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성화가 꺼진 아쉬움이 가시기도 전인 1988년 10월. 서울 한복판에서 난데 없는 4인조 무장 탈주범의 인질극이 일어나 10여 일간 장안 인심이 자못 흉흉했다. TV로 중계된 당시의 사건 현장을 지켜본 사람은 한 범인이 내뱉은 유명한 말을 기억할 것이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 교도소 이감 중 집단 탈주극을 이끈 절도범 지강헌이 자살 직전에 남긴 이 말은 그 후 사회 부조리를 개탄하는 시대어로 남게 됐다.
시를 쓰는 ‘낭만파 범죄자’였던 지강헌은 인질극을 벌이면서 이렇게 푸념했다. “550만원을 훔친 나는 징역 17년이고 70억원을 해먹은 전경환(전두환 전 대통령 동생)은 징역 3년이 웬 말이냐”고. 자신의 주장이 온 천하에 알려지도록 인질극의 TV 생중계를 요구한 그는 자신이 즐기는 팝송 ‘홀리데이’를 확성기로 틀어달라고 경찰에 주문했다. 그래서 살벌한 인질극 대치 현장에 경쾌한 팝송이 울려 퍼지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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