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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세종시 … 충청 민심 ‘부글’ 

‘유령 도시’로 전락하나, ‘국가 신뢰’로 정상화 길 가나? 

이재광 경제전문기자·황필선 지역연구센터 연구원·pshwang@joongang.co.kr

지난 3월 26일 대전역 광장에서 열린 ‘행정도시 정상추진 및 지방 살리기 범국민 궐기대회’.

4월의 결투. 4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세종시에 대한 지역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수도권과 충청권으로 쪼개진 민심이 서로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 중이다.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풍경이 이미 살벌하다. 야당인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이 하나가 되어 여당인 한나라당과 정면대결을 벌일 태세다.

수도권과 충청권 지자체 단체장들의 설전 역시 일촉즉발의 분위기다. 지난 3월 19일 김문수 경기지사가 한 포럼에서 “행정도시 이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충청권의 강력한 항의가 잇따랐다.

23일 김남욱 대전광역시의회, 강태봉 충청남도의회, 이대원 충청북도의회 의장이 “국론분열을 일삼는 김 지사의 억지주장은 국민적 심판에 직면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 데 이어, 25일에는 박성효 대전시장, 정우택 충북지사, 이완구 충남지사가 간담회를 열고 “김문수 지사의 망언은 충청인과 국민적 합의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광역특별자치시인가, 기초특례시인가?

충청권의 민심도 심상치 않다. 지난 3월 26일 충청권 소재 10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행정도시 정상 추진을 위한 범충청권협의회’ 회원과 시민 1500여 명이 대전역 광장에 모여 “정부는 행정도시를 계획대로 추진하라”고 촉구하며 “김문수 경기지사 등 수도권의 기득권 세력들이 세종시 무산을 위해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는데도 정부는 어물쩍 넘어가려 하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충청 시민과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정부 비판의 수위를 높이는 것은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세종시특별법 통과가 무산된 탓이다. 이 임시국회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부분은 세종시의 법적 지위 문제. 세종시를 광역특별자치시로 할 것인가, 기초특례시로 할 것인가에 대해 합의를 보지 못한 것이다.

이 ‘법적 지위’ 문제는 향후 세종시 발전에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절대적 의미를 갖는다. ‘특별시’는 서울시처럼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광역자치단체로 세금을 직접 거둘 권한이 부여되며, 교육청이나 소방본부 등 주요 정부기관들이 들어설 수 있다. 반면 ‘특례시’로 규정된다면 시는 충청남도나 충청북도의 산하 도시가 되어 세금을 직접 거둬들일 수 있는 ‘특권’이 없어지는 것은 물론 주요 정부기관도 들어설 수 없다.

한마디로 세종시의 기능과 규모가 엄청난 차이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여야 의견에는 일리가 있다. 충청권을 대변하는 자유선진당이나 세종도시 건설을 적극 추진했던 민주당은 ‘행정복합도시’라는 이름과 계획에 걸맞게 특별시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현실 논리’를 펼치고 있다.

2010년 예상인구가 9만 명 정도에 불과한 소도시를 특별시로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자칫 건물만 들어서고 사람은 없는 유령도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파격적으로 서울대를 옮기면 어떤가?

하지만 야당과 충청권 자치단체, 시민들이 4월 임시국회를 ‘결전의 자리’로 인식하는 데에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행정복합도시 건설 계획에 따라 주민은 땅을 내주고 이주했고, 공사는 계획대로 진행 중이며, 주민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기다리고 있다.

주민의 ‘삶’이 관계돼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도시의 법적 지위가 오락가락하고 심지어 근본적인 계획 변경까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행정복합도시 시민이 될 것이라는 충청 주민의 ‘기대’는 급속도로 ‘우려’로 바뀌어 가고 정치권과 지자체는 자칫 민심을 잃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몇 가지 점에서 한목소리를 낸다. 현재 세종시 문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점, 따라서 뭔가 빨리 합일점을 찾아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 합일점은 진정으로 국가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 행정복합도시가 원안대로 가지 못할 경우 충청 주민을 위해 뭔가 대안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의견은 제각각이다. “세종시의 갈 길을 정하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지역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고 국가경쟁력을 감안해야 하며, 충청권 지역발전의 엔진이 돼야 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지역발전과 관련된 정부정책의 틀도 봐야 합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기능적 재조합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김현호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지역균형개발지원센터 소장)

“생각의 지평을 더 넓히는 것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꼭 행정부만 옮겨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파격적으로 서울대를 옮기면 어떻겠습니까? 지역주민도 수용할 수 있고 국가도 발전시킬 수 있는, 새롭고 과감한 정책 아이디어를 낼 시점이라고 봅니다.”(김종호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더욱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경우도 있다. “수도권 이전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일 때는 옳고 그름에 대한 자신이 없어 말을 아꼈다”는 강형기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하지만 지금 시점은 그런 문제를 따질 때가 아니다”고 말한다. “국가의 근간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종시와 관련해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각각 두 번씩 치렀습니다. 그때마다 충청 유권자에게 행정복합도시를 약속했지요. 충청 주민은 그 말을 믿고, 희망을 갖고 각자의 삶을 계획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희망과 기대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만일 계획이 변경된다고 했을 때 정치와 정부는 근본적인 불신을 받습니다.

신뢰가 무너지면 국가의 근간이 무너집니다. 국민이 정부의 정치를 믿지 않는데 경쟁력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강형기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 강 교수는 세종시 계획을 재고하려는 여당과 정부, 전문가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을 꼬집고 있다. 세종시 계획은 가뜩이나 믿음을 주지 못하는 정치권과 정부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4월의 결투’가 지극히 위험해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인 것이다.

‘행복도시’는 행복했다?
세종시 역사 6년

세종시의 시작은 2003년이다. 4월 신행정도시건설추진기획단이 출범해 12월 신행정수도특별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듬해 8월 4개 지역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충남 연기·공주 일원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 후보지가 확정된다.

2004년 10월 신행정수도특별법이 위헌 선고를 받아 ‘수도’라는 말을 뺀 현재의 ‘행정중심복합도시’, 일명 ‘행복도시’라는 명칭이 만들어진다. 2005년 3월 국회 본회의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을 의결해 법안을 공포하면서 사업이 급물살을 타게 된다.

그해 12월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예정지역 토지보상이 시작된다. 2006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출범해 7월 ‘행복도시건설기본계획’이 확정된다. 또한 그해 12월 국민공모를 통해 도시명칭이 ‘세종시’로 확정된다. 2007년 7월 노무현 대통령 내외를 포함, 21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공식을 갖는다.

2007년 10월 정부청사 1단계 1구역 설계를 착수해 건축 연면적 3만8385㎡의 지상 4층, 지하 1층, 옥탑 1층의 정부청사 건물을 입찰 진행 중에 있다.


981호 (2009.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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