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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단장이 말하는 프로스포츠의 세계(5)] 프로야구 1000만 관중 시대의 엔진 ‘기롯삼한’ 

“KIA·롯데·삼성·한화 넷 중 두 팀만 잘해도 흥행 대박” 

지역연고제에 기반한 라이벌 서사가 프로야구 인기 견인, 인위적으로 만들긴 어려워
전국구 인기팀 ‘기롯삼한’은 투자 대비 성적 부진… 야구도 유망주 수도권 쏠림 현상


▎기아 챔피언스필드는 지난 6월 6연속 홈경기 매진을 기록했다. KIA가 1위를 질주하자 호남 팬들은 전반기에만 15번 이상 야구장을 가득 채웠다. / 사진:연합뉴스
2024 년은 KBO리그 사상 최초로 전반기에만 6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야구단 프런트로 오래 일했던 필자가 보기에도 ‘역대 최고의 인기’라고 단언할 수 있다. 주말이면 야구장마다 관중으로 가득 차고 시청률도 고공행진 중이다. 프로야구 인기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구단 라이벌과 전국구 구단들의 선전이 지금의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1982년 프로야구 창설 이래 대표적인 구단 라이벌은 잠실구장을 같이 쓰는 한 지붕 두 가족인 LG와 두산이다. OB 베어스(두산그룹이 자회사인 OB맥주를 매각하면서 1999년 두산 베어스로 구단 명칭 변경)가 1982년부터 3년간 한시적으로 사용한 대전구장을 떠나 1985년부터 잠실구장을 MBC 청룡(LG 트윈스의 전신)과 같이 사용하면서 라이벌의 역사는 시작됐다. 올해가 2024년이니까 벌써 40년째다.

LG는 3루 더그아웃 뒤편에 선수단 라커룸과 구단 사무실이 있고 두산은 1루 더그아웃 뒤편에 선수단 라커룸과 구단 사무실이 있다. 두 팀 간 경기가 열리면 홈팀, 원정팀 구분 없이 LG는 3루 더그아웃, 두산은 1루 더그아웃을 쓰는 이유다. 두 팀이 같이 야구를 잘하는 경우보다는 한 팀이 잘하면 다른 한 팀은 부진한 시즌이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두 팀 중 한 팀이 가을야구(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 다른 한 팀 직원들은 잠실구장에서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일찍 퇴근하는 ‘전통’이 있다. 그리고 LG와 두산의 어린이날 더비는 매년 뜨겁다. 승패 결과에 따라 잠실구장을 찾는 엘린이(LG 어린이팬)와 두린이(두산 어린이팬)의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다.

1980~1990년대 대구·경북, 부산·경남을 연고로 하는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와 광주·전남을 연고로 하는 해태 타이거즈(KIA 타이거즈의 전신) 간의 영·호남 라이벌도 빼놓을 수 없다. 영·호남 라이벌전이 열리는 날이면 해당 지역 경찰이 긴장할 정도로 야구장은 일종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관중석에서 양 팀 팬들 간 싸움도 비일비재했고, 경기에서 진 팬들이 선수단 버스를 가로막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역대 KBO리그 역사를 통틀어 영·호남 라이벌 간 한국시리즈는 1986년, 1987년, 1993년 삼성 라이온즈와 해태 타이거즈의 세 차례 맞대결뿐이다. 세 번 모두 해태가 삼성을 이겼다. 롯데와 해태의 한국시리즈는 없었다.

잠실구장 절반은 원정팀 팬들이 채운다


해외축구의 더비 매치처럼 라이벌 구도가 성립되면, 흥행으로 직결된다. 어느 경기보다 경기장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티켓이 없어서 못 파는 현상을 직접 체감하게 된다. 마케팅 차원에서 흥행을 목적으로 구단에서 라이벌 매치를 기획한 사례도 있다. SK 와이번스가 모기업(통신사, SK텔레콤·KT) 경쟁과 지역(인천·수원) 구도에 착안해 KT 위즈와의 라이벌 매치(W-매치, 2016년)를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SK는 인천 연고팀으로서 부산 연고팀인 롯데 자이언츠와의 항구시리즈(2017년)를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둘 다 팬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인위적인 라이벌 매치는 팬들에게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유통기업인 신세계그룹이 SK 와이번스를 인수해 SSG 랜더스를 창단하면서 역시 유통이 모기업인 롯데 자이언츠와의 라이벌 매치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정용진 SSG 랜더스 구단주(신세계그룹 회장)가 온라인을 통해 신동빈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롯데그룹 회장)에게 도발하면서 언론의 관심을 끌었고 선수단도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팬들한테까지는 라이벌 관계가 전달되지 않아 아직은 유통 라이벌 매치가 관중 흥행 효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이러한 라이벌 구도도 흥행의 ‘치트 키’ 역할을 하고 있지만, 지방을 연고로 하는 전국구 구단들의 흥행몰이는 이보다 더욱 근본적이고 거세다. 지방 연고의 전국구 구단은 광주, 부산, 대구, 대전 연고팀인 KIA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그리고 한화 이글스다. 인터넷 야구 커뮤니티에선 이들 구단의 앞 글자를 따서 ‘기롯삼한’으로 부른다. 지금은 KBO리그 인기 팀의 대명사가 ‘엘롯기(LG 트윈스·롯데 자이언츠·KIA 타이거즈의 앞 글자를 딴 단어)’가 널리 통용되지만, 원래 ‘엘롯기’는 이 세 팀이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돌아가면서 8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는 등 암흑기를 같이 하면서 타 팀 팬들 사이에서 조롱의 의미로 쓰인 말이다.

프로야구 성적은 재력 순이 아니다?


▎2024년 6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를 방문했다. 야구의 파급력이 커질수록 그룹 회장의 야구장 직관이 늘어나는 추세다. / 사진:연합뉴스
반면 ‘기롯삼한’은 전라·경상·충청을 대표하는 프로야구의 전통적인 맹주를 지칭한다. KIA(전신 해태), 롯데, 삼성은 1982년 프로야구 원년 6개 구단의 일원이다. 한화도 3년 뒤인 1985년 창단(전신 빙그레)했으니 KBO리그의 산증인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50%가 넘는 수도권에는 본인 또는 부모 세대가 전라·경상·충청에서 이주해 온 비중이 크다. 이로 인해 수도권 경기에는 ‘기롯삼한’의 원정 팬들이 홈팀 팬들과 대등하게 야구장 좌석을 차지해 야구장 분위기를 뜨겁게 달군다. KIA와 삼성은 각각 11회(전신해태 시절 포함), 8회 우승을 차지한 전통의 명가이지만, 롯데와 한화는 각각 2회, 1회 우승에 그친 만년 하위팀이다. 그래도 팬들은 욕은 할지언정, 흔들림 없는 응원을 보내고 있다.

‘기롯삼한’은 2010년부터 매년 프로야구 개막에 앞서 한국갤럽이 실시하는 프로야구 구단 선호도 조사에서 상위권을 석권해왔다. 간혹 서울 구단인 LG가 4위 안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기롯삼한’이 5위 밖으로 떨어지는 경우는 없다. 2024년의 경우 롯데, KIA, 한화, 삼성이 1, 2, 3, 5위(4위 LG)를 차지했고, 2023년은 KIA, 삼성, 롯데, 한화 순서로 1~4위에 올랐다.

‘기롯삼한’의 위력은 시청률에서도 나타난다. ‘기롯삼한’ 가운데 당해년도에 성적이 좋은 팀은 시청률에서도 1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2024시즌의 경우 최고 인기구단인 KIA가 정규시즌에서 줄곧 1위를 지키고 있다 보니 당연히 시청률 1위를 독식하고 있다. 2~4위 역시 한화, 롯데, 삼성이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기롯삼한’은 관중 수, 여론조사, 시청률 등 각종 흥행과 관심 지표에서 상위권을 휩쓸고 있지만 정작 팀 성적은 그러하지 못하다. 현재의 10개 구단 체제가 시작된 2015년부터 2023년까지 팀 순위는 수도권 구단이 강세였고, 비수도권 구단인 ‘기롯삼한’은 주로 하위권을 전전했다.

올 시즌을 포함해서 10년 동안 ‘기롯삼한’의 평균 순위는 6.675위다. 평균적으로 5위 밖이라는 의미다. 4개 팀의 평균 순위가 5위 안으로 들어간 시즌은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은 2024년 올해(평균 순위 4.5위)가 유일하다. 가을야구에 진출할 수 있는 5위 내에 2팀이 들어간 시즌은 2017년과 2024년(현재 순위가 유지될 경우) 두 차례뿐이다. 반면 4팀 모두 가을야구에 실패한 시즌은 2019년, 2020년, 2023년 세 차례나 된다.

반면 수도권 구단은 KT가 창단 3년 차까지 최하위를 기록해서 평균을 낮췄지만, 2021~2023년만 놓고 보면 2021년부터 차례대로 3.6위, 3.8위, 4.2위로 초강세 모드였다. 심지어 수도권 구단 중 네 팀이나 가을야구에 진출한 시즌은 2019~2023년, 5년 연속이다. 올해 그나마 수도권 구단 강세 모드가 다소 약화되고 ‘기롯삼한’이 반등하고 있는 셈이다. 바로 이 점이 2024년 프로야구 흥행의 동력 중 하나다.

그렇다면 ‘기롯삼한’은 왜 인기는 많은데 성적이 저조할까? 모기업들이 재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재계 서열 순위가 삼성 1위, KIA(현대자동차그룹) 3위, 롯데 6위, 한화 7위다. 수도권 구단 모기업의 재계 서열 순위(모기업이 없는 키움은 제외)를 보면 LG 4위, SSG(신세계그룹) 11위, KT 12위, 두산 17위인 것과 비교하면 훨씬 높다. 성적은 재력 순이 아닌 것이다.

‘기롯삼한’의 성적 부진에는 한국 사회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한몫한다. 신인 드래프트의 근간인 고교야구의 우수선수들이 서울로 몰린 지 오래고, 자유롭게 구단을 선택할 수 있는 FA(프리에이전트) 선수들과 외국인 선수들도 생활환경이 나은 수도권을 선호한다. 단적으로 지방 구단이 수도권 구단과 FA 경쟁을 하게 되면 계약 규모(계약금+연봉+옵션) 총액의 앞자리를 하나 더 올려야 할 정도다. 프런트 직원들도 지방 구단보다는 수도권 구단을 선택한다. 야구가 좋아서 지방 구단에 입사한 직원들이 오래 다니지 못하고 퇴사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반면 팀별 이동 거리는 ‘기롯삼한’이 최장거리 순서로 앞에 있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 144경기 동안 선수단의 평균 이동 거리를 산출해 보면 최장거리 순서로 1위 롯데(9894㎞), 2위 KIA(9497㎞), 4위 삼성(9258㎞), 6위 한화(8437㎞)다. 팀별 이동거리는 5개 팀이 몰려 있는 수도권 팀이 적을 수밖에 없다. 필자 역시 프로야구 프런트로 26년간 수도권 구단인 LG 트윈스(서울), SK 와이번스, SSG 랜더스(이상 인천)에서만 근무했기 때문에 지방 구단의 고충을 직접 경험해 보지는 못했다. 다만 지방 원정경기 출장의 힘든 여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어려움을 느껴보는 정도였다.

야구단은 지역경제 활성화 마중물

‘기롯삼한’은 지역경제의 활성화 측면에서도 기여하는 바가 크다. 수도권에 인구와 경제력이 집중되다 보니 지방경제가 장기적인 정체 국면인 가운데 ‘기롯삼한’의 홈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지역이 들썩거린다. 지역상권은 물론, 야구장이 지역 시민들 특히 젊은 야구팬들의 핫 플레이스로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2014년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 2016년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가 차례로 개장했다. 2025년 대전 신구장도 오픈을 앞두고 있다. 2029년 부산의 신구장만 계획대로 완공되면 ‘기롯삼한’의 홈구장은 지역의 랜드마크로 확고히 자리매김할 것이다.

2024년 프로야구 1000만 관중 달성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기롯삼한’은 지난 43년 동안 KBO리그 흥행에 기여했지만, 앞으로도 그 역할은 변함없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할만하다.

※ 류선규 - SK 와이번스의 마지막 단장이자 SSG 랜더스의 초대 단장을 역임했다. 26년간 프로야구단(LG 트윈스·SK 와이번스·SSG 랜더스) 프런트로 근무하며 홍보·마케팅·운영·육성·전략기획 등 거의 모든 부서를 경험했다. 단장으로서 우승 1회(2022년 SSG 와이어 투 와이어 통합 우승)를 포함해 총 다섯 번의 우승을 경험했다.

202408호 (20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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