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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값 아닌 능력 위주 인력풀 만들자 

“사외이사 기준 긴요 … 철저한 감시로 기업 가치 올린 사외이사 노동시장 만들어야”
사외이사 반 쪽짜리 성적표 -‘보은인사’ ‘방패막이’ 논란, 해법은? 

사외인사 선임철이 오면 기다렸다는 듯 나오는 말이 있다. ‘누구는 정권과 어떤 줄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사외이사제도가 변질됐다는 논란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사외이사제도가 집권자에겐 보은인사로, 기업엔 방패막이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일정한 기준도 없이, 집권자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는 이유만으로 독립성 훼손 논란을 따지는 게 과연 타당할까?

참여정부 시절의 사시 17기. 살아 있는 권력의 실세 중 실세로 불렸다. 이들은 사시 17회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7기로 입소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기생이다. 사시 17기의 당시 파워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법조계 요직을 두루 꿰찬 것은 기본. 재계에도 바람을 일으켰다.

사시 17기 가운데 강보현(현대상선), 이기배(대신증권·LG석유화학), 이찬효(부산도시가스), 김병재(중앙에너비스), 서정석(대구은행), 신건수(기아자동차), 김수철(경동보일러) 변호사 등 7명이 대기업 사외이사로 활동했던 것이다. 참여정부가 막을 내린 지 2년이 지난 지금, 사시 17기 사외이사 7명 중 3명이 그만뒀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과연 정권이 교체돼서 사외이사직을 버린 것일까? 바로 이 질문이 사외이사 방패막이 논란의 핵심이다. 강보현 변호사의 사례를 보자. 서울고등법원(1988년) 판사를 지낸 뒤 법복을 벗은 그는 1999년 SK케미칼의 사외이사에 선임됐다. 당시는 노 전 대통령이 야인(지역구 종로 포기)으로 돌아갔던 시절이다.

노 전 대통령의 권력과 그가 사외이사에 오른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는 얘기다. 그런 그가 현대상선 사외이사에 선임된 것은 2005년의 일.

그렇다면 그는 현대상선의 방패막이였을까? 과연 현대상선이 그를 통해 노 전 대통령과 채널을 유지하려 했던 것일까? 이화여대 서윤석 교수는 “살아 있는 권력과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다고 무조건 방패막이, 보은인사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며 “사례별로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외이사 요건 명확히 해야

TIP - 사외이사 요건
■ 독립성
- 개인적 이해관계로부터 독립
■ 전문성
- 경영 전반에 대한 전문성
- 관련 산업에 대한 폭넓은 지식
■ 책임성
- 이사로서 책임·권한·의무 준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쳇바퀴 돌 듯 사외이사 독립성 훼손 논란이 벌어진다. 사외이사제도가 집권자에겐 보은인사로, 기업엔 방패막이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DJ정부, 참여정부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논란의 초점은 늘 똑같다. 집권자가 보은 차원에서 자신의 측근을 사외이사로 보내고, 이렇게 선임된 사외이사는 기업과 집권자의 다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외이사 후보가 집권자를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가 도마에 오르게 마련이다. 예컨대 지지연설을 했다는 둥, 공약을 만들어줬다는 둥 말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경제개혁연대는 1월 1일~3월 14일까지 신임 사외이사(후보)를 선임한 89개사에 대해 현 정권과의 관련성 여부를 ▶현 정권 출범 이후 행정부 관련 인사 ▶대통령 선거 지원 인사 ▶ 대선 이후 취임과정 지원 인사 ▶이명박 대통령의 친인척 인사 등으로 나눠 검토했다.

그러면서 총 89개 상장회사에서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공시된 147명 가운데 10%가량인 15명이 현 정권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발표했다. 의미 있는 분석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는 비판도 있다. 신임 사외이사 또는 후보가 어떤 식견을 가지고 있는지 종합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채 경력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예를 들어보자. 최근 모 기업 사외이사에 임명된 A씨는 두말할 나위 없는 집권자 인맥이다. 그렇다고 그가 보은 차원에서 사외이사에 임명됐을까?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A씨를 잘 아는 사람은 그의 식견뿐 아니라 굳은 소신도 높게 평가한다.”

전문가들은 “사외이사의 요건 규정이 미흡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빈번하게 벌어진다”고 지적한다. 서강대 박영석 교수는 “일부 기업에서만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사외이사추천위원회 제도를 확대해 독립성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사외이사 선임에 필요한 법적 요건 외 개별기업 특성을 반영해 자체적으로 구체적 결격 요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 출신들의 보은인사 논란이 거세다. 지난해 2월 대통령직 인수위 회의 모습.

사외이사 일반적 선임 기준인 독립성·전문성·책임성을 폭넓게 활용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독립성은 경영진과 이해관계가 없는 것을 말한다. 전문성은 관련 산업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다.

가령 금융분야 경력이 없는 인사가 금융회사 사외이사로 선임되는 것은 전문성 위배다. 금융분야 경력이 일천한 이계경 전 한나라당 의원이 하나대투 사외이사에 임명된 직후 보은인사, 방패막이 논란이 제기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선 당시 MB 여성 공약을 담당한 이 전 의원은 18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도덕성 훼손된 사람 사외이사 자격 뺏어야

책임성은 이사로서 책임·권한·의무를 준수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기준인데, 이는 사외이사의 자격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라는 평가다. 사외이사의 역할은 경영진을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권익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약자 편에 선 감시자다. 이에 따라 도덕성을 상실한 사람은 제아무리 탁월한 식견을 가졌어도 책임성 기준을 통과할 수 없다.

도덕성 논란에도 사외이사에 선임됐다면 그것이야말로 보은인사 또는 방패막이 인사다. 이번 사외이사 인사에도 이런 사례가 있다. KT 이춘호 사외이사(인하대 교수)는 여성부 장관 후보로 내정됐다가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낙마한 전력의 소유자다.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 기후변화·에너지변화 TF팀장으로 활동했던 KT 허증수 사외이사(경북대 교수)도 인수위 활동 당시 인천시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이 드러나 사퇴한 바 있다. 사외이사의 역할은 경영진을 견제해 투명경영을 꾀하고, 방만경영을 막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은 이들의 주된 임무다. “이전의 경력보다 기업 가치를 어떻게, 얼마나 상승시켰느냐가 사외이사의 자격 기준이 돼야 한다”는 주장도 그래서 나온다. 박영석 교수는 “개별 사외이사의 활동과 결과물을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공시하는 게 필요하다”며 “이를 바탕으로 사외이사직은 명예가 아니라 명성을 쌓는 것이라는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그러면 보은·방패막이가 아닌 능력 있는 사외이사를 채용하는 문화가 정착될 것”이라며 사외이사 노동시장이 하루빨리 형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때만 되면 우리는 내 편, 네 편을 가른다. 각종 선거에서 사람의 능력보다는 당을 보기 일쑤다. 이런 성향은 사외이사 논란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누구를 도왔으면 사외이사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은 주관적이다. 이보단 누구를 도왔어도 사외이사로서 합당한 자격을 가졌는지를 판단하는 게 객관적이다. 사외이사의 자격을 가늠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합리적 기준이 필요한 이유다.

“이사회 10번 열리면 5번도 참석 안 해”
외국인 사외이사 성향은 무엇?

한국상장사협의회가 4월 7일 발표한 ‘2009년도 상장법인 사외이사 선임현황’에 따르면 외국인 사외이사는 75명으로 전체 2.4%를 차지한다. 현재 외국인 사외이사를 둔 회사는 에쓰오일, LG디스플레이, 현대상선, 삼성전자, 금호타이어, KB금융지주, 포스코, 두산 등 28곳이다.

외국인 사외이사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회사일수록 해외 투자자들의 요청에 따라 또는 요청이 있기 전에 미리 외국인 사외이사를 선임하기 때문이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융기관과 금융공기업의 경우 외국계 금융기관 진출이나 외국인 지분 확대 등의 영향으로 외국인 사외이사가 16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외국인 투자기업의 경우 외국인이 사외이사로 선임되면, 부적절한 평가를 방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외국인은 국내의 학연이나 지연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독립성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정작 외국인 사외이사의 이사회 참석률은 낮은 편이다. 기업지배구조센터에서 발표한 2008년 사외이사 참석률에 따르면 2007년 외국인 사외이사 참석률은 49.3%에 그쳤다.

LG디스플레이나 에쓰오일처럼 외국인 사외이사가 100% 이사회에 참석한 기업은 7곳인 반면 외국인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기업은 9곳에 달했다. 이 조사를 한 기업지배구조센터 윤진수 수석연구원은 외국인 사외이사의 참석률이 저조한 이유에 대해 “국내에 거주하지 않는 외국인에 경우, 현실적으로 이사회를 위해 입국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외국인 사외이사 도입에 대한 필요성이 예전보다는 줄었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독립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외국인 사외이사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외국인 사외이사 참석률에 대한 관심은 3년 전 적대적 M&A 논란 속에 선임된 KT&G의 외국인 사외이사 워렌 G 리크텐스타인 스틸파트너스 대표가 2007년 이사회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으면서 높아졌다.

리크텐스타인은 2006년 ‘기업사냥꾼’ 칼아이칸과 연합해 KT&G에 대한 적대적 M&A 논란을 불러일으킨 뒤, 그해 정기주총에서 연합군 대표 격으로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돼 치열한 표 대결 끝에 선임됐다.

그러나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그는 KT&G가 2007년 총 15회의 이사회를 개최하는 동안 모든 회의에 빠졌다. 2006년 11번의 이사회 중 4번 참석해 3개 안건에 반대의견을 표명하는 등 비교적 왕성한 활동을 펼친 것과 대조적이다.

반면 오랜 기간 국내 기업에 기여하는 외국인 사외이사도 있다. 삼성전자의 유일한 외국인 사외이사인 요란 맘 전 GE 아시아퍼시픽 사장이자 보트하우스사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세 번째 연임 중이다.

요란 맘 이사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활동하며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2001년부터 삼성전자가 세계 시장 전략을 수립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증권선물거래소 공익대표 사외이사로 있는 성균관대 SKK GSB(경영대학원) 로버트 클렘코스키 원장은 “증권선물거래소의 첫 외국인 사회이사로 외국인 투자자의 입장이나 국제 시장에 대한 이해를 회사에 전달하는 데 힘쓰고 있다”며 “회의시간에 통역기를 써야만 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의사소통도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성은 기자·lsecono@joongang.co.kr
경상계열 석사학위 가진 50대 ‘평균치 사외이사’
사외이사 2922명 정밀 분석

국내 상장사는 사외이사로 기업인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인은 전체 상장사 사외이사의 35%인 1097명이었다. 이어 680명(21.8%)이 포진한 교수, 336명(10.8%)인 변호사가 뒤를 이었다.

한국상장사협의회는 올 4월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에 상장된 법인 1754곳 가운데 1578곳의 사외이사 선임현황을 분석한 ‘상장법인 사외이사 선임현황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외이사를 선임한 전체 1578개 상장사에서 현재 활동 중인 인원은 2922명(중복 선임 포함 시 3125명)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년보다 123명 늘어난 수치지만 기업 수는 69곳 증가해 회사당 평균 사외이사 수는 1.98명으로 2005년 이후 처음으로 소폭 감소했다. 2개사에서 겸직을 하고 있는 사람은 20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 줄었다. 사외이사를 가장 많이 선임한 부문은 금융업으로 회사당 평균 4.08명을 기록했다.

반대로 사외이사가 가장 적은 부문은 코스닥의 벤처기업으로 회사당 평균 1.38명이었다. 코스피와 코스닥 상장사의 평균 사외이사 수는 각각 2.38명과 1.65명이었다. 신한금융지주는 사외이사 12명을 선임해 2008년에 이어 2년 연속 사외이사를 가장 많이 보유한 회사로 꼽혔다.

이어 하나금융지주가 10명으로 2위, 강원랜드·KT&G·포스코·KB금융지주가 각각 9명이었다. 코스닥 최다 사외이사 보유 회사는 에쎌텍·셀트리온 등 9곳으로 각각 5명을 선임했다. 전형적인 사외이사는 경상계열 석사 학위를 가진 50대 기업인이었다. 코스닥시장은 학사 출신이 비교적 많았다.

연령대로 보면 코스피가 60대의 경험을 중시하는 반면 코스닥은 40대의 패기를 중요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고령 사외이사는 신풍제지의 조진규 이사로 87세, 최연소는 28세인 고제의 강상구 이사였다.

상장사들이 선호하는 사외이사의 직업은 기업인·교수·변호사 외에도 공무원(200명), 회계·세무사(198명), 협회·단체·기관 관계자(148명)로 나타났다. 연구원과 언론인도 각각 77명, 53명을 기록했다.

사회 유명인사들이 사외이사를 지내는 것도 여전했다. 특히 전체 수에서는 기업인이 가장 많았지만 장관들의 사외이사 진출이 이보다 크게 높았다. 2009년 신규 선임된 사외이사 가운데 장관 출신은 17명으로 기업 CEO급 이상 7명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숫자로 본 사외이사들
■기업인 1097명으로 가장 많아
■교수 680명, 변호사 336명 순 … 공무원 200명
■1개 회사당 평균 사외이사 수 1.98명
■금융업계 1개 회사당 평균 사외이사 수 4.08명
■유가증권 사외이사 수 2.38명
■코스닥 사외이사 수 1.65명

한정연 기자·jayhan@joongang.co.kr


991호 (2009.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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