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Life

죽음을 짊어진 삶의 여정 

산드로 키아 ‘물을 지고 가는 사람’
1970년대 이탈리아 ‘트랜스 아방가르드’ 경향 보여줘 

전준엽 화가·전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지난 5월 28일 연세대 윤주용홀에서는 전위의 개념을 새롭게 생각하게 하는 의미 있는 음악회가 열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을 주축으로 결성된 젊은 음악가 그룹 ‘숨’의 작곡발표회는 전위 음악에서 소통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뤘다.

이들이 소통의 동력으로 선택한 것은 놀랍게도 ‘서정’이었다. 전위를 뛰어넘는 발걸음을 서정성에서 찾아보겠다는 발상이 신선했다. 그래서 이들이 모임의 성격으로 내세운 ‘서정적 전위’가 매력적으로 보였다.

예술에서의 전위(아방가르드)는 서정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전위에서 연상되는 것은 새로움을 위한 기상천외한 형식 실험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술계가 서양 전위 예술을 무조건 받아들인 데서 생긴 오해다.

우리나라에서 전위라는 말이 유행한 것은 1960년대 말부터다. 서구에서 전위예술 열풍이 불어 닥친 시기와 맞물린다. 특히 미술에서 전위의 위력은 막강했다. 새로움이 최고의 가치로 대접받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충격을 주기 위한 방편으로 예술가들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표현 수단을 동원했다.

이것이 ‘앞서 나간다’는 전위의 개념으로 굳어진 것이다. 앞서 나가는 예술가의 생각을 일반인은 따라잡을 수 없었다. 보조를 맞출 수 있는 것은 전위를 만들어 나가는 당사자뿐이었다. 예술이 소통 불능 상태에 이른 것이다.

전위의 이런 모양새에 브레이크를 거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은 1970년대 말이다. 소통되지 않는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책으로 나온 것은 20세기 들어 사라진 예술 속 이야기를 되살리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감상할 수 있는 정서를 표현의 도구로 쓰자는 운동이었다.

그런 움직임 중 대표적인 미술운동이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트랜스 아방가르드’다. ‘전위를 넘어서’라는 뜻을 가진 이 경향은 새로운 전위 개념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이 선택한 새로운 전위 동력은 라틴의 서정성이었고 서정의 근거로 삼은 것은 고대 로마 문화와 역사, 신화 같은 것이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작가가 산드로 키아(1946~)다. ‘물을 지고 가는 사람’은 키아의 작품 세계를 함축해 보여준다. 남성미 넘치는 건장한 청년이 자기 몸보다 큰 물고기를 업고 간다. 그림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이 정도가 전부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그림이 이해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물고기를 지고 가는 사람을 그려 넣고 ‘물을 지고 간다’는 어긋난 제목을 붙인 데서 이를 알 수 있다. 이해보다는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풍겨 나오는 정서를 느껴주길 바랐던 것이다. 작가는 그것이 논리적으로 따지고 이론을 세워서 이해했던 20세기 미술에 대한 진정한 전위라고 믿었다.

그러면 이 그림은 무슨 내용을 담고 있을까? 거대한 물고기는 죽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인간의 삶은 평생 죽음을 짊어지고 가는 모순된 여정이라는 것이다.

994호 (2009.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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