞두고 자신의 출석 날짜와 시간, 장소를 명시한 웹자보를 업로드했다. 지지자들은 집결 장소를 전파하면서 “이 대표를 경호하고, 외로이 조사받지 않게 하자”고 독려했다. 세칭 좌표를 찍어 ‘개딸 소집령’을 내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 대표는 청사 인근 법원 삼거리에 간이 단상과 스탠드 마이크까지 차려놓고, 어느 때보다 목소리를 높여 일장 연설을 했다. 연설 후에는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지지자들의 연호를 받으며 차에 올라 검찰청사 로비에 도착했다. 이는 역사상 유례없는 피의자 소환 풍경일 것이다.

아울러 이 대표는 유튜브 정치를 선점한 정치인으로도 꼽힌다. 이 대표의 유튜브 채널은 2024년 8월 기준 구독자가 103만여 명이다. 윤석열 대통령 개인 채널 구독자(61만6000여 명)보다 40만 명 더 많다. 이 대표를 추종하는 군소 유튜브 채널까지 하나하나 따지기 시작하면 셀 수 없을 정도다. 효용성을 따지자면 유튜브는 지지자들과의 소통 창구로서 그 어떤 플랫폼보다 제격이다. 영상을 통해 지지자들은 대표와 대면하는 기분으로 시청하며 보다 친밀한 관계로 느끼게 된다. 이 대표가 다른 진보 성향 채널에 출연해 “슈퍼챗을 부탁한다”고 말하는 건 보기 드문 광경이 아니다.

여기에 개딸의 본거지인 이 대표의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이 있다. 회원은 무려 20만6000여 명. 이들은 이 대표를 ‘밍’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아침마다 이 대표의 사진을 올리며 하루를 시작하고 이 대표의 팬아트를 그리는 등 일상적인 글을 공유하는 건 예사고, 포털사이트 뉴스에서 이 대표 기사가 나오면 댓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댓글부대를 동원하는 게 핵심이다. 셋이 말하면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로 둔갑하는 세상에서 개딸들에게 온라인 댓글전쟁은 정치판에서 ‘선수’로 뛰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재명이 절치부심한 계기는 서울구치소였다”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자 합동연설회에 참석한 당원들이 후보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월간중앙 취재를 종합하면, 민주당에서 개딸이 테러에 가까운 언행으로 이 대표의 반대 세력을 공격하고, 이를 민심으로 포장해 당략에 활용하는 정치 전술이 극한으로 고조된 계기가 있었다. 이 대표가 지난해 9월 서울구치소에서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숨 죽이며 기다릴 때 무사 생환할 시 피의 숙청을 벌이겠다고 다짐한 그때다. 당시 이 대표는 백현동 개발 의혹, 쌍방울그룹 대북 송금 의혹 등 특경법상 배임과 제3자 뇌물,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심사를 받았다.

당시 이 대표는 유창훈 판사에게 “수사받고 있는 사건에 대해 형(刑)이 모두 선고되면 한 50년은 받을 것이다. 판사님의 결정이 저의 운명을 정한다. 딱 하나만 부탁하는데, 방어만 할 수 있게 해달라. 제가 조그만 방에 혼자 있으면서 검사 수십 명이 덤비는데 어떻게 방어를 하겠나”라고 목멘 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이 대표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전환을 외친 비명계 진영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고, 이 가운데 30여 명은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가결표를 던졌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당직자는 “사실 친명계에서도 당권을 노리는 중진 일부는 이 대표의 구속을 바라고 있었다. 당시 언론에 ‘기각’ 속보가 뜨자마자 아쉬워한 의원이 한둘이 아니다. 공식 석상에서 뭐라고 하든 속내는 이재명 일극체제에 대한 불호가 있었던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무사 귀환했고 위기를 넘긴 직후 개딸의 결집력이 폭발한 건 당연지사였다.

개딸들은 가결표를 던진 의원들을 배신자로 지목해 리스트를 만들고 이들의 정치생명을 끊겠다며 테러에 가까운 인신비방 문자 폭탄과 지역구 사무실을 항의 방문하는 방법으로 실력 행사에 나섰다. 이에 일부 의원들은 자신의 부결표를 사진 찍어서 ‘인증’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무기명 투표에서 투표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면 안 되지만 서슬 퍼런 색출 분위기가 국회를 뒤흔든 것이다.

민주당은 당의 헌법인 강령을 개정해 개딸로 상징되는 일반 당원의 권리 강화에 나설 계획이다. 특히 당 강령에 이 대표의 이념인 ‘기본사회’를 넣기로 결정했다. 당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강령 전문에 특정 정치인의 이념이 수록되는 것이다. 이미 당 지도부 선출이나 공천은 물론 원내대표나 의장을 선출할 때도 개딸이 실력을 행사하는데, 이렇게 되면 개딸이 더 힘을 받게 된다. 또한 경선에 불복하면 10년 동안 입후보를 금지하고 있는 현 규정을 공천에 불복한 경우로 확대한다. 당 지도부의 전략공천 결정이나 컷오프에 항의하면 제재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를 두고 당내 비명계인 한 당직자는 “지난 총선에서 불거진 ‘비명횡사’ 논란마저 불식시키고 아무도 반발할 수 없도록 입을 틀어막는 장치”라고 비판했다.

극단적 지지층과 비토층을 함께 안고 간다?

현재 이 대표의 대권가도는 탄탄대로다. 그와 맞설 내부 경쟁자도 없다. 이낙연 전 대표는 지난 총선 이후 정치적 재기조차 불투명하다. 넓게 보면 김동연 경기지사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있지만 전자는 정치적 인지도가 부족하고, 후자는 사법리스크와 더불어 외연확장성이 약하다. 이 대표가 민주당내에서 차지하는 권력은 과거 3김 정치 시절 제왕적 총재의 권한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에 빠진 호재에도 이 대표가 확실한 대세론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까닭은 언제든지 사법리스크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당장 9월 중에 2개 사건의 결심 공판이 예정돼 있다. 하나는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다. 이 대표가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개발1처장을 모른다’ 등의 발언으로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기소된 지 2년 만이다. 다른 하나는 위증교사 사건으로, 이 대표가 2018년 수원지법에서 검사 사칭 사건과 관련해 “누명을 썼다”는 발언으로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을 받을 때 증인의 수행비서에게 위증을 부탁한 내용이다. 두 사건의 정도를 고려할 때 통상 결심에서 선고까지 한 달여가 걸리는 편으로, 10월 중 선고가 나올 공산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대표가 풀어야 할 또 다른 과제는 중도층을 끌어안는 문제다. 이 대표는 현재 어느 정치인보다 극단적인 지지층과 비토층을 함께 안고 가는 신세다. 차기 대선이 정치적 목표인 만큼 중도층을 겨냥해 정치하지 않으면 지난 대선의 리바이벌이 될 수 있다는 게 정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결국 기존 지지층과 개딸만으로는 당심은 얻어도 민심은 못 얻는다는 얘기다.

-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202409호 (202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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