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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습 중산층 사회' 작가 조귀동이 바라본 중산층 해법 

“중산층 무너지면 사회 통합에 큰 문제… 체제 유지 자체가 힘들어질 수도” 

박세나 월간중앙 기자
“계층이동성 줄어든 건 통용되던 사회계약 무너진 탓… 해법은 공교육 수선”
“90년대생이 겪는 불평등은 586세대가 주도하는 세습 중산층 사회의 이면”


▎조귀동 작가가 90년대생이 겪는 불평등에 대해 쓴 자신의 책 [세습 중산층 사회]를 펼쳐보고 있다.
경제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조귀동(43) 작가는 [세습 중산층 사회]라는 책에서 90년대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의 본질을 지금의 50대가 이루려는 ‘중산층’의 ‘세습’에서 찾았다. 중산층 부모인 586세대가 자신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자녀세대인 90년대생에게 안전하게 물려주려는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학력과 노동시장의 지위를 기반으로 부를 축적한 586세대는 과거 ‘대학 정원 확대→경제 호황기 노동시장 진입→수출 대기업의 급성장으로 인한 노동소득 증가→부동산 등 자산가격 급등’에 힘입어 탄탄하게 입지를 다졌다. 당시 대한민국의 사회·경제적 흐름에 올라타 비교적 쉽게 중산층 또는 상위 중산층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 그런 그들이 부모가 되면서 교육 투자뿐만 아니라 문화적 역량, 사회적 네트워크 등 무형 자산을 이용해 90년대생 자녀들에게도 동일한 학력과 노동시장 지위를 물려주게 되면서 불평등이 고착화된다. 이런 격차 고정은 이후 자녀 세대의 생애주기 전반을 결정하는데, 입시·취업·결혼·부동산 등 사회 전반에서 다중적 불평등 문제를 가져온다. 15년의 기자 경력과 경제학 박사과정에서 습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와 경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온 조귀동 작가에게 중산층 담론의 해법을 들어봤다.

중산층을 어떻게 정의하나?

“표면적으로는 중위소득 계층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에서의 중산층은 그것만이 아니다. 도달하고 싶은 지향점으로서의 중산층 내지는 ‘상위 중산층’의 의미를 포함한다.”

중산층의 의미가 한국에선 달리 통용된다는 건가?

“내가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 ‘중산층적인 생활양식’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성장기였던 1970~1980년대에 중산층이란 쉽게 도달할 수 없지만, 누구든 열심히 하고 적당한 운이 받쳐주면 진입할 수 있었던, 혹은 그 비슷한 수준으로 내 삶을 개선시킬 수 있을 거라는 기준이 돼줬다.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 달성 가능한 목표로 일종의 ‘사회계약’으로서 유지가 돼 왔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됐다. 이것이 최근 중산층 담론에 대한 문제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얼마 버느냐보다 얼마 소비하냐가 중요한 시대”

학자들 중에도 중산층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한국에서 사회학을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연구를 하지 않았던 분야여서 더 그렇다. 우리나라의 아파트 연구에 관한 책을 처음으로 쓴 사람은 프랑스 사회학자인 발레리 줄레조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가 쓴 [한국의 아파트 연구], [아파트 공화국]이 각각 2004년, 2007년에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가 중산층의 표준 주거 형태가 된 때가 1980년대부터인데도, 2000년대 중반에, 그것도 외국인에 의해 처음 한국 아파트에 관한 학술 연구 책이 나온 것이다. 그만큼 중산층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중산층에 대한 담론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뭘까?

“중산층은 한국 현대사의 핵심 계층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을, 한국의 사회·정치·경제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중산층으로서의 사회계약이 무너진다는 건 굉장히 많은 사회적인 문제를 내포하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갈등이 커지고 사회 전반의 생산성이 낮아지게 되면서 사회 시스템이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계층 간 격차가 더 깊고 넓어진다는 것이다. 불평등이 극명해지는 것이다. 결국 사회 통합성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사회이동성이 없어지면 체제 유지 자체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

국가가 해결할 수 있을까?

“1980년대 중반과 후반에 중산층 육성 계획을 정부가 나서서 주도한 적 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말한 ‘보통 사람’이라는 게 사실은 중산층이었을 거다. 경제 발전기였던 1970년대 후반부터 대졸자들이 대거 증가했던 1980년대에 중산층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백화점이 호황을 맞고 ‘마이카’ 열풍이 생기고 다들 경포대로 휴가를 갔다. 중산층의 라이프스타일이 점점 확산된 것이다. 그 이전에는 그저 먹고 살기 바빴다면, 이제 이런 삶이 보통이 됐다. 이렇게 1980년대에 중산층 개념이 등장하고, 정부가 장려하는 형태로 이어졌다고 본다. 1987년 노동부가 작성한 ‘근로자 중산층화 기반 조성’을 보면, 중산층을 ‘10년 정도 일한 35세 전후면 20여 평 정도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자동차가 있고, 아이 2명을 고등 교육시킬 정도가 돼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 개념이 한국 사회계약의 핵심에 있었다.”

소득구분상 중산층인데도 45% 이상이 중산층이 아니라고 답했다는 통계가 있다. 왜일까?

“삶의 질은 얼마를 버느냐뿐 아니라 얼마나 소비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불평등이란 건 소득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소비하는 데서 나타난다. 무엇에, 어떻게, 얼마나 쓰느냐에 따라 자신을 중산층인지 아닌지 나눈다. ‘남들보다 더 벌긴 하지만, 고정지출로 다 나가고 결국 가용할 수 있는 금액은 겨우 이만큼이니 나는 서민이고 하층민이다’라고 하는데, 저는 그게 바로 전형적인 중산층적 의식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이들이 말하는 중산층은 ‘여유 있는 삶, 본인이 도달하고 싶은, 도달해야 하는’의 의미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불안감이 ‘나도 서민’이라는 걸로 위장이 돼 있는 셈이다.”

“공영운 전 현대차 사장이 상위 중산층 성공 모델”

중산층 문제가 불평등 담론을 촉진했다고 보나?

“중산층 담론은 결국 불평등과 분배에 대한 담론이기도 하다. 예전에도 격차는 있었다. 그런데도 경제성장률이 뒷받침되니까 기회도 있었다. 열심히 노력하고, 운도 따라준 사람은 아파트도 사고 땅도 사고 신도시나 부동산 개발에 따른 보상도 받으면서 자산을 늘렸을 거다. 전형적인 고도개발의 분배 방식에 의해서. 또 가난하지만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으로 대학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해서 신도시에 아파트를 샀을 수도 있다. 예전엔 주위에 이런 사회 이동의 사례들이 흔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계층 이동의 기회나 가능성은 줄었거나 차단됐고, 이것이 오늘날 중산층 문제가 되고 불평등에 대한 담론이 된 거다.”

청년층이 겪는 불평등을 전면화한 사건으로 ‘조국사태’를 언급했다.

“그동안 불평등 담론이 다른 것으로 위장돼 이야기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조국 전 법무부장관 논란으로 인해 맨살을 드러냈다고 본다. ‘조국사태’는 자녀세대의 교육과 노동시장 진입에서의 불평등 심화를 전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기득권 부모가 자식에게 그들의 지위와 부를 ‘세습’하는 방식이 드러난 것이다. 상위 중산층이 우리사회의 ‘상식’을 대변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특권 계층처럼 됐다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 거다. 그리고 그 최전선에 당시 90년대생이 있었다. 지금도 청년, 즉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직전에 있는 사람들이 그 모순에 가장 집약돼 있는 존재다. 한 축에서는 부모로부터 받은 교육 불평등, 다른 한 축에서는 노동시장 진입 과정의 불평등, 세 번째는 노동시장에 진입한 이후 미래에 대한 불평등 이 세 가지가 딱 연결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20대 중후반의 청년 세대가.”

계층 세습으로 인해 불평등이 심화된다고 보나?

“개인적으로 한국사에서 상위 중산층의 성장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 공영운 씨라고 생각한다. 지난 22대 총선에서 동탄(경기 화성을) 민주당 후보였던 그는 전형적인 586세대다. 83학번으로, 대학졸업정원제로 인해 당시 대학 입학생을 대거 늘렸을 때 입학해서, 졸업할 때 되니 결국 그 제도가 폐지되면서 ‘혜택’을 본 학번이다. 대학생 때 구학련(구국학생연명) 대자보 게재 사건에 연루돼 2년 6개월형을 선고 받았다가 1987년 사면·복권돼 ‘무사히’ 졸업했다. 이후 매일노동신문과 문화일보 기자로 입사하는데, 그가 기자생활을 했던 90년대는 윤전기 등 신문 제작 플랫폼이 발달하던 시기로, 중산층이 성장하면서 신문도 호황기일 때였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에 그는 현대차에 입사하게 되는데, 2000년대는 현대차 등이 글로벌 기업으로 한참 성장할 때였다. 이후 586의 정치적 성장을 같이 하면서 그 흐름에 올라타 지금까지 온 거다. 한국 사회의 발전 과정과 정확히 일치하는, 전형적인 586세대가 누린 기회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한다. 공 의원 본인은 열심히 살았으니 지금 잘된 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세대가 가졌던 기회의 문 자체가 지금 세대와 비교도 안 되게 넓었던 거다. 최근 공 의원은 성수동 재개발 지역의 수십억원에 달하는 주택을 20대 아들에게 증여했다. 자연스럽게 586의 자산 축적과 증여 과정을 그대로 압축한 상위 중산층의 전형적인 성공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국회의원 공천을 받을 만큼 성공하고, 자식 농사도 성공하고, 자산 증식에도 성공하고. 이제 부의 대물림에도 성공할 거고. 문제는 이렇게 자녀에게 중산층을 세습하는 데서 발생한다. 불평등을 고착화시킴으로써 사회이동성의 기회가 줄어들고, 사회통합에 제동이 걸리는 등 여러 사회문제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계층이동성 기회 늘리려면 공교육부터 손봐야”


▎조귀동 경제칼럼니스트가 월간중앙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회이동을 활성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공교육을 손봐야 한다. 교육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인적 자본에 대한 격차가 커지고, 결국 노동 시장에서 뒤처짐으로써 소득 보장이 힘들어진다. 계층 이동성의 기회가 차단되는 것이다. 공교육의 방향성을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 기초학력 보장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이냐, 뒤처지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조해줄 것이냐 등 공교육을 어떻게 수선할 것인지가 굉장히 큰 문제다. 입시 문제에는 민감하게 대응하는데,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교육권이다. 더 많은 사회적 고민이 본격적으로 오갔으면 한다. 그런 다음에 어떻게 재분배할 거냐를 고민해야 된다. 하층에 속한 사람들과의 격차가 줄어야 사회의 통합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분배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할까?

“사회 서비스를 통해 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엔(N)분의 1 방식인 기본소득 정책은 기울어진, 굉장히 중산층적 사고방식의 정책이라 생각한다. 이 방식으로는 취약층에 대한 복지 혜택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는 이 방식이 한국사회의 중산층이 가진 정치적 헤게모니를 그대로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는 다수가 속해 있는 중산층 위주로 갈 수밖에 없겠지만, 그보다 사회통합의 의미를 담은 정책들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 글 박세나 월간중앙 기자 park.sena@joongang.co.kr / 사진 박종근 비주얼실장 park.jongkeun@joongang.co.kr

202408호 (20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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