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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누가 유엔사 창설의 방아쇠를 당겼나 

국제 정세 정통한 미스터 리(李), ‘이승만의 전쟁’을 ‘세계전쟁’으로 끌어올리다 

문관현 연합뉴스 기자
개전 직후인 6월 26일 국회가 채택한 메시지 2통이 유엔사 창설 이끌어내
현재 유엔사에서는 한국 역할 미약… 목소리 반영할 필요성 갈수록 높아져


▎국제정세에 정통한 이승만 대통령은 부족한 병력과 재래식 무기에 의존하는 대신 미국의 지원과 유엔의 개입을 통해 6.25라는 국난 극복을 주도했다. 사진은 6.25 전쟁 당시 국군 초병을 격려하는 이승만 대통령.
영화 [건국전쟁] 흥행몰이를 계기로 이승만 대통령이 재조명되면서 특히 한국전쟁 개전 초기 이승만 정부의 전시외교(戰時外交)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제정세에 정통한 이승만 대통령은 부족한 병력과 재래식 무기에 의존하는 대신 미국의 지원과 유엔의 개입을 통해 국난 극복을 주도했다. 이로 인해 백악관과 유엔, 극동군사령부 등을 무대로 숨 가쁜 외교전쟁을 전개했고, ‘이승만의 전쟁’을 ‘세계전쟁’으로 끌어올렸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유엔군사령부(이하 유엔사)는 전쟁 수행의 주체로서 공산세력의 침략을 물리치고 정전협정 서명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유엔사 창설의 이니셔티브를 누가 제공했는지 여부는 한국전쟁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독립변수로 여겨져 왔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출범한 유엔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제83호와 제84호를 근거로 삼고 있다. 특히 1950년 6월 27일(한국시간 6월 28일) 통과된 제83호 결의안은 본문에서 “국제연합에 대한 대한민국의 호소에 유의해(Having noted the appeal from the Republic of Korea to the United Nations)… 필요한 지원을 대한민국에 제공할 것을 권고한다”는 문구를 포함했다.

유엔의 공식 문건은 바로 대한민국을 가리키고 있으며, 38선이 무너진 지 사흘 만에 유엔 안보리 결의안 통과가 이뤄지기까지 대한민국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유엔 회원국이 아닌 대한민국이 전시상황에서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어떤 내용을 유엔에 호소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채택되기까지 수면 아래에서 움직였던 국제정치의 흐름을 재구성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면 주미대사가 긴급 제안한 메시지를 국회가 채택


이승만 대통령은 6월 25일 오전 10시 30분 경무대에서 신성모 국방부장관으로부터 첫 전황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한국군 단독으로 북한의 남침을 막는 데 한계를 절감하고 곧바로 전시외교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쟁 발발 6시간 만에 총력전(Total War) 양상으로 전개되는 상황을 꿰뚫어보고, 국가의 모든 역량과 각 분야의 전력을 원활하게 운용하는 방안을 찾아낸 것이었다.

전시지도자로서 이승만은 존 무초 주한미국대사를 경무대로 불러들여 면담한 데 이어 오후 1시 장면 주미한국대사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북한 적군이 탱크까지 가지고 대거 침입해 국운이 위급하니 즉시 미 대통령과 유엔에 호소해 구국의 방도를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무초 대사 면담에 이은 두 번째 전시조치였다.

이승만 대통령의 일성에 따라 장면 대사는 곧바로 미국 대통령과 유엔을 대상으로 원조 요청 작업에 착수했고, 유엔 안보리와 백악관을 차례로 방문해 긴급지원을 호소했다. 장면 대사는 유엔 참석을 계기로 한반도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는 ‘메신저’ 역할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장면 대사가 제안한 메시지 2통이 6월 26일 우리 국회에서 채택됐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필자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확인한 결과 ‘대한민국 주미국대사’ 명의로 접수된 ‘유엔 총회 및 미합중국 국회에 보내는 메시지’ 문건(의안번호 020715)이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었다. 해당 서류는 업무상 미국에 체류 중인 장면 대사가 서울 국회를 방문해 접수하는 대신 제3자에 의해 제출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국회는 6월 25일이 일요일이었고 국회의원들이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에 회의를 개최하지 못했다. 6월 26일 오전 11시 신익희 의장의 사회로 제6차 본회의를 개최해 대통령을 비롯한 각 장관의 출석을 요구했지만 신성모 국방부 장관과 백성욱 내무부 장관, 채병덕 육군 총참모장이 출석해 전황을 보고했다.

국회는 신성모·채병덕의 ‘안이한’ 보고와 반대로 ‘비상시국에 관한 긴급결의안’을 채택했다. 6개 항으로 구성된 긴급결의안에 유엔과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가 포함된 것이었다. 메시지는 대한민국 행정부가 미국 대통령과 하원, 대한민국 국회가 유엔한국위원회를 거쳐 유엔 총회에 각각 전달하는 2개 호소문으로 이뤄졌다.

국회를 통과한 메시지는 주한미국대사관을 경유해 같은 날 오후 8시 2분 미국 워싱턴 국무부에 도착했다. 이날 오후 2시 국회를 속개한 지 불과 6시간 만이었다. 미국 국무부는 해당 메시지를 바탕으로 유엔안보리 결의안 초안(S/1508/Rev.1)을 작성해 제출했다. 대한민국 국회를 출발해 미국 국무부를 거쳐 유엔안보리까지 전달된 ‘메시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6월 25일 조조를 기해 북한 공산 군대는 38도선 전면에 걸쳐 무력침략을 개시하였다. 자위를 위해 우리들의 용감하고 애국적인 육·해군은 영웅적인 방위작전을 전개하였다. 반란군의 이 야만적이며 불법적인 행위는 용서할 수 없는 범죄행위이다. 3천만 국민을 대표하는 우리들은 국제연합 총회가 침략에 대한 우리들의 방위전투가 우리들 국민과 정부의 불가피한 반발임을 인식할 것을 희망한다. 우리들은 또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평화 애호 국민들을 위한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귀하의 즉각적이며 효과적인 조치를 호소한다.

(Beginning early morning 25 June North Korean Communist Army began armed aggression throughout 38th parallel area. For self protection our brave and patriotic army and navy opened heroic defense operations. This savage and unlawful act of rebel force is commission of unpardonable sin. We, representing 30 million Koreans, hope UNGA realized our defensive fight against aggression is inevitable reaction of our people and government. We also appeal for your immediate and effective steps to secure peace and security, not only for Korea but also for peace loving people of world.)


대한민국 국회 메시지가 안보리 결의안 마중물 역할


▎현재의 유엔사와 한국 관계는 유엔사 창설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역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남정옥 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는 미국과 유엔에 대해 북한군의 침략을 격퇴할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지원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면서 “이승만이 무초 대사와 맥아더 원수, 그리고 장면 주미한국대사를 통해 한국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는 등 주로 외교에 의한 군사적 조치를 강구했다”고 설명했다.

왼쪽 아래 [표]에서 확인하듯이 일부 내용과 양식이 다르지만 우리 국회가 보낸 메시지 가운데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즉각적이며 효과적인 조치(immediate and effective steps to secure peace and security)를 취해 달라”는 핵심 문구가 미국 국무부 초안과 안보리 결의안에 그대로 반영됐다. 다시 말해 6월 26일 유엔 총회에 전달된 대한민국의 메시지는 북한의 무력공격을 격퇴하고 한국에 대한 군사 원조를 제공해 달라고 권고한 안보리 제83호 결의안의 ‘마중물’로 작용했다.

국제법학자 김명기는 우리 정부의 지원 요청에 근거해 유엔이 군사력을 파견할 조치에 착수했다고 주장했다. 유엔 회원국들이 한국전쟁에 개입할 국제법적 근거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유엔 국제사법재판소장 출신 로절린 히긴스는 “한국 정부의 요청에 의해 유엔군이 한국에 주둔했다”고 대한민국의 개입설을 강조했다.

“대한민국이 유엔사령부 창설의 방아쇠 당긴 셈”

결론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이 적극 나서 유엔과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했고, 유엔사 창설의 근거인 안보리 결의안에 우리 정부의 활동 상황이 구체적으로 반영됐다. 대한민국의 메시지는 결정적 시기에 미국과 유엔의 지지와 분투를 이끌어내 유엔사 창설에 분수령으로 작용한 셈이었다. 한국 정부의 위기탈출 노력은 미국의 조율 과정을 거쳐 안보리 결의안 통과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결국 대한민국이 유엔사 창설의 방아쇠를 당겼던 셈이다.

한국은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지원 요청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엔사 창설에 앞서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유엔군사령관에게 발 빠르게 이양했다. 전시지도자로서 무력 발동에 따른 통수권을 행사하는 차원에서 국가 총역량을 전승 획득에 집중시키도록 조직화하는 역량을 발휘한 것이었다.

유엔사는 이후 70년 동안 한반도에서의 정전체제를 관리감독하고 유사시 전력제공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다시 말해 유엔사는 한반도에서 전쟁 재발을 막고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과정에서 핵심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유엔사와 한국의 관계는 유엔사 창설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역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유일한 한국군 장성(육군 소장)이 연합사 부참모장 겸 군정위 수석대표를 맡고 있지만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고 있다. 한국군 4성 장군이 연합사 부사령관 겸 지구사령관을 맡고 있지만 역시 유엔사 지휘부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유엔사 지휘부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판문점 출입절차와 대성동 선전마을 대민지원 업무,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 등을 감안할 때 유엔사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할 필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군 장성이 유엔사 지휘부와 참모부에 참여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 관여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미군 장성이 아닌 제3국 장성에게 개방된 유엔사 부사령관 자리에 한국군 장성 임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향후 한반도 안보의 양대 축이 미래연합군사령부와 재활성화된 유엔사를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한국군 출신 미래연합사령관과 미군 출신 유엔군사령관 사이 협조 체계는 절박한 상황이다. 대한민국이 한국전쟁 당시 지원을 받았던(Supported) 최빈국에서 눈부신 경제성장을 거듭한 결과 지원을 주는(Supporting) 선진국으로 성장한 국제무대 위상을 감안할 때 유엔사와의 법적·제도적 관계 정립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 문관현 연합뉴스 기자, 북한학 박사 khmoon@yna.co.kr

202404호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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